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7화 (17/210)

017. 이번엔 진짜 합체!

밖으로 나오자마자 진은 노바를 찾았다.

“주인, 나 왔다.”

진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쪽 문화에는 영령이란 게 있다면서?”

“그렇다. 조상님이 지켜 준다.”

로메른의 말대로 노바도 이 기술에 관해 알고 있었다.

“영령 대신 다른 걸 받아 볼 생각은 없어?”

“영령 대신?”

“저번에 했던 회복의 의식 기억하지?”

“기억한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이 아이가 생각해 낸 방법이야.”

진이 로메른을 가리켰다. 노바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성한 정령. 나 믿는다.”

회복의 의식을 경험한 덕분인지 녀석은 단숨에 승낙 의사를 보였다. 그렇다면 일은 간단해진다.

“로메른.”

진이 말하자마자 녀석은 성령을 꺼냈다. 아기 천사 옆으로 어른 천사처럼 보이는 성령이 나타났다.

노바는 깜짝 놀랐는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성령을 바라봤다.

“어때?”

“대단하다.”

덩치가 크다고 해도 녀석은 아이였다.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보면, 이 성령은 굉장히 멋질 것이다.

“멋지지……?”

“영령 강하다!”

“어?”

한데, 녀석이 놀란 건 성령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노바가 감탄한 건 성령이 강하다는 점이었다.

“느껴져?”

“느껴진다. 전사들의 영령만큼 강하다!”

고작 전사?

진이 의문을 담아 로메른을 바라보자 녀석이 대답했다.

[그쪽은 조상 대대로 누적된 힘이니까 강하지. 그중에서 전사가 사용하는 영령만 돼도 대단한 거야.]

그게 대체 뭐가 대단한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 진의 마음을 로메른이 읽고, 보여 주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한번 볼래? 일단, 싱크로를 맞춰야 하긴 해.]

상황을 보아하니 바로 되는 일 같았다.

“노바. 성령 한번 사용해 볼래?”

“지금 전투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이건 영령이 아니잖아.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겠어?”

“그건 맞다. 좋다!”

녀석도 내심 바라고 있는지, 진이 툭 치자 바로 넘어왔다. 사용할 사람이 준비됐으면 바로 시작해야 하는 법.

“로메른. 부탁할게.”

[알겠어!]

로메른이 곧장 움직였다.

성령이 노바의 몸 위로 날아갔다. 둘의 투 샷은 기가 막혔다.

‘산적한테 붙잡힌 천사?’

그 정도로 극과 극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성령은 수호천사처럼 노바의 등 뒤에 자리 잡았다.

‘끝?’

조금 허무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럼, 연결한다!]

역시나,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로메른이 손짓하자 성령의 몸에서 얇은 선이 나오더니 이내 노바와 연결됐다.

‘말 그대로 연결이잖아?’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 * *

지하 실험실을 생각해 보자.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합체를 구경하러 갔는데, 막상 본 건 메드사이언티스트의 실험실이었다.

‘두 번은 안 속지.’

진은 성령과 노바의 연결도 흑마법사 같은 흉악한 결과가 나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데, 변화가 없었다.

노바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었고, 성령 또한 아무렇지 않게 노바 등 뒤에 떠 있었다.

로메른도 이상하다 느꼈는지 주위를 날며 무언가를 확인하다가 진에게 다가왔다.

[진, 말 좀 전해 줘.]

“어떤 거?”

[생명력을 성령 쪽에 보내 주라고 해.]

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소리쳤다.

“노바. 생명력을 성령한테 보내.”

크지 않은 목소리라 잘 들었나 싶었는데, 눈앞에 변화가 시작됐다.

‘이건 또 무슨…….’

아름다움을 위해 호리호리한 몸을 하고 있는 성령. 그 성령의 몸이 울퉁불퉁해지기 시작했다.

미형을 위해 일부러 호리호리하게 만들어 둔 성령의 몸에 근육이 생겼다. 대체 이게 뭔 일인가 싶었는데 로메른이 보기엔 아닌 모양이었다.

[오. 이제야 제대로 작동하네.]

“저게 제대로 작동하는 거라고?”

성령은 어느새 근육 천사가 되어 있었다. 성스럽지 않은 건 아닌데, 분명 그런 건 아닌데…….

진은 생각을 더 이어 가지 못했다. 변화는 성령 쪽에만 생기는 게 아니었다.

“저건 또 무슨…….”

노바의 몸에서 신성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진은 이게 무슨 일인지 대충 감이 왔다.

“둘이 닮아 가는 거 같은데?”

[당연하지.]

이게 당연하다고?

