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57. 끝을 향해 (4)
“두 명이서 싸우면서 왜 그렇게 억울한 표정을 지어? 오히려 두 명 상대로 싸우는 내가 억울해야 하는 거 아냐?”
“이…… 이 개 같은 새끼!”
“이게 무슨 개소리야? 신의 개, 신의 개라고 부르는 게 너희들인데. 개새끼에서 개 같은 새끼가 됐으면 오히려 이득이네.”
“씹어 먹을 새끼…….”
바알의 입가가 분노로 바르르 떨렸다.
세은의 능글맞은 태도에 더욱 분노가 느껴졌다..
“아무튼, 부상을 입은 것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생각보다 마법이 빠르게 나오더라고, 식겁했잖아.”
여유가 생긴 세은은 치료를 하고 있는 일어서는 바싸고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다행히 잘 먹혀들었네, 괜히 피만 봤으면 억울할 뻔했어.”
“개소리.”
팔을 치료하고 있는 바싸고가 사납게 말했다.
“지금 주절주절 떠들고 시간을 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아주 허세는, 미친놈이.”
세은은 양손에 달의 검과 별의 검을 동시에 들어올렸다.?
두 자루의 검이 마치 날개처럼 세은의 양옆에 날카롭게 펼쳐졌다.
“치료하는 데 마기가 얼마나 드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네놈들을 한 번에 죽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아. 대신 마기를 먼저 소모시키면 내가 이기겠지.?지금도 무리를 하지 않는 이유를 정말로 몰라서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세은은 시선을 돌려 바알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치? 그렇다고 혼자서 덤비기에는 애매하고.”
“…….”
바알은 세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 그의 말에 대답하다가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이성을 잃을 수도 있었다.
거기에 세은의 말이 크게 틀리지도 않았다.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다.?
그리고 바싸고가 치료를 마치기를 기다린다고 해도, 이 정도 수준의 전투에서는 아주 작은 차이가 결과를 바꾸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건 세은의 말대로 지닌 마기의 양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결국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제기랄.”
그리고 어느새 팔의 치료를 마친 바싸고가 다시 욕설을 내뱉었다.
이제는 방심을 하지 않겠지만, 이미 소모된 마기는 다시 회복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소모전으로 갔다면 결과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바싸고가 먼저 나가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결국 바싸고의 생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준비한 것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사용을 했어야 했는데.’
전투가 계속되면서 흐름을 가져왔다고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거기에 두 명이서 하나를 상대하면서 준비한 함정까지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바싸고의 마지막 자존심을 자극했다.
‘그렇다고 자존심 때문에 질 수야 없지.’
결국 바싸고는 준비한 것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뭐, 준비한 거라도 있나 보네?”
그러나 세은은 그런 바싸고의 심중을 꿰뚫어 보았다.
세은이 바라본 바싸고의 눈빛은 체념한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상을 입기 전보다 더욱 매섭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에는 불안감을 일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준비를 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평소 바싸고의 행동과 지금의 눈빛을 보면 충분히 알아낼 수가 있었다.
탓!
그리고 세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바로 다시 전투를 재개했다.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에게 반전의 틈을 줄 필요가 없었다.
쾅!
바알과 세은의 무기가 다시 뒤엉켰다.
“아주 자신만만하군.”?
바싸고가 그런 세은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네놈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지.”?
콰아앙!
“갑자기 친한 척은?”
바알과 몇 번의 손속을 나누고 다시 거리를 벌린 세은이 대답했다.
그러나 바싸고는 세은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항상 네놈은 힘을 전부 사용하지 않아.”
세은이 대답했다.
“그래서?”
“그 사실은 한 가지를 의미하지.”
바싸고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분명히 여력이 있는 것 같은 데도 힘을 남긴단 말이지. 한마디로 공격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는 말. 충분히 빨리 끝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타닷!
바싸고의 말이 길어지자 세은은 바싸고를 향해 달려 나갔다.
말을 길게 해서 회복을 하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터엉!
그러나 어느새 나타난 바알이 바싸고를 향하는 세은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건 한마디로 네놈이 네 목숨을 정말로 아낀다는 뜻이지.”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바알이 혼자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음에도 바싸고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은 다시 세은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미친 놈, 자기는 목숨에 초연한 것처럼 얘기하네.”
“하하하! 누구나 목숨을 초연할 수는 없지. 그러나 네놈은 그게 더 심하다는 거다.”
우우웅―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는 바싸고의 말에 세은이 검에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기 전에 끝장을 볼 심산이었다.
“어딜!”
콰앙!
그러나 바알이 또다시 세은의 앞을 막았다.
“젠장.”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바알은 세은이라도 쉽사리 뚫을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바싸고는 서서히 뒤로 물러서며 끝까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렇게 대비할 약간의 시간을 주고, 그 시간이 오히려 네놈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말이지.”
키이이이잉―
“?!”
갑자기 사방에서 울리는 소리에 세은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크흐흐.?혹시나 해서 만들어 놓은 마법진이다.?이걸로 네놈을 완전히 잡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네놈의 여력을 소진시키기에는 충분할 거다.”
바싸고는 온전한 왼팔로 마법진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피는 멎었지만, 덜렁거리는 오른팔이 마기의 파동으로 허공에서 힘없이 흔들거렸다.
