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4화 (4/210)

004. 면접

회귀자?

미래에서 돌아온 사람?

당황한 것도 잠시, 진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난 빙의한 사람이잖아. 회귀자도 있을 만하지 않나?’

차라리 회귀자 쪽이 더 그럴싸했다. 저쪽은 고작해야 시간을 돌아 왔지만, 진은 차원을 넘어왔다.

“좋아. 회귀자라 이거지?”

[……이해한 거야?]

그는 진이 한 방에 이해할 거라곤 생각지 못한 눈치였다.

“응. 미래에서 돌아왔다. 그것도 정령으로. 특별히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잖아.”

[천잰데?]

진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에 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물론 태도만 그럴 뿐 정말 간단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진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귀찮은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회귀자. 미래에서 되돌아온 자.

겉보기에만 멋있지, 따지고 보면 이들은 실패자에 가깝다.

‘성공한 사람이면 미래에 있지. 왜 과거로 돌아오겠어.’

그 실패자가 왜 과거로 돌아왔을까?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뭔가를 바로잡고 싶으니까 과거로 왔겠지.’

그게 뭔지는 몰라도 귀찮을 게 확실했다.

이쪽은 여유롭고 평화로운 인생을 보내고 싶은 거지 복잡한 일에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욕심이 들기도 했다. 회귀자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미래를 안다는 건 엄청난 힘이다.

‘이걸 포기하기엔 아깝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더욱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욕심을 안 내려야 안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진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정령이 말을 걸어왔다.

[멍청하면 이걸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다행이네.]

“그럼, 바로 시작할까?”

[시작? 뭘?]

뭐긴 뭐야. 면접이지.

회귀자 개꿀! 하면서 바로 계약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네가 일반적인 정령은 아닌 거 알지?”

[그렇지.]

“회귀자니까 뭔가 목적도 있을 거 아니야?”

[……그렇지.]

“그럼 계약을 할지 말지 대화를 나누며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어?”

진의 물음에 녀석은 멍한 얼굴로 진을 바라봤다. 실제로도 그는 깜짝 놀란 상태였다.

이렇게 말이 통화는 정령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정령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난 너랑 계약해도 될 거 같은데?]

정령은 눈앞의 정령사가 꽤 마음에 들었다.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야. 내게 필요한 건, 내 상황을 잘 이해하고 함께 움직여 줄 정령사야. 넌 거기에 딱 맞아 보여.]

“재능은 상관없어?”

[하, 재능? 내가 있는데 그딴 걸 왜 고민해야 하지? 난 어둠의 지배자이며, 모든 흑마법의 주인이며, 적들의 절망인데.]

자신만만한 그 모습에 순간 현혹될 뻔도 했지만, 진은 냉정히 상황을 바라봤다.

“근데 지금은 빛의 정령이잖아.”

[……그렇지.]

“흑마법의 흑 자도 못 써먹잖아.”

[난 흑마법의 끝에 도달한 사람이야. 그까짓 방법은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어.]

순식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렇게 순식간에 됐으면, 이렇게 말로만 떠들지 않았겠지.

“순식간이면 어느 정돈데?”

[……어?]

“순식간에 되는 거면 지금 기다려 줄게.”

녀석은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당장은 안 된다는 거지?”

[흠! 흠!]

녀석은 아기 천사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어색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역시나 생각대로 나름의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았다. 그렇게 진은 하나씩 정보를 모아 갔다.

“결국, 흑마법 지식은 당장 도움 되는 건 아니네?”

[이건 그냥 흑마법이 아니다. 모든 흑마법을 새로 모아 다시 정립한 흑마도의 끝이라 불리는 지식…….]

뭔가 오해하고 있다.

흑마법이 쓸데없다는 게 아니다.

“그걸 빛의 정령으로 활용하려면 연구가 필요하다는 거잖아?”

[……그렇다.]

“필요 없다는 게 아니야. 당장 활용할 수 없다는 거지.”

