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94화 (194/225)

# 194

52. 마계의 내전 (6)

우우웅―!

“시렌!”

구시온의 보랏빛 망토가 펄럭이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 펄럭임을 따라 마기가 더욱 강하게 요동친다.

구시온의 주변으로 마기가 모이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죽어라!”

그 와중에 달려든 아임이 횃불을 세은을 향해 휘둘렀다.

“감히 어딜?”

그러나 세은은 우선 가볍게 아임의 공격을 막아냈다.

방금 전에 직접 상대해 본 만큼 아임의 무위는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난 상태다.

거기에 이미 기가 죽은 탓에 처음과 같은 위력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상당한 무위를 자랑했지만, 그 작은 차이가 승부의 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세은 정도의 수준에서의 전투에서는 작은 차이만으로도 승부가 갈리는 법이다.

좀 전의 전투에서도 꽁무니를 뺐던 아임의 공격은 코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파아앙―!

“죽어라!”

음울하기 짝이 없는 구시온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아바돈과 다른 마왕들의 전투 역시 시작되어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마치 귀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확실하게 들려온다.

세은은 피식 웃으며 그런 구시온의 말에 대답했다.

“지랄은?”

콰앙―

아임의 횃불을 쳐 낸 대가로, 마법을 정면으로 막아낸 세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그 자신만만한 욕설답게 달의 검이 깔끔하게 구시온의 마법을 갈라냈다.

폭발의 여파로 인해 옷이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했지만, 직접적인 타격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문제가 없었다.

치이이이잉―

그러나 구시온 역시 이번 한 번으로 세은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구시온의 마기가 창대한 기세를 일으키며 주변의 공기를 더욱 교란시킨다.

구시온의 마기가 칙칙한 어둠이라면, 세은의 신성력은 타오르는 빛과 같다.

콰아아앙!

허공에서 부딪힌 두 개의 힘이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폭발을 일으켰다.

터엉―!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는 아임의 공격.

세은이 믿을 수 없는 반응 속도로 아임의 횃불을 막아냈다.

“크윽! 젠장!”

손목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에 아임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온다.

전투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세은의 기감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에일린의 제1사제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광휘가 세은에게서 흘러나왔다.

어지간한 마족들은 흘러나오는 신성력을 느끼기만 해도 꼬리를 내리고 도망칠 것이 분명했다.

타앗―

바닥을 박차는 세은의 밑으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아임의 급소를 노리고 빠르게 베어 들어가는 달의 검이다.

그것을 맞받아치는 아임의 횃불이 그 짙은 화염을 뿜어냈다.

쾅― 콰앙―!

강렬한 충돌음이 연속해서 나온다.

그 충격에 머리카락이 쉴 새 없이 휘날릴 정도였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탓에 구시온이 쉽게 아임을 지원할 수가 없을 정도의 근접전이었다.

‘지금 잡아야 한다!’

구시온의 도움이 나오기 전에 아임을 잡아야 했다.

쉐엑―

세은이 아임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내며 반격을 해나간다.

아임의 목을 노리는 일격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쩌어어엉!

“크윽!”

횃불을 회수할 새도 없었다.

푸슉!

왼팔을 그대로 들어 올려 세은의 검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완벽하게 막지 못한 탓에 팔이 절반 정도 베이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신성력이 가득 담긴 달의 검은 아임의 팔에 둘러진 마기를 뚫기에 충분했다.

둘이서 하나를 상대하고 있지만, 오히려 먼저 피를 본 것은 아임이었다.

이미 기세에 눌려 있던 아임의 머릿속을 공포가 점점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아임이 맞닥뜨렸던 상대 중에서, 이런 느낌을 심어준 것은 오직 단 하나.

바알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바알을 제외하고 마계에서 가장 강한 마왕들이 달라붙어도 이 정도의 격차.

세은 하나라고 쉽게 생각했다가는 반드시 소멸될 것이 분명했다.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였다가는 곧바로 목이 잘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극한의 긴장감은 이미 기세가 꺾인 아임의 마음과 맞물려 점점 빈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쉐에엑!

그러나 그런 아임과는 반대로 세은의 기세는 점점 강해져 갔다.

마주치는 아임의 횃불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터엉!

또 다시 내뻗어진 별의 검이 아임의 횃불에 막혔다.

그러나 방금 전들과는 달리 별의 검에 여력이 조금은 남은 상태.

검들이 부딪치고 남은 여력을 빌려 몸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그리고는 회전시키기가 무섭게 그대로 그 회전력을 동력으로 삼아 달의 검을 역으로 휘둘렀다.

쉐에에엑!

번개처럼 휘둘러지는 공격이다.

그 날카로운 기세는 당장에라도 아임의 가슴을 꿰뚫어 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검을 따라 주변 공기가 찢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서걱!

“흐으읍!”

세은의 공격이 빈틈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검이 잘라낸 것은 아임의 피부에 불과했다.

아직까지 아임의 움직임은 그 절묘함이 살아 있었다.

파앙― 파앙!

거기에 다시 영점을 잡은 구시온의 마법도 세은을 노리고 쏘아졌다.

세은이 네 번의 마법을 쳐 내는 동안 아임은 겨우 무너진 균형을 회복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아임의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다.

꽤 커다란 자상을 입은 왼팔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했다.

거기에 구시온이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틈을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탓에 전혀 시너지가 일어나지 않았다.

차라리 따로 덤비는 것보다 못한 상황.

‘크윽! 여기서 허무하게 당할 수는 없다!’

치이잉!

어느새 소멸을 떠올린 아임이 이를 악물고 마기를 끌어 올렸다.

