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귀신의 집
어두운 공간.
한 사내가 채찍을 들어 자신의 등을 후려친다.
철썩!
등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지만, 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다시금 채찍을 휘둘렀다.
철썩!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신이시여. 제 삿된 생각을 용서해 주소서!”
자신의 죄를 토해 내며, 자신의 몸을 때리는 ‘정화 의식’. 그렇게 한창 정화 의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
똑똑-.
누군가 정화실로 방문했다.
“교구장님. 남작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남작가에서요?”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목소리였지만, 그의 표정은 전혀 달랐다.
딱딱하게 굳은 차가운 얼굴. 마치 목소리와 표정이 따로 노는 것만 같았다.
“봉인해 둔 그 저택에 출입을 허락해 달라 합니다.”
그 순간, 교구장의 표정이 더욱 차갑게 굳었다.
남작가에 봉인해 둔 곳은 하나뿐이었다.
‘유령 저택’.
인간의 욕심이 만든 재앙.
‘어찌하여 또 욕심을 부리는 것인가.’
그곳은 몇 년간 제를 올렸지만, 어둠의 기운이 강해지고 있는 타락하고 더러운 장소였다.
그가 이곳에 교구장으로 오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방문 요청을 한 건 누구입니까?”
“남작가의 막내입니다.”
그제야 굳어 있던 그의 표정이 풀렸다.
이 세상은 신의 뜻을 거역하는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다. 그런 더러운 곳에도 가끔 꽃이 핀다.
그가 본 진이 바로 그랬다.
“허락한다고 말해 주세요.”
“사제는 누굴 보내면 되겠습니까?”
“제가 직접 갑니다.”
“……직접 말씀입니까?”
“예. 그렇게 전해 주세요.”
교구장은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사제복을 입었다.
상처는 사제복에 의해 가려지고, 차갑던 그의 표정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정화실을 나서는 그는 평소대로 온화한 교구장의 모습이었다.
* * *
우와 귀신 퇴치!
고스터 바스터즈 출동!
이렇게 생각한 게 불과 5분 전이었다. 한데, 이 일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일이 아니었다.
‘일이 너무 커지는데.’
단순히 ‘귀신을 퇴치하고, 헐값에 집 개꿀!’이 아니었다. 이 집에 얽혀 있는 곳은 총 두 곳이었다.
땅과 집을 구매한 남작가.
봉인한 뒤 제사를 지내는 교단.
이곳을 구매하기 위해선, 이 두 곳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아, 벌써 귀찮네.’
로메른 저놈이 문제다. 그냥 적당한 집을 구매하면 될 것을 뭔 놈의 귀신의 집을 구매한다고 해서.
“이렇게 곧바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형제님.”
그 결과, ‘교구장’님이 왔다.
모를 때나 사제 아저씨지, 교구장인 걸 안 이상 부담스러운 게 정상이다.
“바쁘신데 제가 괜한 일을 만든 거 같습니다.”
진이 먼저 사과하자, 교구장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곳은 저희도 신경 쓰고 있던 곳입니다. 손쓰고 싶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아 손대지 못한 곳이지요.”
역시나, 생각대로였다. 이곳의 교단은 눈앞의 위험을 버려둘 정도로 무능한 자들이 아니었다.
“한데, 형제님께서 방법이 있다고 하시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대가 됩니다.”
기대라뇨?
이런 기대는 받고 싶지 않았다.
“축복을 드리고, 빛의 정령을 얻으시고, 이렇게 귀신의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전 형제님을 보고 있으면 신께서 세우신 계획이 무엇인지 보이는 기분입니다.”
사제님. 그거 과대망상입니다.
신은 개뿔, 저기 흑마법사 놈 때문이라니까요!
목 끝까지 올라온 진심을 억지로 삼켰다.
“하하. 그리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을 단숨에 해결하실 거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제가 기대하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그의 말에 진의 표정 또한 진지하게 변했다.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의 표정이 진지해질수록 교구장의 얼굴엔 진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아프셔서 한평생을 남작가에 계셨던 형제님께서, 일어나자마자 주민들을 위해 ‘선의’를 발휘하셨다는 것. 전 그게 참으로 기대가 됩니다.”
선의요?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린가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구장은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귀신의 집을 이대로 두는 건, 어쨌든 위험하긴 한 일이니까.’
