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정보 길드
정보 길드 지부장 얀드레.
그는 지금 여러 가지 의미로 놀란 상태였다. 안 그래도 만나고 싶었던 남작가의 막내가 스스로 정보 길드로 걸어 들어왔다.
‘기회가 이렇게 오는군.’
최근 남작령에서 얻은 정보 대부분이 막내의 이야기였다.
‘축복을 받은 게 시작이었지.’
새로 온 교구장에게 축복을 받더니, 정령을 소환하고 병을 이겨 냈다.
‘우연일까?’
정보를 다루는 측면에서 보자면 우연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처럼 보일 뿐,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있다.
모든 일을 의심하는 반쯤은 편집증적인 성격. 선해 보이는 표정 뒤에 숨어 있는 얀드레의 진짜 성격이었다.
‘남작령은 이상한 일투성이다.’
지난 몇 년간 이곳 남작령에선 이상한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었다.
남작령에 있기엔 이상하게 뛰어난 자들이 자꾸 모이고, 남작령급에서 벌어지지 않을 사건들이 생겼다.
‘특히 최근 교구장의 파견은 말이 되지 않아.’
교구장은 교단에서 사제 수업을 받을 때부터 굉장히 유명한 자였다. 실력은 물론이고 성적까지 높았으니, 아무리 못해도 후작급 영지로 파견을 나갔어야 했다.
당연히 정보 길드에서 조사가 들어갔고 결과 또한 받을 수 있었다.
-내부 조사가 불가 판정.
-현재까지 나온 정보는 정상적인 인원 배정이라고 함.
-추후 교구장 취임 후 현장에서 조사 필요.
교단 내부 조사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정보 길드에서도 결국 실패했다면, 이젠 그가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가 이어받아 조사하던 와중 일이 발생했다.
조용히 있었어도 교구장이 의심스러웠을 텐데, 남작가의 막내에게 축복을 내렸다. 그걸 시작으로 여러 가지 일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막내가 찾아왔으니, 그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정령사답게 삿된 욕심이나 욕망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저 막내는 꼭두각시인가?
아니면, 그가 찾는 퍼즐 조각 중 하나인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었다. 스스로 찾아온 이상, 방법은 어떻게든 만들면 된다.
차갑게 굳어 있던 그의 표정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상태로 그는 뒤로 돌아 ‘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련님, 이곳이 특별실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얀드레는 진과 함께 특별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대공자랑 쇼핑을 해 본 경험 덕분일까. 이 특별실에 얼마나 골드를 처발랐는지 알 수 있었다.
‘비싼 가구는 다 모였네.’
괜히 특별실이 아니었다.
진이 내부를 보고 있을 때 지부장이 입을 열었다.
“어떤 정보를 사러 오셨습니까?”
진은 곧장 대답하지 않고, 로메른을 바라봤다.
[다른 왕국의 대략적인 상황.]
진은 로메른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호오. 꽤 재미난 정보를 원하시는군요. 정보 등급은 어디까지 원하십니까?”
정보 등급? 뭔가 알 수 없는 말이었는데, 당황할 필요 없었다.
[등외 정보.]
“등외 정보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쪽엔 회귀자가 있었다.
“등외 정보면 그저 소문이나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실밖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이걸로 충분하십니까?”
[충분해. 조각난 정보를 하나로 만들 큰 흐름이 필요한 거니까.]
“예. 충분합니다.”
진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혹 다른 정보도 구매하십니까?”
[아니, 됐어. 구매한다고 해도 정보를 이어 붙인 다음이야.]
진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진이 보기에 지부장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로메른이 보기엔 아니었다.
[얘 뭔가 아쉬운 모양인데?]
거래가 끝나서 아쉬워한다?
[확실해. 안 그랬으면 정리된 정보가 벌써 왔을걸? 이렇게 늦을 리가 없지.]
로메른은 없는 이야기를 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그럼 여기서 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진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정보는 집으로 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곧장 돌아갈 것처럼 행동했다.
‘진짜 아쉽다면 붙잡겠지.’
만약 붙잡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로메른이 정보를 이어붙이고 나면 정보 길드를 다시 방문할 예정이다.
그때 가서 다시 대응하면 된다.
진은 지부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지부장이 입을 열었다.
“혹시 일정이 따로 있으신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왜 그러십니까?”
지부장 쪽에서 먼저 진을 붙잡았다.
