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66화 (166/225)

# 166

45. 상급 마족 아바돈(3)

세은은 순식간에 마을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아바돈의 영향인지 숲은 기묘할 정도로 조용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숲에 있던 드워프들은 모두 급하게 마을로 숨어 들어간 것 같았다.

주변에 널브러진 작업도구들이 급박한 피난 현장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급작스럽게 나타난 아바돈 때문에 제대로 대피할 시간도 없이 도망친 것이 보였다.

괜히 마족이 왔을 때 작업을 하다가 신경을 거스르거나 시선을 끌면 안 되니 대피는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물론, 아바돈이 드워프 마을에 방문하기 전에 친절하게 언제 온다고 통보를 하고 올 리도 만무하니까.

먼저 숲으로 나와 자리를 잡은 세은은 아바돈이 따라오기를 기다렸다.

“그레모리도 그렇고, 요즘 마족 놈들은 뭘 잘못 먹고 자라는 건가?”

대륙을 넘어오는 마족들은 전부가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놈들.

그들의 목적은 대륙의 생명체를 이용해서 마기를 뽑아내 마계에서 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거래를 하자는 일은 거의 없었다.

흑마법사들에게 처음 소환될 때면 모를까.

처음에는 흑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대륙으로 소환이 되어야 하니 당연했다.

“오네.”

아바돈을 기다리던 세은의 눈동자가 한 곳을 향했다.

아바돈은 한껏 여유가 느껴지는 몸짓으로 세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빨리 좀 오지?”

“하하. 여러모로 간이 부은 놈은 맞군. 더욱 마음에 들어.”

아바돈이 세은의 재촉을 들으며 웃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써먹을 수 있겠지.

예상외의 수확에 아바돈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이 신의 종자를 잘 설득해서 써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마족이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이리로 사람을 불러낸 거야?”

“…….”

개소리라는 단어에 아바돈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겁이 없는 것이 좋다지만, 자신에게까지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말을 조심하지, 인간. 경고다. 마신의 이름 아래 목숨을 거두지 않겠다 맹세했지만, 더 이상 건방지게 굴면 팔을 가져가겠다.”

아바돈의 말에 세은이 피식 비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글쎄? 일단 하고 싶은 말이나 먼저 해보지?”

세은의 태도에서 아바돈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자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과 같은 세은의 태도에 아바돈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 나와 주변을 잠식했다.

그러나 세은은 태연하게 아바돈의 살기를 받아 넘겼다.

아무리 신성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 기습을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거기에 아바돈은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상태.

처음에 자신을 불러내기 위해 한 말 때문에 목숨도 노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아바돈의 공격이 들어온다고 해봤자 목숨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부위다.

애초부터 죽이기 위해 공격하는 것과 부상을 입히기 위해 공격하는 것은 급이 다르다.

결국 여기서 먼저 굽히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얘기였다.

오히려 여기서 굽히고 들어가는 것이 더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세은은 판단했다.

마족이란 놈들은 상대가 약해 보일수록 더욱 집요하게 그 점을 파고드는 놈들이니까.

세은이 여전히 당당하게 자신을 바라보자 아바돈의 미간이 다시 꿈틀거렸다.

“겁이 없어도 너무 없군.”

“응. 나도 알아.”

아무렇지 않은 대꾸에 아바돈의 표정이 또 한 번 굳어졌다.

“그렇게 행동하다 내 생각이 바뀌면 편하게 죽지 못할 것이다.”

“에이. 그럴 거면 애초에 그랬겠지. 마족 놈이 뭐가 아쉬워서 나를 불렀겠어? 빨리 하고 싶은 말이나 해봐. 시간 끌지 말고.”

“…….”

아바돈은 또 다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조절했다.

어차피 바알에게 던져지면 부나방처럼 죽을 놈이다.

혹여 미끼가 살아남는다 해도 일을 마치고 나서 자신이 나중에 처리하면 되는 일.

굳이 자신의 승산을 높일 수 있는 미끼를 지금 죽일 필요는 없었다.

“바알은 모를 수가 없겠지.”

결국 아바돈은 당장의 건방진 태도를 무시하고 세은에게 자신의 계획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바알은 왜?”

갑자기 바알의 이름이 나오자 세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바알을 죽이고 싶지 않나? 신의 종자여.”

“뭐, 나쁘지는 않겠지.”

“내가 도와주지. 바알을 잡는 것이 어떤가?”

“이건 또 무슨 개소…….”

거기까지 말하던 세은은 무엇인가 떠올렸다.

‘혹시 그건가?’

세은도 마왕이 어떻게 바뀌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마왕들 중에서 상위 5위의 마왕은 거의 몇 백년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아바돈의 말은, 바알의 자리를 노린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바알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세은이 아바돈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말을 이었다.

“가능하겠어?”

세은의 말에 아바돈의 미간이 다시 한 번 꿈틀거렸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아바돈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뭐, 당연히 승산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겠지만 말이야. 그렇다고 내가 도우면 바알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야?”

세은은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바알인 데다가, 내 도움을 받아서 이겨도 인정을 받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승리한 자가 강한 것이지.”

아바돈이 세은의 말을 받았다.

“그렇긴 한데…….”

