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202화 (202/225)

# 202

54. 결말을 향해 (2)

“어서!”

홀린 듯 목소리를 더욱더 높이는 바알이다.

깊은 숨을 모두 내쉰 세은의 시선이 똑바로 바알을 직시했다.

“뭘 어서야?”

여전히 깔끔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

바알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창조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거 그냥 다른 곳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랑 다른 점이 전혀 없는데?”

또박또박 말을 이어가는 세은이다.

바알에 대한 공겸심이 전혀 없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말투에 바알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네, 네놈은 그 씨앗을 품고도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냐!”

“글쎄, 그런 거 같은데?”

우웅―

슬쩍 올라간 세은의 입꼬리 아래로, 목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성물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당황하는 바알의 모습이 보인다.

바알이 분노와 경악으로 입술을 파르르 떨며 물어왔다.

“어, 어떻게 신의 힘을 거부할 수가 있는 거냐!”

우우웅―

그에 대해 대답이라도 하듯이 다시 한 번 세은의 목에 걸린 성물이 울음을 토해낸다.

완연히 사라진 마기의 느낌에 세은이 바알을 정확히 직시하며 대답했다.

“신의 힘 같은 소리하고 있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거야! 이 정신 나간 새끼야.”

너무도 순수한 마기가 오히려 성물과 만나 세은의 몸을 회복시켜 주었다.

“후우!”

한결 편안해진 호흡.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바알이 눈을 치뜨며 여전히 얼뜬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신이란 존재가 얼마나 급이 다른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치이잉.

몸이 회복됐다고 느낀 세은이 다시금 달의 검과 별의 검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그런 세은의 의지에 반응해서 울리는 검신.

그 누가 봐도 방금 전보다 더욱 멀쩡한 상태였다.

바알의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크게 일그러졌다.

“어…… 어째서…….”

마치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다.

일순간 핏발이 서는 두 눈.

갈라질 듯 탁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는 안 돼! 네놈을 내 창조물로 만들어 주마!”

타앗!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알이 몸을 날려 세은에게 공격을 가했다.

쿠으응!

바알의 손에 들린 아이무르가 주인의 의지에 반응해 음울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누가 봐도 정신이 나가버린 모습.

그러나 그 기세는 결코 우습게 볼 수가 없었다.

쩌엉!

바알의 일격을 튕겨내는 달의 검이다.

세은의 손을 타고 느껴지는 바알의 강력한 힘.

아까 전에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지금 바알이 만들었던 마기의 씨앗과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은도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가 있는 상황.

미친 듯이 밀고 들어오는 바알의 짙고 농후한 마기에 세은의 신성력이 대등하게 반응한다.

쉐에엑!

그대로 별의 검을 횡으로 휘두른다.

별의 검에 씌어 있는 신성력의 기세가 엄청났다.

주변의 다른 이들조차 세은의 신성력에 반응을 할 정도.

‘지하로 들어온 것이 실수다.’

마주 오는 바알의 강력한 일격을 물리치며 세은이 생각했다.

분명히 바알만 잡으면 상황이 정리 된다.

그러나 천벌을 사용하기에는 장소가 좋지 않았다.

까닥 잘못하면 세은까지 매몰될 수 있는 장소.

거기에 계약을 맺은 아바돈이 휘말려서 죽게 되면 세은이 살아나도 계약을 위반하게 되는 꼴이었다.

쩌정!

결국 천벌을 사용하지 못하는 세은은 각오를 다지고 바알과 무기를 부딪쳐 나갔다.

횡으로 휘두른 별의 검에 이어서, 그대로 틈을 주지 않고 빈틈을 찔러 가는 달의 검이다.

천벌을 사용하면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돌아가는 기분이다?

그렇지 않다.

쉬워 보이지만 그만큼 단점이 많은 마법이다.

거의 대부분의 신성력을 단번에 소모하는 것이 더 안전할 리가 없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지금은 세은의 온전한 우군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

필요에 따라 손을 잡고 있지만 마음을 터놓고 등을 맡길 수는 없는 이들이 즐비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천벌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기도 했다.

쩡! 쩌엉!

세은의 두 검이 발하는 위용도 굉장하기는 했지만, 바알의 곤봉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이무르를 이용하여 방어하고, 반대 손에 들린 야그루시를 이용해서 세은의 급소를 노려온다.

비록 정신이 나가 보이기는 해도, 바알은 명실상부한 마계의 1인자였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전투보다 더 집중을 해도 이기기 힘들 수준에 이른 적이었다.

촤아악!

서로 계속해서 일격, 일격을 주고받는 세은과 바알.

그 둘의 싸움이 대단하다지만, 주변에는 그 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은과 바알이 강력한 기파를 뿌리며 전투에 들어가자,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다른 이들도 다시 전투를 시작했다.

결국, 어느 한쪽이 전멸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는 전투들이다.

키이이잉!

쾅― 콰아앙!

주변에서 발하는 소음을 무시한 채, 세은과 바알은 서로의 사정거리 안에서 끊임없이 손속을 주고받는다.

텅― 텅― 터엉!

일격, 일격에 서로의 목숨이 걸려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그대로 끝이다.

실수란 용납되지 않는 치열한 전투.

꾸우우웅―!

바알의 곤봉이 요동친다.

바알의 눈에 어린 광기가 더욱더 짙어지는 것이 보였다.

쾅― 콰앙!

곤봉을 휘두르는 손짓 한 번, 한 번이 갈수록 거칠어졌다.

콰아아앙―!

