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56. 혼자서 한다 (2)
“제일 좋은 건 작전을 시행할 틈을 주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도가 돌아온 이상, 약간의 시간만 지체할 수 있다면 작전을 아예 백지로 돌려 버릴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알리지 않고 작전을 진행하려 할 텐데,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다행히 저쪽에서 정보를 넘겨주는 정보원이 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작전의 대략적인 시작이 언제인지 파악해 보겠습니다.”
“하하. 역시 대단합니다. 언제 이런 준비를 다 하셨습니까?”
“얼굴에 금칠을 받으니 어떻게 할 줄 모르겠군요. 다들 이런 준비를 안 하실 분들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후후후. 이거, 각자 가지고 있는 정보를 합치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똑똑.
이고르와 사노가 대화를 주고받는 중간, 또다시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뒤, 사노의 비서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한창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던 사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사노의 말에 비서가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소,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사노가 물었다.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들이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손님이라니?
사노는 그제야 미간에 그어진 주름을 풀고 비서에게 제대로 물었다.
“대체 어떤 손님인가?”
“아아.”
덜컥―
그리고 비서가 미처 사노의 말에 대답하기 전에, 반대쪽 문이 벌컥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어지간하면 기다리려고 했는데 말이야, 생각해 보니까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기다리는 사람이 나 아니야?”
“도!”
“세은 씨!”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에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들 모여 있네?”
“어떻게 벌써 오셨습니까?”
“비행기가 생각보다 빠르던데? 내가 지금쯤 올 걸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저는 도가 도착하면 우선 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은의 말에 사노가 대답했다.
세은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굳이 휴식을 취할 필요를 못 느껴서 말이야. 피곤하지 않기도 하고. 일이 눈앞에 있으니 신경이 쓰여서 쉴 수가 있나.”
세은은 말을 하며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턱.
빈 소파에 앉은 세은은, 여전히 긴장해서 시립해 있는 사노의 비서에게 말했다.
“여기 커피 한 잔.”
“아, 아, 예, 예!”
세은의 말에 그제야 비서는 재빨리 방에서 나갔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세은이 사노에게 말했다.
“비서를 얼마나 괴롭히기에 이렇게 잔뜩 얼어 있는 거야?”
“하하. 도를 실제로 보니 긴장해서 그런 겁니다.”
“흐음…… 내가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원래 자신보다 강한 사람들 앞에서는 위축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니까요.”
사노의 칭찬에 세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상부로 치고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은 사노의 입은, 잔뜩 기름칠이 되어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을 위로 끌어올려 줄 동아줄이었으니까.
“그나저나 그동안 대체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습니다.”
“글쎄? 그걸 말하기에는 입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말이야.”
똑똑.
순식간에 커피를 타온 비서가 노크를 하고는 안에 들어와 잔을 세은의 앞에 내려놨다.
후룩.
세은은 바로 잔을 들어 커피를 가볍게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오면서 대략적으로 듣기는 했는데 말이야. 지금 상황에 대해서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어느 것이 가장 궁금하십니까?”
“전부 다.”
“그럼 시간이 꽤 걸릴 텐데요?”
“상관없어. 제대로 알아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말을 하는 세은의 눈이 반짝거리는 빛을 품고 있었다.
* * *
사노는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다행히도 세은과 협력을 하고 있던 나라들만 전력을 유지하고, 그 외 나라들은 쑥대밭이 된 상황이 아니었다.
비록 우위를 점하지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적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나마 전선이 만들어진 다음에는 크게 밀린 적이 없다는 말에 세은은 안도했다.
전장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나중에 전후 처리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범세계적으로 협력을 하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용케 협의체를 만들어서 공동 대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공감대나 연대감이 형성 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거기에 헤이런이 정말로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헤이런이 도와줬으면 정말로 큰 도움이 되겠지.”
사노의 말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헤이런 혼자여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같이 넘어온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있으니, 헤이런이 얼마나 큰 도움을 줬을지는 대충 예상이 갔다.
헤이런이 우연히 이쪽으로 넘어온 것이 다행이었다.
그의 성격상, 마계의 존재들이 설치고 다니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을 들어 보니, 이미 헤이런과 잘 연합하여 대처한 상황.
세은으로서는 다른 걱정 없이 바로 머리를 치면 되는 상황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고, 상황도 엉망이었다면 우선 급한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을 테니까.
헤이런의 존재는 꽤 유용한 변수였다.
원래라면 헤이런은 없는 전력이었으니까.
자신을 받쳐주는 유용한 패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좋은 판단을 했네. 헤이런이면 적어도 이 중에서 가장 마계의 놈들을 많이 상대해 봤을 테니까.”
