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47. 솎아내기 (2)
랜돌프에게는 목적지가 어디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동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어야 지형지물을 이용한 대비를 할 수가 있었다.
히잉―!
다른 사람들도 속속히 선두로 모이는 소리가 들렸다.
랜돌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간부들도 작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랜돌프!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나도 아직 모르겠네.”
선두에 늦게 합류한 이들은, 먼저 도착해 있는 랜돌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먼저 도착한 랜돌프도 상황을 모르기는 매한가지.
그저 추기경이 상황을 설명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추기경님!”
뒤늦게 도착한 다른 이들 또한, 랜돌프와 마찬가지로 추기경에게 답을 구했지만 추기경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계속해서 모두가 모일 때까지 기다리자는 추기경의 말에, 선두를 형성하고 있는 무리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이제 다 온 것 같군.”
워워―
선두로 모일 만한 사람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추기경이 행렬을 멈춰 세웠다.
추기경의 지시에 따라, 행렬은 일사불란하게 이동을 멈췄다.
“자, 그럼 잠시 이동해서 이야기를 하지.”
잠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경계를 철저히 하게 지시를 내린 추기경은, 간부들을 데리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행렬이 보이고, 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되자 추기경이 모인 이들에게 말을 시작했다.
“다들 어떤 이유로 나를 찾았는지 알고 있네.”
“예! 어떤 이유인지 알려주십시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추기경님.”
모두가 똑같은 표정으로 추기경에게 답을 구했다.
추기경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의 질문에 답을 내놓았다.
“우리는 원래 우리가 숙지했던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네.”
“예?”
“그럼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설마 했던 것이 사실로 밝혀지자 좌중의 모두가 당황했다.
그들이 모르는 은신처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교단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핵심 인물들이었다.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왔으이.”
추기경은 여전히 미동조차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랜돌프, 버킷, 하이어는 앞으로 오게. 자네들에게 목적지를 가르쳐 줄 테니 아래에 전파하시게. 다른 이들은 우선 제자리로 돌아가서 임무를 수행해. 너무 자리를 오래 비우면 동요가 생길 수 있어.”
“아, 알겠습니다.”
추기경의 말에 호명된 셋을 제외한 나머지는 바로 자리로 돌아갔다.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고, 각 분야의 좌장들을 통해서 전파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일말의 불안감이 깃들어 있던 모두의 표정에 그제야 안도감이 찾아왔다.
히이이잉―
다그닥― 다그닥―
남은 인원을 제외한 모두가 말을 재촉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추기경은 남은 세 명을 돌아보며 한 명씩 자신에게로 불렀다.
“아무래도 목적지가 바뀐 만큼, 임무에도 변화가 있으니 한 명씩 명령을 하달하겠네.”
“알겠습니다!”
“예!”
항상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서 분업화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은 추기경의 말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각자 담당한 분야에 따라 추기경에게 임무를 하달받은 이들은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걸로 된 건가?”
모습을 숨기고 있던 세은이 나타나면서 추기경에게 물었다.
추기경이 힐끗 그를 확인하더니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적어도 용의자는 확실하게 줄일 수 있겠지.”
“그렇기는 하지.”
추기경의 말에 세은이 동의를 표했다.
“그래도 각기 다른 세 곳의 장소를 알려주는 것은 너무 리스크가 큰 방법인 것 같은데 말이야.”
“물론, 저 셋이 정보를 공유한다면 그렇게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네.”
“저들은 리더를 믿으니까.”
세은의 말에 추기경의 싱긋 웃음을 지었다.
“허허. 그것보다는 아마 그동안 경험으로 쌓인 공포심 때문이지. 모든 정보를 한 사람이 알고 있으면 그대로 모두가 궤멸이니까 말일세.”
“그럴 수도 있겠네.”
세은은 일리가 있는 추기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방금 전에 하던 말을 다시 이어서 꺼냈다.
“그래도 배신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전체에서 찾는 것보다는, 그래도 일부에서 찾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겠나?”
“잘못하다가는 하나를 전부 뒤집어엎어야 할 판이기는 한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내 개인으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네.”
추기경의 말에 세은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나는 원하는 대로 도움만 주면 되니까.”
“부탁하겠네.”
추기경의 말과 동시에, 세은의 신형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 * *
“대장님,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랜돌프가 제자리로 복귀하자마자, 체한과 샘이 그에게 물었다.
랜돌프는 살짝 주변을 둘러보고는 둘에게 먼저 추기경에게 들은 목적지를 전파했다.
원래 다음 은신처로 내정되어 있던 곳에서 서쪽으로 상당한 거리에 있는 곳이 목적지였다.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전해준 정보랑 착오가 있겠는데…….’
랜돌프의 말을 들은 체한은 내심 초조함을 느꼈다.
수련장에 적어놓고 온 정보와 목적지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잘못하다가는 이대로 연락이 끊어질 수도 있는 상황.
무엇인가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서 바로 새로운 은신처로 가지 않고 조금 돌아서 간다고 하니, 주의를 더 경계하도록.”
“예!”
“무슨 문제라도 있답니까?”
바로 대답을 하는 샘과는 달리, 체한이 다시 한 번 랜돌프에게 이유를 물었다.
