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57. 끝을 향해 (3)
결국 세은이 바싸고를 쫒는 것을 포기하고 바알의 공격을 막으려고 할 때, 바알은 또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어느새 자세를 다시 잡은 바싸고가 마법의 캐스팅을 마치고 있었다.
“?!”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날아오는 바싸고의 마법.
하지만 세은은 그 찰나의 순간에도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마법을 막아냈다.
달의 검과 별의 검을 교차하고, 신성력을 불어넣어 방패를 만든 것이었다.
퍼엉!
순식간에 이뤄낸 방어라고 하기에는 놀라운 임기응변이었다.
“젠장.”
자신의 마법이 허무하게 두 번이나 막히자 바싸고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어쩔 수는 없는 일.
세은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서 자신을 공격하기 전에 뒤로 물러났다.
“후우우우.”
그리고 그 사이에 세은은 마법을 막아낸 여파를 완전히 털어냈다.
도리어 너무 과하게 긴장한 바싸고가 세은에게 도움을 준 것이었다.
이 대 일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투의 주도권은 세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지만 바알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리가 없었다.
“죽어라!”
그리고 그런 바알의 움직임 탓에, 바싸고 역시 쉬지 않고 다시 마법을 캐스팅했다.
한 명이라도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설마설마 했지만 정말로 준비한 것을 사용하게 될 줄이야…….’
바싸고가 상하는 자존심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바알과 힘을 합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은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정말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물론 바싸고는 바알이 정말로 신이 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힘은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을 자칭하는 존재가 신의 개 하나를 이기지 못해서야 말이 되지 않았다.
바싸고로서는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을 수밖에.
그러나 바싸고가 생각에 빠진 그 사이에도, 바알을 쉬지 않고 세은을 향해 돌진을 하고 있었다.
아직 싸움은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벌써부터 모두가 상당한 심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시렌, 신의 개자식! 정말로 질기구나.”
“내가 할 말이야. 이제 그만 분발들 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야. 바퀴벌레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렇게 끈질기게 굴 거야?”
그때, 바알이 순식간에 다시 짓쳐들어오며 말했다.
“네놈이 사라질 때까지다 개자식아!”
“쯧. 그건 내가 할 말이라니까 그러네.”
세은은 달려오는 바알을 맞이해서 다시 검을 휘둘렀다.
바알 역시 자신의 곤봉에 거대한 힘을 담아 휘둘러왔다.
쾅―
또다시 엄청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충돌의 여파에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정도.
마왕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둘과, 세은이 만들어 내는 전투의 여파는 점점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파괴력에 걸맞게 그들의 힘은 불에 연료가 타오르는 것처럼, 점점 빠르게 연소되었다.
먼저 연료가 떨어지는 쪽이 지는 싸움.
그러나 세은은 아직 자신감이 넘쳤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닌 것 같아.’
계속 검을 맞대며 세은은 속으로 생각했다.
애초에 세은의 신성력 자체가 압도적인 감이 있었다.
물론 둘이 힘을 합친 데다가 바알이 만들어 낸 이상한 마기도 있지만, 크게 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세은의 컨디션이 최대로 물이 올라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하지만 바알과 바싸고의 호흡이 완전히 맞아떨어지면 쉽게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의 미묘한 차이였다.
어떻게든 빨리 마무리를 짓는 것이 가장 좋은 결말이었다.
그러나 상황을 보아서는 어느 쪽도 쉽게 지쳐 떨어져 나갈 것 같지 않았다.
‘괜히 시간을 끌 필요는 없지.’
쓸데없이 상대에게 시간을 줘서 세은에게 이익이 될 만한 상황이 없었다.
상황을 빨리 종결짓기 위해, 세은은 약간의 트릭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살을 내주게 되더라도, 빈틈을 보여주고 끝낸다.’
생각을 마친 세은은 바알과 바싸고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미묘하게 조금씩 템포를 늦췄다.
마치 점점 힘이 부족해서 서서히 느려지는 것 같은 상황 연기.
‘놈의 반격이 조금씩이지만 늦어진다.’
그 사실을 눈치 챈 바알은 바싸고에게 눈빛을 보냈다.
이윽고 신호를 주고받은 두 마왕은 동시에 움직였다.
“덤벼!”
세은도 더욱 연기에 박차를 가하며 달의 검을 휘둘렀다.
바알이 먼저 곤봉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바싸고는 세은의 허리를 향해 마법을 시전했다.
텅!
바알의 곤봉을 막아낸 세은은, 힘겹게 반대 손을 휘둘러 별의 검으로 바싸고의 마법을 방어하며 뒤로 물러섰다.
거의 동시에 오는 공격을 한 번에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세은은 양손을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그런 세은의 방어에 맞춰서 바알의 공격도 변화되었다.
곤봉의 장점을 다소 포기한 대신, 기존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격을 퍼부었다.
거기에 보조를 맞춰서 바싸고 역시 묵직한 마법보다는 가벼운 마법을 빠르게 여러 번 시전했다.
세은의 손속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 심산이었다.
힘에서는 마왕 둘을 거뜬히 상대할 수 있는 세은.
그러나 몸이 하나인 이상, 두 개의 손을 완전히 막아 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결국 세은이 점점 뒤로 물러서는 일이 잦아졌다.
조금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두 명을 상대하던 세은의 손놀림도, 조금씩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좋아, 거의 몰아넣었다.’
그런 세은의 모습을 확인한 바알은, 거의 승리를 확신했다.
더욱 힘을 내서 곤봉을 휘두르는 스피드를 끌어올렸다.
바싸고는 이제 아예 커다란 마법을 사용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작은 마법이라도 세은에게 적중되면, 빈틈을 만들어서 바알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가 있었다.
