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53. 마기의 씨앗 (1)
“크음…….”
구시온이 살짝 뒷걸음질 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움을 청하는 눈빛.
땅으로 내려온 이상 구시온에게 승산은 없었다.
그 모습에 아바돈을 상대하고 있던 살레오스와 알로켄이 눈빛을 교환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은이 회복을 할 수 있게 기다려 주는 꼴이었다.
이미 아바돈은 둘의 협공으로 인해 지칠 때로 지친 상태.
지금은 한 명이 상대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이기지는 못해도 최소한 견제는 가능했다.
“구시온! 뒤로 물러나서 정비해라!”
살레오스가 앞으로 나서며 구시온에게 소리쳤다.
“젠장. 쪽팔리는군.”
구시온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여기서 만용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
“후우우…….”
세은은 그런 구시온을 마무리하기보다, 내부에 신성력을 돌려서 숨을 돌리는 것을 택했다.
우웅―
구시온의 마법에 대항하기 위해 신성력을 끌어올릴 시간이 촉박했다.
그리고 촉박했던 만큼 세은으로서도 무리를 한 공격이었다.
방심을 노려서 바로 연격을 내지를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충격으로 인한 반탄력이 큰 상태였다.
치잉―
“시렌, 더 이상 네놈 멋대로 날뛰게 놔둘 수는 없다.”
“멋대로 날뛰는 건 항상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었는데?”
파아아아!
살레오스가 단숨에 거리를 좁혀왔다.
손에 쥔 창날이 세은을 노리고 달려든다.
창을 강하게 말아 쥐고서, 단숨에 꿰뚫어 버릴 듯이 돌진하는 살레오스의 기세는 자못 흉흉했다.
세은이 휴식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수작이었다.
터엉!
살레오스가 다가올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쉰다?
물론 그편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은은 도리어 살레오스를 맞이하기 위해 앞으로 전진했다.
접근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뒤로 물러난다면, 그것은 오히려 상대의 기를 살려주는 꼴이었다.
전투는 가진 바 무력도 중요하지만, 그 기세도 매우 중요했다.
방금 전에 아임의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직 전부 회복이 되지 않았다고 방어만 해서는, 끝까지 방어만 하게 되는 일이 생길 수가 있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세은이 신성력을 폭주시키고 그 여파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얻은 노하우였다.
전투란 결국 먼저 공격을 허용하는 쪽이 지는 것이다.
전략상 방어는 할 수 있겠지만, 결국 공격을 해야 상대에게 검을 꽂아 넣을 수가 있다.
파아앙―!
찔러오는 살레오스의 창끝에서 세찬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찌르기에 특화된 창답게, 공간까지 관통해 버리는 것 같은 위력이다.
난폭하다.
그리고 신속했다.
아임의 최후를 목격한 살레오스는,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해 공격을 전개했다.
텅― 터엉―
세은은 순식간에 창을 두 번 쳐 냈다.
왼손에 든 별의 검으로 창의 아래를 쳐올리고, 그대로 오른손을 휘둘러 달의 검으로 창대의 옆을 쳐 낸다.
아래, 그리고 옆에서 충격을 받은 살레오스의 창이 목적한 곳에 도달하지 못하고 옆으로 비껴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반격.
세은의 몸이 바람을 일으키며 그대로 강력한 일격을 내쳤다.
휘이익!
창을 쳐 낸 힘을 이용해 그대로 역수로 짓쳐 들어오는 세은의 공격이다.
달의 검에는 당장에라도 살레오스를 반으로 가를 수 있을 만큼의 신성력이 실려 있었다.
공격에 적중당하면 그것으로 전투가 끝난다.
한 수, 한 수가 일격필살과 다름이 없었다.
훼엑!
순식간에 고개를 깊숙이 숙여 공격을 피해내는 살레오스.
그리고 곧바로 창을 회수해서 내뻗으려 했으나, 세은이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별의 검으로 회수하려는 창대를 위에서 내려쳐 시간을 벌고, 회수하기 힘든 달의 검 대신 다리를 내뻗어 공격을 시도했다.
무기를 이용하지 않은 단순한 격투지만, 거기에 실린 신성력은 단순하다고 폄하할 수가 없었다.
쾅―!
살레오스 역시 마기를 가득 담아 다리와 다리를 마주한다.
“…….”
“…….”
그렇게 여러 번의 공방을 주고받는 동안, 둘은 입을 꾹 다문 채 집중을 다했다.
서로가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니, 그 집중은 극을 향해 달려갔다.
거기에 세은의 신성력과 살레오스의 마기가 계속해서 충돌을 일으켰다.
쾅― 콰앙―
둘의 격투에 휘말린 성채 하나가 통째로 부서져 날아갔다.
성채를 지탱하는 기둥이 무너지고 서서히 옆으로 무너졌다.
쿠르릉―
성채가 무너지는 모습이 느리게 시야에 들어온다.
끝을 모르고 오르는 집중력에 느려지는 주변.
살레오스의 창이 강렬한 마기를 품고 세은의 가슴을 찢어발길 듯이 찔러 들어왔다.
그 강력한 공격에 세은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회전했다.
‘피해도 손해를 본다!’
결국 피해 없이 세은을 잡겠다는 생각을 버린 살레오스다.
반격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공격에서 분명하게 느껴졌다.
느려진 시야 속에서, 살레오스의 공격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아압!”
세은 역시 그런 살레오스의 공격에 맞춰 또 다시 온 힘을 끌어 올렸다.
우우웅―
구시온에 이어 두 번째로 급하게 끌어 올리는 신성력.
‘크흑!’
순간적으로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순간적인 통증에 달의 검이 살짝 흔들렸지만, 결국 쌍검을 앞으로 내치는 데 성공했다.
