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재능 확인
남작의 집무실로 진이 들어왔다.
“왔느냐?”
“예, 아버지.”
집무실엔 남작만 있지 않았다. 재능 확인에 도움을 줄 마법사도 함께 있었다.
“마법사님, 안녕하세요?”
“예, 도련님.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은 무슨.
마법사의 표정을 보니 어제도 밤을 새운 것처럼 굉장히 피로해 보였다.
‘아아. 대학원생의 삶이여.’
마법사의 표정만 봐도 짠했다.
그렇게 인사를 끝마치자 남작은 곧장 입을 열었다.
“아들아, 내가 오늘 널 부른 이유를 알겠느냐?”
“예. 알 것 같아요.”
축복을 받은 다음 날, 마법사와 함께 기다릴 이유는 하나뿐이다.
재능 검사.
남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돌려 묻지 않겠다. 난 네가 이 검사를 다시 한 번 받았으면 좋겠구나.”
그 말에 진은 깜짝 놀랐다.
‘받아라가 아니라 받았으면 좋겠다고?’
그는 진의 의사를 묻고 있었다.
압박하고 강요하던 전생의 부모님과는 전혀 달랐다.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진이 바로 대답하지 않자, 남작은 오해를 했는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검사 비용 때문에 고민하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너만 생각하고 결정하거라.”
너만 생각하고 결정해라.
‘그동안 저런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는 지구에 있을 때 전혀 다른 말을 들었다.
왜 너만 생각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왜 이것밖에 못하니!
이런 부모님의 압박은 전교 1등을 해도 변하지 않았다.
이제 고작 중학생일 뿐이야!
고등학교 준비해야지!
또 너 편한 것만 생각할 거니!?
끝없는 굴레.
치열하게 살고 싶어 산 게 아니었다. 그저 치열하고 지독하게 살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돌아가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으니까.’
최선을 다해 살았다. 물론, 이력을 써먹어 보기도 전에 어처구니없게 죽었지만, 아쉽지 않았다.
‘그걸로 족해.’
그립거나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진은 눈앞의 남작을 바라봤다. 그는 천천히 생각하라는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괜한 감상에 빠졌네.’
진은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검사해 보고 싶어요.”
애초에 검사를 받기 위해 축복 이야기를 흘린 것이다. 진의 선택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남작의 얼굴에 화색이 떠올랐다.
“그래. 잘 결정했다!”
남작은 가까이 다가와 진의 어깨를 두드려 준 뒤, 곧장 마법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바로 검사 시작하게.”
“예. 알겠습니다.”
마법사는 진에게 다가와 볼링공보다 조금 작은 구슬 하나를 내밀었다.
“도련님. 어렸을 때 받으셨는데 기억하십니까?”
“예, 기억나요. 사용법은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남작가라곤 해도 귀족인 진이 이걸 받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태어나서 한 번.
10세가 되던 해에 한 번.
지금까지 총 두 번의 검사를 받았다.
‘재능 없음이 뜨긴 했지만.’
물론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이쪽은 ‘축복’을 받은 상태였다.
진은 구슬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조금 따끔하실 겁니다.”
그의 말과 동시에 손에서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진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피 한 방울이 구슬 내부로 흘러 들어갔다.
‘하여간 신기하다니까.’
이 재능 검사 아티팩트는 흑마법을 다루는 ‘흑색 마탑’에서 만든 물건이다.
‘판타지에선 흑마법사가 악의 축인 게 국룰인데.’
놀랍게도 이곳에선 마법의 한 갈래일 뿐이었다.
그렇게 진이 눈앞의 구슬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동안, 마법사는 뭔가 주문을 외며 구슬을 작동시켰다.
잠시 후, 구슬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축복의 힘!’
빛이 뿜어져 나왔다는 건 재능이 있단 뜻이었다.
“오오.”
책상에 앉아 있던 남작이 벌떡 일어났다. 그의 시선은 점점 빛이 사그라드는 구슬을 향해 있었다.
