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55. 다시 지구로 (2)
“여기인가?”
세은은 아몬이 지도에 표시해 준 장소에 도착했다.
“끄응……”
그러나 어디에도 게이트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았지만, 육안은커녕 게이트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열릴 때까지 여기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나?”
세은이 마계에서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아몬의 입장상, 거짓말을 치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단순히 지금은 게이트가 열려 있지 않다는 계산이 선다.
“기약이 없으니까 답답하네.”
세은은 근처에 있는 나무에 몸을 기대고 자리에 앉았다.
“대충 길어야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기준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세은이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이상하게도 아무런 마물들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숲에 마물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 게이트 때문에 마왕들이 들락날락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이것 때문에 게이트가 열리는 거라고?”
세은이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성물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성물이 원래의 차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게이트를 열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니 그럼….. 애초에 같이 안 넘어왔으면 되는 거잖아.”
세은은 손으로 머리를 살짝 긁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성물이 아니었다면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 일이기는 했다.
다만, 자신이 돌아옴으로 인해 지구에 게이트가 생겼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끄응…… 여태까지는 어쩔 수 없이 도와준다고 생각했는데, 이것 때문이란 걸 알았으니 얼른 마무리를 해야겠네.”
성물의 주인이 자신이었으니, 지구에 이 난리가 난 것에 그의 책임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원인을 따져 나가다 보면, 자신을 부른 신에게 그 원인이 있겠지만 말이다.
다른 마왕들은 전부 처리했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바싸고가 남아 있었다.
거기에 세은이 마계에 있는 동안 다른 마왕들이 넘어가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었다.
“최대한 빨리 열렸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지구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세은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었다.
우우웅―
그리고 동시에.
성물의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공간의 틈새가 세은의 눈에 들어왔다.
* * *
“게이트가 열렸군.”
유럽 벨기에의 브뤼셀.
원래는 유럽 연합의 본부가 있던 이곳은, 이제는 온전히 바싸고의 영지가 되어 있었다.
느껴졌다.
또 다른 게이트가 생성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싸고는 아직도 모든 힘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철저하게 준비해 놓은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넘어올 마왕이 없을 텐데……?”
자신과 뜻을 같이 했던 바알이 커다란 피해를 입고 지구로 넘어왔다.
가장 마지막에 넘어오기로 한 바알이 넘어왔으니, 더 이상 넘어올 마왕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나마 바알은 마계에 시렌이 있다는 것만 알리고 회복을 위해 수면에 들어간 상태.
바싸고로서는 정보를 얻을 창구가 없었다.
“시렌이 마계에서 회복을 했다는 것도 역시 이해는 가지 않지만 말이야…….”
자신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한 세은이 어떻게 마계에서 바알의 계획을 파쇄했는지 바싸고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이는 바알이 자리에서 눈을 뜨면 물어봐야 할 문제였다.
하지만 바알이 넘어온 이상, 마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바알이 얻은 힘으로 이곳을 또 다른 마계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니까.
아니, 오히려 마신의 간섭이 덜 한 곳이라 바알의 능력이 더 빛을 발할 것이 분명했다.
“폐하, 부름을 받고 도착했사옵니다.”
“들어오너라.”
끼이익―
바싸고의 수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척―
두 명의 사내,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와 헤더 막스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허리를 조아렸다.
“시킬 일이 있다.”
“하명하시옵소서.”
마르키시오와 막스의 태도는 전보다 훨씬 더 정중해져 있었다.
전에도 바싸고가 전해주는 마기에 취해 그의 밑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그때가 바싸고의 강력한 힘에 공포심을 갖고 있던 때였다면, 마기에 완전히 동화된 지금은 그에 더해서 존경심까지 품은 상태.
그리고 바싸고 역시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충실하게 자신을 보좌해온 둘을 요긴하게 굴리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이들이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것은 분명했다.
특히 인간들을 상대하는 일은 이 둘이 전담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게이트가 열렸다.”
“게이트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런데 이번 게이트에 넘어올 마왕이 없노라. 가서 확인을 해보고 이리로 안내하도록.”
“예!”
“위치는 저번의 그 장소와 같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바싸고의 말에 둘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렸다.
이미 바싸고를 섬기면서, 이것저것 들은 게 많은 이들이었다.
이 정도는 알아야 수월하게 다룰 수 있기도 했다.
아예 무지한 것들을 수하로 부리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으니까.
휘익―
모든 명령을 마친 바싸고가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마르키시오와 막스는 눈치껏 다시 인사를 올리고 뒷걸음질로 내전을 빠져나왔다.
“좀 멀쩡한 놈이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다시 혼자 남은 바싸고가 중얼거렸다.
바알이 회유한 마왕 중에 쓸 만한 마왕들은 넘어오지도 못한 상태였다.
거기에 이미 세은이 마계에서 난리를 쳤다 하니 넘어올 가능성이 사라진 상태.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넘어온 놈들을 데리고 계획을 시작했지만, 그런 놈들은 결국 사고를 치게 되어있었다.