“이렇게 정보 길드에 방문해 주셨는데 저희가 아무것도 대접하지 못한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차 한잔 어떠십니까?”
그는 굉장히 정석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예, 좋습니다. 지부장님께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셨는데,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진이 승낙하자마자.
끼익.
문이 열리고 곧장 티세트가 들어왔다.
[봤지? 이 정도인데 아까 주문한 정보가 아직 안 온다는 게 말이 돼?]
로메른은 이 상황이 꽤 재밌는지 웃음을 흘렸다.
“드시죠.”
지부장과 대화가 시작됐다.
* * *
30분 정도가 흐르고, 진은 특별실에서 나왔다.
‘대체 뭐야?’
차를 마시며 뭔가 정보를 캐내나 싶었는데 30분 동안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더니 마지막엔 이런 걸 줬다.
‘언제든 특별실을 이용할 수 있는 카드를 준다고?’
정보를 캔다기보다는 뭔가 ‘친목질’과 ‘접대’에 가까운 티타임이었다.
진이 정보 길드에서 나오자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하여간 정보 팔이 놈들.]
“어?”
[이거 고전적인 수법이야. 이놈들은 달라진 게 없네.]
고전적인 수법?
진이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녀석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보를 캐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너랑 안면을 트고 싶었던 거야. 게다가 카드를 준 거 보면 각 나오네. 앞으로 네가 정보를 사러 오면, 그가 전담하겠단 뜻이야.]
안면을 튼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이야기의 앞뒤가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녀석이 원하는 정보가 뭔지도 대충 알겠어.]
“진짜?”
[어. 어떤 대화를 했는지 떠올려 봐.]
지부장과의 대화는 특별할 게 없었다. 그저 몸이 잘 회복됐는지, 날씨가 어떤지 이사한 집은 괜찮은지 하는 사소한 대화였다.
‘잠깐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화 중 진 외에 계속 등장한 인물이 있었다.
“설마 교구장님?”
최근 이야기만 해도 교구장은 빠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그래, 교구장. 지부장 그 녀석 교구장을 신경 쓰고 있더라.]
“그걸 노리고 대화한 거라고? 대체 왜?”
[그만한 강자가 남작가에 있는데, 정보 길드 측에서도 의아하겠지.]
고작 그것 때문에 파고든다?
진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저 강하다고 뒤를 캔다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교구장은 이곳에 있을 만한 인재가 아니라고,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정보. 정보팔이들은 이런 정보를 못 참아. 확인해야 속이 풀리는 인종들이야.]
진이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로메른이 설명을 덧붙였다.
[정보팔이 놈들이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알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무 많은 정보를 다루니까 미쳐 버리는 거야. 편집증이 생기는 거지.]
“미친 사람들이 정보를 다룬다고? 이게 말이 돼?”
[돼. 정보에 집착하고 그 정보를 의심하고 계속해서 확인하는 거야. 웃긴 건 그럴수록 정보의 질은 올라가니까. 그래서 고위직은 다 정신병이 있어.]
정신병이 생기는 게 당연하고, 정신병이 있어야 고위직이 된다니!?
“무슨 이딴 길드가 있어?”
기사, 마법사, 사제도 극한 직업이라 생각했는데 정보 길드도 만만치 않았다.
진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 들 뿐이었다.
‘정령사 하길 잘했다.’
정령사의 재능을 개화한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 좋음도 잠시, 진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문뜩 위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은 거야?”
[뭐가?]
“나도 의심받고 있는 거 아니야?”
진의 말에 로메른이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의심? 뭐에 관한 의심을 받는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없지? 신경 쓰지 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너한텐 빨대 꽂은 거야. 잘해 주면서 교구장 쪽 정보를 캘 생각인 거 같은데 우리는 줄타기하면서 쪽쪽 빨아먹기만 하면 돼.]
이 와중에 우리 쪽 이득을 생각하다니, 로메른다웠다.
[아무튼, 다음에 만나면 네 호감 산다고 은근히 이것저것 해 줄 거야. 내가 적당히 컷 해 줄게. 골수까지 빨아먹자.]
“그건 좋네.”
그렇게 로메른과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
“도련님, 볼일 다 보셨습니까?”
어느새 마리아가 나타났다.
“어. 끝났어.”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진은 로메른을 바라봤다.
