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55. 다시 지구로 (5)
세은이 자신을 맞이하러 올 인원들을 기다리며, 지부에서 다른 각성자들의 수련을 돕고 있을 때.
그를 맞이하기 위해 인원을 파견한 이들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급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세은이 실종된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의 전략의 핵심은 진격을 해서 섬멸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전선의 유지에 전념해 더 이상 피해를 입는 지역이 나오지 않게 만드는 것이 우선 목표였다.
방어에만 전념하면 어느 정도는 막아낼 수 있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불리한 전쟁에서 그 열세를 극복하고 상대의 허를 찔러 승리를 쟁취해낼 줄 아는 인재는 드물었다.
사람 대 사람의 전투에서는 아무리 우수한 인물이라도, 그동안 알고 있던 전략의 범위를 벗어나는 파괴력의 힘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전장에서는 그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헤이런의 존재로 인해 효율적인 방어를 위한 전략에 대해서는 상당한 발전을 이룰 수가 있었다.
유럽이 세계 대전 때처럼 영국을 제외하고 거의 다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국경의 현대식 무기와 병력들만으로 전선을 유지하는 공적도 이루어냈다.
몬스터들의 습성과 약점에 대해 미리 보고받은 덕분이었다.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현대 병력의 비중은 점점 높아져 갔다.
특히 전차와 전투기 같은 무기들은 그 효용성이 더욱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정도가 전부라는 점이었다.
현대 무기들은 방어를 할 때는 유리한 곳에서 원하는 전투를 치룰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당연히 공격을 할 시에는 그렇게 만들어진 장소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거기에 날씨나 다른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들로 인해, 같은 장소에서 전투를 수행한다고 해도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올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제른과 그 휘하의 성기사들로 이루어진 별동대였다.
제른을 위시한 그 아래 성기사들은, 지원 요청을 받으면 단숨에 달려가나 전황을 바꾸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실제로 몇 번이나 무너질 뻔한 전선을 제른의 별동대의 도움을 받아, 조금이라도 밀리는 것 없이 유지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 유지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었다.
조금 무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유럽을 되찾기 위해 진군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고 있었다.
계속 전선을 유지하면 물자만 소모가 되고, 나중에는 치고 나가고 싶어도 그럴 여력이 없어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심지어 언론들도 그런 주전파의 입장을 대대적으로 보도를 해서 시민들의 불만도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시민들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치안이 안정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자면 수비에 전념할 것이 아니라 공격을 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정보를 언론에 공개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많은 의견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일선에서 일을 하는 사노 같은 인물들이 반대를 해서 전선을 지키는 것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던 와중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은이 돌아왔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사노는 자신과 항상 의견을 같이 하던 다른 이들을 불러 모았다.
이지호와 장위건, 그리고 이고르 3인이 사노의 호출에 한자리에 모였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장위건이 자리에 앉자마자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대뜸 물었다.
사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기는 하지만, 의논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은 맞습니다.”
자신들이 하고 싶던 질문을 장위건이 대신 해주자, 이고르와 이지호는 가만히 둘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낸 장위건이 둘을 대신해서 계속 사노에게 질문했다.
“대충 무슨 일인지 예상은 갑니다만, 아무래도 직접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지요.”
그의 말에 사노가 긍정했다.
“그렇습니다. 다들 예상하고 계신 일로 상의할 것이 있어 이렇게 발걸음을 하게 했습니다.”
사노는 말을 하며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했다.
“아닙니다. 이제 운명 공동체인데 당연히 와야지요.”
장위건은 그런 사노의 인사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얘기를 하고 싶지만, 한 사람이 아직 안 오지 않아서 조금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예? 아직 올 사람이 한 사람이 더 있었습니까?”
사노의 말에 장위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과 이지호, 그리고 이고르까지.
이 자리에 모일 사람은 전부 온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직 한 사람이 더 와야 한다고 하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설마 세은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오는 겁니까?”
혹시 세은이 벌써 도착했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그런 중요한 일이라면 이미 자신에게도 보고가 들어왔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보고도 받지 못했고, 사노가 아니라고 하자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꼭 오늘 이 자리에 와야만 하는 사람이라…… 아주 중요한 사람인가 봅니다.”
“예.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장위건의 말에 사노가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노의 말에 흥미가 생긴 장위건은 그게 누굴까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이지호와 이고르 역시 마찬가지.
대체 사노가 이 자리에 이들을 제외하고 이 자리에 초대할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짧은 순간.
모두의 머리에 많은 인원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딱 느낌이 오는 인물이 없었다.
한편, 사노는 새롭게 부른 사람이 언제 도착할지에 대해 관심이 쏠려 있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이번에 부른 이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없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간자도 아니었다.