바알이 마계를 전부 정리하고 보내줄 마왕들을 기다렸지만,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부 잡는 것이 아닌데.”
바싸고 역시 세은과의 전투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회복을 위해서 멋모르고 넘어온 마왕들을 흡수한 다음이었다.
다른 마왕들의 마기라 완벽하게 흡수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빈사 상태에 빠지는 것은 막아주었다.
당연히 뜻을 같이한 마왕들이 넘어온다는 것을 전제로 그렇게 한 것인데, 지금으로써는 오히려 악수가 되고 말았다.
“뭐, 이미 일어난 일 어쩔 수 없지만…….”
처억.
“괜찮겠나?”
“아, 일어나셨습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바알이었다.
어느새 회복을 위한 수면에서 깨어난 바알이, 바싸고의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
“몸은 좀 어떻습니까?”
“그래도 걸어 다닐 정도는 된다.”
“다행입니다.”
바알의 말에 바싸고가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시렌 그놈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완벽하게 회복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피차 마찬가지.”
“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저보다 먼저 회복하셔야 대계를 이룰 수 있지요. 이번에 부하들이 확인하러간 마왕이 변변치 않은 놈이면 흡수하시지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지금부터 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데 말이다.”
“무엇을 말입니까?”
“시렌에 대한 것.”
세은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서 바알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만약을 대비해 이렇게 말하면서도, 지금 자신의 모습은 꼬리를 만 강아지 같아서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열린 게이트는 자신이 타고 넘어왔고, 마왕이 아닌 이상 게이트가 열리는 장소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게이트가 열린다 해도 세은이 벌써 넘어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일렀다.
세은이 손을 잡은 마왕들과도 따로 볼일이 남아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아직 회복이 더디니까 말이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바싸고는 바알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하. 어떻게 벌써 그자가 넘어오겠습니까?”
“내 생각도 그렇지만, 미리 대비를 하자는 말이다.”
“음…….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준비는 하겠습니다.”
“그래.”
대화를 마친 바알은 몸을 돌렸다.
“어디로 가십니까?”
“최대한 빨리 회복을 하고 싶군.”
“아, 알겠습니다.”
바알의 말에 바싸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바알이 바싸고에게 말했다.
“너도 빨리 회복하도록, 항상 만전을 기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예상치 못한 변수에 당한 바알의 긴장은 최대치를 찍고 있었다.
“예.”
바싸고는 그런 바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키이잉―
그리고 이내 모든 볼일을 마친 바알이 사라지자, 바싸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 밖의 변수에 당하고 오더니 겁이 많아졌군.”
바싸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 자신이 충성을 맹세했던 바알의 모습은 현재 보이지 않았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다시 생각을 해봐야겠어.”
지금의 바알에게는 이전에 바싸고가 느꼈던 절대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계속 이대로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다른 방법도 생각해봐야 할 터이다.
“일단은 이번에 넘어오는 마왕을 보는 일이 먼저군.”
바싸고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임무를 받고 나간 마르키시오와 막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 *
임무지를 향해 가는 마르키시오와 막스의 기분은 매우 좋았다.
인생을 건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무한한 기쁨을 둘에게 가져다주었다.
처음 바싸고를 만났던 날이 마르키시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는 악마와 계약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말이야.’
아니, 악마가 맞다.
그러나 마르키시오 본인에게는 악마가 아니라 천사나 마찬가지였다.
바싸고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나 악마인 것이다.
물론, 하는 행동이 천사보다는 악마에 가깝기는 했지만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마르키시오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막스도 마찬가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선봉에 자신이 섰다는 생각이 그를 만족스럽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한 둘의 감정에 커다란 파문이 일어났다.
‘저, 저놈은……?’
어디선가 마주했던 익숙한 얼굴, 막스는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마왕이 아니라니.’
바싸고의 명령에 오류가 생겼다.
게이트를 타고 넘어온 것은 새로운 마왕이 아니었다.
그들의 주인이 처리했다고 생각한 동양인, 세은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방금 게이트에서 넘어와서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지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바싸고와의 마지막 전투에서 세은이 얼마나 커다란 힘을 보여줬는지 목격한 둘로서는, 전혀 우습게 보이지 않았다.
‘지,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나?’
마르키시오와 막스의 눈이 순식간에 의견을 주고받았다.
휘익―
그러나 시선을 주고받는 그 짧은 사이.
세은의 시야가 정확히 둘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젠장!’
이미 도망치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확신한 마르키시오와 막스가 욕설을 내뱉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당장 뒤돌아서 도망가는 것은 안 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무참히 사냥을 당하는 수가 있었다.
이제는 세은을 정확히 지켜보고 있다가, 때를 맞춰서 움직여야만 했다.
“꿀꺽.”
목 끝까지 차오른 긴장감에 막스가 목젖을 울리며 침을 크게 삼켰다.
타앗―!
그리고 마치 이것이 신호가 된 것처럼.
동시에 세 명의 신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