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56. 혼자서 한다 (1)
사노의 짧은 대답 이후로 실내에는 짙은 침묵이 감돌았다.
“그게 가능합니까?”
그리고 그 짙은 침묵을 깬 것은 이지호였다.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작전에 들어가는 것이 말입니다.”
이지호의 말에 장위건은 물론이고, 이고르의 얼굴에도 동의의 빛이 떠올랐다.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작전을 시행할 수가 있습니까?”
둘의 말에 사노가 대답했다.
“당연히 드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우리의 권한이 강해졌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만큼 우리가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미 우리는 우리의 직위에 비해 더 강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으음…….”
“상부에서 우리의 경험을 높이 사서 그런 점도 있지만, 반대로 불안해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이 우리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입니다.”
사노는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그게 지금일 뿐입니다.”
사노의 말에 모두의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현재 유럽의 마물들과 맞서 싸우는 국가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 국가들의 숫자에 비하면 아주 작은 수였다.
비록 소속된 국가들이 전부 강한 입김을 가지고 있는 국가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모든 국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해서 움직이게 되어있다.
설사 이들이 순수하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해도, 그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국가는 많지 않았다.
이제 막 전선이 안정이 되고, 본격적으로 일반 군대도 마물들을 상대하는 것에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마물들을 상대로 크게 피해를 입지 않고 방어에 성공하고 있으니, 다른 욕심이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였다.
거기다가 세은도 돌아온 상황이 아닌가.
“세은 씨가 돌아온 것이 불씨가 됐군요.”
이지호가 입을 열었다.
“세은 씨는 우리 국민입니다. 거기에 우리들과도 협력을 했던 사이이니 위기를 더 크게 느꼈겠지요.”
“그럴 가능성이 현재로써는 가장 높습니다.”
이지호의 말에 사노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직 이긴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공적을 나누려는 모습이 정말 답답합니다.”
“저들도 도의 능력은 익히 알고 있으니까요.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아무런 힘도 써보지 못하고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깁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고르가 물었다.
“대체 그 작전의 승인은 누가 낸 겁니까? 저희의 의견도 듣지 않고요.”
“상부에서도 계속 우리의 눈치를 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사노의 말에 다른 이들의 얼굴에도 우려가 떠올랐다.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지만, 위에 있는 상부에서는 이들의 영향력이 더 이상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의 공로와 경험은 인정합니다만, 아무래도 저희가 점점 더 영향력이 넓어지는 것을 꺼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이 권력자들의 생리니까요.”
“끄응…….”
“그리고 이건 우리끼리 있으니까 하는 말입니다만, 우리도 언젠가는 정계에 나가게 되면 나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저들로서는 미래의 정적을 더 이상 키워주고 싶지는 않겠죠.”
목소리를 살짝 낮춘 사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반 병사들만 데리고 승전을 올린 경우도 종종 있었구요.”
사노의 말에 이고르가 다른 점을 지적했다.
“그렇게 일반 병사를 가지고 승전을 올렸을 때는, 근처에서 다른 각성자들이 지원을 해줬을 때입니다. 순수하게 일반 군대들로만 데리고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고르가 무엇을 얘기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요지는, 군대로 적들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배제하는 거고요..”
“일종의 경고군요.”
“맞습니다.”
장위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다양한 견제가 있는데, 장위건이 그런 견제를 받지 않았을 리가 없다.
수많은 당 간부들이 장위건에게 접근했었지만, 장위건은 아직까지 그 누구의 손도 잡지 않은 상태였다.
섣불리 누구의 손을 잡는 것보다는 더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이익이었기 때문.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장위건이 먼저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생겼다.
“끄응…….”
그리고 그건 이고르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인 러시아였지만, 러시아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거기에 그건 사노나 이지호도 마찬가지.
각자 견제를 받는 방법은 다르지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은 동일한 상황이었다.
“사노.”
“예.”
생각을 마찬 장위건이 사노를 불렀다.
사노는 자신을 부른 장위건과 시선을 맞추며 대답했다.
“이렇게 우리를 불렀다는 것은, 무슨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거겠죠. 단순히 상부의 뜻에 순응할 거면 굳이 헤이런과 우리를 부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장위건의 직설적인 말에 사노가 웃음을 지었다.
장위건의 말 대로였다.
사노는 이대로 위의 뜻대로 순응해서 움직여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부터는 한 번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 끝이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리게 된다.
상부에서는 단순히 탕평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이들의 권한과 영향력을 줄이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나중에는 아예 세은과의 연결도 자신들이 직접 하겠다고 나설지도 몰랐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는 것이다.
어중간하게 권력을 손에 쥐었다가, 놓친다면 그 끝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가 있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이들이 쥐고 있는 권력을 놓아버릴 경우 수많은 하이에나들에게 물어뜯기는 장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직은 다른 전략의 가능성을 시험해 본다는 것에 그치겠으나, 나중에는 아니었다.
