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56. 혼자서 한다 (5)
다음 날.
출발하는 비행기 근처에는, 모든 인원이 모여 있었다.
“오빠!”
“세은 씨 나오셨습니까?”
미리 와 있던 인원들이 세은을 반겼다.
가장 늦게 나온 세은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바로 출발하면 되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현장에는 사노와 이고르, 장위건과 이지호도 마중 나와 있었다.
“저희는 여기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노의 말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이들까지 현장에 나갈 필요는 없었다.
각자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는 법이었으니까.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일반 군대는 내일부터 작전에 들어간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사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순차대로 비행기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제른과 기사단이 주변을 정리할 테니까.”
“하하. 세은 씨가 계셔서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사노의 아부에 세은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그나저나, 제른이랑 기사단은 도착해 있는 거 맞지?”
“예. 이미 연락받았습니다.”
“좋아. 그럼 일이 다 끝나고 보자고.”
세은도 대화를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렇게 마지막 결전을 위한 비행기는, 하늘로 떠올랐다.
* * *
제른과 기사단은, 먼저 작전 시작 지역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사노가 미리 파견해 놓은 정보원이었다.
제른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보며, 정보원에게 물었다.
“성하께서는 언제 오는 겁니까?”
제른이 말 위에서 뛰어 내렸다.
“이제 삼십분 후면 도착할 시간입니다.”
“그 하늘을 날아오는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건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니까.”
제른이 신기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이제는 비행기를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그 이상한 모양의 무거운 철이 어떻게 허공을 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마법이여도 힘든 일인데다가, 심지어는 마법도 아니었다.
“하여튼, 그럼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하면 됩니까?”
“그건 저보다는 도가 도착하면 지시를 내릴 겁니다. 일단은 쉬고 계시죠.”
“그러지요.”
제른과 기사단은 편하게 자리를 잡고 세은을 태운 비행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후우우웅―
“옵니다!”
그리고 정보원의 말보다 조금 빠른 이십분 후.
비행기가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잘못 휘말리면 커다란 사고가 납니다.”
정보원이 제른과 기사단에게 경고했다.
은밀하게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간이 활주로밖에 만들 수 없었다.
콰콰콰가가곽!
비행기가 완전히 착륙을 하자, 안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정보원이 그제야 제른에게 말했다.
“이제 움직이셔도 됩니다.”
“좋아. 가자!”
“예!”
정보원의 허락이 떨어지자, 제른은 기사단을 데리고 비행기로 다가갔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내리는 세은과 헤이런을 발견하고 반색했다.
“성하를 뵙습니다!”
“제른!”
헤이런이 가장 먼저 반갑게 제른을 맞이했다.
“추기경님께서도 같이 오셨군요.”
“허허. 당연하지.”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많은 도움을 줬다고 들었는데.”
“아닙니다. 성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세은의 말에 제른이 겸양을 떨었다.
당연히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을 알고 있던 세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그럼 바로 해야 할 임무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도록 하지.”
“예!”
세은이 손가락을 튕기자 누군가가 지도를 들고 다가왔다.
세은은 그 지도를 받아 들어 펼치고는 제른에게 작전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북동쪽에 적들의 본거지가 있다. 그러나 주변에 마물들이 너무 많고, 머리가 사라지면 멋대로 날 뛸 수가 있지. 그러니 내가 머리를 치는 동안 이 근처의 거대한 마물들을 정리하면 된다.”
“거대한 마물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는 소총으로 잡을 수 없는 놈들.”
“아, 예. 알겠습니다. 굳이 딱 정해서 지킬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애매한 기준에 제른이 물었다.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며 세은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최대한 굵직한 놈들만 정리하고, 본대로 합류하는 것이 좋겠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이 근처보다는 본대에 더 거대한 마물들이 많을 테니까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자, 그럼 궁금한 점은?”
설명을 끝낸 세은이 제른에게 물었다.
제른의 표정은 어딘가 불만이 어려 있었다.
“저희의 임무는 이것이 전부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제른의 얼굴에는 어딘가 불만이 서려 있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제른이 얼굴이 눈에 띄게 굳자 세은이 그에게 물었다.
예상하지 못한 세은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제른이 말을 꺼냈다.
“저희도 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싶습니다. 하지만 성하의 말씀을 듣자니, 단순히 주변 지원에 그치는 것 같습니다.”
제른의 말에 헤이런이 혀를 차며 그를 만류했다.
“제른, 그게 무슨 철없는 소리인가. 대체 전장에서 중요하지 않은 작전이 어디에 있는가?”
“예. 추기경님, 그 사실은 저도 충분히 압니다만……. 그래도 마왕을 처단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그것도 직접 말입니다.”
“끄응……..”
그 말에 헤이런은 답답한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세은은 신선한 표정으로 제른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마왕을 직접 상대하고 싶다는 그 말이지?”
“예! 외람되지만 그렇습니다. 성하! 저희도 성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싶습니다.”
“흐음.”
잠시 고민하던 세은이 제른에게 다른 제안을 했다.
“좋아. 그럼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예!”
“주변의 거대 몬스터를 전부 정리할 필요는 없어. 판단하에 적당히 정리를 하고 본대에 합류해라. 빨리 합류할수록 원하는 역할을 맡기가 쉬워지겠지. 하지만 나중에 확인했을 때 주변 정리를 대충 한 것이 확인된다면…….”
세은은 굳이 마지막 말은 완성하지 않고 뒤를 흐렸다.