아바돈의 말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기면 마왕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설마 사제들의 도움을 받아도 그게 인정이 될 줄 몰랐던 세은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런 식이면 우호적인 마족들을 교단에서 전략적으로 밀어줘도 되겠는데?’

세은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바돈의 말이 다시 고막을 울려왔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주지. 원하는 것이라도 있나?”

“흐음.”

아바돈의 제안은 상당히 나쁘지 않았다.

물론 당황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주 말이 되지 않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바알에게 도전할 정도의 마족이라면 괜찮은 정보들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바알, 바알이라.’

승산이 있는 것은 나중 문제였다.

어차피 완전히 회복이 되면 바알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으니까.

마계에 있을 바알의 부하들은 아바돈이 처리하도록 맡기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알을 처리하기 전에 몸이 회복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전부 알려줄 수 있나?”

“원하는 정보?”

아바돈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세은을 바라보았다.

“전부 다 알려줄 수는 없다.”

“아아. 이상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세은의 말에 아바돈이 다시 한 번 말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들어는 봐야겠군.”

“마계에 있는 성직자들, 그리고 게이트.”

“게이트?”

아바돈은 게이트란 단어에 반응했다.

“그래, 게이트. 게이트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나?”

“당연하지. 그 게이트를 타고 넘어갔던 몇 명의 마왕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왔더군.”

아바돈의 말에 세은이 자신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덕분에 몇몇 자리는 바뀌기도 했지.”

“그런데 왜 바알을 노리는 거지? 마왕이 목표라면 다른 놈들도 많을 텐데 말이야.”

세은의 물음에 아바돈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내 목표는 오직 바알, 그놈 하나다.”

“바알하고 사이가 안 좋나 보네.”

나름 도발하여 더 정보를 얻어 보려는 계획이었지만, 아바돈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세은은 어깨를 으쓱하고 이야기를 돌렸다.

“하여튼 그럼 나한테 정확하게 원하는 게 뭐야?”

“간단하다.”

아바돈은 자신의 계획을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바알을 잡으러 가기 전에, 적당하게 시선을 끌어주는 거지.”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게.”

세은은 기도 차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 하나 들어간다고 바알이 네가 오는 것을 모른다고?”

물론, 정상인 몸 상태의 세은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했다.

그러나 아바돈은 현재 세은의 능력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수를 쓰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 목적이었다면 이러고 있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보지그래?”

세은의 말에 아바돈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부하를 한 명 데리고 왔어야 하는데, 귀찮군.”

여과 없이 짜증을 부리면서도, 아바돈은 다시 입을 열어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알이 마왕들과 마족들을 초대했다.”

아바돈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이유와 상황을 천천히 설명해 나갔다.

“마왕들이 너무 자주 바뀌니 마계가 소란스럽다는 이유지. 아마도 당분간 자중시키려는 의미겠지만. 마신님도 아닌 놈이 너무 건방져. 적자생존은 마계의 법칙이 아닌가.”

‘바알이 영향력이 있기는 하지.’

상위 2명의 마왕이 힘을 합쳐서 겨우 견제하고 있는 존재가 바알이었다.

그 말은, 일대일로는 상대할 자가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

거기에 바알을 따르는 무리도 있으니 마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나 역시 초대를 받았다.”

아바돈의 말에 세은은 새삼스러워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바알이 초대를 할 정도면 꽤 힘이 있다는 말.

겉으로 봐서는 그렇게까지 보이지는 않았는데, 세은과 마찬가지로 힘을 줄이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방금 말대로면 현재 마계는 완전 난리도 아니니까. 굳이 힘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

항상 자신이 가진 패는 숨기고 있어야 전가의 보도가 되는 법.

가진 패를 전부 드러내면 계산이 끝난 상대에게는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세은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아바돈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자신이 주최한 자리이니 평소보다는 경계심이 덜할 것이 분명해. 그 자리를 치고 들어와라.”

“이건 무슨 미친 소리야?”

아바돈의 말을 듣던 세은이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마왕이나 마족이 얼마나 초대 받아서 오는지도 모르는 그 자리에, 습격을 하라고?”

“당연히 아니다.”

아바돈은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가장 마지막까지 바알의 성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른 놈들이 있을 때 도전할 수는 없지.”

“다른 놈들이 남아 있다면?”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더 이상은 말해줄 수 없다. 우리가 신의 이름 아래 맹세를 하기 전까지는.”

아바돈은 더 이상 세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기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여기까지 말해준 것도 상당한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바돈은 세은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바알은 마계에 있는 신의 종자들이라면 모두 처치하고 싶어 하는 마왕이니까.

세은이 마계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그로서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흐음…….”

아바돈의 말을 들은 세은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아바돈과 손을 잡고 정보를 얻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적어도 드워프 마을에서는 더 이상 받을 만한 것이 쉴 곳과 음식밖에는 없었으니까.

“자, 어떻게 할 텐가?”

아바돈이 고민에 잠긴 세은을 재촉했다.

세은의 고민이 길어지자, 아바돈의 얼굴에 다시 짜증이 배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로서는 정말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었다.

섣불리 다른 신의 종자들을 찾아 나서기에는 마계의 모두가 최근의 일들로 곤두서 있는 상태였으니까.

“좋아.”

이윽고, 고민에 잠겼던 세은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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