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204화 (204/225)

# 204

54. 결말을 향해 (4)

바알이 시선이 세은에게로 향했다.

“시렌 네놈은, 어떻게 멀쩡한지는 모르겠다만…… 뭐, 상관은 없지. 애초에 상식을 벗어난 놈이니까.”

바알이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중간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

상관이 없다는 말.

이미 패배해서 어찌 되었든 상관이 없다는 말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순순히 마신님의 의지를 거역한 벌을 받아라. 바알!”

더 이상 바알이 입을 놀리는 것을 기다릴 수 없는 아몬이 앞으로 나섰다.

아몬의 몸 상태도 정상은 아니지만, 바알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에 아몬에게 호응하듯이 아바돈도 앞으로 한 발 전진했다.

이대 일의 싸움을 이길 수 있는 여력이 지금의 바알에게는 없었다.

“하하! 이렇게들 성격이 급해서야. 아직 내가 준비한 것을 전부 보여준 게 아닌데 말이야.”

바알이 광소를 터트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갑자기 나타난 시렌만 아니었어도, 성공이었을 계획이다. 변수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커다란 변수였다. 너무 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만의 하나를 대비한 것이 다행이었군.”

탓―

“죽어라!”

바알의 독백에 무언가 수가 남았다는 것을 눈치챈 아몬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세은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파앙―

세은은 몸을 날리기보다, 달의 검을 휘둘러 신성력을 발출했다.

키이잉―

철컥, 철컥, 철컥.

그러나 이미 바알의 마력이 준비해 둔 것들을 발동한 다음이었다.

갑자기 사방에서 마법들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우웅―

펑― 펑― 퍼엉!

그러나 여기에 있는 이들 중 이 정도의 마법에 당할 자는 없었다.

아무리 부상을 입거나 지친 상태라고 해도 마법을 막아내는 모습에는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단순히 이 정도 마법들이 마지막 수단일 리가 없었다.

이 마법들은 다음 계획이 발동하기 전까지 시간을 버는 용도였을 뿐.

“그럼, 나중에 보지. 그때는 진정한 신의 위엄을 보여주겠다.”

비틀비틀 일어난 바알이 마법을 막아내는 이들을 보며 몸을 돌렸다.

“바알!”

마법을 막아내고 있던 아몬이 바알을 불렀다.

그러나 마법을 뚫고 움직이기에는, 부상의 정도가 너무 심했다.

키이이이잉―

그리고 바알이 유유히 지하를 빠져나가자마자 발동되는 두 번째 마법진.

“엎드려!”

우우우웅―

이미 달아난 바알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느낀 세은이 소리쳤다.

바알을 잡을 수 없다면 힘을 아낄 필요가 없다.

주변을 엎드리게 한 후에, 신성력을 끌어올려 주변의 마법진을 하나씩 파괴해 나가기 시작했다.

퍼엉, 펑!

밀려드는 세은의 신성력을 이겨내지 못한 마법진들이 하나씩 파괴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후우.”

이윽고 바알이 준비한 모든 마법진이 파괴되었다.

“결국 놓쳤군.”

“…….”

어색한 사이의 이들이 모여 있는 지하 동굴 안은, 한동안 아무런 대화 없이 천장의 돌가루가 떨어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 * *

바알이 떠난 바알의 본거지를 정리하는 일은 쉬웠다.

마왕급의 인원들은 이미 지금까지의 전투로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아무 생각 없이 바알의 초대로 연회에 참가했던 이들도, 대부분 상황을 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상태였다.

세은과 아바돈, 아몬은 여태까지의 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기 위해 가장 멀쩡한 성채로 모였다.

“바알을 잡지 못해서 어쩌나? 마왕이 될 기회를 놓쳤군.”

세은이 아바돈에게 물었다.

확실히 아직 아바돈은 마왕이 되지 못한 상태였다.

“흥. 바알 놈의 자리가 아니면 필요 없다.”

