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216화 (216/225)

# 216

57. 끝을 향해 (1)

“인간들이 움직입니다.”

“버러지 같은 것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선 오늘은 놔둬라. 몸이 전부 회복되는 내일, 모두 깡그리 쓸어버리면 되니까.”

“예.”

바알의 선택에 따라, 바싸고와 바알은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있는 것은 각성자가 아닌 군대가 움직인다는 정보뿐, 당연히 세은을 포함한 별동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럼 일단은 인간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겠습니다. 신기한 무기들이 많기는 합니다.”

“그래봤자 장난감들이지.”

바싸고의 말에 바알은 코웃음을 쳤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직접 움직이면 낙엽이 쓸리듯 쓸려나갈 놈들이었다.

“몸은 다 회복 했나?”

“예. 완벽합니다.”

대답을 하는 바싸고의 얼굴은 정말로 평온했다.

저번에 세은과의 전투로 입은 데미지가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다.

바알은 그런 바싸고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좋아. 다른 놈들도 모두 준비되어 있겠지?”

“예. 보티스도 힘을 주입받았습니다.”

마왕 17위 보티스.

마계에서 다른 마왕들을 바알의 충실한 수족으로 만들었던 힘을, 그도 주입받은 것이었다.

“좋아. 바로 내일 이 세계를 점령한다.”

바알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같은 마왕이라도 굴복하게 만드는 묘한 위압감이 흐르고 있었다.

“시렌 놈이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고 그놈을 맞이한다.”

뿌득―

바알의 이가 강하게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놈을 갈기갈기 찢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거름으로 만들 것이다.”

“예!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바싸고의 대답에 바알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내일 바로 출발할 테니, 준비를 모두 마치도록.”

바알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은 바싸고가 점령 준비를 하는 동안, 몸의 회복을 마무리해야 했다.

처음 이곳에서 세은을 함정에 몰아넣었지만, 죽는 모습을 보지 못해 몸이 회복되는 동안 방어를 철저하게 했던 바싸고였다.

그러나 바알의 말로 인해 그가 마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굳이 방어를 두텁게 할 필요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인간들을 점령하고, 다시 넘어올 세은을 대비하면 되는 일이었다.

바싸고는 바알이 사라지자, 늘어지게 몸을 의자에 기대면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대업이 얼마 남지 않았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뤄질 야망 때문에 기분이 좋은 바싸고에게, 마족 한 명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바싸고 전하…….”

“응? 뭐냐?”

“감히 인간들이 공격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인간들이? 간자에게 들은 바로는 내일이라고 했는데?”

자신이 들은 정보와 다른 보고에, 바싸고가 의아한 표정으로 마족에게 물었다.

“작전을 앞당겼나? 뭐, 어차피 상관없지 않느냐. 장난감을 이용하는 놈들 따위 내일 바알님이 직접 움직이시면 사라질 것들이다.”

바싸고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차피 오늘 하루 피해를 받는다고 이들이 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일 바알이 움직인다고 했으니, 하루 정도는 인간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갖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본래 희망은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이 더 상실감이 크니까 말이다.

“그냥 놔둬라.”

그러나 마족은 그런 바싸고의 말에 다시 보고를 올렸다.

“그게 아니라, 신의 종자들이 마물들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신의 종자들이?”

“예. 그렇습니다.”

“그놈들은 다른 인간들을 지키느라 바쁠 텐데…….”

“예. 다른 놈들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고 마물들을 사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흐음.”

마족의 말에 바싸고가 생각에 잠겼다.

바알이 내일 움직인다고 했지만, 성기사들은 약간 경우가 달랐다.

말 그대로 마물을 상대하는 것에 있어서는 스페셜리스트.

하루 동안 가만히 두다가는 피해가 생각보다 더 커질 수가 있었다.

“알았다. 나가 봐.”

“옛!”

결국 보고를 올린 마족을 내보내고, 바싸고는 바알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냐.”

바싸고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바알이 물었다.

자신이 모든 지시를 마쳤는데, 안으로 들어와 회복을 방해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

바알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신의 개들이 갑자기 마물들을 사냥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냥 놔둬라.”

잠시 고민하던 바알이 대답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느냐.”

“그렇기는 합니다.”

그러나 바알의 명령을 들은 바싸고가 몇 마디를 더했다.

“물론, 내일 한 번에 쓸어버리는 것이, 하찮은 것들이 의미 없는 반항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하루 동안 신의 개들에 의해 마물들이 쓸리면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바싸고의 말에 바알이 물었다.

“무슨 문제가 생기느냐?”

“병력 숫자입니다. 아무래도 넓은 지역을 점령하려면 마물들이 필요합니다.”

* * *

“문제는 적들의 숫자입니다.”

브뤼셀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

헤이런이 이번 작전에서 주의할 점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마물들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면 막을 병력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지금 만들어 놓은 전선 중에 한 곳이라도 뚫리면, 충원할 병력이 없습니다.”

“마물들이 그 정도 지능이 있나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채연이 물었다.

헤이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들은 그런 지능이 없어도, 마물들을 지휘하는 마족들은 그런 지능이 있지.”

헤이런은 조곤조곤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마족들이라고 전부 생각이 없지는 않으니까 말이네.”

“그렇겠지.”

