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92화 (192/225)

# 192

52. 마계의 내전 (4)

“크흣! 막아라!”

세은의 힘에 밀린 아임이 재빨리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상대.

결과를 알면서도 자만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옆이다!”

아바돈이 세은에게 날카롭게 소리쳤다.

주변의 수많은 마족이 어느새 무기를 고쳐 잡고 세은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바로 조금 전에 치명상을 입혔던 니베리우스도 믿을 수 없는 정신력을 발휘해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비록 마족이고 적이지만 칭찬해 줄 만한 근성이었다.

텅― 터엉― 터어엉!

그러나 아바돈의 경고는 단순한 기우에 불과했다.

세은은 엄청난 무력으로 주변의 마족들을 맞이했다.

무기와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끊이지 않는 연주처럼 운율을 타고 이어진다.

그런 세은의 뒤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 아바돈의 옆으로 어느새 릴리트가 달라붙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왔나? 계획은 어떻게 되고 있지?”

릴리트를 보자마자 전황을 물어보는 아바돈.

수없이 많은 자잘한 부상과 힘의 소모를 메꾸느라 힘이 들 만도 한데,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아바돈의 얼굴에는 마치 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듯한 담담함과 여유가 가득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전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쾅! 콰아앙!

릴리트가 가볍게 보고를 하는 와중에도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마왕을 포함한 수많은 마족을 상대하는 세은의 무력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탓― 타다닷―

아임의 신형이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다른 휘하 마족들이 열심히 부나방처럼 달려들고는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물러날 곳은 없었다.

아임의 머릿속에서 바알이 진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도망을 가서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전투가 끝난 후 도망쳤다고 바알에게 사실대로 보고할 자신이 없다.

지금 죽으나, 그때 바알에게 죽으나 마찬가지.

그럴 바에는 조금이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길을 택해야만 했다.

그때였다.

다각― 다각―

뒤의 성채를 돌아서 달려오는 한 기의 기마가 보였다.

황금으로 치장된 무구를 입고 있는 거대한 말.

그 크기가 마치 집채만 한 호랑이와 같은 몸집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마찬가지로 황금의 갑옷에, 사자와 같은 붉은 갈기를 지니고 있는 마족이 타고 있었다.

두 눈은 마치 화염이 타오르는 것처럼 귀기가 어려 있었는데,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 눈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기절할 것 같은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임! 내가 왔다!”

거대한 도끼를 한 손으로 들고 있는 마족이 외치는 소리가 전장을 가득 채웠다.

바알의 군단 중에서 선봉을 맡고 있는 마왕 제52위.

전사공이라는 이명을 지니고 이는 알로켄이었다.

절벽 끝까지 몰렸던 아임이 자신과 같은 기마 부대를 끌고 오는 알로켄을 보고 화색을 지었다.

“때 맞춰 잘 왔군! 시렌이 여기에 있다!”

“시렌? 신의 개를 말하는 것인가?”

“그자가 맞아!”

아임의 외침이 알로켄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거 대어를 잡을 수 있겠군!”

알로켄이 긴장과 흥분을 동시에 끌어 올리며 소리쳤다.

단순히 상황이 빠르게 정리되지 않아 나왔는데, 더 커다란 공적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생긴 것이었다.

“고맙군!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어.”

아임의 목소리는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위급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알로켄에 이어서 그 휘하의 마족들까지 합류하니 저절로 웃음이 떠올 수밖에.

아임이 다시 자신감을 찾은 얼굴로 무기를 고쳐 쥐었다.

“호오? 한 놈 더 늘어났네.”

서걱―

앞을 막고 있는 마족 하나를 더 갈라내며 세은이 말했다.

“흥. 네놈이라도 이 많은 인원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겠지.”

“글쎄?”

아임의 도발에 세은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여전히 여유가 있는 모습.

“흥! 그 주둥이를 다물게 만들어주마!”

동시에 아임의 신형이 다시 앞으로 쏘아졌다.

한층 자신감 넘치는 돌진.

히이잉!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알로켄의 기마가 돌진을 시작했다.

텅― 터엉!

“어딜?”

아임의 횃불이 튕겨 나가고, 알로켄의 도끼가 옆을 향했다.

순식간에 두 마왕의 공격을 막아내는 세은이다.

거기에 알로켄의 기마가 거드는 공격까지 막아낸다.

보고 또 봐도 쉽게 믿기가 힘든 강함이다.

그동안 제한된 힘으로 한계까지 전투를 지속했던 경험이 지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야말로 터무니없는 놈과 계약한 것이 아닌가?”

그런 세은의 전투를 보고 있는 아바돈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되는 싸움이었다.

마왕 두 명과 직접 맞서보아서 알지만, 저 정도로 여유 있게 상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저만한 괴물들을 혼자서 한꺼번에 막는다는 것은 어지간한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아바돈 역시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어도 속으로는 상당한 내상을 입은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은은 놀랍도록 쉽고, 평온한 표정으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아바돈은 나중에 계약이 종료되고 세은의 검이 자신을 향할 생각을 하니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일단은 우리 편인 것에 감사를 해야 하나?’

하지만 당장은 세은이 없었다면 계획의 실패가 분명하다.

나중에는 나중의 길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바돈은 걱정을 접어두고 릴리트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우선은 저들을 모두 물리치고 안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떨거지들이 워낙 많은데?”

“일단 저자가 상대를 하는 동안 몸을 최대한 회복하십시오.”

“그다음은?”

아바돈의 진지한 물음에 릴리트가 최대한 최선의 답변을 도출해 대답했다.

“어차피 바알은 아바돈님이 상대하셔야 합니다. 최대한 저자를 이용해서 길을 뚫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떨거지들은 미리 전부 털어내야만 합니다.”