빛이 사라지고, 구슬에는 묘한 문양이 떠올랐다.
“도련님, 구슬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예. 여기 있어요.”
진은 그 구슬을 마법사에게 건넸다. 마법사는 구슬을 쥐고, 뭔가 주문 같은 걸 중얼거렸다.
그러자 구슬 내부에 있던 문양이 작은 빛을 내더니 사라졌다.
“끝났습니다, 남작님.”
“그래. 어떤 재능인가.”
남작의 목소리가 들떴다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일단, 축하부터 드리겠습니다. 정령사의 재능을 각성하셨습니다.”
“정령사?”
“예, 그렇습니다. 이건 굉장히 드문 일입니다. 정령 친화력은 웬만해서는 오르지 않습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정령사는 노력한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직 재능!
재능이 있어야만 정령사가 될 수 있다.
“정령이라. 이건 생각지도 못했군.”
남작은 이걸 축하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마법사가 설명을 덧붙였다.
“막내 도련님께 딱 어울리는 재능입니다. 정령사의 수련은 체력이나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게다가 활용도 마법보다 훨씬 즉각적이니 막내 도련님께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잘됐군, 잘됐어.”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진에게 다가왔다.
“고생했다. 정말 고생했어.”
고생? 그런 건 전혀 없었지만.
굳이 지금 분위기를 깰 필요는 없었다.
“아니에요. 아버지께서 기회를 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진은 남작에게 그 공을 넘겼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구나.”
덕분에 부자간의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렇게 잠시간 축하가 오간 뒤, 남작이 곧장 마법사에게 물었다.
“정령 소환은 가능한 것인가?”
“예. 검사에서 나올 정도면 충분히 소환할 수 있으십니다.”
남작의 시선이 진에게 향했다.
“바로 하는 게 어떻겠느냐?”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곧바로 해 주면 땡큐였다.
“전 좋아요.”
“그래. 알겠다. 내가 다 준비해 주마.”
남작은 곧장 마법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정령 소환 준비는 얼마나 걸리지?”
“마석만 있으면 됩니다. 최대한 빠르게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하네.”
* * *
이렇게 간단하게 되는 건가?
이쯤 되니 오히려 진이 더 궁금해졌다. 정령에 관한 지식은 꽤 있었지만, 계약에 관한 지식은 없었다.
한데, 그런 진의 의문과는 달리 정령 소환은 순식간에 준비됐다.
마법사는 마석과 마법진이 그려진 양피지 하나를 가져온 뒤, 곧장 움직였다.
“도련님, 양피지 위에 손을 올려 주시겠습니까?”
“예.”
진이 손을 올리자마자 그는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러자 양피지에 그려진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도련님. 정령을 부르셔야 합니다.”
“예?”
그게 뭔 개소리야?
갑자기 부르라고 해도 이쪽은 방법을 몰랐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부르시는 겁니다.”
“정령을요?”
“예. 그러면 정령이 나타날 겁니다.”
마법은 뭔가 체계적인 느낌인데, 그게 정령술의 영역에 들어오자 뭔가 적당히 대충 하는 느낌이었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하자.’
진은 마음속으로 정령을 불렀다.
‘정령아. 이리 와!’
스스로 하고도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때 마법사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도련님, 의지가 부족합니다. 더 강하게 부르셔야 합니다. 진심으로 그들을 불러야 소환됩니다.”
“아, 예.”
진은 아까보다 더 강한 마음을 담아서 다시 한 번 정령을 불렀다.
‘오라니까! 정령아 와!’
하지만 그것도 부족했는지 마법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오르긴 했지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더 강하게! 진심을 담아 부르셔야 합니다.”
진심이라고? 진짜를 보여 주지.
진은 마음속에 있는 진짜 진심을 꺼냈다.
‘와라! 노예야! 나 대신 귀찮은 일 해 줄 노예 놈아! 빨리 와라!’
정령을 부른다기엔 뭔가 부적절한 것 같지만, 진심 100퍼센트였다.