하지만 누구라도 세은이 하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제른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옛!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하!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하고 합류하겠습니다.”
“좋아. 믿음직스럽군.”
세은은 제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 여기 지도야. 여기서. 알아서 찾아오도록 해. 우리는 지도가 없어도 찾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야.”
“옛!”
세은에게 지도를 건네받은 제른은 경례를 하고는 세은과 헤이런에게 말했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빨리 임무를 수행하고, 합류하기 위해서는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제른은 인사를 마치고, 몸을 돌려 자신의 부하들에게로 돌아갔다.
* * *
“단장님! 앞에 목적지가 보입니다.”
제른의 바로 뒤에서 달리던 기사가 소리쳤다.
제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른은 수신호로 기사단을 정지시켰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기사단은 제른의 신호를 따라 일사분란하게 속도를 줄였다.
“이 숲에는 뭐가 살고 있다고 표시 되어 있지?”
아까 세은에게 받은 지도를 보관하고 있는 부하에게 제른이 물었다.
“이곳에는 트롤 무리가 있습니다!”
“트롤은 확실히 잡아야겠군.”
그 피가 치료제의 재료로도 사용되는 트롤은, 그 엄청난 재생력 때문에 현대식 화기로 무장한 병사들이 상대하기 쉬운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양한 연구로 인해 그 효용성이 입증되고 있어 더욱 몸값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제른에게 중요한 것은 트롤의 판매 가격이 아니었다.
트롤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하 기사의 말에 제른이 트롤이 있는 것을 알자마자 미리 생각한 바를 꺼냈다.
“일단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다음에 병력을 나눈다. 그리고 트롤들이 밖으로 나오면, 절대로 혼자서 상대하지 말고 다른 동료들과 상대해야 한다.”
“차라리 한 번에 같이 들어가서 상대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트롤은 모이면 재생을 하기 전에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꽤 힘드니까.”
제른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서 트롤들을 휘저을 테니.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튀어나는 놈들을 전부 정리하고.”
“옙!”
그리고 제른과 기사단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작전을 시작했다.
제른은 자신과 함께 선별된 열 명의 인원과 함께 트롤 마을을 직접 기습했다.
제른이 트롤 마을을 기습해 집을 불태우고, 트롤들을 참살했다.
그러자 그런 제른의 만행에 잔뜩 열이 받은 트롤들이 제른과 수하들을 따라 뛰쳐나왔다.
그러나 밖에서는 이미 준비해 놓은 기사들이 많았다.
수많은 트롤들이 기사단의 손에 정리가 되었다.
“자! 사상자는 어떻게 되지?”
“경상 넷에, 중상자와 사망자는 없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양호하군.”
“다들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모두 몸을 잘 사려서 성전에 참가할 생각에 들떠 있으니까요.”
“후후. 하긴 당연한 일이지.”
사상자까지 점검을 마친 제른이 크게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자! 우리가 맡은 임무를 모두 끝마쳐야 성전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혹시 벌써 지친 사람이 있는가?”
“없습니다!”
제른의 외침에 기사단이 한 목소리로 답했다.
“좋다! 나는 잠시라도 쉬고 싶지가 않은 기분이다. 너희도 마찬가지인가!”
“예!”
“물론 우리가 지금 맡은 임무도 매우 중요한 임무다. 하지만 무릇 여신님의 기사라면, 마왕을 직접 처단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아아아아!”
“자! 서두르자!”
먼저 말을 박차는 제른의 뒤를 따라 기사단도 곧바로 출발했다.
교황이 함께하고, 마왕을 상대로 하는 성전인 탓에 성기사들의 사기가 매우 높았다.
그리고 그 사기를 유지하는 것은, 여신의 자식으로써 마왕을 직접 상대한다는 자부심이었다.
제른과 기사단은 빠르게 다음 몬스터들의 서식지에 이르렀다.
“이곳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오우거다.”
제른의 말에 기사단의 주변에 약간의 긴장이 감돌았다.
오우거는 익히 알려진 가장 흉포한 지상 몬스터였다.
어지간히 숙련된 오러가 아니고서는 가죽에 흠집도 낼 수 없으니 그 강함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였다.
다만 그 개체수가 많지 않아 그나마 다행인 몬스터였다.
거기에 본인의 활동 영역이 뚜렷해서, 한 지역에 두 마리의 오우거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이곳은 바싸고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오우거들이 짝을 지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제른이 트롤을 잡을 때와는 다른 작전을 기사단에 하달했다.
“1소대가 미끼가 되어서 오우거들의 시선을 교란하고, 2소대가 그런 1소대를 보조한다. 그리고 3소대와 4소대는 나를 따라 오우거들의 뒤를 친다. 오우거의 힘은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맞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옛!”
그리고 대답 소리와 함께 또다시 오우거 토벌이 시작되었다.
50기에 가까운 기사단이 자신들의 영역에 나타나자, 오우거들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기사단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자! 지금이다!”
제른의 외침과 함께 1소대가 오우거를 유인하기 위해 앞으로 치고 나갔다.
“3소대와 4소대는 나를 따라 뒤로 돌아간다.”
다그닥― 다그닥―
3소대와 4소대가 좌우로 나뉘어 오우거를 중심에 두고 멀리 원을 그리며 돌았다.
오우거들은 눈앞의 1소대와 2소대에 집중하느라 3소대와 4소대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죽여라!”
그리고 제른의 외침과 함께 오우거 사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