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47. 솎아내기 (3)
체한이 수련장에 남기고 온 정보를 수정하고 돌아왔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행렬에 감돌고 있었다.
“대장!”
“체한? 왜 이렇게 늦었나?”
“생각해 보니 이동 경로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 이런. 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군. 돌아오느라 수고했네.”
“아닙니다!”
미리 숙지하고 있던 경로가 아니라, 체한은 다시 행렬을 찾아 돌아오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다.
대규모의 인원이 움직였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쫓아오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 자네 말.”
“고마워.”
동료가 잠시 맡고 있던 체한의 말의 고삐를 체한에게 건네주었다.
체한은 자신의 말을 돌려받아 가볍게 안장에 올라탔다.
말에 올라타서 주위를 둘러보니 행렬의 어수선함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어수선한 겁니까?”
체한이 숨을 돌리며 랜돌프에게 질문했다.
“루트가 직선이 아니라는 것을 감이 좋은 몇 명이 알아챈 거지.”
“아!”
랜돌프의 말에 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정확한 이동 경로를 잘 몰라서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이동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덕분에 체한이 이렇게 찾아올 수도 있었던 일.
감이 좋은 사람이라면 길을 뱅뱅 돌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냥 놔두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아, 그렇습니까?”
“아직은 크게 문제가 없으니까.”
랜돌프가 체한이 없는 동안 있었던 일을 그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목적지가 다시 변경되었다.”
“예?”
묵묵히 랜돌프가 전해주는 정보를 듣고 있던 체한이 놀라 그에게 큰 소리로 반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쉿! 다른 이들이 들을 수도 있으니 목소리를 낮춰.”
그러나 체한은 너무나 어이가 없는 상황에 랜돌프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분명히 불과 두세 시간 전에 목적지가 바뀌었다고 해서 힘들게 수련장에 다녀온 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목적지가 바뀌었다니 체한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미치고 팔짝 뛸 만한 노릇.
랜돌프의 말이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은신처를 바꾸는 대규모 작전이 애들 장난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몇 시간 만에 손바닥 뒤집듯이 목적지를 바꾼다고?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작전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맞는 겁니까?”
“체한,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랜돌프는 체한이 목소리를 낮추지 않자 다시 나지막하게 경고를 날렸다.
그러나 이미 당혹감에 휩싸인 체한은 계속해서 랜돌프에게 속사포처럼 질문을 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대체 이게 무슨……!”
체한의 목소리가 작아질 기미가 보이지를 않자, 상황을 정리할 필요를 느낀 랜돌프가 체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체한!”
“이게 대체 말이 되는 겁…… 컥?”
랜돌프가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체한이 진정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랜돌프는 망설임 없이 체한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퍽!
체한은 둔탁한 고통을 느끼며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단숨에 낙마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강렬한 공격이었다.
“조용히 해. 불안감을 불식시켜야 할 놈이 오히려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는 지금의 행동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랜돌프는 잔뜩 으르렁거리며 체한에게 훈계했다.
비록 체한이 좋은 부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가 보호해야 할 행렬이 더욱 우선 순위였다.
“크윽…….”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설명을 해줄 테니 잘 들어. 지금부터 내 말이 모두 끝날 때까지 질문은 불허한다.”
“…….”
“알겠나?”
“……예.”
랜돌프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체한이 대답했다.
주위의 다른 동료들은 그런 체한과 랜돌프의 모습을 모른 척했다.
대장인 랜돌프가 직접 나선 이상, 둘의 대화에 끼어드는 것은 심각한 월권 행위였다.
그리고 랜돌프의 행동에 딱히 문제도 없다.
둘의 일은 둘이 해결하게 놔두고, 각자가 맡은 임무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일단 왜 목적지가 다시 바뀌었는지는 말을 해주지 못하겠군. 이건 추기경님에게 들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하, 하지만!”
체한이 다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자 랜돌프가 눈을 부라렸다.
랜돌프의 단호한 모습에 체한이 찔끔거리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체한이 입을 꾹 잠그는 것을 확인한 랜돌프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일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추기경님께서 다시 자리를 만드신다고 하셨으니 그때 알게 될 거야.”
“후우…….”
체한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지?
“그리고 새로 바뀐 목적지는, 우리가 원래 숙지하고 있던 바로 그 장소다.”
“예?”
랜돌프의 말에 결국 체한이 참지 못하고 반문을 하고야 말았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고?
대체 왜? 무슨 이유로?
그럼 체한이 방금 전에 수련장까지 다녀온 일은 그야말로 헛짓거리 중의 헛짓거리라는 말이었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추기경님이 하시는 일이다. 우리는 그분을 믿고 따르는 수밖에.”
척―
랜돌프가 어이가 없어서 정신이 나가 있는 체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격려했다.
“잠시 후면 알 수 있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동요하지 마. 모든 일은 여신의 뜻대로.”
랜돌프가 여전히 멍한 상태인 체한을 뒤로하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그럼 이제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겠네.”
