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48. 배신자와 씨앗 (1)
달의 검이 도망자 중 한 명의 등을 관통하며 부드러운 소리를 주변에 뿜어냈다.
푸욱―
마치 꼬챙이에 고기를 꿰듯이 가볍게 관통당한 도망자는, 그대로 심장이 정지했다.
세은은 쉼 없이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으로 도망간 배신자를 쫓아 달려갔다.
이리저리 도망치는 배신자들을 정리하자니, 처음 추기경이 계획을 설명하면서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도 배신자는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네.」
「왜?」
「한 명이라면 우리가 아직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추기경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깃들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마왕들이라고 전부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잖은가?」
「그렇지.」
「괜히 우리를 없애려다가 뒤에서 공격이라도 당하면 큰 손해지.」
「그렇기는 하지.」
「허허. 너무 쉽게 인정하니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마음이 아프군.」
「딱 와서 보니 사실인데 뭐. 아니면 좋은 점만 골라서 말해줘?」
「그럴 필요는 없다네. 나도 상황이 심각한 것은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일세.」
「그런데 왜 교단 관리를 이렇게 하는 거야?」
세은의 질책 어린 말에 추기경이 민망한 어조로 대답했다.
「모두가 똘똘 뭉쳐 있는 상황에서, 아무나 의심하면 금이 가는 건 너무나 쉽지.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네.」
「그래서 지금 움직인다?」
「그렇지.」
하긴, 마왕도 아닌 아바돈이 알고 있을 정도면 어지간한 마왕들은 모두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내가 봐도 심각하기는 해.」
「그러니 도와주게.」
추기경의 입에서 다시 한 번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나왔다.
「알았으니까, 조건을 확실하게 하자고. 분명히 제대로 도움을 주고 같이 기도도 해주는 거야?」
「당연하다네. 아무리 여신께서 마음이 상하셨다고 해도, 이렇게 노력하는 자식을 어떻게 끝까지 외면하시겠나?」
「후우…….」
추기경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세은은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거기다 그렇게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고 말이다.
푸욱―
어느새 또 다른 도망자의 뒤를 잡은 세은이, 별의 검을 꽂아 넣으며 회상을 끝마쳤다.
세은의 검에 관통당한 배신자가 그대로 고꾸라지며 고통에 찬 단말마를 질렀다.
“커헉, 컥!”
이내 바닥으로 쓰러진 배신자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세은은 그렇게 자신이 처리할 놈들을 모두 처리했다.
남은 건 방금 이상하게 폭주한 체한을 추기경이 올 때까지 잘 잡아두는 일뿐.
“크흐으…….”
체한은 온몸을 움직일 수 없는 부상에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피부색이 정상이었다면, 얼굴도 벌게졌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미 새까맣게 물든 그의 피부는 더 이상 칠흑을 제외한 그 어느 색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크흐. 크흐으…….”
체한은 고통에 끊임없이 신음을 흘리면서도 눈동자를 굴려 주변의 상황을 주시했다.
“언제 다 잡지?”
“죽……인다…….”
대략 5분 정도 추기경을 기다리자,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어느 정도 고통에 익숙해지고, 체한이 신음을 멈췄다.
마기로 인해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추기경이 자신이 쫓아간 배신자들을 정리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으음…….”
추기경은 돌아오자마자 상황을 보고는 침음을 흘렸다.
바닥에 제압되어 있는 체한과, 세은을 번갈아 쳐다본 추기경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누구라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다른 이들도 상황을 완벽하게 모를 뿐이지, 느끼고 있는 충격은 추기경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떻게, 대체…….”
마기를 풀풀 흩날리는 체한을 보며 추기경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되기는? 생각보다 훨씬 엉망이라는 얘기지.”
“오…… 여신님…….”
세은의 말에 추기경이 성호를 그으며 에일린을 찾았다.
* * *
배신자.
어느 무리든, 그 무리를 좀먹는 이런 놈들에게도 급이라는 것이 있다.
배신자 중에서도 더 좋은 정보, 더 많은 정보를 물어다 줄 수 있는 놈들은 당연히 그 효용 가치를 더 인정받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간부들 사이에만 있을 리는 없지.”
추기경과 마주한 세은이 말했다.
“물론 그러할 걸세. 그렇게만 생각할 수는 없지.”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반인 중에는 배신자가 있어도 간부들 중에는 배신자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간부들 중에 배신자가 있는데, 일반인 중에 배신자가 없다는 사실은 어불성설.
간부에게까지 손을 뻗칠 정도면, 이미 일반인들 사이에 적의 손길이 암약해 있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그래서 일반인 중에 남아 있을 배신자를 찾기 위해 한 명을 남겼다는 말이군.”
“그렇다네.”
추기경이 배신자 중에서 한 명을 살려서 잡아왔을 때.
왜 5분이나 되는 시간이 걸렸는지에 대한 의문은 바로 풀렸다.
그러나 그 일은 세은이 할 일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세은은 외부인이었으니까.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추기경의 말은 세은을 경악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부탁 좀 하겠네. 심문을 해줄 수 있겠나.”
“뭐?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허허. 심문을 부탁한다고 했다네.”
“내가 왜?”
