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55. 다시 지구로 (3)
화아악―!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확인한 순간, 세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게이트가 지구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어차피 겉으로 봐서는 게이트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탁―
“아직은 모르겠네.”
그리고 게이트의 건너편으로 넘어온 세은이 마주한 환경은, 이계와 다를 것이 없는 곳이었다.
세은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주변을 훑었다.
“여기가 게이트의 안이면 좋겠는데 말이야.”
지구로 연결된 게이트 중에서, 바로 밖으로 연결된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지금의 게이트가 지구에 연결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내 세은이 우선 정찰을 나가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음?”
얼마 가지 않아 몬스터로 느껴지는 무리가 세은의 감각에 들어왔다.
타닷―
그곳을 향해 움직이자 이내 세은의 감각에 걸렸던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도끼를 무기로 사용하는 반인반우(半人半牛)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였다.
“음머어어!”
인간의 냄새를 맡은 미노타우로스들이 흥분에 휩싸여 울음을 터트렸다.
휘익―
세은은 망설이지 않고 미노타우로스들에게 달려가며 달의 검을 뽑았다.
굳이 검의 도움이 없이도 처리가 가능한 몬스터들이었지만, 그 사이에 손에 익었다고 자연스럽게 뽑아들게 된다.
쉐에엑―
달의 검이 바람을 가르며, 가장 선두에 있는 미노타우로스의 목을 노렸다.
서걱―
달의 검과 마주친 미노타우로스의 목이 너무나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쿵―
“음머?”
다른 미노타우로스들의 반응보다, 목이 떨어지는 속도가 먼저였다.
일족의 목이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한 미노타우로스들이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음머어어엉!”
타앗―
다시 한 번 더 땅을 박찬 세은의 몸이 가볍게 날아올랐다.
후우웅―
미노타우로스 하나가 세은을 노리고 육중한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나 세은은 어느새 또다시 달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허공을 가르는 도끼를 뒤로하고, 세은이 미노타우로스 하나의 목을 베어냈다.
쿠웅―
그렇게 순식간에 두 마리의 미노타우로스를 베어내자, 이제 남은 것은 단 두 마리뿐.
그리고 세은은 남은 놈들도 가볍게 정리했다.
“미노타우로스가 몰려 있는 것을 보니 게이트네.”
세은이 환한 얼굴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원래 미노타우로스는 먹이를 많이 먹는 몬스터라, 개별 생활을 한다.
영역이 겹치면 먹이가 부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그런데 그런 미노타우로스가 둘도 아니고 넷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은 게이트가 분명했다.
“빨리 움직여서 나가는 길을 찾아야겠어.”
세은은 쉴 틈 없이 땅을 박차며 게이트의 출구를 탐색했다.
우우웅―
신성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게이트의 출구를 찾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찾았다!”
그리고 다행히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이트의 출구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탓.
“이왕이면 아시아에 연결되어 있으면 좋겠는데.”
출구에 멈춰서 세은이 말했다.
통역 마법으로 인해 언어의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동거리를 생각하면 아시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수월했다.
“후우.”
자신이 없는 동안 별다른 일이 없었기를 기원하며, 세은이 게이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살짝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끄응…… 아시아는 아닌 거 같은데.”
게이트 밖으로 나온 세은의 눈앞에는, 거대한 침엽수림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
세은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정적을 뚫고 기분 나쁜 마기가 감각에 걸려들었다.
‘응?’
세은은 본능적으로 마기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마왕급은 아닌데…….’
세은을 향해 다가오는 마기의 개체는 둘, 그러나 둘 다 마왕은 아니었다.
‘마물치고는 상당히 강해.’
어차피 마기의 소유자들이 자신을 향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세은은 가만히 기다렸다.
‘인간이네.’
이내, 자신의 근처로 온 마기의 소유자들을 확인한 세은이 생각했다.
‘한 놈은 눈에 익은데?’
일단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는 척을 하던 세은은, 어딘가 익숙한 얼굴에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 유럽의 그 새끼들!’
그리고 이내 기억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막스의 얼굴을 상기해 냈다.
‘완연히 유럽은 바싸고의 손에 넘어간 것 같군.’
그렇지 않다면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저 둘이 여기로 올 이유가 없었다.
‘일단 잡아서 정보를 캐내야겠군.’
생각을 마친 세은의 시선이 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동시에, 마르키시오와 막스의 눈이 세은의 시선과 허공에서 얽혀들었다.
탓!
이미 눈이 마주쳤다.
세은은 망설이지 않고 둘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둘도 마찬가지였는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둘의 모습이 보였다.
스르릉―
세은의 허리춤에서 검이 뽑혔다.
마치 기름이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달의 검과 별의 검은 자연스럽게 세은의 손에 들려 있었다.
“흐아앗!”
“으아아악!”
동시에 막스와 마르키시오가 고함을 지르며 세은을 공격해 왔다.
그렇다고 세은의 동작에 딜레이가 생기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애초에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다.