쾅!

또 다시 울리는 충돌음에 아바돈과 릴리트의 시선이 동시에 앞으로 향했다.

전방, 그들의 시야에 굳건한 벽처럼 서 있는 세은이 보였다.

엄청난 수의 마족들이 밀려오지만 그 자리 그대로, 단 한 걸음도 밀리지 않고 공격을 막아내는 세은이다.

마왕 둘뿐만이 아니라, 휘하 마족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표정은 여전히 평온하다.

그 모습을 보면 세은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압도적인 아군의 모습에 아바돈의 열의도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수정된 계획은 있나?”

“예! 그렇습니다.”

“그럼 길을 안내해라. 내가 할 일을 정확히 말하도록.”

쾅! 콰아앙―!

그 순간, 또 다시 전장 전체를 뒤흔드는 충돌음이 터졌다.

“흐읍!”

결국 마왕 둘의 합공에 뒤로 한 발 물러나는 세은.

신성 마법을 사용하고 싶지만 작은 틈도 용납이 되지 않았다.

일견 여유로워 보이지만, 일격이 생사를 가르고 있는 중이었다.

“어이! 들리나?”

어느 정도 회복한 아바돈이 아볼루온을 고쳐 잡으며 물었다.

세은이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러나 태연한 겉모습과는 달리 괜찮을 리가 없었다.

여태까지 이 정도로 전장을 휘어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할 수가 있었다.

수많은 기마병들의 공격은 세은으로서도 상당한 충격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어.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

마치 당장에라도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듯한 말투.

거기에 대답하는 세은의 태도도 마찬가지로 담담했다.

“그러지.”

세은의 대답을 들은 아바돈이 아볼루온을 들고 전장으로 다시 난입했다.

피아 구분이 힘들 정도로 엉켜 있는 전장에 하나의 검은 선이 달려들었다.

그 엄청난 추진력에 적들이 우왕좌왕하며 밀물처럼 쓸려 나가기 시작한다.

“전방 사거리에서 오른쪽 성채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알겠다!”

촤악! 촤아아악―!

아바돈이 합류하자 상대해야 하는 적이 두 명이 된 적들이 혼란에 빠졌다.

콰앙!

세은 역시 그런 아바돈의 움직임에 맞춰 힘을 뿜어내며 장단을 맞췄다.

“하압!”

기합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전방에 쏟아부었다.

“크아악!”

아임과 알로켄을 제외한 조무래기들이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텅! 터엉―!

“감히!”

아임과 알로켄이 바로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마기에 휩쓸리는 휘하의 마족들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부하들을 신경 쓰면서 세은을 상대할 정도의 여유가 없는 탓이다.

“간다!”

쾅! 콰앙! 콰아앙―!

주변을 어느 정도 정리한 아바돈이 세은과 아임, 그리고 알로켄 사이로 끼어들었다.

마기와 마기가 부딪혀 강렬한 파동을 흩뿌린다.

텅― 터엉―

쉴 새 없이 각자의 무기가 부딪히고, 또 부딪힌다.

힘의 제어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주변의 마족들은 알아서 살길을 찾아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미처 물러나지 못한 마족들은 그 폭발에 휩쓸려 순식간에 소멸하기 일쑤였다.

“젠장!”

알로켄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왔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이다.

아바돈까지 합류한 세은을 이기기는 요원한 일.

주변을 채우는 힘의 흐름이 점점 거세지고, 조금이라도 균형이 어긋나는 순간 그 파편들이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지원은 없는 건가?’

알로켄이 간절한 눈빛으로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이 정도의 시간과 소음이라면, 안에서 다른 마왕이 지원을 나와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제기랄! 이 정도의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콰앙!

아볼루온을 힘겹게 받아낸 아임이 이를 갈며 외쳤다.

알로켄이 지원을 올 때까지만 해도 화색이 되었던 표정이 다시 굳어 있었다.

이제는 정말 얼마 버티지 못한다.

콰아아앙!

히이잉!

“크흑!”

설상가상이다.

계속해서 중첩된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알로켄의 전마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아무리 알로켄의 마기를 머금고 자란 집채만 한 전마라지만, 끊임없이 계속된 거대한 충격의 중첩에는 버틸 도리가 없었다.

기마 위에서 그 본 실력을 발휘하는 알로켄에게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닥친 것이다.

“아임! 이대로는 안 된다!”

“크흡!”

타앗!

쓰러지는 말의 안장을 밟고 날아 오른 알로켄이, 단단한 땅에 두 발을 내려놓았다.

커다란 무기 중에 하나를 잃은 지금, 알로켄과 아임이 취해야 할 행동은 확실했다.

최대한 빠르게 후퇴해서 지원군을 불러와야만 했다.

재빠르게 눈빛을 교환한 아임과 알로켄이다.

그 눈빛을 발견한 세은이 조소를 날렸다.

“자존심도 없이 도망가시게?”

“도망이라니?”

“꼬리를 잔뜩 만 개 두 마리가 눈을 마주치는 모습이 보여서 말이야.”

콰앙―!

다시 부딪히는 무기들이다.

세은이 뻗었던 달의 검을 회수했다.

달의 검이 빠져나온 자리를 별의 검이 미처 채우지 못했을 때.

콰아아아앙―!

갑자기 방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기들이 몰려 들어왔다.

아임과 알로켄이 힘을 모아 한 번에 쏟아낸 일격이다.

연격을 준비하고 있던 세은이 다급히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 일격을 막아내는 짧은 틈.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아임과 알로켄이 몸을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감히 어디를!”

타닷―

아바돈이 바로 그 둘을 쫓아갔지만, 먼저 달리기 시작한 둘을 잡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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