그런 귀신의 집을 해결하고 싶다고 한평생 아팠던 진이 나선 것이다. 그의 축복을 받은 자가.
‘오해할 만하네.’
그에게 진은 어떻게 보일까?
정확한 결론은 내릴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진은 교구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진한 호감이 묻어 있었다.
‘나쁘지 않아.’
사제. 그것도 교구장과 친해져 놓으면 나쁠 게 없었다.
“전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집이 필요했을 뿐이고 제 정령이 저곳에 들어가고 싶어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진의 ‘눈치’가 이게 정답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하, 욕심과 우연일 뿐이었단 말씀입니까?”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저 그것일 뿐 전 무슨 큰 생각이 있던 게 아닙니다.”
“겸손하시군요.”
눈치의 판단대로 움직인 게 정답이었다. 그의 호감이 짙어진 게 말투와 표정에서 그대로 전해졌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전 오히려 확신이 듭니다. 신께서 어떤 인도를 하셨는지.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 것인지 얼핏 보인 기분입니다.”
대체 어떤 오해를 한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긍정적인 오해를 한 거 같았다.
그 오해는 자꾸만 깊어졌다.
“절 교황님께서 이곳으로 보내실 때, 신께서 의도하신 일이라고 하셨던 걸 비로소 알겠습니다.”
교황까지 나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어……. 선생님 그건 아닐걸요?’
그가 이곳에 온 게 신의 인도라고? 진이 보기엔 전혀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교구장이 됐는데, 주요 도시로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나이 때문에 밀려온 거 아니야?’
오해가 너무 깊어진 거 같긴 했지만, 뭐 진이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의 호감이 짙어져서 뭐가 달라졌냐는 것이다.
“신께서 인도하셨음을 확인했는데, 제가 걱정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음껏 해 보시면 됩니다, 형제님. 제가 뒤에서 지원하겠습니다.”
일종의 프리패스권이 쥐어졌다.
거기에 지원까지 해 준다고 하니 걱정할 것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교구장님.”
“아닙니다. 저보다는 이 모든 일을 이끄신 신께 감사하시면 됩니다.”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진도 서비스를 발휘해야 하는 법.
“신께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분께 전 목숨을 빚졌으니까요.”
“하하. 그거면 충분합니다.”
삐끗하면 교단과 마찰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제 로메른이 나설 차례다.
“로메른, 부탁할게.”
[여기서 딱 기다리고만 있어.]
“알겠어.”
로메른이 집 안으로 넘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교구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진짜로 정령만 들어가는 거였습니까?”
“어? 듣고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듣긴 했는데, 설마 진짜 그럴 줄은…….”
이제야 왜 교구장이 왔는지 이해가 됐다.
‘이 양반 내가 들어갈 줄 알았던 거야!?’
괜히 서포트를 해 주니 어쩌니 했던 게 아니었다.
“그럼 우린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군요.”
“예. 간식 좀 준비해 왔는데, 드시겠습니까?”
“하하…….”
교구장은 어색한 얼굴로 웃음을 흘렸다. 잠시 후 그가 군것질거리에 손을 뻗었다.
이 양반이 먹을 거면서, 빼기는.
* * *
한낮인데도 집 안은 어두웠다.
[오랜만이네.]
로메른은 즐겁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집 안에 햇빛이 들어오지 못해 어두운 게 아니었다. 영혼들의 원한이 끌어들인 어둠이었다.
[반가운 감각이야.]
로메른은 빛의 정령이었는데도, 주위의 어둠이 너무나 좋다는 듯 그 어둠을 만끽했다.
물론 그런 행복한 시간은 얼마 가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버릇없이.]
눈을 감고 어둠을 느끼던 로메른이 눈을 뜨며 말했다.
그워어어.
샤아아아.
끔찍한 귀신들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데, 로메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저 주위를 둘러보며 녀석들을 품평할 뿐이었다.
[쓸 만한 악령은 둘뿐인가? 나머진 악령에 이끌린 녀석들 같은데, 방치해 놓길 다행이네.]
로메른이 보기에, 이곳에 사제나 사람이 들어왔다면 큰 화를 입었을 것이다.
[뭐, 밖에 있던 교구장 놈이 들어오면 해결했겠지만…… 2~3년만 더 지났으면 그놈도 해결 못했겠는데?]
