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99화 (199/225)

# 199

53. 마기의 씨앗 (5)

“여기 계셨군."

먼저 도착한 아바돈이 누군가를 보고 입을 열었다.

아바돈의 눈에 띈 자는, 바로 그가 목표로 삼았던 대상.

바알이었다.

주변의 전투와는 전혀 다른 장소에 있는 것 같은 여유로움.

늘어지게 몸을 기대고 앉아있는 그 자세에서는, 정점에 선 자의 여유가 뭉클 풍겨 나오고 있었다.

“호오. 생각보다는 강단이 있군. 이 정도는 되어야 마음껏 설치도록 놔둔 보람이 있지.”

바알의 말.

아바돈이 설치도록 놔뒀다고 말을 한다.

이미 예전부터 아바돈이 자신을 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고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개소리지?”

아바돈으로서는 자존심이 바닥을 칠 수밖에 없는 바알의 언행이다.

“시렌? 살아 있었나?”

그러나 바알의 관심은 이내, 아바돈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온 세은에게로 향했다.

“네놈보다 먼저 죽을 수는 없지. 이 개새끼야.”

빠르게 안으로 들어온 세은이 걸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아까 전에 바알에게 당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흐음. 아몬만 아니었어도 깔끔하게 처리를 하고 움직였을 텐데 말이야. 아무래도 걸리는 것이 많아서 빠르게 움직였더니 이런 변수가 생기는군.”

그러나 말과는 달리 여전히 여유작작한 바알의 모습이다.

짝짝짝-

“여기까지 온 것은 칭찬해주지.”

“아직 칭찬을 받기에는 멀었는데 말이야.”

바알이 박수를 치며 다시 아바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바돈은 그런 바알의 말을 날카롭게 받아내었다.

겉으로 들어서는 훈훈한 대화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진심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만큼은, 아직 대화가 오고가는 순간이었다.

“겸손하기는, 내가 굳이 그대를 미끼로 사용한 이유는 자네가 그만큼 뛰어나서야.”

뛰어나서 미끼로 삼았다.

칭찬이지만 칭찬이 아니다.

한마디로 아바돈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종했다는 말이다.

아바돈을 향한 진심 어린 칭찬과는 무관한 말이다.

아니, 바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각대로 충실히 움직여준 아바돈에게 진심을 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인 아바돈이 듣기에는 농락의 의도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 좋다. 생각했던 바를 완성하기엔 더 없이 좋은 날이야.”

진지해진 바알의 음성이다.

서서히 변하는 바알의 기도에 세은과 아바돈의 시선이 바알의 입에 집중되었다.

“내게 반대하는 놈들을 한 번에 뿌리 뽑을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잔에게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지. 뿐만 아니라, 이렇게 미리 내 대적까지 데리고 왔으니 기대 이상으로 활약해 주었어.”

일렁이는 조명의 불빛에 바알의 얼굴에 그려진 웃음이 더욱 진하게 보였다.

광기에 번들거리며 빛나는 바알의 두 눈.

그 안에는 드디어 자신의 목표에 다가섰다는 환호가 매섭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해서 같이 감상을 하고 싶군. 모두 나를 따라오게나.”

매우 흥겨운 바알의 말투다.

마치 자신의 보물을 자랑하듯이 들떠있는 모습을 보인다.

“대체 무슨 수작이지?”

세은이 바알에게 물었다.

그러나 바알은 빙긋 웃으며 그런 세은의 말에 대답했다.

“말 그대로야. 내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지. 당장 싸울 필요는 없지 않나?”

바알의 목소리엔 꽤나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를 따라들 오지.”

쿠구궁-

자리에서 일어난 바알이 자신의 권좌를 움직여 지하 통로를 공개했다.

그리고는 먼저 훌쩍 몸을 날려 안으로 향했다.

“거기 서라!”

어쩔 수 없이 그런 바알을 쫓을 수밖에 없는 세은과 아바돈이다.

세은과 바알, 아바돈이 지하로 들어가고 나니, 릴리트만이 덩그러니 밖에 남았다.

‘바알이 아무 생각 없이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을 터. 분명히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야. 지원군을 불러와야해.’

바알의 말을 들어보면 아바돈과 릴리트는 여태까지 바알의 손에서 놀아난 것에 불과했다.

당연히 지금의 행동도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일 것이 분명했다.

세은과 아바돈의 행동을 제지하기보다는, 밖에서 바알이 생각하지 못한 변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했다.

“밖의 상황부터 정리를 해야겠어.”

휙-

생각을 마친 릴리트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 *

세은과 아바돈이 바알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마왕들이 따라 들어왔다.

당연히 충분히 경계심을 가지고도 남을 일.

그러나 농후한 마기 때문에, 세은과 아바돈은 그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서, 지하의 깊숙한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투는 둘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아몬?”

아바돈의 침음성이 정적을 깨고 퍼져 나갔다.

거대한 철문 안에서는, 심장에 짙은 마기의 뿌리가 보이는 마족들이 아몬과 생사를 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굉장한 기세로 마족들을 상대하고 있는 아몬.

그러나 그런 아몬을 상대하고 있는 마족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어떤가? 내가 만들어낸 창조물들이 말이야. 고작 넷으로 마왕을 상대할 정도라니. 대단해.”

자신의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고 순수하게 감탄을 하는 바알이다.

빛이 많지 않은 와중에도, 바알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가 있었다.

“성공입니까?”

그리고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성공이다.”

“역시 주군이십니다.”

“축하드립니다.”

“하하. 다 그대들의 도움 덕분이지. 레라지에, 푸르카스.”

바알의 대답에 두 명의 마왕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마왕 제14위 레라지에.