신성한 야만인과 근육질 성령이?

뭔가 부조화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노바야?”

“주인. 영령의 힘. 받았다.”

녀석의 말투는 여전히 어눌하고 단순했지만, 이상하게도 온화한 느낌이 들었다.

그 부조화에 진은 헛웃음이 나올 거 같았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변화된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힘이 얼마나 상승했냐는 게 중요했다.

“어때?”

“좋다. 영령의 분노. 이 영령엔 없다. 내 마음 편하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로메른을 바라보자 녀석이 노바의 말을 통역했다.

[야만족의 영령이 온화할 리 있어? 보통은 분노와 투쟁심도 같이 끌어 올려. 우리 쪽 성령은 힘만 세지 머리가 깨끗해서 그런 거 없고.]

하긴, 생각해 보면 저 성령은 여러 성령을 때려 박아서 만든 것이다. 머리가 깨끗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힘은 얼마나 늘었어?”

“먼지 난다. 주인 괜찮나.”

“어 괜찮아.”

노바는 몸을 한차례 풀고는 몸이 얼마나 뛰어나졌는지 보여 주었다.

투-쾅!

눈앞에 있던 노바가 어느새 집 울타리까지 가 있었다.

‘대체 무슨 이런 소리가 나?’

녀석이 발디딤을 했던 땅이 움푹 파여 있었다.

“주인! 나 다시 간다!”

진이 와도 된다는 듯 손짓하자.

쾅!

소리와 함께 녀석이 코앞에 도착했다.

“몸 가볍다. 힘 더 난다. 나 뭐든지 할 수 있다.”

노바는 여전히 온몸에 힘이 넘치는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성령과 연결은 여기서 끝이었다.

[일단 여기까지 할게. 세부 조정하면 좀 더 좋아질 거야.]

“여기서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이제 시작이야.]

어쩜 이렇게 든든하면서도 무서울 수가 있는 건지.

진은 고개를 저으며 노바에게 말했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하자. 좀 더 편하게 조정해 줄게.”

“알겠다, 주인.”

노바가 대답하자 로메른은 곧장 연결을 해제했다. 탈력감이 오는지 노바의 표정이 일순 흐트러졌다.

“괜찮아? 오늘 좀 먼저 쉴래?”

“아니다. 나 체력 좋다. 밥 먹으면 낫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야만족은 식사만 하면 이 정도 체력 소모는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쉬어도 되고 일해도 되니까, 편한 대로 해.”

“알겠다, 주인.”

그렇게 노바를 보내고 다시 쉬려고 누웠을 때.

“도련님, 본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마리아가 튀어나왔다.

“중요한 거 아니면 나중에 할까?”

오늘은 최선을 다해 일한 기분이었다. 한데, 그런 진의 희망은 곧장 무너졌다.

“남작님께서 바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예.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방금 누웠던 진이 몸을 일으켰다.

‘햇볕 쬐기 참 좋은 날인데.’

* * *

남작가에 도착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하인들과 하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원래라면 아무것도 없을 중앙 홀에 테이블들이 놓여 있었다.

‘이거 설마…….’

진은 불안감을 안고 남작가의 집무실로 향했다.

남작가가 분주한데 집무실은 한결같았다. 남작은 언제나처럼 서류를 보며 앉아 있었다.

“왔구나. 몸 회복은 잘되고 있는 게냐?”

“예. 마리아가 잘 챙겨 주고 있어요. 푹 쉬면서 회복하고 있어요.”

“오늘 왜 불렀는지 오면서 봤을 거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남작가의 중앙홀을 쓰는 경우는 하나뿐이었다. 다른 귀족들을 초대하는 행사가 있을 때뿐이었다.

“파티가 있나요?”

“있지. 그것도 아주 중요한 파티가 있다.”

중요한 파티?

가족 중 생일인 사람도 없었고, 그렇다고 무슨 기념일도 아니었다.

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남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의 회복을 축하하는 파티다.”

“……예?”

생각지도 못한 말에 진이 떨떠름하게 대답하니, 남작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파티가 있다고 말했으면 네가 왔겠느냐?”

“그냥 파티하지 말자고 말씀드렸을 거예요.”

“그럴 줄 알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파티와 귀족가의 파티는 아주 다르다. 지금의 진은 물론이고, 예전의 진도 파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리 갑작스럽게 부른 것이다. 얼른 가서 준비하거라. 내 다른 준비는 다 해 놨으니.”

진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집무실 안으로 하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도련님. 모시겠습니다.”

남작의 철저함에 진은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녀들에게 이 말만 했을 뿐이다.