세은이 헤이런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거기에다가 일반 병사들도 빼서 작전에 투입한다며, 바싸고나 바알 같은 종잡을 수 없는 미친놈들이면 그런 틈을 노릴 수도 있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놀란 채연의 물음에 헤이런이 대답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빠르게 머리를 섬멸하는 것이 가장 좋다네.”

“그러려고 우리가 지금 이동하는 거니까.”

“그렇다고 다른 놈들이 사라지지는 않잖아?”

영한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세은이 피식 웃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머리를 잃은 놈들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상대하기가 쉬울걸? 굳이 헤이런이랑 제른이 없어도 돼.”

“그렇죠. 정말로 다행입니다. 끝이 안 보였는데…….”

재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드디어 이 엄청난 전쟁의 끝이 보이는 것이다.

물론, 끝난 다음에 전후 처리에 있을 여러 국가들의 알력 싸움이 남아 있었다.

그 싸움이 새로운 전쟁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잠시나마 평화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다만, 이번에 작전이 성공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기는 하네.”

“그건 걱정하지 마. 그래서 내가 움직이는 거니까.”

“감히 제가 성하를 의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말 안 해도 알아.”

헤이런의 말에 세은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10분 전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들려왔다.

마물 군단의 눈길이 닿지 않는 길로 크게 우회하여, 브뤼셀로 향한 세은 일행은 적들의 본거지에 가깝게 접근했다.

이미 초반에 점령당해 완전히 마계화가 되어 버린 곳으로, 생명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당장은 여기서 지낼 마물들을 모두 전장으로 보낸 덕분이었다.

전선이 고착화되어 있으니, 설마 다른 곳을 다 두고 바로 이곳으로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더 오래 시간을 끌면 땅이 회복하는 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겠는데.”

땅에 스며든 마기는 매우 진하고, 많았다.

계속해서 마계화가 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도 마물들을 빠르게 생성하기 위해 과도하게 마기를 주입했을 것이 분명했다.

“주변을 보니까, 생각보다 일이 훨씬 수월하게 끝날 수도 있겠어.”

자잘한 방해꾼들이 없다면, 단순하게 바싸고와 바알만 쳐 죽이면 끝이다.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다른 놈들을 상대하느라 바알과 바싸고에게 대비할 시간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길 자신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더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렵게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이미 당할 만큼 다 당했기 때문에, 더 당하는 것은 사절이었다.

“성하?”

잠시 생각에 잠긴 세은을 헤이런이 불렀다.

헤이런의 부름에 세은이 손을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리 봐도 주변에 마물들이 없습니다. 그래도 작전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래, 주변을 정리하는 것은 생략하고 주변에 있다가 신호가 가면 움직여.”

“예! 알겠습니다.”

헤이런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며 대답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성하.”

“나보다 상대를 걱정하는 게 나을 거야.”

세은이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가 말을 이었다.

“자자. 긴장들 하지 말고, 쉽게쉽게 끝내고 올 테니까 잠시 후에 만나자고 알았지?”

“……몸조심하세요. 오빠”

“꼭 조심해야 해요.”

걱정이 담긴 말은 채연과 에린.

“그럼 조심하십시오.”

“…….”

정중한 인사와 침묵은 재호와 영한의 것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받은 세은이 몸을 날렸다.

‘아예 들키지 않을 수는 없겠지, 그래도 최대한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렇게 마기로 가득 찬 공간에서, 신성력이 가득한 세은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최대한 빠르게 기습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시간을 주면 어떤 짓을 할지 모르는 놈들이니까.

타닥―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잔뜩 끌어올려진 세은의 예민한 기감에 거대한 마기가 감지되었다.

“저쪽이네.”

세은은 마기가 느껴진 곳으로 몸을 날렸다.

“바싸고나 바알은 아닌 것 같은데, 아직 마왕이 남아 있었나?”

마왕급의 거대한 마기에 세은이 의문을 표하며 재빠르게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기감에 걸렸던 적이 나타났다.

마족들과 함께하고 있는 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왕, 보티스가 세은의 시야에 들어왔다.

보티스와 함께하고 있는 마족들의 숫자는 족히 백이 넘어 보였다.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처리하는 것이 좋아보였다.

‘바로 들어간다.’

스릉―

세은은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달의 검과 별의 검을 뽑아 들었다.

‘전투를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더욱 빠르게 움직인다.’

지금 보티스와 마족들을 처리하면, 다른 이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을 그냥 지나치고 가면, 다른 이들이 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마왕이 하나 남아 있는 것이 판단 착오였다.

‘뭐, 어쩔 수 없지.’

세은은 아쉬움을 버리고 그대로 검에 신성력을 가득 담아 휘둘렀다.

우우우웅―

서걱!

광채가 흐르는 달의 검이 신성력을 가득 품고 휘둘러졌다.

“……?”

“적이다!”

순식간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마족과, 그 모습을 발견한 보티스의 고함이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우우웅―!

그러나 보티스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마족들이 세은의 검에 명을 달리했다.

그 정도로 세은의 손속에는 거침이 없었다.

후우웅!

“당황하지 말고 대항을……?컥!”

세은의 집중력은 순식간에 최고조를 찍었다.

보티스가 마족들을 통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틈을 타, 그대로 심장에 별의 검을 투척해 박아 넣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공격에 보티스는 허무하게 그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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