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83화 (183/225)

# 183

50. 바알의 성 (2)

“다행히 시간 맞춰 도착했나 보군요. 첫 번째입니다.”

폭음을 들은 릴리트가 세은에게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회장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의 주인공들은 바로 바알의 권속들.

성채에 있던 모든 권속이 달려 나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다?”

아무리 외부에서의 공격이라지만 이렇게 바알의 본거지가 당황해하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은은 무언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바알에게 불만을 가진 건 아바돈님만이 아니지요.”

소란이 벌어지는 소리를 좇으며, 릴리트가 한마디를 더했다.

맞는 말이다.

바알이 한동안 조용했다고 하지만, 그건 그가 마왕이 된 세월 중에서는 극히 일부.

바알에게 불만을 가진 마왕이나 마족들은 많았고, 그건 바로 마왕 제2위인 아가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아가레스까지 함께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콰과과광―

릴리트와 세은이 대화를 주고받는 와중에도 플라우르스와 아라오크의 싸움이 더욱 격렬해졌다.

단숨에 플라우르스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라오크는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었다.

“대신 언질을 해두었습니다. 아가레스로서는 누가 이겨도 손해가 아니니 관망하기로 했습니다.”

“호오…….”

세은이 작게 감탄을 터트렸다.

알면 알수록 아바돈과 릴리트가 열심히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아가레스로서는 바알이 지면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푼 격이라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바알의 권속을 줄일 수 있어서 좋은 일.

굳이 방해할 이유가 없었다.

두두두두―

수많은 마족이 이동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숫자가 꽤 많은가 본데?”

릴리트는 세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을 꺼냈다.

“자, 이제 움직이실 시간입니다.”

“좋아.”

세은도 더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이다.

비록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끌어올린 상태.

완전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싸울 수는 있었다.

릴리트는 그런 세은을 살피며며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이 지도를 보시면, 바로 이곳이 바알이 현재 있으리라 짐작되는 장소입니다.”

언제 준비했는지 바알의 성채를 그려놓은 지도도 있다.

정말로 치밀한 준비에 세은이 고개를 들어 릴리트를 보았다.

릴리트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둘러서 말을 이었다.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계획이 꼬일 수도 있다.

릴리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현재 바알은 접객실에 있을 겁니다.”

릴리트는 연회장에서 접객실까지 이어지는 길을 기다란 손가락으로 쭉 이었다.

“길을 잃지 않고 가시다 보면, 돌아오는 아바돈님과 마주칠 겁니다. 그럼 바로 접객실로 가셔서 바알을 잡아주시면 됩니다.”

“아바돈이 올 때까지 말이지?”

“그렇습니다.”

“크게 어렵지 않군.”

세은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

“그런데 아바돈은 언제 올 예정이지?”

세은이 자신이 바알을 잡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무리라는 것을 안다.

괜히 무리하는 것보다는 언제까지 버티면 되는지 시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때입니다.”

“거 참. 한마디로 기약이 없다는 말이네.”

반대로 말하면, 아바돈이 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

릴리트의 그 한마디로 세은은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거기에 아바돈은 마족이 아니던가.

비록 서로의 필요에 따라 손을 잡고 있지만 나중에는 대척점에 설 자다.

차라리 아바돈의 계획이 실패하고 세은이 바알을 잡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좋아. 그럼 나는 약속을 지키러 가지.”

“…….”

릴리트는 세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세은 역시 대답을 원한 말은 아니었다.

모든 얘기를 들은 세은은, 몸을 날려 릴리트가 지도에서 보여주었던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 * *

타다닥―

세은의 신형이 복도를 빠르게 지나칠수록 시끄러운 소음들이 점차 사그라졌다.

그러나 계속 달려도 릴리트가 말한 것처럼 빠져나오는 아바돈과 마주치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한데?”

쉐에엑―

그리고 세은이 무엇인가 이상한 점을 느꼈을 때는, 이미 강렬한 공격이 세은에게 날아온 다음이었다.

“음?”

갑작스레 날아온 공격.

그 공격의 주체는 다름 아닌 복도를 지키고 있는 가고일이다.

아바돈보다 먼저 가고일을 마주한 것이 긍정적인 상황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스릉―

세은은 허리춤에서 달과 별의 검을 뽑아 들었다.

터엉―

세은은 땅을 박차고 가고일에게 뛰어들었다.

어쩌면 아직 아바돈이 나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바돈이 나오지 않아도 세은은 일단 전진해야만 하는 상황.

가고일 따위에 빼앗길 시간은 없었다.

“키아아악!”

가고일의 공격 역시 이어진다.

세은의 검에서 신성력이 솟아올랐다.

확실히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걱― 서걱―

그러나 그보다 더 나아진 것은 세은의 거침없는 검술이다.

단 두 번의 손짓에 마주 달려들던 가고일이 그대로 네 토막이 나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단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고일이 이렇게 허무하게 잘리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그만큼 달과 별의 검의 예기가, 세은의 검술이 훌륭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가고일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카악!”

앞에서 들려오는 괴성에 세은이 다시 한 번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타악―!

몸 상태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방어에 한해서다.

무엇이든 베어 넘겨 버리는 검의 날카로움은 신성력이 폭주하기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정도 마물들을 상대하는 데는 차고 넘쳤다.

그러나 가고일들은 어디서 생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혹시 방향을 잘못 들었나?”