거기다 세은의 검은 드워프들이 만들어낸 희대의 명작.
서걱, 서걱―
“……?”
“?!”
단 두 번의 칼질에 상대의 무기가 그대로 잘려나갔다.
단지 한 번의 부딪힘으로 승패가 결정 난 것이다.
철그렁!
그러나 자신들의 무기가 반으로 동강 났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키시오와 막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의 전투는 비무가 아니라 생사를 건 싸움이다.
무기를 잃었다고 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히야압!”
후우웅!
막스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그런 반항도 잠시, 세은은 망설임 없이 그런 막스의 팔을 베어 나갔다.
“죽어라!”
마르키시오는 빈틈을 기다린 듯 세은이 검을 휘두르는 동작을 취하자 달려들었다.
나름 바싸고에게 마기를 받은 이들답게 강맹한 공격.
그러나 세은을 상대하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세은이 막스의 팔을 베어내지 못하게 방해할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쯧.”
세은은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둘 다 살려서 심문을 해보려고 했는데…….”
물론 둘 다 살리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나오면 어딘가 잘라내야 하는 것은 분명.
그렇게 되면 쓸데없는 시간이 소모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둘을 따로 심문하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한 놈이라도 제대로 불게 하면 되니까.”
그저 혹시나 당할 기만으로 인해 소모되는 시간을 줄이고 싶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건 정확한 정보를 얻으면서도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다.
이럴 바에는 한 놈을 본보기로 삼아서 압도적인 공포를 심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좋아.”
마음을 정한 세은은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다.
우우웅―
그리고 그런 세은의 움직임에 맞춰 달의 검에 신성력이 깃들기 시작했다.
“큭!”
신성력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막스와 마르키시오가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저것이 특히 자신들에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막스! 나뉘어서 도망간다!”
“예!”
이번 공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마르키시오의 판단에, 막스와 마르키시오가 양 갈래로 나뉘어 도주를 시작했다.
세은의 표적이 되지 않은 운이 좋은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은은 둘 중 하나라도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에일린, 디바인 스피어.”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이 달의 검에 뭉쳐 있던 신성력들이, 이내 창의 모양을 이루며 허공을 찢어발겼다.
“젠장!”
등 뒤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에 막스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세은의 목표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파아아아악!
대기를 찢는 소리가 막스의 고막을 무겁게 때렸다.
그리고 이내 강력한 힘이 막스의 등 뒤에 도달하는 것이 느껴졌다.
푸욱―!
“커……헉……!”
울컥―
빛의 창이 막스의 등을 관통하며, 그의 입에서 선혈이 치솟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던 걸음을 멈춘 막스는, 몸에 빛의 창을 꽂은 채로 제자리에 멈춰 섰다.
파사삭!
그리고 이윽고 빛의 창이 가루로 화해서 변하기 시작했을 때, 꼿꼿하게 서 있던 막스의 몸이 바닥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제엔……장…….”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막스는 자신의 앞이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점점 높아지는 나무의 모습, 가까워지는 땅 위의 돌멩이.
마치 시간이 멈추는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쿵―
이내 자신의 몸이 바닥에 닿는 것과 함께, 막스는 그대로 절명했다.
타앗―
단숨에 막스를 죽여 버린 세은은, 이러한 막스의 마지막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르키시오와 막스가 반대로 도망친 만큼, 막스를 향해 마법을 날리자마자 바로 마르키시오를 쫒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이. 어디가?”
“시발!”
쉐엑!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세은의 물음에 마르키시오가 욕설을 뱉으며 무기를 휘둘렀다.
텅―
그러나 세은은 너무나도 가볍게 그런 마르키시오의 공격을 막아냈다.
퍽!
상대의 헛된 저항을 가볍게 막아낸 세은은,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마르키시오의 후두부를 가격했다.
“컥!”
후두부를 가격당한 마르키시오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며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그러니까 얌전히 잡히면 서로 좋잖아. 그치?”
세은은 바닥에 코를 박은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대를 보며 말했다.
콰악!
그리고는 그대로 마르키시오의 뒷목을 강하게 붙잡고 들어올렸다.
“몇 가지만 성심성의껏 대답하면 목숨은 살려주지.”
“…….”
그러나 마르키시오는 세은의 제안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직 정신을 온전히 차리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정보를 불고 살아난다고 해도, 바싸고가 그 사실을 알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어차피 죽는 목숨이라면, 이렇게 쉽게 굴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세은이 살려준다는 말도 진실인지 확신을 할 수가 없는 상황.
적의 말을 덥석 믿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거니와, 서로 신뢰가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묵비권을 행사한다 이거지?”
스윽―
세은이 허리춤에 다시 꽂아 넣었던 검을 뽑아 들며 웃음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말이야…….”
부모님을 납치했던 일본인 각성자를 심문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가볍게 떠오른 회상을 지워버린 세은은, 그대로 검으로 마르키시오를 겨누며 경고했다.
“이왕이면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지금 인내심이 조금 부족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