“하하. 그렇게 자세하게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도와 같은 힘을 쓴다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사노가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평소에 도와 얘기하던 것을 보면,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이 되었으니까요. 일종의 도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노의 말에 세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알아보는 것도 능력이지.”
세은의 칭찬에 분위기가 점점 훈훈해졌다.
“칭찬 감사합니다. 그럼 도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질서가 무너진 상황이니까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다른 지원은 전혀 필요 없으신 겁니까?”
“뭐…… 그렇지. 비행기 정도만 지원 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
“비행기 정도는 저희 선에도 도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럼 됐네.”
“도가 다시 돌아오셔서 정말로 마음이 놓입니다. 최대한 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아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속내가 어떻든, 둘은 공동의 목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이들의 견제에 기울어져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다른 움직임이 더 생기기 전에, 완전히 치고 나가는 것이 더 좋다.
그래야 군말이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압도적인 공적이다.
“말이 나온 김에 헤이런을 이리로 부를까요?”
“헤이런이 근처에 있어?”
“그렇지 않아도, 도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위해 불렀습니다.”
“그래? 조금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자고 있지는 않을 것 같으니 부르지.”
“알겠습니다.”
세은의 말에 사노가 다시 비서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헤이런이 올 동안 잠시 침묵이 지속되었다.
세은이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탓이었다.
“모셔왔습니다.”
오늘 밤에 특히 바쁜 사노의 비서다.
벌써 몇 번을 노크하며, 헤이런을 데리고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헤이런이 안으로 들어왔다.
“성하! 무사하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고작 바싸고 따위한테 지기에는 부끄럽잖아?”
“하하! 역시 성하이십니다. 정말로, 정말로 다행입니다.”
헤이런이 감격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세은은 그런 헤이런의 반응에 싱긋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자자, 일단 앉아서 얘기하지.”
헤이런이 자리에 앉자 세은이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동안 여기 있는 사람들을 도와서 마물들을 잘 막아줬다고 하던데, 고생했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했을 일입니다. 교단의 누구라도 저처럼 행동했을 겁니다.”
헤이런이 겸양하며 말했다.
세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물론 대다수가 그렇겠지만, 그중에서도 헤이런이 그걸 시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다행인거지.”
세은이 장난기 깃든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세은의 장난에 헤이런이 더욱 어쩔 줄 모르며 대답했다.
“자꾸 띄어주시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만 할까?”
헤이런이 정말로 난감해하자, 세은은 얼굴에 깃든 장난기를 지우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말이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와줘야겠어.”
“무엇이든 분부만 하시면 됩니다. 성하.”
세은의 말에 헤이런이 절도 있게 대답했다.
그런 헤이런의 태도에 세은이 고마워하며 말을 이었다.
“역시 헤이런이야, 정말로 고마워.”
“당연한 일입니다.”
“하여튼, 자세한 건 여기 있는 사람들이랑 얘기를 하면 돼.”
“아, 알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대략적으로 얘기를 하자고.”
“예.”
세은이 눈빛을 주자 사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단 방금 전에 헤이런이 오기 전에 얘기한 것은 단순합니다. 도가 머리를 치고, 우리가 그 뒤를 받칩니다.”
“그럼 거기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을 무엇입니까?”
“세은이 머리를 치는 동안,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하는 겁니다.”
“성하의 뒤를 지키면 되는 겁니까?”
“그건 다른 사람들이 먼저 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헤이런이 주변을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합류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주변이 불안하면 누구라도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든 환경이 만들어지니까요.”
사노는 그사이에 어느 정도 작전을 구상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우선은 사노의 의견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듣다가 다른 점이 있으면 나중에 첨언을 해도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중간에 말을 끊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방법이었다.
“주변의 장애물을 최대한 치우고, 합류를 합니다. 가장 좋은 상황은 헤이런이 합류를 하기 전에 도가 상황을 종결시키는 일이겠죠.”
“그렇게 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세은의 말에 사노가 대답했다.
“도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작전이란 게…….”
“알아. 기분이 상한 게 아니니까 계속 얘기해.”
“아…… 알겠습니다.”
사노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하여튼, 선봉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후방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헤이런이 후방을 맡게 될 확률이 지금으로써는 가장 높습니다.”
“후방의 중요성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아니면 헤이런을 아예 처음부터 도의 옆으로 붙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장위건이 대화에 참여했다.
“후방에 다른 모든 이들을 넣고, 헤이런과 세은 씨 둘이서 함께 움직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이고르가 동의를 표했다.
“내 생각도 비슷합니다. 차라리 처음에 빠르게 일을 종결짓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끝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전장의 모든 상황에 무조건이라는 말은 성립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노가 둘의 의견에 반론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