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203화 (203/225)

# 203

54. 결말을 향해 (3)

쾅!

땅바닥을 울리는 폭음.

바알의 공격이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바닥을 때렸다.

세은이 비산하는 흙먼지를 뚫고서 다시금 달의 검을 휘둘렀다.

잠시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수세에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는 것처럼 바알의 수비도 차차 안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기세가 넘어간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쉽지 않아 보였다.

마음만 먹었다고 넘어간 전세를 뒤집기에는, 세은의 실력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쾅―!

촤아아악!

세은의 공격을 미처 완전히 막아내지 못한 바알의 몸이 땅을 스치고 미끄러졌다.

바알의 점점 더 수세에 몰리고 있는 지금, 끝낸다.

양손에 들린 두 자루의 검이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다.

지하를 밝히고 있는 조명이 비추는 그림자가 빠르게 이동한다.

순식간에 느려지는 시간이다.

밀려난 모습 그대로, 곤봉으로 땅을 짚고 버틴 바알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크아핫!”

불안정한 자세에서도 강력하게 땅을 박차고 나선다.

마주하는 바알의 모습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전투에서 본 것보다도 무시무시한 돌진이 느껴졌다.

쒜에에에엑!

목숨을 도외시하는 바알의 반격에 세은이 순간 고민했다.

몰아치는 소나기는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었다.

‘아니야. 끝낸다.’

그러나 이내 곧 세은은 결심했다.

바알은 소나기가 아니라 태풍이다.

물러나면 물러날수록 더 강해지는 그런 자였다.

이대로 맞부딪쳐 전투의 마지막을 장식할 때였다.

우우우웅!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세은의 발에 짙은 신성력이 깃들었다.

튕겨나가듯 쏘아지는 세은의 신형.

당장이라도 눈앞의 모든 것을 베어 넘길 만한 위력을 품은 검이, 세은이 품에서 검명을 토해내고 있다.

키이잉!

“하아앗!”

온 힘을 다해 내뻗어 나가는 일격이다.

공간을 찢어버리는 강력한 공격.

달의 검이 무서운 기세로 바알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크하하앗!”

꽈아아아앙!

달의 검과 야그루시가 부딪치며 거대한 폭음과 함께 강한 충격을 발했다.

주변의 먼지가 구름처럼 치솟고, 옆으로 흩날리는 힘의 잔해가 사방을 휩쓸었다.

훼에엑!

다시 먼저 공격을 재개한 것은 바알의 아이무르다.

마치 세은의 머리를 그대로 으스러트릴 것만 같은 기세로 날아온다.

쉐엑!

세은의 반대손이 움직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별의 검이 기다란 선을 그려내며 사선으로 바알의 곤봉을 마주하러 나간다.

쾅!

카가가각!

완전히 튕겨내 버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공격이다.

서로 무기를 마주하고, 힘의 대결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은이 반격할 차례.

별의 검이 곤봉을 막아내고 있는 동안, 이번에는 달의 검이 횡으로 호선을 그리며 쏟아진다.

순간에 이루어지는 연격.

달의 검이 소리보다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움직인다.

콰가가각!

바알은 그런 세은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그대로 야그루시를 휘두르며 세은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쾅! 콰앙! 콰아아앙!

세은과 바알 사이에 엄청난 힘의 파도가 만들어졌다.

서로가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둘의 전투다.

“흐읍!”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바알의 공격에 순간적으로 달의 검이 밀린다.

그리고 그 뒤를 받치는 별의 검이 흔들렸다.

그리고.

서걱!

빠아아악―!

살이 뭉텅이로 베어지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크윽.”

세은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타격 부위에 신성력을 둘러 최대한 막아냈지만, 울컥 쏟아지는 핏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한 움큼 피를 바닥에 뱉어낼 것 같았다.

지금 공격을 받는다면 십중팔구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으리라.

“안 돼!”

세은과 싸우느라 거의 빈사 상태가 되었던 레라지에를 마무리하던 아몬이 소리쳤다.

모두가 지친 상황에서 바알이 이기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아몬의 걱정과는 달리 바알은 바로 세은에게로 달려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달려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뚝. 뚝.

바알의 발치에 고여서 붉게 번져나가는 웅덩이.

붉은 핏물이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바닥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턱. 터억!

바알이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예상보다 커다란 상처에 저절로 밀려나는 걸음이다.

비틀비틀 물러나는 바알의 두 눈에 어려 있던 광기가 어느 정도 사라져 있었다.

턱.

서서히 뒷걸음치던 바알의 등에 벽이 닿았다.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댄 바알이다.

짙은 적색의 줄이 바알의 걸음을 따라 그어져 있었다.

정확히 왼쪽 가슴을 베어낸 깊은 검상.

상처 부위는 작지만, 상처가 생긴 위치가 치명적인 급소인 것이 문제였다.

“큭큭큭.”

웃음이 흘러나온다.

아직도 웃을 여유가 남아 있는 것일까.

시선을 돌려 사위를 돌아보는가 싶더니, 세은을 향하여 두 눈을 고정시켰다.

“신이 되고자 하는 나의 원대한 계획이…….”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바알이 분노에 차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가 있었다.

처억.

세은이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알에게 그 어떤 수작도 부릴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크크큭.”

다시 한 번 바알이 웃음을 내뱉었다.

바알의 눈이 어느새 세은보다 앞서서 앞으로 다가오는 아몬에게 닿았다.

“바알, 마신님을 대신하여 네놈을 단죄한다.”

아몬의 말에 바알이 기도 차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신?”

