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58. 마지막 (2)
“크하하하!”
흔히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을 이처럼 완벽하게 실천하는 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방어를 하지 않는 이상, 공격을 하다보면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흐름을 탄 바알의 공격은 빈틈을 발견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뒤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강맹한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하압!”
세은이 절묘하게 바알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리고 힘껏 기합을 지르며 땅을 찍고 달의 검을 횡으로 강력하게 휘둘렀다.
바알의 다리를 노린 일격.
그런 세은의 공격에 대항해, 바알이 반대 손에 들고 있는 곤봉이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졌다.
쩌엉!
달의 검이 막히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별의 검이 움직였다.
그대로 공간을 가르며 나아가는 공격이다.
바알이 신형을 돌리며 마법을 시전했다.
거기에 곧바로 이어지는 곤봉의 쇄도에 별의 검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우우우웅!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단숨에 별의 검을 고쳐 잡은 왼손이 또다시 일격을 뿌렸다.
모처럼 잡은 공격 기회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검격에 바알의 공세가 주춤했다.
흐름이 바알에게서 세은에게로 넘어오고 있었다,
바알의 곤봉이 허공을 수놓으며 순수한 마기의 힘을 발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세 번의 휘두름이 세은의 검을 맞이했다.
텅! 텅! 터어엉!
별의 검의 검신이 연쇄적인 충돌로 인하여 커다란 흔들림을 겪었다.
별의 검을 타고 엄청난 충격이 팔을 찾아왔다.
그래도 세은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방금 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넘어 온 흐름은 온전히 세은의 것이었다.
달의 검이 막강한 힘을 뿌리며 바알의 급소를 베기 위해 진격한다.
스각!
바알은 완전히 피해내지 못했다.
어깨의 살갗이 얕게 찢겨 나가고 엷은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바알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었다.
물론 지금 입은 부상은 대수롭지 않다.
그러나 방금 전에 바알이 흐름을 잡고 있을 때는 세은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반대로 세은이 흐름을 잡자 바알의 몸에 얕게나마 상처가 난 것이었다.
이는 바알이 조금은 밀리고 있다는 말이리라.
“과연…….”
바알이 힐끗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정말 별것 아닌 상처다.
벌써 자연적으로 지혈이 되어 아물기 시작할 정도.
하지만 그 작은 검상이 결국 바알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바알이 세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력을 다해야겠어. 이성을 완전히 유지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잘못이었다.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할 뻔했군.”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그러나 바알은 세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행동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키이이잉.
바알의 몸에서 마기가 폭발적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느낌은?’
마계에서 바알이 다른 마왕들을 수족으로 부리기 위해 했던 것과 같은 반응이다.
다른 이들에게 했던 행동을,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바알의 육체가 더 강해지면, 어떻게 될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한 가지 문제는, 이렇게 되고 나서도 바알이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였다.
파라라라락!
바알의 몸이 완전히 마기로 뒤덮였다.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바알이 이성을 가지고 있어도 문제지만, 잃어도 문제다.
이성을 잃은 괴물이 도대체 어디로 튈지 예상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닥을 박차 흙먼지를 가득 휘날리면서, 세은은 검을 뻗어 나갔다.
뻗어가는 달의 검.
위협적인 살기를 가득 담은 달의 검이 바알의 목을 노린다.
동시에 왼손에 들린 별의 검에서는 신성 마법이 단숨에 발동되고 있었다.
세은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달의 검과 신성 마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한 번에 끝낼 요량으로, 마기를 변화시키는 바알을 공격했다.
그의 발치에서 피부가 따갑도록 폭발하는 마기가 비산하고 있었다.
꽈아앙!
“어림없다.”
어느새 바알이 눈을 번쩍 뜨며 세은의 공격을 막아냈다.
아직 완전히 변형되지 못해 허옇게 보이는 눈을 제외하고는 온몸이 마기에 뒤덮여 있다.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괴력이다.
순식간에 신성력을 잠식해 오는 마기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바알이 만들어서 마계에서 상대해봤던 다른 마왕들과 마족들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신성력을 달의 검에 집중하고, 바알을 지키고 있는 마기에 꽂아 비틀었다.
“흐아앗!”
동시에 미세하게 생기는 틈 사이로 별의 검을 꽂는다.
아무리 단단한 곳이라도 한 곳을 계속 공격받으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치이이잉―!
바알의 마기를 밀어내고 앞으로 뚫고 들어가면서 달의 검이 목표를 향해 전진했다.
마기가 신성력에 대항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본체를 지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다.
바알의 변화한 마기는 하나하나가 속으로 깊숙하게 침투하는 기이한 관통력을 지녔다.
그 마기를 바로바로 정화시키지 못하면 이기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마기가 축적되면 그것을 막기 위해 신성력이 급속도로 소모될 수밖에 없다.
아니, 신성력이 버티더라도 마기가 몸 안에서 방해를 하면 순간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전투에서 그런 틈은 바로 죽음으로 직결되는 길이었다.
우우웅!
그러나 다행히 성물이 여전히 밝은 빛을 내며 세은을 도와 마기를 정화하고 있었다.
성물의 끝을 알 수 없는 능력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저 중간중간 호흡을 위해 숨을 한 번 들이킬 시간.
그 시간이 한계였다.
그 이상의 머뭇거림은 바로 패배였다.
키이이잉.
그리고 바알의 몸이 서서히 마기에서 벗어나 그 모습을 드러냈다.
“……후으읍!”
깊게 숨을 내쉬는 바알의 입김에서 느껴지는 마기가 엄청나다.