[가자. 가서 한동안 정보 대조를 해 봐야 돼.]
“응. 집으로 돌아갈게.”
진은 집으로 돌아왔다.
* * *
집으로 돌아온다고 딱히 할 일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바쁜 건 로메른이지, 진이 아니다.
진은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 편하다.”
함께 쇼핑하면서 구매한 해먹(그물 침대)은 굉장히 편했다. 예전엔 그냥 그물 위에 누웠다고 하면, 이건 뭔가 더 푹신푹신했다.
진은 해먹에 누워, 햇볕을 쬐며 인생을 만끽하고 있었다.
“좋다. 좋아.”
그러고 보면 골드도 얼마 사용하지 않았다. 집은 공짜고, 가구마저 선물 받았다.
그나마 골드를 사용한 게 정보 길드에서 사용한 30골드가 전부였다.
‘애초에 30퍼센트, 300골드는 떼어 주기로 했으니까. 실제로는 아예 안 쓴 거네.’
700골드가 고스란히 주머니 안에 남았다. 몸도 편하고, 주머니마저 든든하니 진에게 넉넉한 마음이 생겼다.
‘얘는 잘하고 있나?’
고개를 돌려 로메른을 바라봤다.
정보 길드에서 받아 온 정보를 녀석은 계속해서 훑어보고 있었다.
중간 중간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갸웃거리기도 했는데.
‘아기 천사라 그런가, 귀엽네.’
진이 그 생각을 한 그 순간.
로메른의 고개가 진을 향했다.
“어?!”
진이 필요 이상으로 깜짝 놀랐는데도, 로메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거야! 이거!]
로메른은 서류를 들고 날아왔다.
진은 로메른이 들고 온 서류를 확인했다.
“야만족과의 전쟁 종식 15년 무엇이 변했나?”
일종의 칼럼이었다. 야만족과의 전쟁이 끝나고 대륙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기고한 짧은 칼럼.
[이게 첫 번째 일이야!]
“이게? 무슨 말이야?”
녀석의 말을 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이것부터 설명해 줄게. 세상이 멸망하는 사건이 하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다양한 사건이 얽히면서 결국 멸망의 길을 향하는 거야.]
그 말대로였다. 커다란 사건 하나 때문에 세계가 멸망할 리 없었다.
“어. 거기까진 이해했어.”
[우리가 되돌아온 건, 과거의 사건 중 멸망과 연관된 사건을 사전에 제거하려고 온 거야.]
하긴, 생각해 보면 회귀를 준비해 놓고 대충 적당히 돌아왔을 리 없었다. 철저한 준비를 하고 왔을 터.
“지금 도와줄 게 그런 사건 중 하나라는 거지?”
[어. 아까 말했듯 큰 줄기, 그러니까 핵심 사건은 아니야. 그래도 혼란을 일으키는 사건이긴 해. 전쟁이 벌어지니까.]
“전쟁?”
전쟁이 벌어지는 게 작은 사건?
이게 회귀자의 클라스인가.
[전쟁을 벌이는 우두머리를 찾아야 돼.]
“설마 죽이게?”
[그걸 왜 죽여?]
로메른이라면 단칼에 죽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닌 모양이었다.
[우두머리 하나 죽인다고 전쟁이 사라지겠어? 구심점이 사라진다고 전쟁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건 임시방편이라고.]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럼?”
[포섭해야지. 그 방법도 어렵지 않아.]
이쯤 되니 궁금할 지경이었다.
“대체 어떤 전쟁이길래?”
[좀 특별한 전쟁이야. 노예가 되어 버린 야만족이 다른 노예들을 규합해서 들고일어나는 전쟁!]
“설마…….”
[그래. 계급 투쟁이야!]
왜 특별한가 했더니.
이건 특별할 만한 전쟁이었다.
중세 시대에 계급 투쟁이라니!
이제야 이해가 됐다.
“이러니까 포섭하자고 한 거구나.”
[그래. 노예 신분이니까 구매하기만 하면 돼.]
계획은 일견 완벽해 보이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잠깐만, 노예를 구매하려면 남작령을 벗어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버지가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걸?”
[뭔 소리야. 남작령을 왜 나가. 배달시키면 되지.]
“배, 배달?!”
회귀자가 꺼낸 이야기 중 이게 가장 놀라웠다.
판타지는 노예를 배달해 줍니다.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