그리고 마왕 제50위의 푸르카스였다.

“어느새?”

갑작스럽게 뒤에서 나타난 두 명의 적에 세은과 아바돈이 경계심을 더욱 끌어올렸다.

아무리 주변의 마기가 농후하고, 바알에게 신경을 뺏긴 상태였다지만 말 그대로 뒤를 내준 것이다.

말없이 그냥 치고 나왔다면 심각한 일격을 허용할 뻔한 상황.

그러나 다행히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공격에 대비할 시간을 벌 수가 있었다.

“아닙니다. 전부 주군이 영명하신 덕입니다.”

기다란 수염을 지니고, 거대한 낫을 무기로 사용하는 푸르카스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후후.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이 남아있는데 그대들도 함께할 텐가?”

“영광입니다!”

“물론입니다!”

바알의 질문에 레라지에와 푸르카스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그래? 거절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군.”

쿵!

“예?”

“……?”

바알의 말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레라지에와 푸르카스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바알이 행동을 시작한 뒤였다.

키이이잉-

“크아아악!”

“크허억?”

그리고 동시에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기들이 레라지에와 푸르카스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대, 대체 왜?”

“왜냐니?”

그나마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이성을 놓지 않고 있는 레라지에가, 의문이 가득 찬 눈으로 힘겹게 바알을 올려다보았다.

바알은 태연하게 그런 레라지에의 눈을 마주하며 대답했다.

“그대들이 분명 본인의 입으로 함께 한다고 하지 않았나?”

“크으윽…….”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레라지에와 푸르카스의 심장에서 거대한 마기가 폭사되었다.

“성공! 성공이다! 과연 마왕들로 창조한 수족들은 어떤 힘을 보여줄까? 너무나 기대가 돼.”

“지금 대체 무슨 일이지?”

그 사이, 아직 온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두 명이 있다.

세은과 아바돈.

바알과 그 수하들이 벌인 작금의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탓이었다.

투둑. 투두둑

그러나 그 와중에도 레라지에와 푸르카스의 심장에서 뻗어 나온 마기의 뿌리는, 착실히 온몸을 잠식해 나가고 있었다.

“끝난 것인가?”

나직하게 들려오는 바알의 목소리다.

터벅. 터벅.

심장에서 뻗어 나온 마기의 뿌리가 완연하게 자리를 잡았다.

레라지에와 푸르카스의 눈에 흐르던 생기가 변질되어 있다.

척!

“명령을 받듭니다.”

“명령을 받듭니다.”

동시에 무릎을 바닥에 꿇는 마왕 둘.

방금 전의 태도도 매우 정중하기 이를 때 없었지만, 지금의 태도는 마치 거역할 수 없는 하늘을 대하는 것 같은 태도다.

“어떠냐?”

바알이 앞뒤 없이 대뜸 말을 뱉어냈다.

그러나 그런 바알의 말도 둘은 알아듣는 것 같았다.

“힘이 온몸에 넘칩니다. 새로운 생명이 느껴집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하하하! 하하하하!”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한 바알이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고, 뒤로 넘어갈 듯이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뚝.

“그럼 어디 시험해 볼까?”

한순간에 웃음을 멈춘 바알이 정색하며 명령을 내렸다.

“눈앞의 두 마리 개를 요리해라. 이것이 첫 번째 명령이자 평가가 될 것이다.”

“예!”

“예!”

터벅.

바알의 명령에 레라지에와 푸르카스의 몸이 세은과 아바돈에게로 향했다.

“이거, 절대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

아바돈의 말에 세은이 침묵으로 긍정을 대신했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 누가 봐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적어도 방금 전의 험한 꼴을 봐서는 저 둘이 더 약해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으니까.

터어어엉!

순식간에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네 개의 인영이다.

한 수, 한 수가 상대를 일격에 참살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챙- 채앵-

아바돈의 아볼루온과 푸르카스의 낫이 부딪혔다.

파앙! 터어엉-

그리고 레라지에의 활과 세은의 검이 부딪혔다.

빠르게 날아오는 화살을 세은이 가볍게 쳐낸다.

쐐애액.

그러나 레라지에의 화살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 연사 속도가 너무 빨라 마치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보일 지경.

“에일린, 홀리 웨이브.”

걷어 올린 달의 검을 중심으로 순백의 파도가 펼쳐진다.

쾅- 콰앙- 콰앙!

그러나 레라지에의 화살은 생각보다 강한 위력을 품고 있었다.

살짝 흔들리는 세은의 빛의 파도.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레라지에가 접근을 시도했다.

탓!

세은의 몸이 빠르게 물러났다.

‘생각보다 더 강해졌는데?’

흘낏 옆을 보니 아바돈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촤아악!

그러나 레라지에는 세은이 생각을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단검을 휘둘러 다시 세은을 공격해 나간다.

망설임 없는 행동.

세은으로서도 막아내기 힘든 위력이 공격에 실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 여기서 밀려날 수는 없는 일.

타앗!

바닥을 박차서 추진력을 얻는다.

탄력을 받은 세은의 몸이 탄환처럼 빠르게 레라지에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단검에 실린 기세도 만만치 않았지만, 애초에 상대의 주무기는 활.

거리를 주지 않는 것이 유리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쾅!

“큭!”

품 안으로 파고는 세은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레라지에다.

힘과 힘의 대결.

작은 신음이 흘러 나왔지만, 놀랍게도 뒤로 밀리지 않았다.

“호오!”

그 모습에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바알의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저 시렌을 상대로 정면에서 버텨내다니, 그것도 고작 레라지에 따위가 말이다.

“하하하하!”

기분 좋은 결과물에 바알이 또다시 광소를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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