“흐음. 그래도 일단 뭐라도 얻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습니다. 아바돈님.”

조용히 시립해 있던 릴리트가 세은의 말에 호응하며 진언했다.

“물론 아바돈님께서는 충분히 강하시지만, 다른 마왕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마왕의 위에 오르시는 것이 더 수월하실 겁니다.”

척.

진언과 동시에 릴리트가 품에서 마왕의 핵을 꺼냈다.

“성채를 정리하면서 찾아낸 것들입니다. 아바돈님께서 처리하신 놈들이니 사용에 문제가 없을 겁니다.”

“…….”

그러나 아바돈은 손을 뻗지 않고 가만히 릴리트가 내민 것을 바라만 보았다.

하나도 내키지 않는다는 기분이 표정에서 그대로 묻어나왔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바알의 반역을 알리려면 마왕이 되는 것이 나을 거야.”

가만히 지켜보던 아몬 역시 거들었다.

“……휴우우.”

결국 아바돈은 손을 뻗어 릴리트에게서 물건을 건네받았다.

“일단 지금은 더 중요한 얘기부터 하지.”

아바돈의 말에 아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바알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일 줄은 몰랐네. 다행히 마신의 안배로 인해 일이 잘 풀렸지만…….”

아몬이 말을 하면서 세은을 힐끗 바라보았다.

“뭐?”

“아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아몬의 눈빛에 세은이 물었다.

그러나 아몬은 고개를 젓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바알이 도주한 지금, 다른 곳에서 똑같은 죄를 저지르기 전에 단죄해야만 해.”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아바돈이 대답했다.

“더 이상 설치고 다니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야 없지.”

말을 마친 아바돈이 릴리트에게 물었다.

“바알의 흔적은 찾았나?”

“……죄송합니다.”

“하긴, 바알이 마음먹고 도주를 했으면 찾기가 힘들겠지. 난감하군.”

옆에 있던 아몬이 말했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바알을 잡고 싶은 자는 단연 아몬일 것이 분명했다.

개인의 욕망과 연결된 아바돈과는 달리, 아몬은 자신의 믿음과 신념이 연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세은이 끼어들었다.

“모든 계약도 끝났으니 나는 그만 돌아가고 싶은데 말이야.”

“인정한다. 계약은 끝났다.”

키이잉―

아바돈의 말과 동시에 서로의 손에 새겨졌던 마법진이 사라졌다.

“하긴, 마계의 일일진대 신의 개의 손을 더 이상 벌리는 것도 수치스럽군.”

최대한 숨기려고 했지만, 적대감을 숨기지 못한 아몬의 입에서 거친 언어가 나왔다.

“그럼 이제 돌아가겠군. 다음에는 적으로 보지.”

그리고 아바돈 역시 세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세은은 넉살 좋게 말을 받았다.

“아아. 왜 이렇게들 급해. 나도 돌아가고 싶은데 말이야. 한 가지 문제가 있거든.”

“문제?”

“응. 마계에 다른 차원이랑 연결되는 게이트가 생기는 걸 알고 있는데 말이야. 그 게이트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야 타고 넘어가지.”

세은의 말에 아몬이 대답했다.

“게이트?”

“그래, 설마 내가 차원을 제집 다니듯이 넘어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그렇군.”

“그래서 말인데, 게이트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게 있나?”

“글쎄…… 워낙 위치가 변화무쌍해서 말이야.”

아몬이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이 대충 대답했다.

그런 아몬의 태도에 세은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안 좋아. 내가 마계에 남아 있어서 좋을 일이 뭐가 있어?”

“흥…….”

세은의 말에 아몬 역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마땅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세은의 말이 맞는 탓이었다.

당장 바알을 찾아서 단죄해야 하는 이때, 세은 정도의 강자가 마계에 남아 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세은은 무려 선신의 개가 아닌가.

