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221화 (221/225)

# 221

57. 끝을 향해 (6)

곤봉이 아래로 내려오면 끝이다.

파아앙!

하지만 곤봉이 내려치기 전에, 또 다른 신성력이 바알을 향해 빠르게 확 끼쳐들었다.

세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른보다는 훨씬 강한 위력.

바알은 아래로 내려치려던 곤봉을 횡으로 휘둘렀다.

퍼엉!

동시에 제른이 재빨리 몸을 굴려 위기에서 벗어났다.

“바퀴벌레도 아니고 질기고도, 질기군.”

바알이 이를 갈며 낮게 중얼거렸다.

하나를 끝냈다 싶으면, 또 하나의 방해꾼이 나타난다.

두 번째로 방해를 받은 바알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제른!”

이번에 나타난 자는 헤이런이었다.

밖에 모여든 마족들을 정리하느라 머리가 살짝 산발이 되기는 했지만, 눈으로 보이는 부상은 없었다.

“겁도 없이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정말 죽고 싶은 게로군.”

“아니? 성하! 괜찮으십니까?”

“아아. 괜찮아.”

헤이런은 바알의 말을 무시하고 이제 몸을 일으키고 있는 세은에게 말했다.

세은은 그런 헤이런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며 천천히 거리를 벌렸다.

콰아아앙!

갑자기 사방을 진동하는 충격이 울렸다.

겨우 몸을 추스르던 세은과 제른의 몸이 격하게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

여과 없이 느껴지는 마기의 압력에 헤이런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지었다.

그가 소리쳤다.

“제른! 물러나라! 몸부터 추슬러!”

제른이 무엇인가 말하려 했으나, 움찔 물러나며 바닥을 박찼다.

날카롭게 찌르는 바알의 기운을 느낀 까닭이다.

이미 충분히 방해를 받은 바알은, 더 이상의 시간 낭비 없이 몸을 날렸다.

“어딜!”

우우웅!

바알의 속도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온전한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헤이런의 눈이 겨우 그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순식간에 헤이런의 손에서 신성마법이 캐스팅되어 바알에게 쏘아졌다.

펑!

바알의 팔이 곤봉을 휘두르며 헤이런의 공격을 막아냈다.

타앗!

이내 세은 쪽으로 움직이는 헤이런이다.

우선은 세은의 회복을 돕는 것이 급선무였다.

후우우웅!

그러나 바알 역시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바알의 눈과 발이 가장 약한 제른을 따라갔다.

파아아앙!

또다시 헤이런의 마법이 그런 바알의 진로를 방해한다.

세은만큼은 아니지만, 추기경인 헤이런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바알의 걸음이 한 번씩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십쇼!”

자신 때문에 헤이런이 발이 묶이자, 제른이 소리쳤다.

그런 제른의 말에 두 사람의 눈빛이 얽혀든다.

결국 헤이런이 제른을 포기하고 세은에게로 몸을 날렸다.

“감히 어딜!”

세은에게 다가가는 헤이런을 막기 위해, 바알은 다시 목표를 수정했다.

제른을 포기한 순간, 더 이상 제른을 노릴 가치가 없었다.

어차피 제른은 현재 전투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곁가지에 불과하니까.

후우우웅!

정교함을 무색게 하는 무지막지한 위력이다.

바알의 마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위기를 느낀 헤이런의 몸이 공격을 피하기 위해 움직였다.

앞으로 허리를 숙였지만,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곤봉의 풍압 앞에 휘청 흔들리는 헤이런의 노구.

그러나 중심을 잃고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대로 몸을 돌려 신성력을 폭사했다.

화르르륵!

동시에 헤이런의 몸이 재차 세은을 향해 움직였다.

펑― 퍼엉!

뒤를 보지 않는 신성력의 사용이었다.

말 그대로 필사(必死).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한 번의 실수로 생사가 갈리는 상황.

울컥.

“크으…….”

신성력은 세은을 제외한 누구보다 강대하지만, 세월을 타고 흘러온 노구는 어쩔 수가 없었다.

너무 순식간에 무리해서 뽑아내는 신성력에, 순간 울컥 치받아 올라오는 선혈이다.

헤이런은 한가득 핏물을 입안 가득히 베어 물었다.

지금 흔들리고 있는 약한 모습을 적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흐아아아!”

그리고 그 사이에.

어느새 제른이 다시 자신의 검을 들고 바알의 뒤를 노렸다.

퍼억!

그러나 바알이 가볍게 휘두른 곤봉에 제른의 몸이 다시 뒤로 날았다.

타다닷!

제른이 바알을 막고 있는 그 사이, 헤이런의 몸이 회복에 전념하고 있는 세은에게로 향했다.

콰앙―!

부서지는 바닥.

헤이런의 신형이 비틀거리면서도 계속 앞으로 향한다.

“이놈!”

바알이 노호성을 터뜨리며 팔을 휘둘렀다.

막대한 마기가 헤이런의 몸을 밀어냈다.

날아가 벽에 부딪치는 헤이런이 결국 핏물을 토해낸다.

“컥!”

그리고 동시에, 바알의 신형이 서서히 몸의 내상을 회복하고 있는 세은에게로 향했다.

파아아아앙!

그러나 또다시 신성력이 바알을 향해 터져나갔다.

“끈질긴 놈들!”

바알의 곤봉에 맞아 부서지는 신성력이 사납게 비산했다.

방금 전의 커다란 충격에도 꺼지지 않는 헤이런의 집념이었다.

“죽어라!”

거기에 제른 역시 어느새 다시 바알의 뒤를 노리고 달려들고 있다.