그제야 녀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다음은 회귀에 관해 설명해 줘.”

[무엇이 궁금하지?]

“전부.”

진의 말에 녀석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말할 수 없다.]

“그래?”

진은 녀석의 대답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녀석이 저 말을 한 이유를 생각할 뿐이었다.

‘회귀에 관한 정보를 지금 숨길 필요가 있을까?’

없었다.

애초에 정령이 뭘 하려면 정령사의 도움이 필수다. 당연히 숨길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럼 왜 숨겼을까?’

아니. 생각을 바꿔야 했다.

숨긴 게 아니라면?

말 그대로 말할 수 없는 거라면?

“제약이 있는 거야?”

[대가야. 회귀하는 데 필요한 대가.]

“설명이 필요해.”

[회귀는 그리 간단하게 되는 게 아니야. 정령으로 영락한 것도 모자라 회귀와 관련된 주요 기억마저 봉인해야 했어.]

앞 내용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마지막 내용이다. 봉인된 주요 기억.

“봉인은 풀 수 있는 거야?”

[내가 정령으로서 성장하면 기억이 하나씩 풀릴 거야.]

성장을 해야 풀린다.

지금 당장은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확인이 필요하다.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돌아온 건 아니지?”

[그게 뭔 소리야? 이 좋은 세상을 왜 멸망시켜?]

그건 동감이었다.

“뭐, 황제가 된다, 이딴 권력욕 같은 것도 아니지?”

[당연하지. 내가 마탑주도 해 봤거든? 그거 진짜 귀찮아. 연구할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진짜 최악이야.]

그렇다고 권력을 향한 욕망도 아니었다.

“그럼 왜 되돌아온 거야?”

녀석은 지금까지 보여 준 것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지었다.

[세상을 지키기 위해.]

“세상? 왜? 멸망하기라도 해?”

[……그건 모르겠어. 기억이 봉인되어 있다고 했잖아.]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는 거 같은데, 이건 좀 문제였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녀석이 나쁜 이유로 되돌아온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흠. 이건 고민이 좀 되네.”

[왜? 세상을 위해서라니까?]

“그게 문제야. 뭔가 귀찮은 느낌이 팍팍 나는데?”

[……아. 하긴 너 정령사지?]

정령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런 것들이다.

무소유와 무욕의 정령사.

유유자적 살아가는 이들.

이게 대륙 전반에 깔린 정령사의 이미지다.

‘나랑 꽤 어울리는 성격이지.’

무소유와 무욕은 모르겠지만, 덜 치열하게 유유자적 살아가고 싶긴 했다.

“정령사는 시킨다고 하는 애들이 아닌 거 알지?”

[잘 알지. 잘 알아.]

진은 빤히 정령을 바라봤다.

어떻게 꼬드길 건지 한번 말해 보라고 기회를 준 것이다.

[일단, 다른 놈들이 아닌 내가 첫 번째인 건 너한테도 다행이야.]

“첫 번째?”

그러고 보니 소환됐을 때.

[내가 첫 번째구나! 이 세상을 내 색으로 물들일 것이다! 어둠으로! 모든 것을!]

이런 헛소리를 했었다.

[회귀한 건 나 혼자가 아니야.]

“그러면? 몇 명이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 외에도 다른 놈들이 있어.]

이것 역시 자세한 기억은 봉인된 모양이었다.

“그럼 나 외에도 다른 정령사가 회귀자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니야. 회귀자가 여러 곳에서 활동하면 세상이 개판 나지 않겠어? 첫 번째가 소환되면 소환 대상이 고정돼.]

소환 대상이 고정?

진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설마, 앞으로 정령을 소환해도 전부 회귀자란 소리야!?”

[그렇겠지.]

여기서 계약을 취소한다고 귀찮은 일이 사라질 일은 없었다.

이들이 소환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하지 않았을까?

진이 보기엔 아니었다.

