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6화 (6/210)

006. 출발

남작과의 교섭은 금세 끝났다. 그렇게 남작과 대화를 끝마친 진은 기사들이 훈련하는 연무장에 나와 있었다.

기사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을 이어 가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갈까?”

[아니, 괜찮아. 여기서 봐도 충분해.]

진이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저기 덩치 큰 녀석 보여?]

로메른이 가리킨 곳을 보니, 유난히 덩치가 큰 기사가 한 명 보였다. 마치 곰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덩치. 그 덩치만으로도 유난히 강해 보였다.

“세 보이는데?”

[이번 여행은 속도전이야. 저 녀석은 부적합해.]

“겉보기완 달리 약한 거야?”

[아 그런 건 아니야. 머리통 따 가지고 듀라한으로 개조하면 딱 맞을 거 같은데? 몸뚱이 자체는 정말 좋아. 다만 속도전에 안 맞을 뿐이지.]

아기 천사의 모습을 하고, 살벌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짜 이번 여행에 적합한 친구는 누군데?”

[쟤랑 쟤.]

진은 녀석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강해 보이진 않는데?”

조금 전 덩치 큰 기사와는 달리, 이번에는 유난히 왜소해 보이는 기사들이었다.

[뒷동산에 올라가는데 강한 게 뭔 소용이야. 말했지? 속도전이라고.]

“마른 장작이 더 오래 탄다?”

[……뭔가 기묘한 비유긴 한데, 어쨌든 그 말대로야. 산을 빠르게 타는 건 저런 몸이 더 적합해. 저런 녀석들이 잘 뛰어. 포이즌 구울로 만들기 딱이겠네.]

비유가 기묘한 건 로메른도 마찬가지였다.

“좋아. 이런 건 전문가 말 들어야지.”

진은 그렇게 말한 뒤, 곧장 기사단장을 찾아갔다.

“기사단장님 안녕하세요.”

“막내 도련님이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기사단장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과 여유로운 분위기는 기사단장보다는 마법사가 어울리는 것 같지만.

[오. 이 할배 꽤 강한데? 이런 양반이 남작가에 왜 있어?]

로메른이 이런 말을 할 정도의 강자였다.

“허허. 정령을 소환하셨다더니, 진짜였군요. 참으로 축하드립니다.”

“운이 좋았어요.”

“제가 오래 살아 보니 운 또한 실력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둘의 훈훈한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로메른은 기사단장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 영감 보면 볼수록 괜찮은데? 늙어 빠진 육체인데도 균형도 좋고…….]

그는 호기심을 가지고 기사단장을 빤히 바라봤다.

“허허. 정령이 호기심이 많은 거 같습니다.”

“예. 좀 그런 편이에요. 아직 어려서 그런가 모든 게 신기한가 봐요.”

물론, 전혀 아니었다.

[와. 이 영감탱이 데스나이트로 만들면 딱이겠군. 내 컬렉션 마지막 자리쯤엔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녀석은 아기 천사의 얼굴로 살벌한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저 녀석이 더 관심을 갖기 전에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 할 거 같았다.

“기사 2명만 지원해 주실 수 있나요? 아버지께 허락은 받았어요.”

“지금은 훈련 주라서 원래라면 안 된다고 했겠지만, 막내 도련님이시니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괜찮은 녀석들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진은 무슨 이유로 기사를 데려가는지 차분히 설명했고, 이미 어떤 인원을 데려갈지 결정한 것도 알려 주었다.

이야기를 듣던 기사단장은 표정이 변했다.

“이거 참 신기합니다.”

“예?”

“제가 생각한 것도 존과 마이클 그 두 녀석입니다. 도련님이 직접 고르신 겁니까?”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다가, 진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이 아이가 추천해 줬어요.”

괜히 능력 있다고 인정받아 봐야 골치 아프기만 하다. 여기선 차라리 정령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았다.

“호오. 정령이 말입니까?”