랜돌프는 별다른 의심 없이 체한의 말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아무래도 추기경님께서 들은 정보가 있으신 것 같다. 그러니 더 철저한 경계를 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랜돌프의 말을 들은 체한은 역시 샘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바뀐 정보를 전하지?’
체한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뒤로 빠져서 수련장에 다녀올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다행히 모든 인원이 한 번에 움직이는 거라 여태까지 이동한 실제적인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체한 혼자서라면 충분히 짧은 시간 내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힘들어진다. 얼른 방법을 생각해야 해.’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돌아갔다가 오기 힘든 것이 당연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체한은, 이내 괜찮은 핑계를 한 가지 떠올릴 수가 있었다.
“대장님!”
“응?”
체한의 부름에 랜돌프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혹시 모르니 제가 한번 주위를 경계하고 오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아닙니다. 대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추기경님이 괜히 조심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제가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가장 후미이니 괜찮아.”
‘크윽…….’
체한은 자신의 말이 잘 먹히지 않자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그러나 이대로 순순히 물러설 수는 없는 일.
필사적으로 연기를 하며 랜돌프를 계속 설득해 나갔다.
“그래도 미리 아는 것이 더 대비를 하기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평소와 다른 체한의 모습에 랜돌프가 무엇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러나 체한의 말에 크게 이상한 점은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경계를 해서 나쁠 것은 없지.”
“그, 그렇습니다.”
“다녀오게. 대신 빠르게 다녀와야 해.”
랜돌프가 조건을 달아 체한에게 이동을 허락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말일세.”
“물론입니다!”
랜돌프가 허가를 하자, 체한은 반색하며 대답했다.
지금의 위치에서 수련장까지는 정확히 한 시간 정도 거리였다.
물론 왕복으로 다녀오면 총 두 시간이 걸리는 상당한 시간의 거리지만, 경계를 하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해 늦었다고 하면 얼버무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비상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활동은 재량권을 부여받은 상태.
하지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무리를 해서라도 시간을 줄이기는 해야 했다.
은신처는 아직 남아 있었고, 지금 의심을 받으면 자신의 이용가치는 여기서 끝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와.”
랜돌프의 격려를 받으며, 체한은 은밀한 이동을 위해 말을 동료에게 맡겼다.
현재 체한보다 뒤에 있는 인원은 없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일은 없었다.
기존의 연습한 전술이 아닌 만큼 새로 파견될 수도 있는 일이다.
체한은 속도를 극성으로 끌어올리면서도 주위의 경계를 절대로 늦추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을 보이면 변명을 하기가 힘든 상황.
그러나 다행히도 자신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의 기척을 느끼지는 못했다.
“후우. 갑자기 이게 무슨 고생인지……. 젠장!”
체한은 수련장으로 돌아가면서 불평을 터트렸다.
물론, 새로운 은신처에 도착해서 다시 이곳으로 나와도 된다.
그러나 새로운 은신처가 어디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것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거리가 멀면 수련장까지 오기도 힘들뿐더러, 자신이 정보를 갱신하기 전에 이미 잘못된 정보가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조금 더 서둘러야겠어.”
탓― 타다닥―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체한은 쉴 새 없이 달렸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것보다도 시간 단축이 가장 필요했다.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오래 버티지 못해.’
체한은 동료들을 배신한다는 죄책감을 합리화하며 더욱 빠르게 내달았다.
체한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커다란 이유를 꼽으라면 두 가지를 고를 수가 있었다.
첫째는 마계의 구조적 한계.
마기가 대기를 구성하고 있는 마계의 특성상, 신성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적어도 어느 정도 숙련되지 않고서는 신성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환경.
물론 신성력이 마기와 상극이라지만, 그 점은 신성력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마기의 농도가 짙다 보니 같은 수준이라면 신성력을 사용하는 이들이 더 불리한 것이 사실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다름이 아닌 바로 마왕들이었다.
마계를 지배하고 있는 마왕들은, 말 그대로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정점에 오른 괴물들이었다.
가끔 주변의 모든 것에 무심한 돌연변이들이 있기도 하고, 모든 것에 관심이 있는 특이한 종자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강자존이 기본인 마계에서 힘과 공포로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사실이 그들이 참을성이 많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참을성이 없는 만큼, 마기와 상극이라 거슬리는 신성력을 참아줄 만한 성품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당연히 마왕들을 이기기에는 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몰리고 또 몰려서 시궁창의 쥐처럼 숨어사는 신세가 된 것이 아닌가.
체한은 더 이상 마계에서 여신의 뜻을 펼치는 것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능성이 없는 것에 매달리느니 적과 협력하여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체한에게 정보를 원한 마왕들은 바로 은신처를 정리하지 않았다.
덕분에 체한은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를 보고해야만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아마도 완전히 뿌리를 뽑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것이 체한이 예상할 수 있는 전부였다.
“휴우. 거의 다 왔네.”
체한이 어느덧 시야에 들어온 수련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온 힘을 다해서 달린 탓에 폐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시간을 단축할 수가 있었다.
“어디에 있지?”
안으로 들어간 체한은, 아까 전에 자신이 아무렇게나 구겨서 집어던진 종이를 찾아 내용을 수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