마주쳐야 하는 아바돈 대신 가고일만 계속 나오자 세은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의문이 떠올랐다.

이미 맹약을 맺은 아바돈은 세은을 배신할 수 없다.

물론 릴리트와 아바돈의 계획이 어긋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가고일들이 세은이 오는 것을 알고 이렇게 한 곳에 몰려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밖의 소란에 합류하려 나가는 가고일들과 세은이 마주쳤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촤악―!

“큭?”

순간, 뒤에서 날아오는 매서운 마기에 세은이 다급히 몸을 앞으로 굴렸다.

서걱―

굴린 몸을 그대로 회전해서 일으킨 세은은 우선 앞에 남은 마지막 가고일을 베어 넘겼다.

“오호호! 이거 누구신가?”

“그러게. 이게 누구야?”

가고일을 전부 처리한 세은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갑작스레 뒤에서 짓쳐든 사내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비겁한 짓이 익숙하다 했더니, 세에레 아냐?”

뒤에서 세은을 공격한 마족은 바로, 얼음처럼 푸르고 시린 눈을 가진 마왕 제70위, 세에레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에, 새하얀 그리핀의 날개를 등에 달고 있는 모습은 언뜻 천족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겉모습에 속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세에레 역시 엄연히 마왕.

그 폭급하고 잔인한 성정, 그에 걸맞은 무력까지, 함부로 볼 수 없는 자였다.

하지만 세은은 별 두려움 없는 표정으로 세에레에게 선공을 퍼부었다.

콰아앙―!

어느새 세에레의 앞까지 도달한 세은이 검을 휘둘렀다.

세은의 검이 강렬한 신성력을 머금고 세에레를 내려쳤다.

세에레는 용케 세은의 검을 막아냈다.

“크으. 힘은 여전하군.”

나지막한 감탄.

그러나 세에레 역시 겁을 먹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들이 전투를 벌인 곳은 다름이 아닌 바알의 본성.

세에레는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여유는 그만큼 자신의 전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법이었다.

쉐에엑―

세은의 공격을 막아낸 세에레의 검이 세은을 노렸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뿐이다.

세은 역시 가볍게 검을 들어 세에레의 공격을 막아냈다.

세은은 달의 검으로 세에레의 공격을 막아내고, 반대 손에 쥐고 있는 별의 검을 휘둘러 다시 반격에 들어갔다.

콰앙―!

찰나의 순간, 세에레가 아슬아슬한 차이로 세은의 공격을 피했다.

애꿎은 바닥이 세은의 공격에 의해 굉음을 내며 움푹 파였다.

세은에게 공격을 당한 바닥이 사방으로 돌 파편을 튀기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함께 피어오르는 흙먼지.

순간 의도치 않게 세에레의 시야가 제한되었다.

쉐엑―

세은 역시 제대로 된 시야를 확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이라면 비네와의 전투 때 겪어봤다.

기감에 집중해 세에레가 있는 곳으로 검을 날렸다.

터엉!

그러나 이번에도 세은의 공격은 세에레의 방어에 막혔다.

“오호. 많이 약해졌군. 시렌!”

마계는 마계.

제약 없이 온전한 전력을 발휘하는 세에레다.

몸이 온전한 상태가 아닌 세은과 비등한 전투를 벌이기에는 충분한 강자였다.

더욱 자신감을 얻은 세에레가 충격을 털어내고 곧바로 공격을 시도했다.

쾅!

또 다시 세에레의 검과 세은의 검이 부딪히며 강렬한 폭음이 피어오른다.

챙― 채앵― 챙챙!

그리고 이어지는 여러 번의 합.

검과 검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연주가 좁은 복도를 가득 채웠다.

텅― 터엉!

순식간에 이십여 합의 공방이 이뤄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밀어내는 강렬한 공격.

세은과 세에레의 거리가 다시 벌어졌다.

“후우…….”

세은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당장 바알에게 가도 모자랄 판국이다.

그런데 고작 세에레 따위에게 발이 잡히고 있다니 답답한 노릇.

거기에 이 정도로 강렬하게 신성력을 발휘하면서 싸우면 다른 놈들이눈치채고 올지도 몰랐다.

‘뚫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분명히 빈틈이 보인다.

그러나 파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멀쩡한 상태라면 힘으로 밀어붙이기에 충분한 상황.

이러니 세은으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본 공자가 강해진 건가? 시렌이 약해진 건가?”

상황을 모르는 세에레는 싱글벙글, 세은을 약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세은을 보고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기는 했지만, 잘하면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근처에 있는 다른 마왕이 합류하기 전까지 버티겠다는 생각은 어느새 작아지고 없었다.

콰아앙―!

그리고 또 한 번 강렬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세에레의 신형이 흔들렸다.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한 세은의 공격을 완전히 방어해 내지 못했다.

서걱―

그리고 이어지는 이격.

순식간에 세에레의 가슴에 기다란 검상이 생겨났다.

“크흑……!”

가슴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고통에 세에레는 신음을 내뱉었다.

‘몰아붙였을 때 끝낸다.’

그런 세에레의 모습에 세은이 다시 한 번 이를 악물고 바닥을 박찼다.

터어엉―!

그러나 세은은 결국 이번에도 목적을 이룰 수가 없었다.

쿠오오오―

또 다른 하나.

강렬한 마기가 세은을 노리고 날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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