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51. 가벼운 전초전 (1)
“언제까지 막아낼 수 있을까?”
텅― 터엉!
버티고 선 세은의 발끝의 흔들림이 최고조에 달했다.
‘치잇!’
점차 흘릴 수 있는 공격이 줄어들고 있었다.
마치 노도와 같은 해일이 밀려들고 있는 느낌.
그렇지만 세은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공격을 버티기만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두 신검을 들고 있는 팔이 서서히 반격을 준비했다.
우우우웅―
신성력을 끌어올린 세은이 거침 없이 움직임을 시작했다.
앞으로 나가 있는 오른발을 중심으로 몸 전체를 회전하며 바알의 공격을 비껴냈다.
동시에 회전력을 받은 별의 검이 기다란 반원을 그리며 바알의 옆을 파고든다.
‘회전을 이용해서……!’
그러나 그런 세은의 시도는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비껴내기 위해 내뻗은 달의 검이 회전을 받기는커녕 그대로 밀리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팽이를 강한 힘으로 옆에서 치면 그대로 팽이가 날아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만큼 바알의 힘은 강했다.
공격을 비껴내기는커녕 도리어 바알의 힘에 밀려나고 있었다.
기본적인 힘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쳇!”
결국 세은은 반원을 그리던 별의 검을 끝까지 전개하지 못하고 회수해야만 했다.
탓―
“하압!”
하지만 세은의 눈빛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다.
지탱하고 있던 뒷발을 축으로, 세은은 땅을 박차고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우우우우웅―
세은의 의지에 따라 반응하는 신성력.
어느새 달의 검에 어린 신성력이 한 치는 더 길어져 있었다.
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성력의 운용 능력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목에 걸린 성물이 언제부터인가 은은하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목숨을 걸 혈투.
상대가 마신의 대리자나 마찬가지인 바알이라는 점이 성물을 자극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선명한 순백의 빛무리가 세은의 검끝에 머물러 바알을 향해 쏟아져 나간다.
쏜살같이 나아가는 검격.
주변의 눅진한 마기를 흩어버리는 신성력의 검기가 바알의 전면을 강타했다.
콰앙― 쾅― 콰아앙!
엄청난 폭발음이 연달아 들린다.
“크윽!”
역시나 이번에도 밀려나왔다.
그러나 방금 전처럼 허무하게 튕겨 날아가지는 않았다.
튕겨 나오는 발 뒤꿈치에 힘을 주자 금방 멈춰 섰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달의 검과 별의 검을 휘두르며 계속해서 나아갔다.
마치 강력한 바람과 맞서듯이 단 반 보, 고작 반 보 앞을 목표로 밀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 반 보가 정말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당장에라도 뒤로 밀려날 것만 같았다.
텅― 터엉―!
결국 세은이 뒤로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치는 두 발에 또 다시 충격이 중첩되어 엄청나게 무거워진다.
“젠장!”
역시 검술만으로는 안 된다.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 분명했다.
우웅―
간절한 생각이 든 순간, 신성력의 기질이 조금 변화하기 시작했다.
안에서만 머물던 신성력이 바깥을 향해 튀어나가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당장에 효과는 드러났다.
달의 검의 끝에 더욱 환하게 순백의 빛무리가 어렸다.
콰가각―
백색의 검격이 바알의 공격을 상쇄했다.
뒤로 물러나던 발이 그 자리에서 버티고 섰다.
쓸려갈 듯 쓸려가지 않는 세은의 몸이 다시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강해진 신성력이 천천히 바알의 마기를 풀어 헤쳐 나간다.
“호오. 아주 재미없지는 않군.”
바알이 여유롭게 입을 열어서 세은을 자극했다.
“하긴, 방금 전에 그대로 끝났으면 실망할 뻔했어.”
‘위험……!’
세은은 바알의 말에 대답할 정신도 없이 바알의 마기를 풀어내기에 바빴다.
바알은 그런 세은을 보며 얼굴에 조소를 감추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이야.”
화아아악―
또 다시 거대한 파도가 치듯이 마기의 파도가 세은을 집어삼키기 위해 달려 나온다.
느린 듯하면서도 빈틈없이 밀려 나오는 바알의 마기.
계속해서 마기에 시달리던 세은의 옷이 버티지 못하고 가장자리부터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잘난 신성 마법은 왜 안 쓰는지 궁금하군.”
바알의 마기가 바로 지척까지 이르렀을 때였다.
계속해서 몸속으로 침투해 오려는 마기를 막아내던 신성력이 또 다시 변화를 일으켰다.
우우웅―
세은의 몸 안에 침투해 오는 마기를 막던 신성력이, 이제는 몸 밖으로 나가 밖에서부터 마기를 막아내고 있었다.
신성력은 순식간에 세은의 몸을 감싸며 방어막을 만들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신성력이 몸을 보호하게 된 긍정적인 상황.
그야말로 장족의 회복이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바알과 상대를 하다 보면 나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타탓―
신성력의 보호를 받는 세은의 몸이 조금 더 수월하게 왼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방금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몸놀림.
방어에 대한 부담이 조금 덜해지니 더욱 저돌적으로 발을 옮길 수가 있었다.
더 폭발적인 속도로 바알의 마기를 서핑하듯 넘기며 별의 검을 내질렀다.
잡념 없이 앞으로 내지른 검.
우우웅―
목에 걸린 성물이 갑자기 기다란 울음을 토해낸다.
파앙―
그리고.