“감히 창조의 영역을 넘보고, 그분의 신물을 이용하여 죄를 범한 대가다.”

“크크크큭. 진실을 알려줄까?”

바알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나온 진실이라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궁금하겠지.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야. 내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말이야.”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명실상부 마계의 1인자인 바알이다.

굳이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어도, 눈에 보인 전력만 해도 마계를 전부 지배할 수 있을 만한 전력이었다.

아몬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결과도 어떻게 변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흐음…….”

유일하게 그런 바알의 사정에 관심이 없는 세은이다.

그러나 다른 마족들이 궁금해하는 이상, 바알을 바로 처단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이번이 일이 끝나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굳이 척을 질 필요가 없다.

같은 편이 없는 상황에서, 커다란 부상까지 입은 바알이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너희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말이야. 흐흐흐.”

무엇이 즐거운지 계속 바알이 웃음을 흘렸다.

단순히 혼자서 자신의 얘기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 같았다.

“주변의 마기를 느껴봐라.”

갑작스레 마기에 대해서 화두를 꺼내는 바알이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담담한 음성이었다.

급작스러운 변화에 모두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불과 몇 초 전과 비교해 봐도, 달라도 너무 다른 태도였다.

“그리고 그 앞의 시렌에게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을 느껴봐.”

바알이 상처를 잡았다가 놓아서 피에 젖어 있는 손을 들어 세은을 가리켰다.

“뭐가 다른 것 같은가?”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뜬금없는 바알의 말에 세은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마기와 신성력이 뭐가 다른지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바알은 세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둘과 다른 마나는 또 어떻게 다를까?”

담담히, 그러나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바알의 태도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나는 마왕의 위에 오르고 평생에 걸쳐 마신에게 부역하며 마계의 질서를 지켜왔다. 하나의 세상에서 최고로 군림한다는 사실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지. 다른 차원의 이들조차 나를 숭배할 정도로 나는 경지에 오른 존재였다.”

말을 하는 바알의 눈의 초점이 서서히 흐려졌다.

주로 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할 때 보이는 눈빛.

바알의 눈에 비추는 것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회한이었다.

“나는 내가 없어도 최소한의 질서가 지켜지는 곳을 만들고자 했다. 힘은 가장 쉬운 수단이지만 가장 훌륭한 통치 수단은 아니다.

특히 우리를 창조한 마신을 경배하기에는 마계는 너무나 힘에만 의존했다. 그래서 다른 차원들을 살펴보았지.”

담담한 목소리에 오랜 세월의 흔적이 깃들었다.

가장 먼저 마계의 길을 개척한 바알이 말하는 과거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그리고 다시는 밟지 못할 미지의 영역.

마계의 탄생부터 발전에 대한 기록들이 바알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이런 말을 들을 장소는 아니었지만, 누구도 바알의 말을 끊지 않았다.

바알이 하는 말이 지니는 숨겨진 의미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곳은 그러지 않았다. 힘이 지배하는 것은 분명했지만, 최소한의 다른 장치들도 있었지. 왜 그들은 가능한데, 마계는 가능하지 않은가? 나는 그 답을 마기와 마나, 그리고 신성력의 차이에서 찾았다.”

분명히 그런 점이 있었다.

멀쩡한 인간이라도 마기를 다루는 흑마법사가 되는 순간, 성격이 더 호전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은 상식이었다.

반대로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나 성기사들은 감정 표현이 줄어드는 경향이 강했다.

개개인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정도는 보편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마계에 온전하게 자리를 잡고, 하나, 하나 마왕이 늘어 갈 때였지. 지배자가 늘어나면 질서가 더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생각을 바꿔야 했어.

오히려 마왕이 된 놈들이 더욱더 발광하며 날뛰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바알이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의 행동에 짙은 씁쓸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가 있었다.

“각자 살아가는 방법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발전이라는 것은 단순한 폭력으로만 이뤄지지는 않는 법이다.

그리고 애당초 지성을 지닌 생명체로 태어났다면 더 지고한 존재로 격을 상승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단순히 어느 쪽을 지배하는 것이 더 좋을까? 힘이라면 그저 질질 싸며 복종하는 놈들? 아니면 더 높은 지성을 가지고 복종하는 놈들? 나보다 못한 놈들이 설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 내 심정이 어떠했겠나.”

자신이 가진 것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이다.

“하지만 마신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피조물에 관심을 갖는 다른 신들과는 달랐지. 나는 생각했다. 자식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아버지를, 자식인 내가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이야.”

“마신께서는 그저 지켜보실 뿐이다.”

“지켜본다면? 무엇이 달라지나?”

바알이 아몬의 말에 대답했다.

아몬이 다른 말을 꺼내기 전에 바알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거기에 사실, 마나와 신성력, 마기의 뿌리가 같다는 사실 또한 알아내는 순간. 나는 거대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방금 전에 시렌이 순수한 마기의 씨앗을 흡수한 것을 보면 모르겠나?”

또다시 끼어드는 아몬의 말에, 바알이 몸을 꼿꼿이 세우면서 묻는다.

용서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그렇다. 결국엔 신들이란 작자들은 모두 그 본류가 같다는 것이지. 그래서 그랬다. 애초에 이들은 서로 견제만 할 뿐 한쪽을 완전히 지배할 생각이 없어.

그들의 피조물들인 우리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싸움을 위한 여흥거리, 그게 신들이 우리를 보는 것의 전부란 말이다.”

“헛소리!”

“헛소리인지 아닌지 진실을 보지 못한 네놈은 알 수가 없겠지.”

아몬에게 대답하는 바알은 이미 자신의 생각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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