조금의 틈은 냈지만, 달의 검은 결국 목표했던 끝까지 닿는 것에 실패했다.
“젠장.”
파앗!
세은의 욕설과 동시에 바알의 두 눈이 치켜떠졌다.
거리를 좁혀오는 속도가 엄청났다.
방금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훨씬 더 속도가 빨라진 것 같았다.
“큿!”
순식간에 눈으로 짓쳐드는 바알의 공격에 세은이 신음을 흘리며 달의 검을 마주 들었다.
터엉!
단순히 속도만 빨라진 것이 아니었다.
곤봉에 실린 마기의 힘도 더 강해졌다.
세은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바알의 왼손이 쉬지 않고 앞으로 나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알의 왼손에 들린 곤봉이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부셔버릴 것 같은 기세를 품고 움직였다.
“홀리 웨이브!”
세은이 다급하게 신성 마법을 발동했다.
우우웅!
신성력이 빠르게 재구축되며 바알의 곤봉과 세은의 사이에 빛의 파도를 만들었다.
쿠아아아아!
빛의 파도가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릴 기세로 전진했다.
그러나.
콰아아앙!
이내 형용할 수 없이 강력한 마기가 빛의 파도를 덮쳤다.
그리고 그 마기는 그 어떤 것이라도 쓸어버릴 것 같던 빛의 파도를 그대로 산산조각 냈다.
“하아압!”
너무나 쉽게 사라진 빛의 파도다.
그렇다고 멍하니 손을 놓고 있다가 허무하게 당할 수는 없었다.
별의 검을 앞으로 겨누고, 달의 검은 뒤에서 거든다.
웅웅웅!
두 개의 검을 십자로 교차해 마기를 막아내는 세은이다.
꽈앙! 꽈아앙!
곤봉과 검이 충돌하는 소리가 마치 건물이라도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을 만들어냈다.
바알의 양손에 들린 곤봉과 한 번씩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내부가 진탕되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밀리면…… 죽는다.’
순식간에 죽음의 예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진 바알의 힘이다.
콰가가가!
곧바로 이어진 마기의 발출과 함께 쇄도한 바알의 곤봉이 세은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끝이다.”
바알이 말소리가 뚜렷하게 고막을 뚫고 들려왔다.
달의 검과 별의 검은 이미 처음의 공격을 막아내고 난 상황이다.
다시 팔을 움직여 바알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당장이라도 바알의 곤봉에 머리가 으깨질 것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가 눈앞에 펼쳐졌다.
“안 돼!”
“성하!”
에린과 헤이런이 그 모습에 소리를 질렀다.
세은이 죽음에서 빠져나올 길은 없었다.
모두의 눈에 같은 마지막이 그려졌다.
그때였다.
우웅― 우우웅!
세은의 목에 걸려 있던 성물이 순식간에 빛을 터트렸다.
성물의 강렬한 성광이 세은의 손을 거쳐 신성 마법으로 변환되었다.
별의 검을 놓아버린 세은이 자신의 손에 모인 신성력을 잡아들었다.
순수한 신성력으로만 이루어진 신성한 검신이 곤봉의 옆으로 파고들었다.
콰아앙!
놀라운 광경이었다.
바알의 두 눈에 순간 당황이 스쳐갔다.
채앵!
신성력만으로 구성한 검은 마기의 막강한 힘을 버텨내지 못했다.
단 한 번 곤봉을 막아낸 빛의 검이 일격에 가루로 화해버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위기에 빠졌던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거기에 무기가 없어도, 언제든지 바알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한 수였다.
턱!
세은은 땅에 떨어트렸던 별의 검을 고쳐 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네 개의 빛의 검이 세은의 양옆에 생성되었다.
언제라도 검 대신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다.
파아아앙!
지금처럼 빛의 화살처럼 날릴 수도 있어 훨씬 효과적으로 바알을 견제할 수가 있었다.
“신성력이…….”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헤이런의 얼굴에 걱정이 깃들 정도의 신성 마법이다.
세은이 아니라면 다시는 보기 힘들 광경이었다.
그의 주위를 날고 있는 빛의 검들을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신성력이 소모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성물의 도움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이적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가히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가 있었다.
성스러운 빛을 내뿜고 있는 네 개의 검이 세은의 양옆을 유영하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경외감을 일으킬 정도였다.
타앗!
그런 세은의 발이 다시 돌격을 시작했다.
언제까지 수세에 몰려서 방어만 할 수는 없다.
하늘을 나는 빛의 검들이 그런 세은의 뒤를 따라 날아갔다.
콰아아앙!
세은의 달의 검과 바알의 곤봉이 부딪쳤다.
묵직한 곤봉의 휘두름을 검으로 온전히 막아내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가장 먼저 바알을 공격했던 달의 검이 뒤로 밀려나갔다.
‘이번에는 내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세은은 밀려나는 달의 검을 뒤로 배며 그 자리에 별의 검을 내뻗었다.
같은 자리에 그대로 같은 공격을 시도하는 세은이다.
다만 방금 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옆으로 한 발 움직이며 몸을 회전시킨 세은이, 그대로 허공을 유영하던 빛의 검 하나를 쏘아 보냈다.
파아아앙!
홀리 애로우를 응용한 공격이다.
그러나 빛의 화살과는 또 다른 마법.
응축된 신성력의 양이 대단했다.
바알이 오히려 반보 앞으로 나서며 마기로 만들어진 방어막을 두텁게 세웠다.
콰앙!
쩌저저저정!
먼저 내뻗어진 별의 검이 마기의 벽과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