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9화 (9/210)

009. 골드가 쏟아진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로메른의 아이디어는 대박이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뭐가?]

로메른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알면서 물어보는 건가? 뭐긴 뭐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지.

정원의 한쪽엔 묘한 빛을 내뿜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이렇게 꽃이 금방 피어날 줄은 몰랐다고.”

[아 뭐야. 이거에 놀란 거였어?]

로메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진이 보기엔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처음 씨앗을 가져온 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었다.

“이게 원래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거야?”

그럴 리가 없다.

인내의 꽃이라 불리는 녀석이 일주일 만에 꽃을 피울 리 없었다.

[당연히 아니지. 엘프가 키워도 보통 2~3년 걸릴걸? 인간이 키우면 10년 정도 걸릴 테고.]

꽃 한 송이당 6골드(600만 원).

정령이 키우면 10골드(1,000만 원).

괜히 비싼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건 빨리 키운 만큼 10골드를 받지는 못할 거야.]

“그럼 얼마나 받는데?”

[5~6골드 정도 받을걸?]

그래도 일반 꽃과 비슷하게 받을 수 있었다.

“만약에 5골드에 팔린다고 해도 일주일 만에 40골드!? 미쳤네.”

고작 일주일 만에 2배가 넘는 수익이 발생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예전에 내가 돈 벌려고 만들어 둔 레시피야. 설마 이걸 지금 설계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흑마법사여도, 이 기적을 뚝딱 만드는 건 너무 엄청난 일이었다.

“역시 대륙 최고의 흑마법사. 어둠의 주인!”

[그래. 그게 바로 나다!]

골드는 사람은 물론, 정령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다.

“이거 수확은 언제 해야 돼?”

[지금 해도 돼.]

이걸 가져다 팔고 다시 씨앗을 구매하면? 골드가 2.5배씩 쑥쑥 증가하게 된다.

15골드가 40골드로.

40골드가 104골드로.

104골드가 270골드로!

만약 여기서 남작가의 투자까지 받는다면?!

“미쳤다. 미쳤어.”

[워워, 진정해. 이거 대량으로 공급되면 가격은 가파르게 떨어질 거야. 애초에 공급이 부족한 거지 수요가 많지는 않아.]

“……어?”

생각해 보니 그랬다.

대륙이 아무리 크더라도, 귀한 약초가 대량으로 풀리면 가격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격이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보통 귀한 작물들은 귀족가에서 생산을 한다.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면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

“위험해.”

[그렇지! 역시 상황 판단이 빠른데?]

로메른이 식물을 키워서 판매할 땐 별 상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대륙의 최강자였을 테니까.

하지만 진은 최강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 이걸로 돈 계속 못 버는 거야?”

[에헤이.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이거 하나만 팔았겠어? 가격이 떨어질 걸 뻔히 아는데?]

“너 설마…….”

[레시피는 충분하니까 걱정 마. 다른 거 끼워서 팔면 돼. 말했지? 기브 앤 테이크. 네가 날 도와주는 만큼 나도 너 도와주겠다고.]

로메른은 계약할 때 말했던 약속을 잊지 않았다.

저쪽에서 저렇게 나오는데, 진도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알겠어. 네가 해 준 것만큼은 나도 널 도와줄게.”

[하하. 그거야 그거. 내가 말했지? 난 어둠의 주인이었다고? 내가 네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줄 수 있는지 기대하라고.]

받은 만큼 일해 준다.

아니, 일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근처까지만 가 주면 될 일이다. 나머지는 녀석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그때 네가 말한 대로네.”

자신이 첫 번째로 소환된 건, 진에게도 행운이라던 그 말대로였다.

로메른은 진이 한 말을 이해했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놈들이 미친 거지. 선의로 호소하면 모두 해결될 줄 아는 등신 꼰대들. 하여간 그놈들은…….]

로메른은 한참이나 다른 회귀자들을 욕했다.

“그럼 곧장 수확한다?”

[그래. 바로 수확해서 다른 씨앗 사 오자.]

하녀를 보내려고 했더니, 안 되겠다. 이번에도 직접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로메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아. 하나는 남겨 둬.]

“하나?”

[하나는 우리가 쓸 거야.]

이 풀떼기를? 진이 로메른을 빤히 쳐다보자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 요긴하게 쓸 거니까 기대해.]

녀석이 뭘 할지는 대충 예상이 됐다. 애초에 저 꽃은 ‘연금술’ 재료였다.

‘뭔가 만들 생각인가?’

뭐, 그건 나중을 위한 재미로 내버려 두었다.

‘일단 수확부터 하자.’

생각을 정리한 진은 하녀를 불렀다. 한데, 그녀의 입에서 생각지 못한 말이 나왔다.

“도련님, 전 이 일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전문가?”

남작가에 식물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했다.

“정원사를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일주일간 정원사가 이곳에 자주 기웃거렸다. 가까이 올 때마다 하녀가 제지하긴 했지만.

“와 보라고 해.”

이쪽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일꾼이 있다면 환영이었다.

잠시 후, 최근 자주 얼굴을 봤던 정원사가 하녀와 함께 다가왔다.

4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남성.

그는 정원사인 것을 주장하듯 몸에 흙과 풀들을 잔뜩 묻히고 있었다.

진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도움이 필요해.”

“예, 막내 도련님. 플로나를 수확하면 되겠습니까?”

그는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맞아.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야. 앞으로 많은 작물들을 기를 텐데, 심고 수확하는 걸 도와줬으면 해.”

진의 말에 정원사의 눈이 커졌다.

‘뭐야…… 이 아저씨.’

