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7화 (7/210)

007. 치료

남작가에서 마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산. 지도상으론 작은 산 모양일 뿐이었는데.

‘장난 아니네?’

직접 보니 생각보다 훨씬 높고 컸다. 뭐, 그렇다고 해서 진이 피곤하거나 힘들 만한 일은 없었다.

“도련님, 속도를 조금 올려도 되겠습니까?”

“예. 고정 끈 묶었으니까 더 빨리 가도 돼요.”

“알겠습니다, 도련님.”

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기사들은 뛰기 시작했다. 확실히 지게는 마차와는 승차감이 비교되지 않았다.

‘이렇게 편하게 가는 것만 해도 어디야.’

산을 직접 오르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진이 할 일은 간단했다.

그저 산 풍경을 감상하며.

[여기서 오른쪽!]

때때로 로메른이 말하는 방향으로 기사들을 인도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올라가 주세요.”

“예, 도련님.”

이제 첫 산이지만, 로메른이 이 기사들을 뽑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들은 쉽사리 지치지 않았다.

속도가 좀 느려질 만하면, 잠깐 휴식을 하면서 지게를 지는 사람을 바꿨다.

물론, 그것도 한계가 있긴 했다.

“허억. 허억.”

“하아. 하아.”

달리고 달리다 보니, 기사들은 서서히 지쳐 가기 시작했다.

그때 로메른이 나섰다.

[슬슬 속도 처지는 거 같네.]

“방법이 있어?”

진이 입을 열자 기사들이 놀랐지만, 이내 정령과 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뭐, 도착해서 어차피 쉴 거니까. 체력을 좀 당겨 오면 될 거 같은데?]

“뭐? 당겨 와?”

누가 흑마법사 아니랄까 봐 회복 방법마저 흑마법사다웠다.

[회복시키기엔 네 몸에 자연의 마나가 너무 쥐꼬리만큼밖에 없어. 어쩔 수 없으니까 이 방법을 사용하는 거야.]

“당겨 와도 괜찮은 거 맞지?”

[어, 괜찮아. 다 회복돼. 뭐, 좀 피곤해하긴 하겠지만.]

녀석은 진의 생각을 예상이라도 한 듯 그 말을 한 뒤 기사들 주위로 날아가, 신비로운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녀석이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았을 터, 진이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여러분을 회복해 줄 거예요.”

진의 말에 기사들 주위에 있던 빛이 이내 기사들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금씩 느려지던 속도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이 정도면 목적지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메른의 도움이 추가되자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여기야.]

처음에 진은 ‘영기’가 산의 정상에 모이지 않을까 싶었다. 한데, 도착한 곳은 전혀 의외의 장소였다.

“여기예요.”

“……여기가 맞습니까?”

기사도 진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뭐 이렇게 놀래. 영기가 모이기에 딱 맞은 장소인데.]

진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산 중턱’. 대체 이곳이 뭐가 특별한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여기라고 하니까 좀 쉬고 계세요.”

“예, 도련님.”

진은 지게에서 내려, 로메른이 이끄는 곳으로 이동했다. 기사들이 있는 곳에서 열 걸음 정도 옮겼을 때, 로메른이 소리쳤다.

[앉아! 여기야, 여기.]

영기가 모여 있다고 해서 뭔가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가 맞냐고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일단 앉을게.”

진은 곧장 흙바닥에 앉았다.

“어?”

그러자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시원하면서 뭔가 간질거리는 감각.

‘설마!?’

진은 화들짝 놀라 엉덩이를 뗐다. 다행히 벌레가 있는 건 아니었다.

[벌레라도 있는 줄 알았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메른이 핵심을 찔러 들어왔다.

“아닌데? 그냥 영기가 보이나 확인한 건데?”

녀석은 진을 보며 피식 웃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알겠어.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로메른의 목소리가 다시 진지해졌다.

[이건 밖에서 못해. 일단 네 몸으로 들어갈게.]

“오케이. 들어와. 허락할게.”

녀석이 진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기사들은 휴식을 취하면서, 이쪽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다음은?”

[남의 기운을 탐하고, 약탈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건 흑마법사의 주특기야. 내가 할 일은 간단해. 이곳의 영기를 다 먹어 치울 거야.]

말하는 것만 들으면 거의 깡패나 마찬가지였는데,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든든했다.

[뭐, 생각보다 영기가 얼마 안 되는 게 아쉽긴 하지만. 하여튼 시작한다.]

로메른이 몸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짐과 동시에.

[다 먹어 치워 주마!]

땅에서 느껴지던 시원한 기운이 몸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감각이 진의 몸에 가득했다.

‘아아…….’

마치 카타르시스가 계속해서 느껴지는 것처럼, 엄청난 만족감과 행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째서 정령사들이 산에 틀어박혀 사는지 알 것 같았다.

압도적인 행복감과 만족감.

저열한 육체적 쾌락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정신적 충족감.

‘이러니 산에서 나오질 않지.’

골드를 벌고 권력을 손에 쥐는 게 이것보다 행복할까?

진은 확언할 수 있었다.

아니다. 이 만족감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그때,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제일 먼저 심장 주위부터 정리한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물어볼 필요 없었다.

투득. 투드득.

뭔가 막혀 있던 게 뚫리는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통증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미친. 막고 있던 게 뭔가 했더니 자연의 마나가 굳은 거잖아?! 이게 어떻게 인간의 몸 안에 굳어 있는 거지?]

마치 영기를 흡수했을 때처럼, 시원한 감각이 심장에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이거 대박인데?]