“과연 그 여력이 사라졌을 때, 네놈은 어떻게 행동할까?”
“어떻게 행동하긴, 너 새끼 목을 따버리겠지.”
“흐흐흐흐.”
태연한 세은의 말에 바싸고는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바알 역시 마법진의 구동 범위에서 몸을 피하기 위에 뒤로 몸을 날렸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나!”
그러나 세은은 순순히 바알을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이미 마법진의 구동 범위에서 벗어 날 수 없다면, 바알을 끝까지 붙잡아야 했다.
바알이라고 마법진에 피해를 입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까.
우우웅―
세은은 신성력을 가득 담아 바알에게 검을 휘둘렀다.
“거머리 같은 놈!”
바알이 자신을 끝까지 따라붙는 세은을 떼어 내려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세은은 끈질기게 바알을 붙잡았다.
키이이이잉―
그리고 마침내 마법진이 거의 완성이 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퍼엉!
바싸고가 마법을 날려 바알이 세은의 공격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마기를 전혀 아끼지 않는 강력한 마법이었다.
“큿!”
바싸고의 마법을 막아낸 세은의 공격이 주춤했다.
그리고 바알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법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후우. 제길!”
그리고 바알이 벗어나는 그 순간.
세은은 자신을 향해 마법진이 발동될 것을 알았다.
바싸고가 자신 있게 말할 정도이니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콰아아아아―!
세은의 온몸에서 신성력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효율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신성력의 발휘.
그에 반응해 마법진이 더욱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푸콰콰콰콰콰콰―!!
그리고 마침내, 바싸고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마법진이 해일처럼 마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 * *
“후우. 이제 본격적인 전투가 남았군.”
명령대로 주변을 완전히 정리한 제른이 심호흡을 내쉬었다.
무질서하게 주변에 늘어진 마물들의 시체가 제른과 휘하 성기사들의 수고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제른과 성기사들이 원한대로 전투의 중심으로 뛰어들 차례였다.
“모든 정리가 끝났습니다. 당장이라도 출격할 수 있습니다.”
부장 성기사가 제른에게 보고를 올렸다.
“좋다.”
가볍게 대꾸한 제른은 성기사들에게 손짓을 했다.
제른의 손짓에 부하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느낀 제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우리는 이제 마왕을 상대하러 간다.”
“…….”
무거운 긴장감이 부대를 감돌았다.
“이미 성하와 추기경 각하가 그 중심에서 신명을 다하고 계신다.”
제른은 치켜든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곳에 있으면 되겠나?”
“아닙니다!”
“마왕 중에 최강이라는 바알을 상대하는 것이 겁나는가?”
“아닙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성기사들의 대답에 제른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우리도 전투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여신께서 내려주신 임무를 수행할 시간이 다가왔다.”
“와아아아아!”
출발 신호가 울려 퍼지면서, 네 개로 나뉜 성기사 부대가 출발했다.
당연히 선두에는 제른이 앞장서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음?”
그렇게 최대 속도로 달리던 제른의 눈에, 한곳으로 모이는 마물과 마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주변을 다 정리한 게 아니었나?”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모여드는 마물들 같습니다.”
“그럼 새롭게 소환되고 있다는 거군.”
“예.”
본거지에 남아 있던 마족들이 작전을 위해 멀리 나가 있던 마족과 마물들을 회군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제른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바알과 바싸고가 궁지에 몰린 것이 확실하다. 저놈들이 성하와 추기경 각하를 방해하기 전에 뒤를 친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눈에 띈 이상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제른의 명령에 따라 성기사들의 기마 속도가 더욱 높아졌다.
“여신께 영광을!”
“영광을!”
선두 성기사 부대가 마물과 마족들을 덮쳤다.
콰아앙! 쿠웅!
“커억!”
“신의 개들이다!”
“죽여라!”
갑작스러운 성기사 부대의 돌격에 마족과 마물들이 혼란을 피하지 못했다.
“전부 쓸어버려!”
최우선 순위로 본거지로 돌아오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마족들은 제대로 성기사 부대에 대항하지 못했다.
거기에 순식간에 마족들의 진형을 깊숙이 파고들며 완전히 반으로 갈라버린 것도 컸다.
“다시 한 번 반으로 갈라라!”
제른이 성기사들을 독려했다.
기마를 이용해 마족들을 반으로 가른 제른은, 방향을 전환해 다시 마족들의 가운데를 횡단했다.
“들어오는 성기사들을 전부 죽여 버려!”
그러나 처음과는 달리 마족들도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 않았다.
우우우웅―
“에일린, 홀리 웨이브!”
대비를 한 마족들의 반격에 의해, 성기사들의 피해가 예상될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신성력의 파도가 마족들을 밀어냈다.
“크윽!”
“추기경 각하!”
제른은 자신들을 도와준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하고는 반색했다.
처음 도착해서 세은의 명령대로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헤이런이, 마족들이 모여드는 것을 확인하고 처리하러 나온 것이었다.
우우웅―
“일단 전부 처리하고 얘기하세.”
헤이런은 신성력을 아낌없이 운용해서 마족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그런 헤이런의 등장에 사기가 충천한 성기사들 역시 마족들을 빠르게 사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