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88화 (188/225)

# 188

51. 가벼운 전초전 (2)

놀랍게도 주변에 있던 마기가 그대로 세은을 둔중하게 휩쓸어 옆으로 내던졌다.

세은의 몸이 추풍낙엽처럼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

격렬한 충격으로 인해 떨어지는 낙엽처럼 바닥을 나뒹굴 뻔했다.

그러나 세은은 끝까지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나마 미약하게 신성력으로 보호 받고 있어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콱!

별의 검을 바닥에 박아, 그대로 몸을 지탱했다.

타앗―

세은의 몸이 재차 바알을 향하여 달려들었다.

분명히 손에 느껴지던 감각.

바알에게 타격을 준 사실은 확실했다.

회복할 시간을 가지면 불리한 것은 자신이었다.

꽝― 꽈앙!

또 다시 바알의 곤봉과 세은의 검이 강렬한 충격음을 발한다.

일격.

그리고 이격!

단 두 번의 부딪힘으로 또 다시 우열이 갈렸다.

“쿨럭!”

바알은 방금 머리에 입은 충격으로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제대로 균형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커다란 충격을 입으니, 순식간에 내상이 올라왔다.

입안을 가득 메우는, 선명한 비린 맛이 느껴진다.

단 두 번의 충돌로, 마계에 떨어지고 나서 열심히 회복했던 몸 상태가 다시 바닥까지 떨어졌다.

“어딜!”

바알이 소리를 지르며 야그루시를 강하게 휘둘렀다.

막대한 마기가 세은의 몸을 강하게 밀어낸다.

터엉―!

“커헉…….”

거센 마기를 막아낼 힘을 모두 잃은 세은이 기어코 쥔 달의 검을 놓치고 말았다.

“끝이다!”

터어엉!

방어할 무기를 놓친 세은을 향해 바알의 곤봉이 정확하게 명치를 찔러왔다.

콰직―!

어딘가 부러지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바알의 곤봉에 직격당한 세은은 또 다시 허공을 날아 반대쪽 벽에 완전히 처박히고 말았다.

콰아앙!

방금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벽에 고정될 정도로 강한 충격.

입에 가득 머금고 있던 핏물이 그대로 울컥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그나마 신성력으로 보호 받고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즉사했어도 어색함이 없을 만한 타격이다.

쿵―

얼마간 벽에 박혀 있다가 바닥에 떨어진 세은의 몸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어, 어떻게…….’

분명히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이 있었다.

가죽이 베어지는 확실한 감각.

거기에 더해진 바알의 신음 소리.

눈앞까지 솟구쳐 오른 새빨간 피까지.

그런 와중에서 주변의 마기를 움직였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편두에 입은 충격만 아니었다면, 조금 더 세밀하게 바알을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정신은 더 이상의 깊은 사고를 허락하지 않았다.

피를 잔뜩 토해내고 바닥에 쓰러진 세은.

초점이 흔들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시야로 굳건하게 서 있는 두 발이 보였다.

‘젠장…….’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떠오르는 욕설.

멀쩡해 보이는 바알의 두 발.

결국 이렇게 끝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역시 만만치 않군.”

바알의 목소리가 세은의 고막을 울렸다.

그러나 방금 전과는 달리 힘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세은의 마지막 공격에 대한 반격까지 완벽하게 수행했다.

하나, 정확히 공격을 성공시킨 세은의 검에 상당한 타격을 입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미 의식이 흔들린 세은은 그 차이를 구분할 정신조차 온전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세은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무거웠다.

천천히 시야가 돌아오고 있지만, 언제 바알이 다시 들이칠지 몰랐다.

그러나 바알의 두 발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신의 개여.”

바알은 세은에게 입은 상처를 주변의 마기로 치료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마기를 컨트롤하고 있지만 않았어도…… 네놈의 질긴 명은 여기서 끝났을 거다. 더러운 명줄 한번 길구나.”

“끄응…….”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세은의 시야가 명멸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바알의 말은 끊이지 않고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거기에 힘들게 모아놓은 마기까지 두 번이나 사용하게 하다니, 정말 여신의 개 중에서도 가장 충직한 개라고 할 수밖에 없군.”

무슨 말인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다.

세은의 의식은 천천히 깊은 심연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끝인가?’

온몸에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강한 충격도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었다.

의식의 소멸과 함께 고통도 사라진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핏물이 튀어오를 정도로 강하게 베였다면, 마기의 컨트롤이 조금은 빗나가야 정상이다.

거기에 바알은 이상하게도 세은을 정공법으로 상대했다.

마지막에 세은을 공격한 것도 자신의 마기가 아니라 주변의 마기를 끌어다 쓴 것이었다.

세은을 농락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그 의문을 풀기에는 세은의 의식이 더 이상 버텨주지 않았다.

“내 손으로 숨통을 끊지 못하는 것이 아쉽군.”

바알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이 들려왔다.

시야의 명멸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저승으로 꺼져라. 신의 충직한 개여.”

쩔그렁.

세은이 바알의 공격에 버티기 위해 땅에 박아 넣었던 별의 검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널브러진 달의 검과 별의 검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세은의 의식 위로 모든 것을 삼켜버릴 어둠이 내려앉았다.

* * *

“오랜만이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청아한 목소리가 침전한 세은의 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

세은은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눈을 몇 번 깜빡여 여전히 흐릿한 시야를 재정비했다.

“……?”

몇 번 눈꺼풀을 올렸다 내렸다 반복한 세은의 눈에 영점이 잡혔다.

그리고 영점이 잡힌 세은의 시야로, 방금 전까지 바알과 피 튀기는 전투를 하던 마계가 아닌 언젠가 와본 적이 있는 방이 들어왔다.

