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79화 (179/225)

# 179

49. 계획의 시작 (1)

“이게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본래의 목적을 모두 해결하고 아바돈에게로 돌아온 세은이 물었다.

“무슨 말이기는, 지금 한 말 그대로지.”

아바돈은 태연하게 그런 세은의 말을 받았다.

세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담담한 아바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제대로 몸을 회복하지 못해서 기운이 처져 있는 상황이었는데, 어이가 없는 말을 들으니까 힘이 쭉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바알이 연회 날짜를 앞으로 당겼다고?”

“그렇던데?”

“…….”

방금 전과 변함없는 아바돈의 대답에 세은의 표정이 좋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록펠러에게 후유증을 벗어났던 경험에 대해서 듣고, 남은 시간 동안 추기경과 록펠러의 도움을 받아가며 열심히 기도를 했지만 몸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바로 바알과 대결을 해야 한다니.

말 그대로 자살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후우……. 그래서 그게 정확히 언제야?”

“2주 뒤.”

세은은 바알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아바돈의 계획에 동참한 상태였다.

이미 한 번 잡아본 상대라 바알의 전력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지금의 결정에 한몫했다.

그러나 그것도 자신이 몸이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가 가능한 것이었다.

아바돈의 도움을 받아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다 보면 몸이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은 예상과 달리 녹록치 않았다.

“끄응…….”

“문제라도 있나?”

아바돈이 얄밉게 세은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계획이 너무 급작스럽게 수정이 되니까 별로야.”

몸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세은은 계획을 핑계로 댔다.

“호오. 계획을 완벽하게 준수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

세은은 이번에는 아바돈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2주, 2주라…….’

이내 세은이 고개를 저었다.

2주 안에 적어도 바알이 지닌 전력의 8할까지는 회복을 해야 했다.

아니, 신성 마법만 사용할 수 있으면 8할이 아니라 원래의 능력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물론 세은이 검을 다룰 수 있고, 새로 얻은 한 쌍의 검이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든 명검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적당한 수준의 적들을 상대할 때의 일이었다.

바알 정도라면 단순히 검이 좋다고 해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그래, 2주. 하여튼 알았어.”

“2주 동안 불편함 없이 잘 쉬고 있지.”

“흥. 방해나 하지 말라고 잘 지시하라고.”

“걱정하지 마. 릴리트가 알아서 잘해줄 테니까.”

아바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릴리트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릴리트를 따라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세은은 슬쩍 질문을 던졌다.

“당연하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말이야.”

“네.”

“신성력을 사용해도 되는 장소겠지?”

“물론입니다.”

세은의 말에 릴리트는 빠르게 대답했다.

“얼마든지 사용하셔도 됩니다. 아바돈님만 들어갈 수 있는 심부로 가시는 거니까요.”

매우 만족스러운 릴리트의 대답에 세은은 흡족하게 웃으며 그녀를 따라 아바돈의 방을 나섰다.

* * *

“후우…….”

계속해서 기도를 올리던 세은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 기도는 일방적인 독백이 아니다.

기도를 올리는 상대와 어느 정도 주고받는 상호 교류적인 대화 방법 중 하나.

하지만 지금 세은은 혼자서 벽에다 대고 말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신성력을 폭주시켰다고 그거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세은이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박박 긁으면서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교리를 한두 개 어긴 것이 아니었다.

지구로 돌아가서는 거의 지키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지구에서도 교리를 지켜야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에이, 아예 차원 자체가 다른데, 설마…….”

세은은 혹시나 하는 생각을 털어버리고 록펠러가 전해주었던 얘기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세상에 불신자는 많습니다.”

록펠러가 자신이 폭주의 후유증에서 벗어난 사례를 얘기하기 전에 서론부터 꺼냈다.

“그렇지.”

그녀의 말은 당연했다.

세상에 신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종족에 따라, 혹은 신념에 따라 믿는 신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힘이 강한 신들이 있었는데, 에일린은 바로 그런 절대신 중 하나였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름보다 선신이라고 더 많이 불리는 존재.

바로 마신과 대척점에 있는 강인한 신이었다.

“그러나 여신께서 그 모든 이를 차별하시거나 싫어하시지는 않는 이유가 뭘까요?”

갑자기 교리 강의라도 하려는 듯한 록펠러의 모습에 세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른 이도 아니고 세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록펠러가 자신의 전 직업을 알 리가 없었기 때문에, 세은은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처음부터 믿지 않았으니까.”

“맞습니다.”

세은의 말에 록펠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지 않는 이들을 챙기는 것보다, 믿는 이들을 보살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니까.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은이 반문하자 록펠러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사랑을 주고, 보살피던 이들이 여신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더 상심이 크신 거죠.”

세은은 자신이 알고 있는 여신의 성격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거 마음은 약하다니까.”

“예?”

“아니야. 계속 얘기해.”