바알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신념과 집념 하나로.

계속 발의 발을 붙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전부 보고 있는 세은이 가슴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새로운 공기, 부풀어 오르는 가슴의 통증이 서서히 잦아드는 것이 느껴진다.

신성력이 열심히 회복을 돕고 있지만, 내부가 완전히 진탕이 된 탓에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마기를 거의 전부 사용한 상태에서 같은 충격에 휘말린 바싸고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절대로 죽지 마라!’

세은은 자신을 위해 바알에게 매달리는 제른과 헤이런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이 죽기 전에 바알과 손속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을 해야만 했다.

“크윽!”

신성력을 시험 삼아 움직여 보니, 내상으로 진탕된 몸에 참기 어려운 고통이 느껴졌다.

바알과 바싸고가 몸을 회복했다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막 나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들의 안위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만 없애면 된다 이거지.’

세은을 제외하고는 바알을 막을 자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

당장 세은 다음으로 꼽히는 헤이런을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하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세은을 죽이고, 몸을 회복한다면 바알을 막을 자가 없을 것이 당연했다.

‘물론 내가 죽으면 나 같은 사람을 더 만들지도 모르지만…….’

세은이 없어지면, 세은 같은 자를 다시 간택할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신들이 바알을 그냥 둔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마계에 있을 때 아몬이 했던 말들을 종합해 봐도 그렇다.

그러나 그러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 전에 이미 지구는 바알의 손에 전부 넘어갈 수도 있는 일.

거기에 아예 다른 차원이라 그들이 신경을 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세은 하나를 옮기는데도 에일린이 엄청난 부담을 짊어졌다고 했으니까.

‘애초에 왜 이리로 넘어와서…….’

우웅.

세은은 자신의 목에서 은은한 빛을 내며 회복을 돕고 있는 성물을 보며 생각했다.

애초에 게이트가 열린 것도 성물이 다시 차원을 넘어가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성물 때문에 이 모든 사단이 일어난 일이었다.

‘아니, 내가 돌아가고 싶다고 했으니 성물은 그 부탁을 들어준 것이 전부야.’

세은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대로, 성물은 돌아가고 싶다는 세은의 소망을 들어준 것밖에 없었다.

몇 십 년을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그 염원이 얼마나 강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뒤에도, 가끔 달이 뜨는 밤이면 지구가 생각나고는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소원을 들어준 성물이, 다시 자신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지금 중요한 것은 이런 게 아니야.’

휘이익!

고개를 털어 상념을 지워낸 세은이 다시 전방을 직시했다.

제른과 헤이런이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며 바알을 상대하고 있었다.

뒤를 끈질기게 공략하는 제른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바알이 헤이런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견제하고 있었다.

헤이런 역시 바알이 제른을 죽이지 못하게 쉴 새 없이 신성력을 폭사시키고 있었다.

언뜻 보면 두 명이서 바알을 잘 상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목숨이 경각에 이른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죽으면 안 돼, 조금만 버텨라!’

우우웅!

세은의 목에 걸린 성물이 조금 더 강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다각― 다그닥―!

“여기다!”

순간 여러 필의 기마 소리가 들렸다.

“바알이다! 서둘러!”

“오빠!”

“세은 씨!”

성기사들의 목소리와, 채연과 재호를 비롯한 일행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본 바알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성기사의 기마 뒤에 매달려오는 재호였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단장님!”

쐐애액!

“안 돼! 가까이 오지 마!”

제른이 성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였다.

순간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알이 제른을 향해 곤봉을 휘둘렀다.

퍼어억!

일격.

단 일격이었다.

제른의 팔이 어깻죽지부터 완전히 짓뭉개지는 것은.

“크아아악!‘

“단장!”

“제른!”

동시에 제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기사들이 그를 지키기 위해 바알에게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세은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아, 안 돼!”

퍼어어억!

바알의 곤봉이 또다시 휘둘러지며, 새빨간 피분수를 만들어냈다.

바알을 견제할 수 있는 제른이 사라지자 그의 곤봉은 거칠 것이 없었다.

헤이런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 혼자서 바알을 견제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바알의 곤봉에 곤죽이 되어 땅 위에 나뒹구는 성기사.

그대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바알의 곤봉에 얼굴이 뭉개져서 즉사한 것이다.

도저히 비빌 수도 없는 적에게 덤빈 결과다.

개죽음이다.

말 그대로 개죽음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만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 적에게 달려든 결과였다.

“크으윽.”

세은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억눌러 참았다.

전부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달려들었다가는 세은 역시 개죽음을 맞을 뿐이었다.

“커헉!”

성기사 하나가 또다시 짓쳐들다가 곤봉에 휩쓸려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을 지경이다.

눈앞에 순식간에 여러 명의 목숨이 잔혹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세은은 눈을 감지 않았다.

감지 않고 그 최후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것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외면해서는 안 된다.

당장 자신이 바알을 처리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성물과 함께 넘어오지 않았더라면.

세은의 마음에 슬픔과 책임이 깊게 박혀들었다.

“안 돼!”

그리고 그 사이, 한 명이 더 죽음 앞에 발을 디뎠다.

이번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재호였다.

성기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법을 시전한 재호가 다음의 목표였다.

바닥을 박차고 달려든 바알이 그대로 재호의 마법을 파쇄하고 그의 머리까지 날려버렸다.

해일 같은 기세로 곤봉이 재호의 머리와 몸을 분리했다.

콰지직―!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곤봉이 지나갔다.

“꺄아악!”

그 모습을 지켜본 채연과 에린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흘러 나왔다.

영한 역시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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