안전을 위해 쳐 둔 봉인이 오히려 녀석들을 성장하게 했다. 두 악령을 중심으로 모든 영혼이 악령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로메른의 주위를 귀신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근데, 이 새끼들 진짜 버릇없네.]
로메른은 짜증 난다는 듯 조용히 읊조렸다.
[감히 누구 앞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어?]
경박하고 가벼운 말이지만, 그 말과 동시에 귀신들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마치 겁을 먹은 것처럼.
[난 어둠의 지배자이며.]
주위의 어둠이 요동친다.
로메른의 몸에서 빠져나온 붉은 생명력의 힘에 어둠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로메른 주위에 몰려든다.
귀신들이 어느새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망치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모든 흑마법의 주인이며.]
아기 천사 뒤로 무언가 형상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의 형상인 것만 같았는데.
귀신들은 그 어렴풋한 모습을 보곤, 대가리를 땅바닥에 처박기 시작했다.
[너의 절망이다!]
로메른의 모습은 마치 왕 같았다. 귀신의 경배를 받는 어둠의 왕.
[내가 돌아왔다.]
로메른 뒤에 모여 있던 어둠이 어느새 흩어졌지만, 고개를 드는 귀신은 아무도 없었다.
귀신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눈앞의 저 아기 천사가 그들의 왕이란 것을.
* * *
한편, 집 밖에 앉아 있던 진과 교구장의 모습은 잠깐 사이에 한결 달라져 있었다.
하녀가 가져온 테이블에 앉아, 품격 있는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자매님의 솜씨가 굉장하군요.”
“감사합니다. 쿠키도 준비해 왔습니다.”
차와 함께 쿠키를 먹는 고풍스러운 티타임. 진은 교구장의 모습을 보며 정보를 한 가지 얻었다.
‘귀족이었던 거 같은데?’
티타임은 귀족의 문화다.
평민들도 쉬는 시간에 차를 마시긴 하지만, 귀족들의 티타임과는 다르다.
‘뭐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데?’
차를 마시는 기품 있는 자세와 행동이 그가 보통 귀족이 아니었음을 말해 주었다.
‘귀족 출신 사제라…….’
진이 이렇게 티타임을 즐기며 교구장을 확인하고 있는 사이.
[진! 끝났어!]
어느새 로메른이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벌써?”
[뭐가 벌써야. 어둠이 없어서 한참 걸렸는데.]
이제 고작해야 1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는데, 이게 한참 걸린 거라고?
‘아니지. 어둠의 지배자니 뭐니 했는데, 오히려 느린 건가?’
아무튼,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좋아. 확실히 끝났다는 거지?”
[그래. 깔끔하게 정리했어.]
옆에 교구장이 있는데 귀신 부대를 이야기할 순 없었다.
진은 일단 교구장부터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구장님, 끝났다고 합니다.”
“……들었습니다. 한데, 이렇게 일찍 끝날 줄은 몰랐군요.”
교구장도 깜짝 놀랐는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가 확실히 끝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번 같이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예. 저도 저 봉인을 해제하려면 확인해 봐야 합니다”
한창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진과 교구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내부는 한동안 사람이 없었다는 게 느껴졌다. 먼지투성이였다.
“놀랍군요. 정말 놀라워요.”
진에겐 그저 먼지투성이의 집일 뿐이었지만, 교구장에겐 아니었다.
“빛의 기운이 이 집안 전체에 가득합니다. 삿된 어둠이 물러가고 이곳에 빛이 내렸군요.”
그는 마치 감동이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렇게 깨끗한 빛이라니. 정령님이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군요.”
온화하고 평온한 표정인데, 강렬한 광기가 느껴졌다.
“정령님, 그 안에 품고 있는 게 무엇입니까?”
그는 로메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하! 이 광신도 놈.]
로메른은 그 모습이 어처구니없는 모양이었지만, 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그의 ‘눈치’가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진. 이 녀석한테 들킨 거 같은데? 일단 보여 준다.]
“괜찮겠어?”
[어, 상관없어. 오히려 좋아할걸? 보여 줄게. 이 광신도 놈아.]
그 말과 함께 로메른의 몸에서 귀신들이 튀어나왔다.
문제는 귀신들의 색이었다.
뭔가 신성한 빛을 띤 귀신들.
진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교구장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성, 성령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