투득. 트드득.

막혔던 곳이 하나가 뚫릴 때마다 더 많은 기운이 심장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거 잘하면…… 일단 좀 자라. 이다음부터는 아플 테니까.]

그 순간, 진은 점점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 * *

진을 수행하는 기사.

존과 마이클.

둘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눈앞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령사는 원래 저런 거야?”

“난들 알겠냐.”

둘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한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뭔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선명한 녹색 기운이 막내 도련님의 몸 주위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기운을 모으신다고 했으니까. 저건 어떻게 넘어가도, 저것들은?”

기운이 맴도는 건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한데, 그 주위에 자리한 것들이 문제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저 꽃들 없었지?”

“어. 없었어. 확실해.”

분명 처음엔 꽃이라고는 없었는데 어느새 주위에는 활짝 피어난 꽃들로 가득했다.

“근데 꽃이 문제야? 쟤네들이 더 신기하지 않아?”

“그건 그렇지.”

게다가 주위에 꽃만 피어난 게 아니었다. 막내 도련님을 지키듯 새들과 동물들이 그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정령사는 다 저런 건가?”

“그럴 리가 있겠냐? 그럼, 드루이드들은 뭔 쓸모야?”

“하긴 그것도 그러네.”

애초에 정령사란 존재가 귀하다 보니, 모든 것이 놀랍고 새로웠다.

“일단 기다려 봐. 기사단장님이 하신 이야기도 있으니까.”

그런 둘을 위해 기사단장은 출발 전에 이런 조언을 해 주었다.

‘도련님이 데리고 계신 정령은 보통이 아니니,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섣불리 접근하지 말고 지켜봐라.’

마치 이런 상황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단장님은 이걸 예상하신 건가?”

“……단장님도 이렇게까지 신기한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생각 못 하셨을걸?”

“그치?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좀…… 특별하지.”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막대한 힘의 유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

“움직인다.”

두 기사가 눈치챌 정도의 선명한 감각. 이 감각을 느낀 건 둘만이 아니었다.

주위에 있던 새들과 동물들이 어느새인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막내 도련님 주위에 맴돌고 있던 기운이 그분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 기운을 한 번에? 대체 어떻게…….”

그들도 마나를 다루는 이들이다.

막대한 힘을 한 번에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정령사라 가능한 건가?”

그 물음에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모든 기운이 흡수되자, 도련님의 몸에서 정령이 튀어나왔다.

그 정령은 기사들에게 다가와, 손짓·발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존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모셔 가도 된다는 거니?”

기사의 말에 정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이 정령 진짜 똑똑한데?”

“그러게, 그러고 보니 아까 체력 회복시켜 준 것도 신기하지 않았어?”

“보면 볼수록 대단해. 막내 도련님이 정말 좋은 정령을 얻으셨어.”

둘은 곧장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야 첫 번째 산이었다. 아직 산이 여섯 개나 남아 있었다.

“서두르자.”

* * *

시간을 빠르게 흘렀다.

산에 도착해 영기를 흡수하고 다른 산으로 넘어가길 반복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일곱 번째. 영기를 하나씩 집어삼킬 때마다 몸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개운해.’

가슴 통증은 물론이고, 몸에 다른 통증들도 전부 사라졌다.

게다가 가장 좋은 건 이거였다.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스트레칭만 해도 비명을 지르던 몸이 지금은 스트레칭을 해도 괜찮았다.

“얼마나 좋아진 거야?”

몸이 확실히 좋아졌다는 체감은 있는데,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그냥 일반인보다 약간 떨어지는 정도? 이제부터 개조할 수 있게 기초 공사를 끝냈다고 생각하면 돼.]

“허. 이게 일반인도 안 되는 몸이라고?”

몸이 좋아진 게 확연히 느껴질 정도였는데, 일반인보다 약간 떨어지는 육체였다.

“진짜 얼마나 쓰레기 같은 몸을 갖고 있던 거야.”

[어차피 개조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마. 게다가 운이 좋아서 기초 공사까지 끝났어.]

운이 좋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영기를 흡수할 때마다 신이 나서 소리쳤다.

“그럼, 원래는 기초 공사도 못할 정도였어?”

[어. 심장 쪽 정리만 돼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심장만 치료하려던 게, 몸 전체로 확장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심장 쪽에 자연의 마나는 왜 쌓여 있던 거야?”

진의 심장 쪽에 자연의 마나가 쌓여 있었다.

[자연의 마나 친화력이 너무 높아서?]

“……그게 무슨 소리야?”

[뭐랄까, 이건 나도 직접 본 게 처음이라 뭐라 확답할 수 없는데, 너 정령사의 재능이 원래부터 개쩔었던 거야.]

재능?

그럴 리가 없다.

재능 검사로 몇 번을 확인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해. 넌 날 소환했으니까.]

갑작스러운 칭찬에도 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궁금했다.

“설명이나 해 줘.”

[와. 이게 그렇게 못 믿을 일인가? 아무튼, 쉽게 말하면, 재능이 너무 좋아서 자연의 마나가 심장 쪽에 쌓인 거야. 그게 굳어서 원래 있던 재능마저 안 보이게 된 거지.]

녀석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재능이 너무 괴물 같으면, 자신의 몸을 갉아 먹는 거야. 네가 딱 그런 꼴이었어. 아마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쌓였을 거야.]

한 점 흔들림 없는 표정.

녀석은 진심이었다.

[넌 그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할 거야. 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빠른데 재능까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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