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93화 (193/225)

# 193

52. 마계의 내전 (5)

아임과 알로켄의 도주는 끈질겼다.

방금 전까지 격전을 벌이던 광장을 지나서 내성 깊숙한 곳의 성채가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세은과 아바돈이 빠르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마족들이 몸을 날려 추격을 방해하는 탓에 거리가 쉬이 좁혀지지 않았다.

“저놈들을 막아라!”

오히려 몸으로 막아내는 마족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었다.

아임과 알로켄의 고함에 주변의 다른 마족들이 반응해서 달려오는 탓이었다.

“확실히 적이지만 대단하기는 하군. 이렇게나 많은 마족들을 한 곳에 모을 수가 있다니 말이야.”

아바돈이 그 모습을 보면서 순수하게 감탄을 내뱉었다.

이 정도로 많은 마족이 한 자리에 모인 장면은 본 적이 없었다.

오직 아바돈의 상상에서만 존재하던 그런 장면.

그리고 바알은 그 상상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다.

서걱―

“크아악!”

일격으로 마족 서넛을 베어 넘기면, 그 자리를 다시 마족 다섯이 채운다.

도저히 추격에 속도를 올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점점 거리가 벌어집니다! 이대로는 놓치게 됩니다!”

“알고 있다. 겁쟁이 놈들이 지원이라도 데려오면 낭패인데 말이야.”

릴리트의 말에 아바돈이 혀를 차며 물었다.

“우리 지원군은 근처에 없나?”

“추격 방향에 있는 성채에서 내부 교란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그럼 일단 합류를 하는 것이 중요하겠군.”

성채가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서, 방금 전처럼 전 방위에서 적들이 달려드는 일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적들의 밀집도를 높여서, 숫자에 밀린 적들이 꾸역꾸역 밀려오는 일은 더욱 거세졌다.

이대로라면 아임과 알로켄을 추격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다른 좋은 방법이 필요했다.

“끄응…… 힘을 아끼려고 했는데 말이야.”

도저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은 세은이 신음을 흘렸다.

바알과의 결전을 위해 최대한 힘을 아끼려고 했지만, 이러다가는 적들이 모일 시간만 주는 꼴이 되어버릴 것 같은 상황.

처억―

“알아서 뒤로 피해.”

전방을 향해 달의 검을 겨눈 세은이 아바돈과 릴리트에게 경고했다.

“응?”

우우웅―

달의 검으로 모여드는 심상치 않은 신성력을 느낀 아바돈이 재빨리 릴리트를 데리고 뒤로 피신했다.

우우우우웅―

신성력을 한계까지 받아들인 달의 검이 짙은 울음을 토해냈다.

더 이상 신성력을 압축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되는 순간.

달의 검에서 신성력이 화려하게 폭사되었다.

“디바인 플레어!”

화르르륵―!

신성력이 청염의 불꽃으로 화해 전방을 강타했다.

“……!”

“카아악!”

화염의 진행 방향에 있던 대부분의 마족들이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먼지로 화해 사라졌다.

“후우…….”

“…….”

앞에 남은 것은 뻥 뚫려 버린 거대한 대로.

그리고 공간을 가득 채우는 적막이다.

오직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킨 세은의 한숨만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다.

“뭐해? 빨리 움직이지 않고?”

“……가지.”

세은의 재촉에 아바돈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마기로 방어막을 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졌다.

‘내가 막았더라면…….’

아바돈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이 방금 전의 공격을 막아냈을 때의 상황을 가정했다.

‘막아낼 수는 있겠군. 한 점에 집중되지 않아서 그렇게 큰 피해는 입지 않았을지도.’

그러나 화염이 오직 한 명을 노리고 하나로 집중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은 분명했다.

계약이 끝나면 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농후한 상대다.

최대한 많은 것을 계산에 넣어야 했다.

“앞에서 우측입니다!”

길이 크게 기울어져 꺾인다.

속도를 유지하면서 그대로 우측으로 돌아 들어간다.

여러 가지 길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어 까닥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릴리트는 마치 지도가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정확한 길을 안내했다.

“이번에는 좌측입니다!”

쒜에엑―

세은과 아바돈이 좌측으로 돌아 들어가자마자 날아오는 마법.

쾅― 콰앙―

순식간에 얼굴을 노리고 짓쳐드는 마법을 쳐 내는 세은이다.

너무 간단하게 마법을 막아내는 그 모습에, 성채 위의 마족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릴리트는 앞은 걱정하지 않고 뒤에서 쫓아오는 마족들의 수를 확인했다.

처음과 달리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릴리트는 한숨 돌렸다는 표정으로 아바돈에게 보고했다.

“내성 적들의 대부분이 궤멸된 것 같습니다. 조금의 시간이 있으면 외성을 뚫고 아군이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그거 아주 좋은 소식이군.”

릴리트의 말에 아바돈이 화색을 지었다.

외성이 뚫리지 않은 것은 외성에 있는 병력은 물론, 내성에서의 저항이 거셌기 때문이었다.

세은이 내성의 적군 대부분을 궤멸시켰으니, 내성은 거의 텅 빈 것과 다름이 없었다.

“어차피 이제 문제는 그게 아니기는 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아바돈의 지적에 릴리트가 바로 대답했다.

“이제는 정말로 아바돈님의 힘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흐음”

릴리트의 말에 아바돈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보다는 앞의 저놈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

“…….”

장난 섞인 아바돈의 말에 릴리트는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대로 말하며 자신의 주군을 깎아내리는 행위.

그러나 여기서 아니라고 하는 것도 그 모양새가 우스웠다.