추기경이 여전히 변함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좌중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 모였을 때보다 행렬과 더 멀리 떨어진 곳에 모인 간부들은, 추기경의 말에 모두 신경을 집중했다.
이 자리의 모두가 추기경이 왜 갑자기 이렇게 행동하는지 궁금해하고 있던 것이다.
추기경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는 미리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라고 강조하는 이가 바로 추기경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추기경이 이렇게 즉흥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다.”
추기경이 드디어 가장 큰 문제를 내부에 공개했다.
추기경의 말을 들은 대부분의 간부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예상도 하지 못한 추기경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주위를 훑었다.
그러나 머리 회전이 빠르고 눈치가 빠른 몇 명은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는지 매우 담담한 표정이었다.
애초에 추기경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 때부터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기경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좌중을 둘러본 후 계속해서 자신이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미리 말을 하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네. 의심했다고 기분 나빠 하지 마시게들.”
“아닙니다!”
추기경의 말에 랜돌프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신실한 랜돌프는, 의심을 받았다는 불쾌감보다 우리 안에 배신자가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란 상태였다.
그리고 배신자를 잡기 위해서 추기경이 한 일이라면, 도가 지나치는 일만 아니라면 이해할 수가 있었다.
“배신자가 있는 것은 확실한 겁니까?”
누군가가 던진 질문에 추기경이 바로 대답했다.
“물론일세.”
“혹시 어떤 증거로 그리 생각하시는지 알 수가 있을까요?”
“허허. 그걸 공개하면 정말로 배신자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겠나?”
추기경은 가볍게 그 청을 물리쳤다.
“그럼 배신자를 잡는 것과 이 일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은신처로 가는 것은 확실한 겁니까?”
여기저기서 질문이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왔다.
“아아. 진정들 하게.”
추기경은 가볍게 손을 들어 그런 주위를 진정시켰다.
“궁금한 것들이 많겠지만, 일단은 배신자를 추려내는 데 협조들을 해주기를 바라네.”
“당연합니다!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또 다시 랜돌프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충심이 넘치는 랜돌프의 태도에 추기경이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별일 아니네. 처음 내가 목적지가 바뀌었다고 했을 때부터 행렬에서 벗어났던 사람들을 모두 내 앞으로 불러주게.”
추기경의 명령에 목적지가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 행렬에서 벗어났던 인원들이 모두 중앙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당연히 체한도 포함되어 있었다.
“랜돌프, 자네 부하들 중에는 체한 한 명인가?”
“예. 그렇습니다.”
공교롭게도 랜돌프의 휘하에서는 행렬을 벗어났던 인원이 체한 하나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체한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잔뜩 긴장하고 있던 체한은, 자신 혼자만 앞으로 나가게 되자 더욱 긴장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이어 쪽의 인원이 많이 중앙으로 나와서 긴장을 덜어낼 수가 있었다.
“흐음. 이게 전부인가?”
“예. 그렇습니다.”
추기경의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이게 전부인가?”
그러나 추기경은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졌다.
그런 추기경의 모습에 다른 부하들이 의문을 품고 추기경에게 질문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그때, 아무도 없던 나무 위에서 세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몇 명이 빠져 있는데?”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추기경을 제외한 모두가 다시 한 번 당황했다.
그러나 추기경의 축복까지 받은 세은의 기척을 잡아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심지어 추기경조차도 세은의 기척을 읽어내지 못해서 허공에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누, 누구냐?”
“이게 무슨 일입니까? 추기경님!”
당황스러워하는 모두의 위에서, 나무 위에서 세은이 뛰어내렸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나무 위에서 세은이 낙하하자 좌중의 모두가 긴장하며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추기경에게 말했다.
“이거이거, 조직 관리 좀 제대로 해야겠는데?”
“……그 정도인가?”
“완전히 엉망이야.”
추기경의 말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안 망하고 굴러간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허어. 통탄할 일이로다.”
참담한 표정의 추기경이 한숨을 내쉬며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여전히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방금 거짓을 고한 자는 왜 그런지 당장 이유를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특히 당황한 하이어가 추기경에게 물었다.
처음 랜돌프와 함께 따로 명령을 하달받았던 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허나 그런 하이어를 보는 추기경의 표정에서는 어느새 미소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어떤가?”
“거짓이 너무 많아.”
“허어…….”
추기경이 무엇에 대해 묻는지 알고 있는 세은은 가감 없이 바로 대답을 주었다.
“거짓이라니!”
“응? 그럼 아니라는 거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하이어의 말에 세은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왜 외부에 나갔던 인원 몇 명을 숨기지?”
“이놈! 네 말을 증명할 수가 있느냐!”
“내가 직접 봤으니까.”
“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추기경님, 저런 말을 믿으십……”
하이어가 미처 뭐라고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세은의 허리에서 검이 뽑혀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달의 검이 하이어의 목을 가로질렀다.
하이어의 목이 몸에서 분리되어 땅에 떨어지는 순간까지, 주변의 모든 이들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이어의 목이 바닥에 떨어져 구르자, 그들에게 현실 감각이 덮쳐왔다.
“허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