지금의 일을 전혀 모르는 다른 이들이 보자면, 오히려 바알이 아닌 아바돈과 아몬이 세은과 결탁했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호전적인 마족들을 모두 대화로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세은의 말대로 그가 마계에 남아서 이득이 될 일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아몬이 못마땅한 투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게이트를 통해 몇 명의 마왕이 다른 곳으로 넘어간 것은 알고 있겠지?”

“당연하지.”

“그들이 사용하던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가지. 간헐적이지만 그곳에 무엇인가 장치를 해놓아서 가장 확률이 높게 나오는 것 같더군.”

아몬의 말에 세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역시 마왕들을 찾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상당한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부상도 전부 치료를 했으니 아예 손해만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런 곳이 있으면 바로 말을 해주지 왜 숨기려고 했어.”

“네놈에게 말을 해줄 의무가 없으니까.”

“뭐, 됐어. 얼른 거기로 이동을 해보자고.”

“아니, 위치를 알려 줄 테니 혼자 가라. 이 몸은 네 놈을 안내해줄 정도로 한가하지가 않아.”

“거 참. 더럽게 바쁜 척하네.”

계속해서 적의를 숨기지 않는 아몬의 언행에 세은이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굳이 아몬이 자신을 도와줄 이유도, 그리고 정말로 여유가 있는 상황도 아닌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순순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럼 그 장소가 어디야?”

“지도를 한 장 구해오면 거기에 표시해 주겠다.”

아몬의 말에 세은의 릴리트를 바라보았다.

세은의 눈길을 받은 릴리트는 지도를 가지러 가기 위해 이동했다.

릴리트가 지도를 가져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세은이 아바돈과 아몬에게 말했다.

“바알 놈이 헛짓거리 하지 못하게 알아서 잘 좀 막으라고.”

“바알이야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만, 그 다음에 적으로 만날 것은 확실하군.”

아바돈이 세은의 말에 대답했다.

굳이 거짓을 말하거나 인사치레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기 때문에, 세은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뭐, 넘어오는 건 자유인데 말이야. 그때는 목숨을 걸 각오를 하고 오시지 그래?”

탁.

“지도 가져왔습니다.”

“이리로.”

수완 좋게도 어디선가 지도를 가져온 릴리트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몬은 손짓을 해서 지도를 가져오게 시키고는, 지도의 한 부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곳이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귀찮군.”

아몬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지도의 다른 부분에 다시 한 번 동그라미를 그렸다.

“여기다.”

“흐음. 거리가 꽤 있군.”

“원래 그 장소는 바싸고의 영지다. 바알과 바싸고의 영지가 워낙 크다보니 거리가 있을 수밖에.”

“맞아. 바싸고 이 개새끼…….”

아몬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세은이 이를 악물었다.

마계로 떨어져서 개고생을 하게 된 원흉이 전부 바싸고 아니던가.

물론 듣기로는 자신의 목에 걸린 성물이 돌아가기 위해 차원의 문을 열었다지만, 이놈들이 주제넘게 차원을 넘어오지만 않았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피차 이제 서로 더 얘기할 것은 없을 것 같네.”

“마찬가지다.”

“그럼 알아서 바알 좀 처리하라고. 집안 단속 좀 잘해. 그 미친놈이 이상한 짓을 못하게 말이야.”

“흥. 개소리하지 말고 얼른 꺼져라.”

“…….”

세은의 말에 아몬의 욕설이 들리고, 침묵하는 아바돈이 보인다.

그러나 아바돈의 눈에서는 세은을 향한 투쟁심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거 아주 내 편이 하나도 없네. 그럼 진짜 간다.”

세은은 씩 웃으며 오른손을 들어 중지를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아몬이 버럭하기도 전에 몸을 날려 바알의 성채를 벗어났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지.’

생각해 보면 마계에 떨어진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마계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같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만 했다.

반대로 지구의 시간이 마계에서 흐르는 시간보다 더 빠를 수도 있으니까.

탓. 타다닷!

가볍게 땅을 발차는 세은의 몸이,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빠르게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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