“정말 좋습니다. 엄청난 의지입니다! 더 강하게!”
마법사는 진이 흐름을 탔다고 생각했는지 옆에서 계속 부채질을 했다.
덕분에 진도 진심 뒤에 숨어 있던 진짜 흉측한 진심이 튀어나왔다.
‘와라! 채찍을 휘둘러 골수까지 빨아먹어 주마! 인생의 모든 귀찮은 걸 짬 때려 주마! 군대도 대신 가라! 공부도 네가 해! 노예야!’
그러자, 양피지가 조금씩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정령이 올 겁니다. 부름을 받은 정령은 이미 도련님과 계약이 된 겁니다. 이름을 지어 주시면 계약 확정입니다.”
마법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작은 빛 가루들이 뭉치더니 이내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와.”
그건 정말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날개?’
새 형상인가 싶었는데, 이내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람이었다. 날개가 달린 사람.
그것도 어른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등에 날개가 달려 있었다.
‘천사?’
진이 멍하니 손바닥만 한 작은 천사를 바라보고 있자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오오, 빛의 정령이군요. 치유의 힘과 빛의 힘을 지닌 정령입니다. 굉장히 드문 정령인데, 축하드립니다.”
빛의 정령이라는 마법사의 말과는 달리, 정령의 입에선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난 어둠의 지배자이며, 모든 흑마법의 주인이며, 너의 절망이다!]
빛의 정령이라며?!
“힘찬 녀석인 것 같군요.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진 않지만 정말 귀엽습니다.”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 절망 앞에 무릎을 꿇어라!]
“역시 빛의 정령이라 그런지 신성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내가 첫 번째구나! 이 세상을 내 색으로 물들일 것이다! 어둠으로! 모든 것을!]
어, 선생님.
이 정령 미친 거 같은데요?
그게 정령과의 첫 만남이었다.
* * *
결국, 정령에게 이름은 지어 주지 못했다. 대신 마법사에게 몇 가지 꿀팁을 얻어 왔다.
“일단 가계약이 된 상태입니다. 어쨌든 그 정령은 도련님의 통제하에 있습니다. 명령을 내리시려면…….”
그렇게 꿀팁을 챙기고 정령과 대화를 한 뒤 계약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는 정령과 진. 둘뿐이었다.
“안녕? 일단 대화 좀 할까?”
[좋지.]
녀석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주위를 뽈뽈 날아다녔다.
“넌 누구야?”
[난 어둠의 지배자이…….]
이걸 또 들어 줄 순 없었다.
진이 끼어들었다.
“그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 말고, 진짜를 이야기해 봐.”
[낭만이 없는 녀석이네.]
녀석은 입을 삐죽이며 대답하곤,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빛의 정령인데 이런 소리를 해서 이상하다는 거지?]
“맞아. 바로 그거야.”
[뭐, 내 모습이 이 꼴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지.]
진은 녀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겉모습만 보면 아기 천사인데 입만 열면 어둠이 어쩌고를 해 대니 이해가 될 리 없었다.
[후. 빛의 정령이 된 건 짜증 나긴 하지만, 뭐 그건 별수 없지.]
‘빛의 정령이 된 건?’
녀석의 말은 뭔가 이상했다.
‘정령은 자연의 마나가 모여서 탄생하는 걸 텐데?’
그런 진의 의문을 녀석이 한 방에 해결해 주었다.
[난 인간이었다. 흑마법의 끝을 봤으며, 마지막까지 세상을 수호하던 인간 중 하나였다.]
그제야 녀석이 하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인간에서 정령이 됐기에 저런 말을 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의문이 해소된 건 아니었다.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흑마법사가 세상을 수호한 적이 있었어? 언제?”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흑마법사가 세상을 수호했다는 전설이나 신화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녀석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미래.]
“어?”
그게 뭔 개소리냐고 말하기도 전에, 새로운 개소리가 튀어나왔다.
[난 회귀자다.]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