터엉―! 텅!
별의 검이 먼저 살레오스의 창을 쳐 낸다.
그러고도 힘이 남은 살레오스의 창이 여전히 세은을 노리고 들어왔다.
‘한 번에 끊는다!’
푸욱!
왼쪽 팔이 관통당하는 소리가 고막을 가득 울렸다.
“크으윽!”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세은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살이 뚫리고, 근육이 찢어진다.
강력한 살레오스의 공격은 왼팔의 뼈까지 부서트리기에 충분했다.
‘지금이다!’
그러나 세은은 입술을 꽉 깨물고 고통을 견뎌냈다.
어차피 소진되어 가고 있는 힘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승부를 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회복에 전념한다.
그리고 최대한 안정적인 환경에서 회복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마왕들은, 그것도 마계에서 상대하면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우웅!
여전히 신성력이 가득 담긴 달의 검이 검명을 토해내며 살레오스를 노린다.
아래에서 사선으로 베어 올리는 공격.
살레오스의 가슴에 대각선으로 길쭉한 핏선이 그어졌다.
“커헉…….”
비틀거리는 몸.
살레오스의 손이 자신의 창에서 떨어져 나왔다.
가슴을 부여잡는 손가락 사이로 쏟아지는 핏물이 순식간에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 정도였다.
“젠장……. 마지막까지 방심……을…….”
살레오스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세은을 노려보았다.
단순히 가슴만 갈라진 것이 아니다.
강한 일격은 가슴을 대각선으로 가르며 단숨에 심장까지 도달했다.
“시발. 더럽게 아프네.”
세은이 왼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살레오스를 직시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어차피 바알님에게 죽게 될 것이다.”
서서히 죽어가는 살레오스가 씹듯이 내뱉었다.
소멸되어 가는 와중에도 강력한 저주가 느껴지는 낮은 목소리.
그러나 세은은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를 듣고서도 코웃음을 치며 몸을 털어냈다.
우우웅―
세은이 왼팔을 치료하며 살레오스의 말을 받아쳤다.
“얌전히 꺼져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바알 새끼도 곁으로 보내줄 테니까.”
“…….”
세은의 마지막 말과 함께 살레오스의 몸이 가라앉는다.
웅덩이가 되어 고인 자신의 피 위로, 살레오스가 엎어졌다.
쿠웅―
“일단 여기 있는 놈들부터 같이 보내줄게.”
타앗!
동시에 더 이상 휴식 없이 세은이 구시온에게로 달려들었다.
세은의 발이 바닥을 박차고, 살레오스가 만들어낸 피의 웅덩이를 사방으로 튕겨냈다.
부서지는 핏방울들 사이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왼팔을 늘어트리고 돌진한다.
“크으으!”
그런 세은의 기세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는 구시온.
너무 순식간에 살레오스가 죽어버린 탓에, 도와줄 기회도 잡지 못했다.
잠시 회복하려던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서걱―
이제 반항할 수조차도 없는 구시온의 목이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털썩―
“후우우우우!”
주인을 잃은 구시온의 몸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완전히 둘을 끝장내고 나서야, 세은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우우웅―
아직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한 왼팔은 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일으키고 있었다.
세은은 별의 검을 내려놓고 신성력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몸에 중첩된 충격을 치료하고 있던 신성력이 우선적으로 팔로 몰려들었다.
내상보다는 팔을 완벽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이 먼저다.
“뭐해?”
왼팔에서 고통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세은이 아바돈에게 물었다.
“빨리 처리해. 시간 끌지 말고.”
세은의 말이 아바돈과 알로켄에게 동시에 전해졌다.
“감히……!”
세은의 말에 알로켄이 분노를 터트리며,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침묵이 깨졌다.
세은은 여전히 신성력을 돌려 자신의 몸을 회복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아바돈과 알로켄 사이에 자신은 나서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한마디로 알로켄을 완전히 아바돈의 하수로 봤다는 말이었다.
“이놈을 쳐죽이고 네놈도 죽여주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하지그래?”
끝까지 알로켄을 도발하는 세은이다.
알로켄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아바돈에게 달려들었다.
어차피 세은은 마왕을 연달아 셋이나 상대하며 상당한 내상과 부상을 입었다.
완전히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신성력도 제법 소비할 터였다.
아바돈을 빨리 죽이면 충분히 상대할 만했다.
쾅― 콰앙―!
그러나 그런 식으로 제대로 아바돈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바돈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방금 전까지 살레오스와 협공을 해서 겨우 승기를 잡았다는 사실을 잊어먹은 알로켄이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아바돈은 계획의 성공을 위해 머리끝까지 차가워진 상태.
전투의 끝이 불을 보듯 뻔하게 보였다.
‘너무 큰 부상을 입었어, 최대한 빨리 회복해야 해.’
세은이 성채 더 깊은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세은의 머릿속에는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
생각지 못한 격렬한 전투로 인해 예상보다 많은 피해를 입었다.
얼마나 더 많은 마왕들이 남아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계속해서 이어진 극한의 전투로 인해 세은의 기감은 극까지 상승한 상태였다.
성채 깊은 곳에서 퍼져 나오는 마기와 마기의 충돌이 느껴지고 있었다.
콰아앙!
순간 대지를 울리는 폭음이 세은의 고막을 어지럽혔다.
“크아악!”
“흐아압!”
아바돈과 알로켄의 전투도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대등해 보이지만, 알로켄의 손발이 서서히 어지러워지기 시작한다.
알로켄만 잡으면 끝인 아바돈과, 전투에서 이기고도 세은을 상대해야 한다는 알로켄의 조급함이 만들어 낸 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