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86화 (186/225)

# 186

50. 바알의 성 (5)

파앗― 파아앗―

시류라도 탄 듯 세은의 공격은 점점 그 기세를 올려가고 있었다.

점점 더 빨라지는 공격에 마치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공간을 가르는 소리가 겹치고, 또 겹쳤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내던 공격은 어느새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으음!”

그런 세은의 공격에 맞서는 바알의 몸이 점점 더 격랑에 휩쓸린 것처럼 흔들린다.

마치 당장에라도 거센 물살에 휩쓸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바알의 곤봉들이 결국 짙은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잉―

이미 겪어본 힘.

그러나 시간이 흐른 만큼 바알의 실력 역시 예전 상태 그대로 답보해 있지 않았다.

추방의 권능이 깃든 곤봉, 아이무르가 먼저 그 힘을 발휘했다.

주변에 눅진하게 퍼져 있던 마기가 곤봉의 힘에 이끌려 모여들었다.

파앗!

그리고는 순식간에 거대한 마기의 거울이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졌다.

그 모습은 흡사 블랙홀.

그 무엇이라도 빨아들일 것 같은 칠흑이 마기의 거울 안에 존재했다.

인력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중력 같은 힘이다.

세은의 공격이 점차 그 힘을 잃고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숨 돌릴 틈 없이 바알을 몰아치던 세은의 검들이 그 속도를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달의 검의 힘이 반감된다.

별의 검의 날카로움이 순식간에 무뎌졌다.

“치잇!”

그리고 수세가 끝난 다음에 이어지는 공세.

모든 힘을 흡수한 마기의 방패는 그대로 창이 되어 세은을 향해 노도와 같이 뿜어져 나왔다.

완벽한 반격.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던 바알의 또 다른 곤봉, 야그루시가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왔다.

콰앙―!

“크흐흑!”

다급하게 달의 검과 별의 검을 교차해서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검 너머로 전해지는 충격까지 흡수할 수는 없는 노릇.

세은은 순식간에 수세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쾅― 쾅―!

이번에는 반대로 바알의 곤봉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

방금 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은은 신성력을 양 검에 집중하여 바알의 공격을 막는 데 집중했다.

세상 모든 일에 때가 있듯이, 전투에도 그 기세가 있다.

이미 기세는 바알에게로 넘어간 상황.

세은으로서는 방어에 전념하며 다시 자신에게 기세가 넘어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쾅― 콰앙―!

하지만 한번 흐름을 탄 바알의 기세는 가히 폭풍과도 같았다.

달의 검과 별의 검을 쉴 새 없이 휘두르며 바알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바알의 공격은 너무도 강하고 매서웠다.

공격을 막아내고는 있지만 그 충격까지는 도저히 흩어낼 여유가 없었다.

쩌엉―!

“흐억?”

결국 중첩되는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세은의 몸이 멀리 튕겨 나갔다.

텅!

세은의 몸이 벽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달의 검과 별의 검이라는 명검.

거기에 온 신성력을 집중하여 방어했지만, 바알의 두 곤봉도 예사 기물은 아니었다.

거기에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눅진한 마기는 틀림없이 세은에게는 불리한 환경이라 할 수 있다.

“끄으으…….”

벽에 처박힌 세은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신성력으로 몸을 보호할 수가 없는 지금, 오랜만에 느끼는 충격들이 하나같이 더 크게 다가왔다.

쿠웅―

얼마나 벽에 세게 박혔는지 이제야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세은의 몸이었다.

“겨우 이 정도인가?”

바알이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충분히 마무리를 위해 달려올 만한 한 상황.

역시 이상했다.

그러나 반대로 세은에게는 천우의 기회였다.

바닥에 쓰려졌던 세은이 이내 땅을 짚고 일어났다.

주변 환경의 영향 때문인지 유난히 더 강하게 느껴지는 바알이다.

조금만 더 충격을 받았으면 의식까지도 날아갈 뻔한 상황이었다.

벽에 부딪히고 추락한 충격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여 살짝 비틀거려야 했다.

욱신―

충격을 받은 어깨와 등에서 강한 고통이 느껴졌다.

“똥개도 제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던데?”

애써 고통을 참는 티를 지우며 세은이 응수했다.

그런 세은을 보는 바알의 입가에 가소롭다는 웃음이 걸렸다.

“하하하. 꼬리 만 개새끼 같은 몰골을 하고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치욕적인 말.

그러나 당장 저기에 흥분해서 달려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바알이 저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했다.

‘생각하자. 방법, 방법이 있을 거야.’

세은이 호흡을 고르며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아무리 현재 상태가 차이가 난다고 해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차이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세은은 그 차이를 잘 이용해야만 했다.

“지금 보니 꼬리만 만 것이 아니라 자존심도 말아버린 것 같은데?”

바알의 거듭되는 도발에도 세은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 도발에 울컥해서 움직일 순 없다.

나중에 이겨서 발밑에 바알을 두고 되갚아주는 것이 훨씬 통쾌할 일일 것이 분명했다.

“아! 그런데 말이야.”

그러나 이어진 바알의 말은 더 이상 세은이 때를 기다릴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말을 안 해줬네.”

“…….”

“대충 상황을 보니까 신의 종자에게 심어놓은 씨앗을 네가 발아시킨 것 같은데. 맞지?”

바알의 말에 세은은 단번에 체한을 떠올렸다.

그러나 겉으로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바알의 말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모른 척 하기는.”

바알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리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거 제대로 발아 못한 거거든?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었게?”

“네가 뭘 하고 있었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계속되는 바알의 헛소리에 세은이 까칠하게 대답했다.