몸에 있던 신성력이 별의 검을 매개체로 총탄처럼 튀어나갔다.
적을 심판하는 화살처럼, 한줄기의 신성력이 바알을 노리고 날카롭게 튀어나갔다.
마치 세은 안의 신성력이 성물의 울음에 답하는 것 같았다.
“좋아!”
성물과 환경이 만들어낸 작은 기적이었다.
당장 세은이 자유자재로 다룰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번 발출을 성공한 것과 성공하지 못한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쾅―!
방금 전까지는 전혀 다른 패턴의 공격에 바알의 손이 다급하게 전면을 막아냈다.
타앗―
‘다시 간다.’
세은은 바알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지 않았다.
방금 전에 신성력을 쏘아낸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넘어온 기세를 타지 않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세은은 왼손으로 별의 검을 들고 바닥을 박찼다.
신성력을 최대한 운용하면서 달려간 세은,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바알의 아이무르가 맞이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치이잉―
또 다시 마기의 벽이 펼쳐졌다.
벌써 세 번째 맞이하는 마기의 벽이지만 역시나 좀처럼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적어도 눈앞의 기술이 만능은 아니라는 사실은 안다.
완벽해 보이는 기술이라도, 어딘가에 허점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힘으로 승부를 내서는 답이 안 나와.’
세은은 정면 승부에 대한 생각을 버렸다.
아무리 비겁한 방법이라도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바알과 그가 하고 있는 것은 비무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있는 생사투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
쉐에에엑―
세은은 우선 바알을 교란하기 위해 더욱 공격적으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선으로 내려치는 베기로 시작해서, 회전력을 이용한 회전 베기.
그리고 반대 손을 이용한 기습적인 찌르기까지.
점점 범위가 넓어지고 강해지는 세은의 공격에 바알의 방어가 더욱 넓어졌다.
치이이이잉―
바알이 움직이는 아이무르를 따라 만들어지는 마기의 방패.
‘지금!’
세은은 바로 그 순간을 기다렸다.
순간적으로 전개되는 마기의 벽에 바알과 세은의 시야가 서로 차단된다.
세은의 발이 순식간에 바닥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공격에 적당한 위치를 찾기 위한 점프였다.
순식간에 마기의 벽이 시야 아래로 내려가며 바알의 머리가 보였다.
바알의 시선은 여전히 벽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쉐엑―
그리고 세은은 그 틈을 노리지 않고 바알의 정수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호오?”
바알 역시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세은을 발견했다.
치이잉―
또 다시 바알이 손을 휘둘러 마기의 벽을 만들어냈다.
우우우웅―
동시에 세은이 검 두 개를 대각선으로 교차해서 앞으로 밀고 나갔다.
검 두 개에 씐 신성력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작은 벽을 만들어낸다.
끼이잉―
신성력의 방패가 마기의 방패와 만난다.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방패와 방패가 만나는 곳이 중화되었다.
순간 마기의 방패에 가려졌던 바알의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응?”
갑작스런 상황에 바알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허무하게 뚫린 마기의 방패에 바알은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쉐엑―
세은이 그 틈을 노려 그대로 교차했던 검을 양 옆으로 휘둘렀다.
두 개의 검이 공간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아앙―!
그러나 역시 바알도 만만치 않은 상대.
당혹감도 잠시, 반대 손에 들고 있던 야그루시를 휘둘러 세은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냈다.
세은은 그런 바알의 방어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당황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바알이 고작 이렇게 당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전에 바알을 한 번 이겼을 때도 검술이 아니라 신성 마법을 주로 사용해서 이겼던 세은이다.
바알의 힘이 그 누구보다 강하다는 것은 세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계속해서 다른 마족들의 도전을 이겨낸 바알이 이렇게 허무하게 질 리가 없다.
터어엉―
바알은 여전히 위에 있는 세은을 다시 강하게 타격했다.
또 다시 검을 교차시켜 바알의 공격을 막은 세은은 그대로 하늘로 다시 떠올랐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든 허공임에도 불구하고, 세은은 오히려 별의 검을 새롭게 쥐었다.
마치 창을 쥔 것 같은 손 모양.
“하앗!”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별의 검을 투창하듯이 집어 던졌다.
쉐에에에엑―
손으로 뻗는 것과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별의 검이 바알을 향해 날아갔다.
채애앵!
“하하! 포기한 거냐?”
날아오는 별의 검을 튕겨낸 바알이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나 별의 검을 던진 세은은 그대로 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시간을 두고 세은의 공격이 바알의 가슴을 노리고 들어오고 있었다.
“흐아압!”
양손으로 꽉 쥔 달의 검.
더욱 힘이 실린 검격이 바알의 가슴을 향하여 빠르게 쇄도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파아앙―!
달의 검의 끝에서 순식간에 다시 신성력이 쏘아진다.
의도치 않은 삼연격.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차의 연격이었다.
아무리 바알이라도 세 번의 연격을 아무런 피해 없이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크윽?”
이미 별의 검을 쳐 낸 오른팔은 이미 무방비 상태.
다음으로는 왼팔로 쏘아진 신성력을 쳐 냈다.
그리고 마지막.
세은이 직접 양팔을 들고 달려오는 공격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서걱―
“크하아악?”
고통에 찬 신음 소리와 함께 피가 분수처럼 솟는다.
“이겼……!”
퍽!
환호를 지르려던 세은의 옆머리에서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다.
쿠웅―!
편두에 커다란 충격을 입은 세은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무,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