이미 경험해 본 적 있는 것 같은 상황에, 세은의 눈이 침착하게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그래도 저번보다는 덜 바보 같아서 다행이야.”

세은과 눈이 마주친 소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잘 만들어진 예술품 같은 소녀의 외모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얼굴.

그리고 조각상으로 수없이 봤던 바로 그 얼굴.

교단이 모시는 신, 에일린이었다.

‘내가 여기 왔다는 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세은의 얼굴이 그나마 환하게 펴졌다.

예전에도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 이렇게 신의 앞으로 소환된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아직까지 세은은 죽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열심히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건 여전하고…….”

‘사고는 무슨 사고……. 헙!’

거기까지 생각한 세은이 재빨리 눈치를 봤다.

생각을 읽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일.

괜히 머리를 잘못 굴렸다가는 큰일 나는 수가 있었다.

“사고를 왜 친다고 하는지는 아쉽게도 직접 알려줄 수는 없고, 힌트는 줄게.”

지금 이 공간도 틈을 이용해 차원의 법칙에서 예외로 만들었다는 사실 정도는 세은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돌려서 말해주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목에 걸고 있는 그거 있잖아, 내가 준 물건.”

세은의 시선이 저절로 자신의 목으로 내려갔다.

“걔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단 말이야. 너처럼.”

“……?”

여신의 말에 세은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알겠지? 아무리 멍청해도 말이야.”

“……잠깐. 설마?”

곧, 세은은 바알의 마기에 얻어맞았을 때보다 더 강한 충격이 머리를 강타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차원이 연결되는 문이 열리는 것이 성물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그, 그럼 왜 양방향으로 문이 열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생기는 겁니까?”

“차원의 힘에 대해서까지 따로 설명을 해야 해?”

“아…….”

세은의 말에 직접적으로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힌트.

한마디로, 차원간의 경계를 이루는 힘이 너무 강해서 성물이 그 이상은 만들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멍청하게 신성력이나 폭주시키고. 하지 말라는 건 아주 다하는 것 같아. 그치?”

“…….”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에 세은이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정이 급한데 신성력을 막아버린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하긴 뭘 너무해? 이미 충분히 예외를 많이 줬는데.”

또 다시 세은의 생각을 읽은 여신이 세은에게 말했다.

‘생각도 못하겠다니까 정말.’

“뭐, 생각을 안 할 수 있으면 안 해도 괜찮은데.”

생각보다 맘대로 못하다니.

세은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여신에게 물었다.

“제약 때문에 다 말하지 못하신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힘들게 이렇게 부르신 이유가 어떤 겁니까?”

“죽을 것 같아서.”

직설적인 에일린의 말에 세은의 입이 다시 다물어졌다.

그런 세은을 보며 에일린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교리도 안 지켜, 머리도 나빠, 그렇다고 공손하지도 않아. 그런데 뭐가 예쁘다고 계속 봐줘야 하는지…….”

한탄을 줄줄 늘어놓은 에일린이 세은을 다시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더 시련을 주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이 정도로 용서하는 걸 고맙게 생각해. 적어도 지금 바알이 하는 짓은 꼭 막아야 하는 거니까.”

“……예.”

세은은 가만히 대답했다.

머릿속으로는 애초에 그럴 거면 이러지 말지, 라는 볼멘소리가 저절로 떠올랐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그녀를 따르는 입장상 어쩔 수 없는 일.

이번에는 여신도 굳이 꼬투리를 잡지 않고 넘어갔다.

“대신 마신의 자식 놈들 좀 확실하게 교육시켜. 감히 넘볼 곳을 넘봐야지.”

말을 하는 에일린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마계를 넘어서 다른 차원까지 넘보는 행동이 제대로 심기를 거스른 것 같았다.

“알겠지?”

세은은 가만히 고개를 숙여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 세은의 모습에 에일린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원의 법도상 더 이상 만남을 유지하는 건 반칙이라서. 알지? 마무리 잘 부탁해. 그래도 내 자식이잖아?”

세은이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여신의 마지막 말과 동시에 세은의 의식이 다시 저 멀리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세은이 정신을 잃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바알은 마기를 전부 정리해서 전장으로 뛰어든 다음이었다.

지금까지 모은 마기를 이용해 마계 곳곳에 뿌려놓은 씨앗을 발아시키려는 계획이 가동된 것이다.

“크으윽……!”

세은이 몸을 일으켰다.

고통이 밀려왔지만 이내 몸속을 가득 채우는 신성력이 느껴졌다.

상체를 일으킨 세은이 숨을 들이켜고 신성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순식간에 신성력이 온몸을 돌아 세은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짧았지만, 세은의 상처는 어느새 완벽하게 치료되었다.

“후우!”

충만하게 느껴지는 신성력에 세은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숨이 튀어나왔다.

오랜만의 감각이었다.

맑고도 정순한 기운.

정명한 신성력이 세은의 의지에 따라 온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채앵― 챙!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가까운 곳처럼 명확히 감지되었다.

밖에서 대규모 전투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늦지는 않았나 보네.”

완전히 몸을 일으킨 세은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달의 검과 별의 검을 집어 들었다.

바알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좋은 일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똑같은 마족이지만, 바알보다는 아바돈이 마왕이 되는 것이 쥐꼬리만큼은 나았다.

“거 참, 불친절한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니까.”

세은이 몸을 다시 한 번 점검하며 불만을 터트렸다.

차원의 경계이니, 법이니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지만.

적어도 너무 불친절한 것은 확실했다.

마치 한바탕 꿈을 꾼 기분.

그나마 몸 상태가 제대로 돌아온 것이 다행이다.

신성력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운 수발이 가능했다.

점검을 마친 세은은 양손에 달의 검과 별의 검을 강하게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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