같은 국가 소속이어도,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이들이 다른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이번에 부른 이는 그런 점에서도 확실했다.
이보다 완벽하게 사노가 원하는 정보를 줄 수 있는 이가 더 이상 없었다.
똑똑.
“들어갑니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상념을 깨는 노크 소리와 함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십시오.”
덜컥-
그리고 사노의 대답과 거의 동시에 문이 열리며 한 명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
남자, 아니 남자라는 단어보다 노인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이의 등장에 안에 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헤이런!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허허. 수고라고 할 것까지야…… 이동수단을 잘 준비해줘서 편하게 왔습니다.”
‘설마 했는데.’
헤이런의 등장에 놀란 이지호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사노의 이번 호출이 세은과 관련된 일이라는 사실은 짐작이 아니라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그래서 사노가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온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헤이런이었다.
“일단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헤이런이 자리에 앉는 것과 동시에 다른 이들도 착석했다.
“온다고 한 사람이 헤이런일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대화를 나눌 준비가 끝나자 장위건이 입을 열었다.
장위건의 말에 다른 이들도 대답 대신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런 장위건의 말에 대답했다.
“아무래도 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사람이니까요.”
“얘기는 미리 들었습니다.”
헤이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도 지켜야 할 이들이 있어 오래 자리를 비우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요. 당연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게 고개를 숙였다가 든 헤이런이 바로 말을 이었다.
“저의 어떤 의견이 필요하신 겁니까?”
헤이런은 머리칼도 수염도 허옇게 샌 노인이었지만, 누구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인원이 각자의 국가에서 한가락씩 하는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기를 펴기 힘들었다.
게다가 여태까지의 전투에서 공적을 가장 많이 쌓은 사람이라면 단연코 헤이런이 가장 첫 번째로 꼽힐 것이 분명했다.
헤이런이 어느 국가에도 속한 중립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지금 지니고 있는 유사시 자율 지휘권은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지한 인상을 가진 노인은 사노를 향해 부드러운 눈빛을 보이며 웃음을 지었다.
“도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당장 달려가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느라 힘이 듭니다.”
헤이런의 넉살에 실내에 웃음에 터졌다.
사노 역시 웃음을 짓고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지금 전황을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은 헤이런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헤이런은 굳이 겸양을 떨지 않았다.
누구나 아는 사실에 겸양을 떨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그 사실을 헤이런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헤이런이 순순히 인정하자 사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헤이런을 불렀습니다. 그럼 도가 합류를 하면 이제 저희는 방어가 아니라 공격을 할 수 있는 상황입니까?”
사노의 목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헤이런의 입으로 향했다.
헤이런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에 따라 앞으로의 방향이 크게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담담한 목소리가 그 어떤 목소리보다도 실내를 가득 채웠다.
이렇게 되면 굳이 전선을 유지하는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유럽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이고르는 표정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그로서는 러시아의 접경 지역을 없애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고르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헤이런과 얘기를 나누었다.
“어떤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까?”
사노의 질문에 헤이런이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첫째, 현재 국경에 있는 제 수하들을 전부 모아서 성하를 지원해야 합니다. 둘째. 그동안 국경은 지대를 막을 유능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유사시에는 제른 부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더 골치가 아프게 될 겁니다.”
“이 두 가지가 전부입니까?”
“예. 성하의 능력에 대해서 의심하는 분이 계십니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헤이런의 말에 사노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지난 전투 때 세은이 실종된 일이 있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입니다. 거기에 방금 전에 물어본 것도 물어볼 생각이었습니다.”
“지난번에는 혼자서 너무 다수를 상대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제 휘하의 수하들이 성하를 보필해야 한다고 조건을 붙인 겁니다.”
“아아…….”
“그럼 세은과 헤이런, 그리고 원래의 부하들만 있으면 되는 겁니까?”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이지호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면 얼마나 국경을 수복할 수 있겠습니까?”
“정확히 확정은 할 수 없지만, 아마도 지금의 절반은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헤이런은 세은이 합류한다는 사실만으로, 현재 전혀 유리하지 않은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조금도 오판하는 기색 없이, 실제로 헤이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되면 동유럽 쪽의 망명 정부들은 모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난민을 계속 거두고 있는 나라들의 입장으로서는 정말로 좋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절반이면 상당히 많군요. 그럼 여기서 이렇게 위로 치고 들어가면 포위를 하는 형국이 되어…….”
헤이런의 말에 관심을 가진 사노가, 앞의 책상에 펼쳐 놓은 지도를 가지고 대화를 시작했다.
“그럼 일단 도가 합류를 빨리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당연합니다.”
헤이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더 이상 물어볼 것이 있습니까?”
헤이런의 말에 사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른 분들도 혹시 있으십니까?”
자신의 궁금증은 모두 해소한 사노가 다른 이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