기사단장은 로메른을 빤히 바라봤다. 문제는 로메른도 기사단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 안목이 나만큼은 있다는 거잖아? 이거 볼수록 괜찮네? 이 녀석을 원한에 푹 절여서 진짜 제대로 된 데스나이트로…….]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진은 얼른 이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럼, 그 두 명으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 괜찮습니다. 다만 아까 말씀드렸듯 이번 주가 ‘훈련 주’라서 녀석들을 좀 고되게 돌리고 싶은데 일정을 빠듯하게 잡아도 되겠습니까?”

그래 주면 이쪽은 땡큐였다.

“예. 저야 좋죠.”

“알겠습니다. 교육해서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허허. 알겠습니다, 막내 도련님.”

* * *

[아까 그 양반 대체 뭐야?]

“기사단장님?”

[어. 남작가에 있을 만한 양반이 아니던데.]

그야 당연했다.

그의 이력만 봐도 남작가에 머물 인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건 아니야. 의외로 별일 아니라 허망할걸?”

[뭔데?]

“기사단장님은 원래 왕실 기사단에 계시던 분이야.”

[왕실 기사단?! 그런 사람이 왜 남작가에 있어? 작위도 받았을 텐데.]

“기사단장님 평민이셔.”

진이 운을 떼자마자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에라, 이. 더럽게 한심한 이야기였네. 하여간 귀족 놈들 더러운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의 예상대로였다.

기사단장은 평민인데도 왕실 기사단까지 올라갈 정도로 출중한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왕실 기사단은 단순히 ‘재능’만 뛰어나다고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버티려면, ‘정치’가 필연적으로 필요했다.

“뭐, 뻔한 이야기지.”

[퉤. 괜히 입맛만 더럽게.]

로메른과 대화를 나누며 저택으로 돌아오니, 하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마차에 각종 물품을 싣고 있었다.

진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저번에 길을 안내해 줬던 하녀가 다가왔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어. 오랜만이네?”

“예, 도련님. 이번에 제가 도련님을 모시게 됐습니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진이 붙여 달라고 한 인원이 아니었다. 진이 남작에게 요청한 건 마차와 기사 둘뿐이었다.

“아버지께 들었어.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그녀는 남작이 붙여 준 사람이었다.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모신다는 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번에 안내를 받을 때 그녀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센스도 있고, 일도 잘하긴 했지.’

괜히 남작이 붙여 준 게 아닐 것이다.

“몇 가지 준비한 게 있는데 보시겠습니까?”

“준비?”

“예. 꼭 필요할 것 같은 걸 준비했습니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와 함께 마차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이겁니다, 도련님.”

“오.”

그녀가 준비한 물건을 보자마자, 괜히 남작이 붙여 준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오르신다 들었습니다. 그걸 기사분들이 도와주실 텐데, 이런 게 있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기사들에게 업혀서 산을 오를 생각이었다. 한데, 그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업히는 게 아니라 편안히 앉아 갈 수 있도록 ‘지게’를 준비했다.

“지게 맞지?”

“그렇습니다. 남작님께서 말씀하시자마자 준비한 물건입니다.”

깔끔한 원목으로 만들어진 지게.

그냥 깨끗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방석과 등받이까지 붙어 있었다.

“편하겠는데?”

이 정도까지 준비했으면 칭찬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생했어.”

“아닙니다, 도련님. 혹, 다른 것도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이렇게나 일 처리가 깔끔한데, 나머지가 확인이 필요할까?

“됐어. 나머지는 뭘 챙겼는지 여행 중 즐거움으로 놔둘게.”

“알겠습니다, 도련님.”

진은 알겠다는 듯 대충 손짓하고, 다시 지정석으로 돌아갔다.

정원에 걸려 있는 해먹.

‘아따. 날씨 좋다.’

내일부터 귀찮아질 텐데, 지금이라도 푹 쉬어야 하는 법이다.

* * *

다음 날 아침.

기사들은 대체 기사단장에게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진이 타고 있는 마차는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신기하네.’

신기하게도 내부에는 그다지 충격이 전해지지 않았다. 조금 흔들려서 속이 울렁거리긴 했지만.

“도련님. 혹시 몰라 멀미약을 챙겨 왔습니다.”