“최대한 간략하게 안 될까?”

“예, 도련님. 최대한 간략하게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말은 8살 때도 들었던 기억이 있는 거 같은데…….

그렇게 진은 파티 준비를 위해 집무실을 나왔다.

* * *

준비가 정신없이 이뤄지고 있을 때, 진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고생할 순 없다!’

아니, 이 생각이 아니었다. 이건 너무 진심이었고, 다른 생각이 있었다.

‘이걸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남작가의 파티면 당연히 기사단장이 참석할 것이다. 눈썰미가 좋은 기사단장이라면 노바의 진가를 보지 않을까?

그래서 진은 곧장 움직였다.

“내 호위가 있는데, 그 아이도 파티에 참석시키고 싶어.”

“호위를 구하셨습니까?”

“어. 마리아한테 물어봐. 그 아이도 준비시켜 줄 수 있을까?”

“당연합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 말이 있었던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바는 하녀들에게 끌려 들어왔다.

“주, 주인!”

아아. 내 표정이 저랬겠지.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저 표정.

역시 혼자 당하는 것보다 함께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역시, 최고의 호위!

마음의 짐마저 함께하는구나!

물론 이 개소리를 직접 해 줄 순 없었다. 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른 개소리를 해 주었다.

“노바. 파티에서 날 지키려면 그에 맞는 격식이 필요해.”

진지한 진의 말에 노바는 결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 주인 지킨다. 이거 해도 된다.”

진은 한 가지 확실히 깨달았다.

아픔은 나누면 덜해지는 법이다.

그렇게 한차례 준비가 끝난 뒤, 그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도련님, 너무 멋지세요.”

“오늘 주인공이 누군지 모두가 한눈에 알 거예요.”

“찌푸린 표정 조금만 펴 주세요. 그럼 훨씬 좋아질 거예요.”

병약한 미청년이었던 진이 몸이 회복하니, 그냥 미청년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노바도 만만치 않았다.

노바는 진과 정반대의 매력이 있었다. 남자다운 얼굴과 커다란 덩치가 조합되니 야성적인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

“노바, 준비됐지?”

“나 주인 지킨다.”

“그래. 조용히 내 뒤에서 나만 지켜 주면 돼.”

“그럼 가자.”

진은 노바와 함께 중앙 홀로 이동했다.

* * *

파티는 이제 막 시작한 것 같았다. 진과 노바가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어우. 벌써 피곤해지는 기분이네.’

진은 그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훤칠한 녀석이 진에게 다가왔다.

“이야, 진. 몸 좋아졌다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 친근한 말투와는 다르게, 진의 몸은 자동으로 움츠러들었다.

‘이게 무슨…….’

마치 쥐가 고양이를 만난 듯 온몸이 위축됐다.

육체의 기억이 지금 진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별 거지 같은…….’

진은 짜증을 내며 육체의 기억을 치워 버렸다. 움츠러들었던 몸이 자동으로 펴졌다.

“빌리?”

“그래. 너의 대장이자 친구, 빌리야.”

대장? 친구?

머릿속 기억에 따르면, 녀석은 친구도 아니었고, 대장도 아니었다.

옆 남작가 막내인 빌리 쉐라튼.

자신이 착하다는 걸 뽐내기 위해 진을 써먹던 녀석이었다.

‘하. 진짜.’

진은 짜증과 함께 답답함이 일었다.

‘그걸 알면서도 저딴 녀석을 대장이라고 부른 거야?’

자신을 이용한다는 걸 알면서도, 진은 저 녀석을 친구라 생각했다.

진의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진이 보기엔 이건 친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저 녀석은 진을 이용해 관심을 끄는 관종 그 자체였다.

‘관종 놈한테 친구니 대장이니 하는 것도 웃기지.’

이것에 관해 더 생각해 봐야 짜증만 날 뿐이었다.

“그래. 기왕 왔으니까 맛있는 거 먹고 가라.”

진은 그렇게 대충 말한 뒤, 녀석에게서 떨어졌다.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빌리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찌푸려지면? 니가 뭘 어쩔 건데?’

애들 싸움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이쪽은 진짜 중요한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교구장님 오셨습니까?”

“형제님의 몸이 괜찮으신지 확인차 왔습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아픈 곳도 없습니다.”

진에게 한마디 하려던 빌리는 교구장이란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귀족의 파티에 사제, 그것도 교구장이 오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빌리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대신 더 만만한 대상을 찾았다.

빌리의 시선이 진의 뒤에 서 있는 야만인을 향했다.

잠시 후, 뭔가를 떠올린 듯 찌푸려져 있던 그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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