급기야 세은은 이제 방어보다 회피를 위주로 공격을 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패턴에 익숙해지기 전에 끝낸다.’
바알은 슬슬 승부를 띄울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끄덕.
바알의 눈빛을 받은 바싸고의 고개가 미미하게 끄덕여졌다.
“하앗!”
“흐아아!”
텅― 텅― 터엉!
그렇게 수십 차례의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졌을 때였다.
“죽어라!”
갑자기 바알이 과감하게 세은의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그동안 아껴왔던 힘을 곤봉에 가득 담아 그대로 휘둘러 나갔다.
후우우웅―
강렬한 힘이 담긴 곤봉이 말 그대로 공간을 찢으며 휘둘러졌다.
곤봉에 진득거리는 마기가 넘실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눈앞의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은 곤봉이 세은의 급소를 향해 무자비하게 궤적을 그렸다.
“흐읍!”
세은은 그런 바알의 공격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막아내지 못할 것 같아서는 아니었다.
다만, 바알의 강력한 일격을 막아내고 나서, 바로 이어질 바싸고의 마법에 당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탓!
세은은 충분한 거리를 두며 뒤로 물러섰다.
“어림없다!”
후우웅!
세은이 뒤로 물러나는 그 순간.
바알은 반대 손을 휘둘러 자신의 남은 곤봉을 집어던졌다.
바알의 공격을 피했다고 생각한 세은의 눈에 당황이 어렸다.
마기가 가득 실린 곤봉 하나가, 바알의 손을 떠나서 세은에게 날아갔다.
뒤로 공격을 회피했던 세은은 바알이 곤봉이 던질 줄 생각하지 못해 깜짝 놀랐다.
그 누구라도 한창 전투 중에 자신의 무기를 투척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키이잉―
그리고 그와 동시에 좌측에서는 바싸고의 마법이 그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날아드는 곤봉이 더 급선무였다.
세은은 왼손에 들린 별의 검을 횡으로 강하게 휘둘러 바알의 곤봉을 막아내야만 했다.
콰아앙!
바알이 날린 곤봉이 세은의 방어에 가로막혀 그대로 멀리 날아갔다.
하지만 덕분에 바싸고의 마법이 세은의 빈 품을 파고들 기회를 얻을 있었다.
“젠장!”
세은은 조금 더 뒤로 물러나며 마법을 피하려 했다.
“큽!”
하지만 마법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업었다.
간신히 정통으로 통타당하는 것은 피했지만, 마법이 살을 스치며 할퀴고 지나갔다.
마법이 할퀴고 지나간 부분에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런!’
세은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간발의 차였다.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려다가 먼저 피를 보게 되었으니 손해였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바알과 바싸고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주 손해는 아닌 것 같았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죽여주마!”
자신감 넘치는 바알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바싸고 역시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끝내겠다는 듯이 더 강력한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개소리!”
세은은 고함을 지르며 마치 바알을 맞상대하려는 것처럼 앞으로 나섰다.
쾅―!
그리고 세은과 바알이 부딪히며 다시 한 번 강렬한 충격파가 생겨났다.
휘익―
그리고 세은은 그대로 동작을 이어서 달의 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갑자기 허공에 하는 헛손질에 바알의 얼굴에 순간 의문이 떠올랐다.
“?!”
그러나 이내 세은이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있었다.
“허억!”
방금 전까지 마법을 시전하고 있던 바싸고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세은이 휘두른 달의 검에서 신성력이 쏘아져 나가 바알을 공격했다.
여태까지 세은이 단 한 번도 바싸고를 공격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바알을 상대하는 동안은 바싸고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처럼 연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의도는 잘 먹혀서, 세은이 가벼운 부상까지 입은 지금 바싸고의 경계는 상당히 허술해져 있었다.
그 틈을 노려 세은의 신성력은 바싸고를 노리고 날아갔다.
바싸고는 경계의 허술함과 더불어 바알과 세은의 충돌이 만들어낸 충격파로 인해 세은의 공격을 당하고서야 알았다.
“크으윽.”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바알과 자신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서서히 밀리고 있던 세은이었다.
거기에 방금 전에는 자신의 마법에 가벼운 부상도 입지 않았던가.
바알과 맞부딪히고 나서 바로 자신에게 신성력을 날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바알과 바싸고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여유가 남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주르륵―
하지만 그 찰나의 방심이 부른 결과는 뼈아팠다.
“젠장!”
바싸고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오른팔에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바싸고의 시선이 자신의 팔을 향했다.
그런 그의 두 눈에, 완전히 관통되어 힘이 들어가지 않는 자신의 팔이 보였다.
“시렌!”
너덜거리는 자신의 오른팔에, 바싸고가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신성력에 관통된 팔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어깨에 붙어 있었다.
바알 역시 얼굴 가득 인상을 찌푸리며 세은에게 맹렬한 공세를 퍼부었다.
“나 귀 안 먹었어. 조용히 말해”
바알의 공격을 모두 막아낸 세은이 바싸고를 조롱했다.
“큭!?빌어먹을……!”
“치료부터 해라! 시렌은 내가 맡고 있겠다.”
바알이 바싸고에게 명령했다.
“뭐,?그럴 시간을 누가 주기나 한데?”
“이놈……?설마 연기였나.”
바싸고가 마기를 이용해서 자신의 몸을 치료하는 동안, 바알이 밀려오는 모욕감에 이를 꽉 물며 세은에게 물었다.
“연기라니, 이왕이면 훌륭한 전략이라고 해줘.”
세은은 자신의 왼손에 든 별의 검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