그저 놀란 게 아니었다. 약간 흥분한 것만 같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막내 도련님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게다가 이런 반응까지 보이니 진이 얼떨떨할 정도였다.

“이쪽에 관심이 많았나 봐?”

진이 넌지시 물으니, 덩치가 산만한 아저씨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전 요 일주일간 기적을 봤습니다. 인내의 꽃이 일주일 만에 핀다는 건 그 어디서도 들어 본 적 없습니다.”

진은 ‘골드’가 늘어날 걸 예상하고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원사는 식물이 크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가 이 일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합니다!”

진은 그의 반응이 이해 가지 않았는데, 로메른은 아니었다. 녀석은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정원사 주제에 이 몸의 위대함을 알고 있잖아? 진, 이 녀석 일꾼으로 써먹어도 될 거 같은데?]

뭔가, 저를 칭찬했다고 괜찮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사람이 필요하긴 하니까.’

게다가 저 의욕 충만한 모습을 보니 대충 일할 거 같지도 않았다.

“좋아. 앞으로 부탁 좀 할게.”

“감사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는 마치 기연을 만난 마법사처럼,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일꾼이 생긴 덕분에 플로나 꽃을 아무런 손상 없이 수확할 수 있었다.

* * *

진은 꽃을 가지고 연금술 상점으로 찾아가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찝찝했다.

‘후작급 영지에서 활동할 만한 강자한테, 내 힘을 보여 줘도 되는 걸까?’

과한 걱정이긴 한 것 같지만, 그가 어떤 의도로 이곳에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에게 자신의 힘을 노출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그러니 마음껏 자신의 힘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에게 판매해야 했다.

“형.”

“진. 왔구나.”

진이 만나러 온 건 다름 아닌 대공자였다.

‘이럴 땐 가족이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족은 믿을 수 있다. 그거 하나는 확실했다.

“형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우리 막내의 부탁이라면 형이 당연히 들어줘야지. 아직 대공자일 뿐이지만, 내가 너의 부탁 하나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다.”

든든한 큰형.

‘이게 가족이지!’

진은 소쿠리를 형에게 건네주었다. 형은 소쿠리에 덮인 천을 열었다.

그곳엔 플로나 8송이가 놓여 있었다.

“꽃?”

딱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꽃. 형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진을 바라봤다.

“이 아이가 키운 거야, 형.”

진은 로메른을 가리킨 후, 설명을 이어 갔다.

“이 아이가 성장하는 데 꽃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한가 봐.”

“과연, 요즘 정원에서 뭔가를 한다더니 이걸 한 모양이구나.”

형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이게 제법 골드가 된다는데, 형한테 판매를 부탁하고 싶어. 씨앗 구매도 대행을 해 줬으면 하구.”

“남작가의 상단에 판매를 위탁하고 싶다는 말이냐?”

“응. 원래는 이렇게 빠르게 자라는 게 아니래. 뭔가 문제가 될까 싶어서 형한테 부탁하는 거야.”

형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판매 가격은 알고 있니?”

“한 송이당 5~6골드 정도 하나 봐.”

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생각보다 굉장히 비싼 꽃이었다.

“진아.”

대공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응?”

뭔가 문제가 생겼나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

“네가 자랑스럽구나.”

“어?”

“몸이 회복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일을 하는 게냐. 심지어 수수료를 생각하면 그냥 판매하는 게 나을 텐데.”

형은 그렇게 말한 뒤.

“다 가족을 생각해서 내게 가져온 거겠지……. 그 마음이 참 고맙구나.”

아니 형님. 수수료 받으시게요?!

물론 대공자는 그리 조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마음만 받고, 수수료는 최대한 낮춰서 받으마. 녀석, 벌써 어른이 됐구나.”

대공자는 무슨 오해를 했는지, 얼굴 가득 흐뭇함이 묻어 있었다.

‘어……. 음. 그거 아닌데 형?’

진은 이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그저,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가족이잖아, 형.”

“녀석.”

두 형제간의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남작가는 오늘도 따듯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고작해야 며칠 지나지 않은 것만 같았는데,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돈 버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말이 딱 맞네.’

매번 종류를 바꿔 가며 키우니 식물을 키우는 재미도 있었고, 특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가는 재산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얼마나 재밌었냐고?

‘1,000골드 달성.’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0억에 가까운 돈이었다. 뭔가, 10억이라고 하니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었다.

[일단,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충분하다.

애초에 돈 벌 만큼 벌었다고 작물 생산을 끝내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 좀 더 들어가고 훨씬 더 비싼 녀석 키워 놓으면 나중에 골드 부족할 때마다 한 뿌리씩 캐서 팔면 돼.]

나중에 골드가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심어 놓은 작물들 몇 개가 정원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진. 이젠 슬슬 움직여야지. 골드를 쌓아 놓기만 하는 건 진짜 멍청한 짓이야.]

그 말엔 진도 동감이었다.

“정보 길드에 가자는 거지?”

[그렇지!]

“그 전에 나도 골드 좀 쓰고 싶은데, 괜찮아?”

[오, 어디다 쓸지 생각해 놓은 곳이 있어?]

당연히 있었다.

한국인의 꿈. 집 구매.

이건 못 참는다.

“집 하나 사자.”

물론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몸도 괜찮아졌고, 골드를 벌 능력도 있다.

이런 인재를 남작이 내버려 둘까?

‘슬슬 귀찮아질 거 같은데, 튀어야 돼.’

독립해서 맘 편히 사는 것이다.

[괜찮은데? 나도 공간이 필요해!]

그건 로메른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골드 쓰러 가자.”

지구식 플렉스를 보여 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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