자신의 말에 아무 대답도 못하는 릴리트를 보며 아바돈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농담이야, 농담. 어찌 됐든 지금 우리에게는 호재니까 말이야.”

“예. 그렇습니다. 이제는 마왕들을 상대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상대의 전력이 감은 잡히나?”

“……죄송합니다. 적들의 전력이 계속해서 상상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

아바돈이 태연하게 릴리트의 보고를 받았다.

“일단 마왕 놈들이 뭉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군.”

“예. 각개격파를 해야 승산이 있습니다.”

“하긴, 각개격파를 하면 질 리가 없겠지.”

아바돈이 다시 한 번 세은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아바돈 자신도 어지간한 마왕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거기에 세은이 있으니 수를 맞춰 싸워서 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도 방심은 안 됩니다.”

“아아. 알아.”

혹시나 해서 직언을 올리는 릴리트의 말에 아바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방심은 하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위기를 넘긴 그다.

조금이나마 마음속에 있던 방심은 이미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이제는 어떤 적이 나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그저 비관적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바돈은 한 무리의 수장이다.

사기를 위해서라도 약한 소리는 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타닷! 타다닷!

“좌측입니다!”

릴리트의 안내에 따라 몇 번이나 방향을 바꾸었는지 모른다.

“앞에 있다. 준비해!”

어느새 시야에서 놓쳤던 아임과 알로켄이 두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따라온 세은의 기척에 아임과 알로켄이 질색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그 수를 뚫고 따라붙을 줄을 예상치 못했다는 태도다.

더욱 필사적으로 발을 움직이며 도주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주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기 바쁘네.”

그런 아임과 알로켄의 뒷모습을 보며 세은이 조소를 날렸다.

세은의 목소리가 아임과 알로켄에게 들리지 않을 리가 없는 거리다.

가볍게 도발을 던졌지만, 아임과 알로켄은 이 정도 도발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이기에 바빴다.

“조금만 더 가면 적의 심부입니다. 이제는 잡아서 처리해야 합니다!”

릴리트의 외침에 세은이 더욱 박차를 가했다.

조금만 더 따라붙으면 아임과 알로켄의 등에 검을 꽂아 넣을 수 있을 만한 거리.

도주하는 두 마왕의 등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젠장!”

아임의 입에서 결국 욕설이 튀어 나왔다.

쉐에엑!

그와 동시에 별의 검이 아임의 등을 노리고 쏟아진다.

“크윽!”

끝임을 직감한 아임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터엉!

“……?”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별의 검이 아임의 등을 관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살레오스!”

기다란 장창을 들고 있는 덩치 큰 남성이 혀를 찼다.

그러나 그런 조롱에도 불구하고 아임과 알로켄의 눈은 더없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괴완공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마왕 제19위.

살레오스다.

“흥. 대체 뭐가 이렇게 난리인지 보러 왔더니, 아주 뭐라고 하지는 못하겠군.”

펄럭―

허공에서 망토가 펄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 하나가 땅에 드리워졌다.

“시렌이라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허겁지겁 도망치는 모습이 아주 볼만해. 마왕의 위신을 아주 바닥까지 떨어트리는군.”

귀해 보이는 재질의 보라색 로브를 제 발보다 길게 늘어트린 남자.

마왕 제11위 구시온 역시 혀를 차며 아임과 알로켄을 조롱했다.

노골적인 조롱에 아임과 알로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것보다 당장 살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마왕 넷이라면 세은과 아바돈을 상대할 수가 있을 테니까.

“알아서 두 명 상대하고 있어.”

그 모습에 세은이 아바돈에게 가만히 명령을 내렸다.

“그러지.”

아바돈 역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둘씩 나눠야 하는 상황이다.

“…….”

릴리트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시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라!”

릴리트의 생각을 깬 것은 아바돈이 발한 경고였다.

아바돈의 외침에 릴리트가 빠르게 전투의 범위에서 물러났다.

세은은 달의 검과 별의 검을 쥐며 담담하게 마왕들에게 말했다.

“아주 난리도 아니네. 바알 밑에 들어간 개새끼들이 이렇게 많단 말이야?”

세은의 말에 마왕들의 눈에 부끄러움과 분노가 깃들었다.

“흥. 그분의 진정한 힘을 모르는 네놈이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움찔하던데? 말이랑 다르게 몸은 솔직해.”

이어지는 세은의 조롱에 구시온의 눈에 분노가 깃들었다.

구시온의 망토가 펄럭거리며 주변에 마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지금 죽을 몸,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도록 해라.”

“글쎄? 누가 뒤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우우웅―

세은의 두 손에 잡힌 검들이 무서운 기세를 흘려대고 있다.

방금 전에 그렇게나 커다란 마법을 사용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들어오지 그래? 누가 덤빌 거야?”

“건방진!”

이어지는 세은의 도발에 구시온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시온의 움직임을 신호로 그의 옆에 아임이 달라붙었다.

자연스럽게 아바돈의 상대는 알로켄과 살레오스로 정해졌다.

‘조합이 좋지는 않군.’

하늘에서 마법을 난사하는 구시온과, 아래에서 근접전으로 치고 들어오는 아임의 조합은 꽤나 좋았다.

세은은 긴장을 끌어 올리며 구시온의 마법을 경계했다.

근접전에 약한 구시온은, 반대로 마법에 관해서는 그 조예가 상당히 깊은 마왕이었다.

아임과 제대로만 손발이 맞는다면 상대하기가 매우 힘든 마왕.

‘우선 아임부터 처리를 해야겠어.’

잠시 고민하던 세은은 목표를 결정했다.

구시온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상대하기는 편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임은 이미 세은에게 기세에서 밀리고 있는 상태.

이런 상대일수록 약점을 파고들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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