하녀의 준비성 덕에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진은 창밖을 구경하며 멍 때리고 있었고, 하녀 또한 말수가 적었다. 덕분에 마차엔 짙은 침묵만 맴돌았다.

이 침묵을 깬 건 사람이 아니었다.

[좋아. 계산 끝났어!]

여태껏 생각에 빠져 있던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계산?”

[너 치료하는 거, 그게 그냥 되는 게 아니거든.]

그러고 보니 어떻게 치료할지 한 번도 설명을 들은 적이 없었다.

진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치료하는 건지, 대충 설명해 줄 수 있어?”

[좋아. 어차피 전체적으로 한번 점검할 생각이었으니까.]

녀석을 그렇게 말한 뒤,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먼저 연구한 건, 빛의 정령의 힘이었어.]

녀석이 손을 뻗자 그곳에 빛이 만들어졌다.

[자, 봐 봐. 빛 하면 뭐가 떠올라?]

“빛난다?”

[그렇지! 결국, 이건 광원인데 막상 뜯어보면 그렇지 않거든.]

로메른의 설명이 점점 길어지려 하고 있었다.

“요점만 하자.”

설명하려는 걸 툭 끊었으니 짜증 내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마음에 들어. 어차피 이거 들어 봐야 이해도 못하잖아? 바로 결론으로 들어갈게.]

녀석은 오히려 좋아하는 눈치였다.

[내가 빛의 정령이긴 하지만, 정령의 힘은 순수한 빛이 아니야. 여러 가지 힘이 섞여 있어. 대략적으로 나누면 신성력 비슷한 거, 빛, 생명의 힘. 이렇게 다양한 힘이 뒤섞여 있어.]

녀석이 만든 빛이 3개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붉은색 빛.

그냥 빛.

이질적일 정도로 하얀 빛.

[여기서 빛이랑 신성력 비슷한 건 치우고.]

그중에 2개가 사라졌다.

남아 있는 건 붉은색 빛이었다.

[이건 생명의 힘이야. 빛의 정령이 치료의 힘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 그게 이거 때문이야.]

대충 무슨 이야긴지 이해가 됐다.

“그 생명의 힘으로 날 치료한다는 거지?”

[내가 말했잖아. 치료 아니라니까. 네 몸은 치료해도 쓰레기야. 너 쓰레기 몸뚱이로 살래?]

아니. 그건 사절이었다.

기왕 치료할 거면 적어도 일반인의 육체는 되어야 했다.

“건강히 오래오래 살아야지.”

[그래. 그러려면 싹 다 갈아엎어야 해. 쉽게 표현하면 ‘개조’를 한다고 보면 돼.]

개조? 생명력의 힘으로?

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명력의 힘으로 그걸 어떻게 해?”

[쉽게 표현하자면…… 생명력을 계속 때려 박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굉장히 건강해지나?”

[다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전혀 아니야. 너 왜 흑마법으로 만든 것들이 끔찍하게 생긴 줄 알아?]

“위압감 주려고 일부러 그따위로 만드는 거 아니야?”

진의 말에 녀석은 웃음을 터트렸다.

[와, 그건 또 신기한 관점이네. 뭐, 그것도 부정할 수 없긴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 언데드라고 해서 전부 흑마법으로 만드는 건 아니야.]

“그럼?”

[생명력이 들어가. 그것도 막대한 생명력이. 생명력을 계속 쑤셔 박으면, 육체가 변이를 일으켜. 그러니까 그렇게 끔찍한 모습이 되는 거야.]

뭔가 흑마법의 비밀을 엿본 느낌이었는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설마 나한테 하려는 게 그거야?!”

[응. 생명력을 쑤셔 박아서 억지로 변형을 일으킬 거야. 그러니까 치료가 아닌, 개조라고 부른 거야.]

신이시여. 여기 악마가 있어요!

[내가 최고로 개조해 줄게.]

미친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미친 사람의 눈빛은 지금 로메른의 눈빛과 똑같을 것이다.

[넌 사상 최강의 정령사가 되는 거야!]

아니. 거기까진 필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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