세은이 코웃음을 쳤다.
“이미 배신자들을 색출하는 데 도움을 준 걸로, 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렇지, 자네는 나와 약속한 것을 충실히 지켰다네.”
“그런데 왜 갑자기 이상한 일을 떠맡겨?”
기도 차지 않는다는 세은의 태도에 추기경이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내부의 분열을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하다네.”
“그래서?”
“하지만 배신자들을 색출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일이지 않나?”
추기경이 웃는 낯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자네에게 부탁할 수밖에. 정말로 마지막 부탁이네. 고귀하신 여신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끄응…….”
아마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면, 세은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은은 어찌 되었건 추기경의 도움을 잘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상황이다.
거기에 이미 도움을 주기 위해 한 손을 거들기도 했다.
여기까지 개입하고서 냉정하게 쳐내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교단의 일에 봉사함으로써 조금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적지 않았다.
“휴우…….”
세은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하튼 생각하면 할수록 도와주는 것이 도와주지 않는 것보다 더 이익이었다.
“좋아. 어차피 내부가 수습될 동안 기다려야 하니 시간 때우는 걸로 치지, 뭐.”
“허허. 내 자네가 도와줄 거라고 믿었다네. 정말로 고마우이.”
추기경은 정말로 환하게 웃으며 세은의 양손을 잡았다.
* * *
“……커헉!”
세은은 체한을 차가운 감옥 바닥에 가볍게 내던진 채 좌우로 목을 풀었다.
목을 푸는 세은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귀찮음과 짜증이 가득 담겨 있는 그런 표정.
“후우. 귀찮아 죽겠네.”
그리고 그런 세은을 바라보는 체한의 피부색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체한은 이제, 거의 마물에 가까운 짙은 마기를 온몸에서 뿜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어이.”
“…….”
세은이 가볍게 체한을 불렀다.
그러나 체한은 세은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퍽―
그런 체한의 모습에 세은은 말없이 발을 휘둘러 얼굴을 가격했다.
“큭……!”
힘이 실린 발길질에 정확히 복부를 맞은 체한이 뒤로 날아갔다.
“우욱!”
제대로 내장이 흔들렸는지, 속에 품고 있던 음식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세은은 가만히 그런 체한을 내려다보았다.
어차피 쉽게 얘기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다른 놈들은 체한처럼 변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체한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하이어의 주도 아래 단체로 배신에 가담한 것과는 달리, 체한은 혼자서 배신에 가담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더 정보를 캐내기 힘든 것은 당연했다.
“퉤! 차라리 죽이는 게 나을 거다.”
토악질을 끝낸 체한은, 입 속에 남아 있는 토사물을 세은에게로 뱉으며 말했다.
“지랄. 판단은 내가 하니까 얌전히 대답이나 해.”
세은은 가볍게 욕설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네가 정보를 전해주던 마족이 누구지?”
“…….”
그러나 체한은 마치 입에 풀이라도 붙인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꾸욱―
세은은 그런 체한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손을 지그시 밟았다.
“……크흐으으.”
세은의 발에 힘이 들어갈수록, 체한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역시 미친놈한테는 매가 약이라니까.”
세은의 여유 넘치는 태도와 말과는 달리, 체한의 몸에서는 살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세은은 매서운 체한의 살기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남은 체한의 손도 반대발로 지그시 밟았다.
“크하아아!”
양손이 밟힌 만큼 체한이 느끼는 고통 역시 가중되었다.
세은에게 밟힌 두 손이 바닥에 붙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납작하게 엎드린 자세가 된 체한은, 계속해서 살기를 폭발시켰다.
그리고 늘어나는 살기만큼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도 늘어났다.
“호오?”
계속해서 증식하는 마기에 세은이 호기심을 가지고 체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은의 기대에 부응하듯이 계속 솟아나던 체한의 마기는, 어느 순간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죽인다!”
퍼엉―!
세은이 밟고 있던 두 손에서 마기가 폭사되며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의 반동으로 세은의 몸이 하늘로 살짝 날아올랐다.
“죽어!”
동시에 두 손이 자유롭게 풀려난 체한이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새가 아닌 이상, 공중에서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상식이었다.
체한은 이번에는 눈앞의 건방진 놈의 심장을 씹어 먹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법인데?”
세은은 그런 체한은 보며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스르릉―
이내 세은의 움직임에 맞춰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
툭―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체한의 손이 목표물을 앞에 두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단순하게 검을 휘두른 것뿐이지만, 그 한 수로 체한의 한쪽 손목이 완전히 몸에서 분리되었다.
“크허억!”
체한은 자신의 손목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커다란 고통을 느끼며 괴성을 질렀다.
안타깝게도 세은의 방심을 노리려던 체한의 계획은 허무하게 무산되었다.
“어, 어떻게 이런…….”
체한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강한 놈이 대체 어디서?
그것도 자신이 판 정보를 듣고 찾아오다니.
정말로 여신의 뜻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그렇다면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런 도움도…….
“젠장! 젠장! 그럴 리가 없어!”
체한은 모든 의식을 잠식할 것 같은 생각의 홍수에 저항하며 고함을 질렀다.
남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다시 세은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