아임의 횃불이 마기를 공급받아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너무나 거세어, 그 주변에까지 마기를 흩뿌리는 불길이었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세은이 아니었다면 받아내기조차 힘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달의 검과 별의 검의 공능도 세은을 돕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었다.

쾅! 콰앙!

구시온의 마법을 쳐 냈던 그 힘 그대로.

세은의 검과 구시온의 횃불이 두 마리의 뱀처럼 휘감겼다.

초근접 거리의 싸움이었지만, 거리는 그 둘에게 상관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자가 진다.

그리고 쉴 틈 없이 교차되는 공방이 열 합을 넘어갈 무렵, 승부가 갈리기 시작했다.

“하압!”

세은의 기합과 함께 달의 검에서 신성력이 더욱 거세게 쏟아져 나오며 아임의 신형이 순간 흔들렸다.

종이 한 장 차이의 그 틈.

그리고 그 틈이 잔잔한 물결을 만들고, 물결이 파도가 되기 시작했다.

‘아임의 방어가 흔들린다. 조금이면 끝낼 수 있어.’

파앙― 파아앙―!

하지만 구시온이 그것을 그냥 지켜볼 리가 없었다.

아임이 확연하게 뒤로 밀리자 그 사이로 마법을 밀어 넣는다.

마법에 능통한 마왕다운 조준.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조금의 피해를 입더라도 지금 끝내야 해.’

파아앙―

결국 세은이 방어를 포기하고, 계속해서 구시온을 견제하던 별의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양손 모두 공격에 사용한다.

“……?!”

공격일변도로 변한 세은의 모습에 당황하는 아임의 눈.

검을 치켜드는 동작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우우웅―

쌍검을 전부 공격으로 돌린 세은의 기세는 대단했다.

일 검, 그리고 또 일 검.

막아내기 힘든 공격이 아임을 노리고 쏟아진다.

콰앙―

“크학!”

달의 검이 쏟아 내리는 공격을 아임은 이를 악물고 막아내었다.

퍼엉!

방어를 도외시한 세은의 모습에 구시온이 다급히 마법을 날렸다.

“큽!”

그러나 세은은 온몸에 두른 신성력으로 그 공격을 참아내고, 그대로 별의 검을 좌우로 베어나갔다.

서걱―

“커억…….”

결국 옆구리를 갈라내고 몸의 절반 이상을 잘라낸 별의 검.

반 이상 끊어진 허리에 결국 아임의 몸이 허물어졌다.

“쿨럭…….”

아임의 몸이 그대로 늘어지며 피를 토해냈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아임의 마지막을 확인할 틈도 없이 몸을 돌려 자신에게 날아오는 강력한 마법을 막아낼 준비를 했다.

키이이이잉―

이미 아임이 끝난 것을 확인하고 구시온은 마법의 출력을 높인 상태였다.

우우웅―

다급히 신성력을 운용해서 방금 전 마법에 통타당한 피해를 회복해 보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신성력의 회복력이 상식을 초월한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했다.

방금 전에 입은 타격도 문제지만, 타격을 통해 몸으로 침투하는 마기도 문제였다.

신성력이 외부에서 침입해 온 적을 막기 위해 다급히 움직였지만, 이미 구시온의 마법은 완성이 끝난 상태였다.

“죽어라!”

마법을 발출하는 구시온이 고함을 질렀다.

그의 두 눈에 광기가 떠올랐다.

아직 채 회복하지 못한 세은의 상태를 확신했는지 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뒤가 없는 공격.

이번 공격을 끝으로 세은을 없애려는 목적이었다.

“끄응!”

키이이잉―

구시온의 빠른 상황 판단에 세은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미 예상한 일이다.

반대로 구시온의 이번 공격만 막아내면 승기가 세은에게 있다는 말과 동일했다.

세은의 선택은 또 다시 공격이었다.

지금 여기서 방어로 나서봤자 계속해서 밀릴 뿐이다.

우우웅―

세은의 몸에서 신성력이 웅혼한 기세를 자랑하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상태였다.

세은이 두 검을 앞으로 모아 신성 마법을 다시 한 번 시전했다.

“에일린, 홀리 스피어!”

우우우웅― 키이이잉―

최선을 다한 세은과 구시온의 마법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콰아앙! 콰과과과과―!

“크아악!”

근처에서 이 전투를 주시하고 있던 마족들이 폭풍에 휩싸여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가까이 있던 내성 성채의 한쪽이 터져 나가고, 거대한 힘의 파도가 주변을 덮쳤다.

힘과 힘의 대결이다.

옆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던 알로켄과 살레오스, 그리고 아바돈 역시 전투를 멈출 정도의 여파가 느껴졌다.

고오오오―

폭발의 중심은 어느새 비산한 흙먼지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공간이 공백으로 가득 찼다.

주변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흙먼지로 향했다.

턱!

“후우…….”

가장 먼저 들린 것은 세은의 한숨 소리다.

흙먼지가 걷히면서 세은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일견 멀쩡하게 서 있는 것 같지만, 충격으로 인해 옷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상태.

거기에 왼쪽 어깨에서는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구시온은?”

릴리트가 재빨리 고개를 하늘로 돌려 구시온의 상태를 확인했다.

만약 구시온이 전투 능력을 상실했다면, 바로 이 자리에서 적의 가장 강한 전력 중 넷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릴리트보다 먼저 구시온의 상태를 확인한 세은이 중얼거렸다.

“……역시 대단하군.”

아쉽게도 릴리트의 바람과는 달리, 구시온 역시 멀쩡한 상태였다.

아니, 완전히 멀쩡하다고는 할 수는 없었다.

어느새 허공에서 바닥으로 내려온 구시온의 허리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됐어! 더 큰 피해를 입은 건 저쪽이다!’

척 봐도 큰 부상을 당한 구시온의 모습에 릴리트가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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