다행히 사노가 미리 준비를 해둔 덕분에 미리 알게 되어서 대비할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이번 작전도 작전의 기밀상 선 조치 후 보고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물론 작전의 기밀은 핑계다.
“그렇습니다. 다른 분들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입니다.”
“…….”
사노의 말에 이지호와 이고르의 시선도 그에게로 향했다.
“혹시나 지금이라도 상부의 명에 따르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셔도 됩니다.”
“…….”
그러나 사노의 말에도 아무도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했다.
여기서 일어난다는 것은 앞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과 척을 진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이대로 물러나면, 권력의 자투리로 밀려날 것이라는 것은 당연했다.
아무도 그러고 싶은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능력이 있는 만큼 욕심이 있고, 욕심이 있는 만큼 더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향상심도 충분했다.
“하하.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럼 앞으로의 대응에 대해서 얘기를 하도록 하죠.”
“적당히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겠군요.”
“그러면서도 우리가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요.”
무언의 동의와 함께, 이제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에 대해 회의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 * *
“비행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열심히 날아온 덕분에, 예상보다도 빠른 시간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비행기에 충분히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다른 각성자들과 대화를 나눈 덕분에 상당한 정보도 얻을 수가 있었다.
세은의 생각보다는 잘 버티고 있었지만, 그건 바싸고가 움직이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바싸고가 왜 움직이지 않는지가 중요했다.
‘역시 부상인가?’
세은이 엄청난 부상을 입었으니, 바싸고 역시 멀쩡하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부상을 치료하지 못해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라면, 당장이라도 목을 치러 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괜히 또다시 다른 계략을 준비하거나, 몸을 회복할 시간을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바싸고와의 싸움이 링 위에서 규칙과 함께 이뤄지는 격투기도 아니고, 그저 누가 먼저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일이었다.
“도! 오셨습니까!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정말로 반갑습니다.”
세은을 마중 나온 각성자와 마찬가지로, 남미에서 세은과 함께 했던 각성자가 세은을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반가워. 여기에 있었네.”
“예. 현재는 본부를 지키고 있습니다.”
역시나 자신을 알아보는 세은의 모습에 각성자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이동하시죠!”
“그러지.”
잠시 중단되었던 대화는 비행장 중간 정도를 지날 무렵 다시 재개되었다.
“그동안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일이 있었어.”
세은을 보자마자 모두가 묻는 질문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이 질문을 수십 번은 듣게 될 것이 분명했다.
세은이 별로 대답하고 싶어 하지 않는 티를 내자, 각성자는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다들 도가 다시 나타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성자의 말에 세은은 이번에는 말없이 씩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세은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신난 각성자는, 계속해서 이런저런 말을 꺼냈다.
“그렇지 않아도 일반 군대만으로 진군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들었었습니다. 저는 그게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타이밍 좋게 도가 돌아오니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운 희생을 줄일 수가 있으니까요.”
어찌 들으면 세은 보고 전부 처리해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지만, 그런 뜻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의 어조에서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아! 제가 미처 말을 안 했군요.”
세은의 질문에 각성자가 자신의 이마를 탁치며 대답했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일단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내일 상부에서 도를 부를 겁니다.”
“그래? 오늘은 자유라 이 말이네.”
“예. 그렇습니다.”
각성자의 말에 세은이 말했다.
“그럼 혹시 사노나 이지호를 만날 수가 있을까?”
“어렵지 않습니다. 두 사람 다 본부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그럼 둘에게로 안내해줘.”
“아! 알겠습니다.”
세은의 부탁을 들을 각성자가 목적지를 수정했다.
‘역시 자세한 건 사노나 이지호를 통해서 들어야겠어.’
본부로 이동하면서 여러 각성자들에게 정보를 수집했지만, 아무래도 직급이 낮고 현장직이다 보니 내부적인 정보는 너무 적었다.
혼자서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것도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가능했다.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사노나 이지호는 정보를 다루는 이들이니 바싸고가 그동안 나타났는지 아닌지도 확실하게 알려 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사노에게 먼저 갈까요? 아니면 미스터 이에게?”
“이지호에게.”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사노보다는 이지호가 더 편했다.
그리고 심적으로 더 믿음이 가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지호가 머무는 곳에 도착한 각성자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미스터 이는 자리를 비운 것 같습니다.”
“그럼 사노에게로 가지.”
“예!”
각성자는 다시 몸을 돌려 사노에게로 세은을 안내했다.
“도착했습니다. 사노는 자신의 집무실에 있다고 합니다.”
“고마워.”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자신의 임무를 마친 각성자는 세은에게 인사를 건네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