뭔가 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당황할 필요 없어. 아까 말했지? 내가 첫 번째로 소환된 건 너한테도 다행이라고.]

“이야기해 봐.”

일단, 이야기부터 들어야 했다.

[세상을 지킨다고 회귀까지 한 놈이면 어떤 놈들일지 예상이 되지?]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이겠지.”

[정의감은 무슨, 병신들이지. 편하게 할 만한 일도 시간 한참 걸리게 하고 완전 답답이들이라니까!]

세상을 구하는 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런 마음이 있으니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넌 다르다는 거야?”

[다르지! 난 쉽고 빠르게 갈 거야.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아. 그 등신들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등 뒤에 적을 만들어 놓는 일은 절대 없어!]

그는 어지간히 쌓인 게 많았는지 열변을 토했다.

[게다가 너도 우리 도와주는데 뭐가 됐든 팍팍 챙겨야 할 거 아니야. 그 등신들은 미래에 주인이 있는 물건이라는 개 같은 소리를 하면서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겠지만, 그딴 게 뭔 상관이야?]

“넌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지. 막말로 네가 도와줘야 세상을 구할 수 있는데, 보상은 당연한 거지. 그 답답이들처럼 세상을 위해서 희생하란 말은 절대 안 해!]

정리해 보자.

‘난 앞으로 회귀자 정령만 소환할 수 있어.’

그럼 결국 그 회귀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예 선택하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있긴 했지만, 회귀자 녀석들이 뭔 대비를 해 놨을지 모른다.

‘어찌 됐든 회귀자 정령을 소환할 수밖에 없다면,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해.’

그런 측면에서 보면, 눈앞의 이 녀석은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정의감은 숭고한 거지만, 내가 정의감 넘쳐야 한다면 사절이야.’

영웅은 영화나 티비로 볼 때 멋지고 가슴 벅찬 거지, 직접 되어야 한다고 하면 아찔한 감정이 먼저 든다.

‘그렇게 보면 이 녀석은 특이 케이스야.’

세상을 구하는 용사답지 않게, 녀석은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세상을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건 거래에 가까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녀석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네.”

[그치? 내 계획대로만 되면 네가 바쁠 일도 없어. 대부분은 골드로 해결할 거야.]

“그것도 괜찮고.”

[역시! 말이 통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그 답답이들 소환해 봐야 옆에서 잔소리만 하지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야.]

심지어 이 말 또한 일부 동의한다. 진은 마지막으로 하나만 시험해 보기로 했다.

“부탁이 하나 있어.”

[부탁? 하나가 뭐야. 두 개도 가능해. 말해 봐.]

“내 몸뚱이가 진짜 별로거든. 최우선으로 이것부터 해결해 줄 수 있어?”

[몸? 몸이 안 좋아? 그럼 안 되지! 당연히 그게 최우선이지!]

치료를 대가로 거래를 제안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녀석은 마지막 시험마저 수월하게 넘어갔다.

[그걸 말 안 했구나. 네가 살아 있어야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거야. 우리의 최우선 사항은 언제나 너의 ‘생존’이야.]

심지어 그냥 넘어간 게 아니다.

“합격!”

점수로 따지면 만점이었다.

그러자 녀석이 화답하듯 대답했다.

[난 아까도 말했듯이 처음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어. 판단도 빠르고 이해력도 좋아. 나도 합격이야.]

둘 다 합격이면 남은 일은 ‘계약’뿐이었다.

“난 진 플린트야.”

정령사의 정식 계약은 정말 간단했다. 서로의 이름을 교환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플린트? 이거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데……. 아 미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원래의 화제로 돌아왔다.

[난 수많은 이명으로 불렸어. 덕분에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건 극소수야. 넌 그중에 한 명이 된 거야.]

녀석은 그렇게 말한 뒤.

[내 진명은 ‘로메른’, 모든 흑마법의 주인이야.]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렇게 정식 계약이 체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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