“어이어이. 그게 무슨 섭섭한 말이야? 이게 왜 너랑 관계가 없어?”

왠지 모르게 신이 난 바알이 계속해서 입을 움직였다.

“요즘 들어 내 자리를 노리는 놈들이 묘하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내가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있었을 것 같아?”

치이이잉―

바알이 다시 아이무르를 원래의 자리에 꽂아놓자 마기가 웅혼하게 울기 시작했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동향은 파악하고 있었지, 그래서 준비했어. 이참에 힘을 보여주려고 말이야. 어차피 마계를 전부 내 밑으로 넣기 위해 준비한 힘이니 이번에 사용해도 되겠지.”

“그래서 뭐? 칭찬이라도 해달라고?”

“아니?”

바알의 얼굴에 엄청나게 환한 웃음이 차올랐다.

“네놈과 편을 먹은 놈들이 널 도와주러 오지 못한단 얘기지.”

“미친놈. 너 하나 잡는데 내가 왜 다른 놈들 도움을 받아?”

세은이 태연하게 바알의 말을 받아쳤다.

“글쎄? 딱 보니까 상태가 정상이 아닌데 말이야? 주인한테 버림이라도 받으셨나?”

“미친 새끼. 지랄은…….”

“이것 참. 그래도 미운 정도 정이라고 조언해 준 건데 엄청 까칠하게 구네.”

바알은 끝까지 세은을 도발했다.

“한마디로, 지금 나를 막지 않으면 너 혼자서 나를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세은의 머릿속은 다시 복잡해졌다.

‘후우…….’

아무래도 지금 혼자서 바알을 잡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아마도 바알의 말은 전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이 사실이 말하는 것은 단 하나.

어떻게든 최대한 빠르게 바알을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니, 처리하지 못하면 바알과 손속을 교환해 바닥에 박아놓은 아이무르라도 빼게 만들어야 했다.

타앗―

결국 세은의 몸이 다시 바알을 향해 짓쳐졌다.

시간이 없다.

일단은 부딪혀서 상대를 하고 봐야 하는 시간이었다.

쉐에엑―

달려 나간 세은의 눈이 다시 심유하게 가라앉았다.

당장은 급해서 달려 나갔지만, 다시 손속을 교환하기 시작한 이상 흥분하거나 잡생각을 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달의 검과 별의 검을 더욱 꽉 쥐어 휘두르며 사방의 눅진한 마기를 갈랐다.

터엉!

야그루시가 달의 검을 막아냈다.

힘으로 승부할 수는 없다.

방금 전에 겪은 상황으로 충분히 그 사실을 느낄 수가 있었다.

처음부터 멀쩡하지 않은 몸 상태이다.

그런데 신성력과 상극인 마기를 이긴다?

환경 자체가 이러한데 몸까지 좋지 않으니 이길 수가 없었다.

서로 상극인 힘끼리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더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아니면 최소한 주변 환경이라도 유리하거나.

하지만 둘 중 어느 것도 세은에게 해당되는 상황이 없었다.

쉐에엑― 쉐엑!

세은은 방금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힘으로 승부하는 대신 처음과 같이 속도와 빈틈을 찾는 데 주력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한 데미지를 주는 것이 필요했다.

사방 일 미터라는 조건이 걸려 있어도, 바알이 더 유리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됐다.

“하압!”

커다란 동작으로 내려치는 대신에 빠르게 별의 검을 찔러 넣었다.

바알의 손이 별의 검을 빠르게 쳐 냈다.

그러나 세은의 반대 손에는 달의 검이 여전히 들려 있다.

세은은 그대로 바깥으로 별의 검을 쳐 내느라 완벽하게 빈 공간이 생긴 바알의 옆구리를 베어나갔다.

콰앙―!

그러나 어느새 바닥에 꽂혀 있던 아이무르를 들어서 공격을 막아낸 바알.

세은의 베기를 막고 순식간에 반격을 들어왔다.

다행히 세은의 몸도 이미 움직임을 보인 다음이었다.

세은의 발이 빠르게 이동하며 바알의 반격을 피해냈다.

“휘유?”

바알의 눈이 순간적으로 반짝임을 보였다.

방금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세은의 움직임.

지금까지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힘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나 보지?”

바알이 다시 조롱을 던졌다.

“천하의 사냥개가 이게 무슨 수치일까? 하하하!”

그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세은에게 완벽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치욕을 감내해야 했던 과거의 분노가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조금 더 세은이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오래 전, 최대한 타격을 적게 받는 쪽으로 패배를 받아들였던 것이 생각났다.

인고의 시간을 지나, 드디어 그 반대의 상황을 재연하게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타앗―

그러나 바알이 어떤 표정을 짓든, 어떤 생각을 하든.

세은의 발은 계속해서 바닥을 밟고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었다.

쉐에엑―

“어림없지!”

신이 난 바알이 또 다시 세은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그 치욕, 반대로 느끼게 만들어주마.”

바알이 곤봉을 겨누며 소리쳤다.

그의 눈에는 어느새 짙은 광기가 떠올라 있었다.

그가 거칠게 두 곤봉을 휘둘렀다.

쾅― 쾅―!

쿠궁―!

바알의 강력한 공격이 거칠게 쏟아져 내린다.

세은은 신성력을 모조리 끌어 올리며 두 발을 바닥에 단단하게 박아 넣었다.

치이잉―

흘릴 수 있는 공격은 흘리고.

터엉―!

그럴 수 없는 공격은 막는다.

버티고 선 세은의 발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달의 검과 별의 검.

두 신검을 들고 있는 팔만이 어지럽게 바알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