자신의 혼잣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록펠러가 다시 묻자, 세은은 손을 내저으며 다음 말을 꺼내기를 재촉했다.

“아, 네. 하여튼, 그래서 지금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후우.”

세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땅이 꺼질 듯한 한숨에 록펠러가 양쪽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며 세은에게 말했다.

“그래도 진정한 반성이 느껴지면, 여신께서는 무한한 자비로 용서해 주십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 중에 후유증에서 회복된 사람들의 숫자는?”

세은의 말에 록펠러가 잠시 손가락을 몇 개 접었다.

“음…….”

그리고는 이내 계산을 끝내고 해맑게 세은에게 대답했다.

“3할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3할……. 애매한 숫자네, 진짜.”

“그만큼 마음 깊이 신실한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끄응…….”

록펠러의 말에 세은이 앓는 소리를 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과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세은은 직접 에일린을 본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믿음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

다만.

“진실로 내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 것이 문제지.”

“예?”

“아냐. 아무것도.”

모순되게도, 오히려 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믿으면서 세은은 사후 세계에 크게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즉, 그가 모시는 신이 구원자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바로 문제였다.

지금 록펠러가 말하는 믿는다는 것과 세은이 신을 믿는다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어쩌지…….”

그러나 이제 와서 손바닥 뒤집듯이 마음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꾸기 싫은 것이 아니라, 바로 없는 것이었다.

마음이라는 것이 먹은 대로 움직여 주는 놈이라면, 세상에 근심 걱정을 달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같이 기도해 드릴게요. 어려운 와중에도 저희를 도와주신 신실하신 분이니, 여신께서도 금방 마음을 푸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잔뜩 구겨진 표정을 짓고 있는 세은을 향해 록펠러가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후우.”

그러나 세은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록펠러는 갑작스런 세은의 행동에 당황했다.

그러나 굳이 세은을 따라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역할을 도와주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끄응.”

밖으로 나오니 지구보다 훨씬 커다란 마계의 달이 하늘에서 은색 빛무리를 뿌리고 있었다.

지구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더욱 마음이 조급해졌다.

바싸고.

그 미친놈이 언제 행동을 개시할지 몰랐다.

아무래도 한국까지는 거리가 있어 당장 부모님이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휴우우……. 그래, 일단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봐야지.”

일단 록펠러가 에일린의 총애를 받는 것은 확실했다.

이들의 주장이 맞다면, 후유증에서 벗어난 것만 봐도 확실했다.

“일단 돌아가기 전까지는 도움을 받아야지.”

세은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이후로 진전이 없으니……”

록펠러의 도움을 받았던 지난 일주일을 생각하며 세은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해도 진전이 없어서 세은이 초조한 감을 지우지 못하자 록펠러가 계속 그를 다독였다.

“천천히 나아지는 게 아니고, 갑자기 한 번에 나아진다고 했지.”

록펠러가 위로를 하며 해준 말을 떠올리며 세은이 또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하여간 낫게 해줄 거면 차츰차츰 낫게 해주면 될 것이지, 무슨 기적이라도 연출하는 것처럼…….”

세은은 다시 자세를 잡고 몸 안의 신성력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멀쩡하다고 생각했는데, 록펠러와 추기경의 도움을 받아 몸을 세세하게 살피니 어딘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몸 안의 신성력이 순환을 방해받고 있었고, 마치 몸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발휘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손에서 검의 형태로 신성력을 발출하는 것도, 세은 정도라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세은이 그렇게라도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에 록펠러와 추기경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세은 역시 에일린에게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총애를 받았기 때문.

그리고.

“성물의 도움도 꽤 있는 것 같고 말이야.”

디바인 초커.

세은이 착용하고 있는 성물의 정식 이름이었다.

착용자의 목둘레에 맞게 크기가 조절되는 성물은, 지금은 세은의 목에 자리를 잡고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성물치고는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겉으로 봐서는 신성력도 느껴지지 않고, 커다란 능력도 없다.

다만 대대로 교황이 세습하는 성물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디바인 초커를 제외하고 방패나 해머 같은 다른 성물들은, 교단의 일선에서 일을 처리하는 성기사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신성력을 모으는 능력이 장난이 아니었네.”

그랬다.

성물은 신성력이 희박한 마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신성력을 세은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지금은 신성력이 이질적으로 생각해 세은의 몸 안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은이 발출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방금 전에 말한 이유에 더해 바로 성물의 덕이 컸다.

끊임없이 상당한 양의 신성력을 세은에게 전해주니, 검의 형태로 발출하기에는 충분한 양이 모이는 것이었다.

“후우…… 마지막에 돌려받아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초반에 비명횡사할 뻔했네.”

마계에 떨어져서 회복되지 않은 몸 상태로 마물들과 마주친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다행이었다.

아니, 성물을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의 상태까지 회복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는 수밖에.”

세은은 얼마 남지 않은 바알과의 결전을 위해, 다시 자리에 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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