세은이 피해낸 바알의 공격이 그대로 바닥을 강타했다.

바알이 힘을 감당하지 못해 잘게 부서진 돌가루가 치솟고, 먼지 구름이 일어난다.

“크아핫!”

바알이 온 힘을 끌어내듯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함을 질러낸다.

어딘가 이상한 느낌.

일관성 있게 정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바알의 모습에 세은의 감각이 번뜩였다.

‘혹시?’

텅! 터어엉!

무기를 계속해서 맞부딪쳐갈수록 바알의 정신이 불안정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위력은 전혀 약하다고 느껴지지 않지만, 어딘가 공격의 섬세함이 떨어지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쩌어어엉!

“크핫!”

크게 보인 빈틈으로 찔러 들어오는 달의 검을 막으며, 뒤로 물러나는 바알.

의문이 점점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만들어낸 마기가 더 순수하다는 것처럼 항변하는 듯한 바알의 모습.

거기에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창조물에 대한 집착.

이런 언행을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신에게 완전히 반기를 든 것과 다름이 없었다.

거기에 바알이 이런 상황을 만들 줄은 몰랐던 다른 마왕들까지 이용했다.

당장은 하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신에게 단죄를 받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소멸이 된다면 거대한 벌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무한한 미래, 현생이 끝나고의 미래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없고서야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강한 존재라도 사후의 세계에서도 강할 수는 없었다.

“한 단계 높은 곳에 올려 가려다가 실패했군.”

세은의 입에서 나직한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더 높은 경지로 상승을 하려다가 실패했다는 말.

바알 정도의 경지면 더 올라갈 자리는 거의 없다고 무방했다.

더 올라가면 반신에 가까워질 정도의 위치다.

그런 것에 실패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정신이 붕괴되었다는 말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한 자의 최후였다.

“…….”

그러나 세은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바알.

훼에엑!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종으로 휘두르는 곤봉에 담긴 강력한 파공음만이 들려온다.

콰앙!

재빨리 별의 검으로 받아내는 바알의 공격.

검과 곤봉이 부딪히며 터져 나오는 충격파가 만만치 않다.

꽈아앙!

그러나 이어지는 바알의 공격은 더욱 굉장한 위력을 품고 있다.

대답 대신 맞부딪쳐 오는 곤봉에서 느껴지는 분노가 말을 대신하고 있다.

달의 검을 통해서 전해지는 분노가 고스란히 세은에게 느껴졌다.

탁!

세은이 한 발짝 물러나며 빠르게 몸을 휘돌렸다.

어차피 바알도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은 같았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조건.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가 다른 방법을 사용할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마찬가지로 힘으로 밀고 나가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세은에게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만한 힘이 있었다.

“그만 끝내자! 바알!”

“건방진!”

타앗!

“하앗!”

바알의 품으로 돌진하는 세은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터어엉!

탄환처럼 쏘아지는 몸, 가속도를 더해 더욱 강력하게 치고 나간다.

그리고 그대로 앞으로 휘둘러지는 달의 검.

바알 역시 세은의 달의 검이 강맹하게 날아드는 것을 보면서도 피하지 않는다.

그대로 아이무르를 휘둘러 세은의 공격을 막아낸다.

쾅!

그 누가 이득을 봤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다.

서로의 무기에서 전해져 오는 반탄력이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순간적으로 몸을 굳게 만드는 강한 위력.

하지만 세은은 검을 내뻗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왼발을 뻗어 전진했다.

동시에 별의 검으로 작은 호선을 그려 바알의 목을 노려나간다.

목을 노리는 세은의 검에 바알의 야그루시가 반응했다.

쩌정!

별의 검의 호선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바알이다.

“하압!”

“크핫!”

세은과 바알이 서로를 향해 다시 한 번 바닥을 박찬다.

당장이라도 이마가 맞대질 것 같은 거리까지 둘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제대로 무기를 휘두를 수도 없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그러나 그 안에서도 세은의 검과 바알의 곤봉이, 계속해서 서로의 급소를 노리고 움직였다.

팟! 파팟!

그야말로 계속해서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공격이 빗나간다.

소리는 방금 전보다 더욱 조용해졌지만, 그 위력만큼은 여전하다.

날카롭게 갈라지는 공기에, 그 주변에만 바람이 부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휘익!

바알의 곤봉을 피하고 세은이 다시 한 번 옆으로 공간을 넓힌다.

옆으로 피하는 세은을 따라 바알의 곤봉이 질기게 추격해 온다.

당장이라도 부셔버릴 듯이 짓쳐들어오는 일격.

회전을 하며 피하는 세은이 달의 검으로 곤봉의 추격을 차단했다.

콰아앙!

제대로 된 자세로 막지 못한 탓에, 하마터면 그대로 손목이 돌아갈 뻔한 상황이다.

그러나 덕분에 바알의 옆을 잡을 수가 있었다.

세은이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무시하고 그대로 바알의 옆을 노리고 나아갔다.

쉐에에엑!

완전히 허를 찔러서 들어오는 세은의 공격에 바알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쾅! 콰앙!

일격, 일격에 바알의 몸이 한 발자국씩 뒤로 밀린다.

세은의 공격을 막는 바알의 몸이 정신없이 밀려났다.

전투가 시작된 후에 처음으로 세 발 이상 밀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세를 타고 전진하는 세은의 공격이 점차 강력해진다.

콰아아앙!

그러나 쉽게 당해줄 바알이 아니다.

마치 아직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이 막아내는 곤봉에 힘이 여전하다.

만만치 않은 반격이 날아와 세은을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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