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64화 (164/225)

# 164

45. 상급 마족 아바돈(1)

“다른 방법 없이 그냥 이걸 자르면 되는 거야?”

“예.”

동귀어진 하느라 수가 마물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자, 세은은 다시 전투에 뛰어들어 남은 마물을 모두 청소했다.

그 증거로 주변에 마물의 시체들 중 일부는 세은의 검에 당해 깔끔하게 절단되어 있었다.

‘흐음.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마기를 내뿜는 마목인데 신성력으로 베면 안 되겠지?’

잠시 고민하던 세은은 로나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끼.”

“여기 있습니다.”

나무 위에서 세은의 실력을 여과 없이 감상한 로나민은, 빠릿빠릿하게 자신의 도끼를 세은에게 건넸다.

문헌에 쓰여 있던 인간들은 대부분 그 육체적 능력이 약하다고 쓰여 있었는데, 눈앞의 인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문헌이 잘못된 것인지, 눈앞의 인간이 특이한 것인지 궁금증이 차올랐다.

턱―!

그런 로나민의 궁금증을 뒤로하고, 세은이 내려친 도끼가 마목의 밑동을 찍는 소리가 들렸다.

턱― 턱― 터억―

“비켜! 넘어간다!”

그리고 몇 번의 도끼질을 하지 않아 우지끈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목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래를 베인 마목은 볼썽사납게 벌목되어 바닥에 몸통을 뉘였다.

“후우. 이거 어떻게 지고 가게?”

로나민보다 큰, 자신의 키만 한 마목을 보며 세은이 물었다.

“간단하게 지게를 만들어 오겠습니다.”

로나민은 세은에게 도끼를 받아 재빨리 주변의 나무들을 잘라냈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익숙한 손놀림으로 뚝딱 지게를 만든 로나민은, 마목을 지게에 실었다.

“으쌰!”

그리고는 그대로 지게를 짊어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시죠.”

“호오. 힘이 좋네.”

학자인 로나민도 기본적으로 신체적 능력이 어지간한 인간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괜히 장인의 종족인 드워프가 아니었다.

올 때와는 다르게 편한 얼굴을 한 로나민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 *

“오! 성공했구만!”

“로나민! 고생했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마을로 돌아온 로나민을 장로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로나민이 지고 있는 지게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당분간은 계속 아바돈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자네들을 보내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네.”

엔블이 조금 더 앞으로 나서며 세은에게 말했다.

“걱정이 되면 보내지를 말아야지.”

세은이 가볍게 농을 섞어 엔블의 말을 넘겨받았다.

엔블은 그런 세은의 대답에 마찬가지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허허. 마을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고맙네. 우리 전사들을 도와주고 이렇게 마을에 커다란 도움을 주니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군.”

엔블은 호의를 가득 담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 인간은 돈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딱히 줄 만한 것이 없었다.

“전에 말한 것 말고 원하는 것은 없나?”

세은이 편하게 쉴 곳을 찾는다고 말했지만, 겨우 그 정도로 서로가 최선을 다했다고 하기에는 양심에 찔리는 일.

엔블은 혹시나 해서 세은에게 다시 한 번 원하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세은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대답했다.

“딱히 없는데?”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 보게.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보답하고 싶어서 그러니.”

“흐음…….”

엔블의 말에 세은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오드레가 엔블에게 훈수를 두었다.

“아, 그러지 말고 잘 만들어진 무기 중에 하나를 주면 되지 않나?”

“호오?”

오드레의 말에 엔블이 눈을 반짝였다.

드워프 중에서도 명인이 만든 검이라면 충분히 보답이 될 만했다.

그러나 막상 그 얘기의 당사자인 세은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검은 딱히 필요가 없는데…….”

“자네는 검사가 아닌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맞다고 하기에도 뭐하고…….”

세은의 애매한 대답에 엔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한 끗 차이의 전투에서는 무기의 고저로 그 승부가 갈리지.”

엔블의 말에 옆에서 오드레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럼! 그럼! 당연하지!”

“혹시 자네의 마음에 들 수 있는 무기가 있을 수 있으니 한 번 보러 가세나.”

아무래도 이대로 보답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엔블은, 세은을 데리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드워프 장로들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반대하는 드워프도 없었다.

‘드워프 무기면 나중에 애들 줘도 되겠네.’

굳이 상대가 주겠다고 하니 세은은 거절하지 않고 그 뒤를 따라갔다.

한동안 들고 다니는 것이 번거롭기는 하겠지만, 문헌에서나 보던 드워프들이 무기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다.

덜컥―

무기가 있다고 해서 다른 장소일 줄 알았지만, 의외로 엔블과 오드레는 장로들의 거처로 이동했다.

“이리로.”

그리고 세은을 안내해서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지하실?”

안으로 들어가니 아래로 향하는 문이 철저하게 잠겨 있었다.

“지하에서 무기를 보관하는 게 어려울 텐데?”

습도의 문제도 있고, 쇠붙이들을 지하에서 보관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은이 그런 무기들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보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허허. 일단 따라오게나.”

하지만 엔블은 그저 씩 웃으며 먼저 아래로 내려갔다.

로나민은 언제부터 따라오지 않았는지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기서부터는 일반 드워프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장소인 것이 분명했다.

“자, 내려오게.”

엔블이 먼저 아래로 내려가고, 그 뒤를 따라 세은이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드레가 들어가면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와…….”

지하로 내려간 세은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세은은 드워프 왕국이 아니라 마을이라 별 거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려왔다.

거기에 따로 보관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장로 거처의 지하로 내려가니 더 기대가 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막상 내려온 지하는 전혀 다른, 기대 이상의 장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주 작은 촛불에 반사되는 수많은 무기들이 세은을 반기고 있었다.

“몇 백 년 동안 만들어진 무기 중에 최고들만 모아놓은 곳이지. 그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무기들이라네.”

보통 대부분의 창고들이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과 함께 쌓여 있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있는 창고가 아니라 보물 창고라고 칭해도 어울릴 정도였다.

하나하나 세은이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무기들이 없었다.

심지어 무슨 광물을 사용했는지 알 수도 없는 무기들이 수두룩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무기의 몸통 자체가 일반적인 쇠의 색이 아닌 다른 색을 띄고 있는 것들도 많았다.

“자, 천천히 골라보게나.”

크게 놀란 세은의 태도에 엔블이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

옆의 오드레 역시 어깨를 꼿꼿하게 펴며 한 마디 더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게나. 자세하게 설명해 주겠네.”

세은은 아무 대답 없이 지하 창고에 있는 무기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무기들이 많았다.

이 정도면 딱히 실전용이 아니더라도 하나 정도 들고 다니면 정말로 멋질 것 같은 무기들.

창, 도끼, 활, 철퇴 등.

수많은 종류의 무기들이 있었지만 세은은 오직 검을 보는 데에만 집중했다.

애초에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해도 검이 제일 휴대하기 편했다.

아니,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지만 여기에 있는 검들을 보니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예기의 무기들이면 신성력을 적게 사용해도 충분한 타격을 줄 것 같았다.

반짝이는 눈으로 무기들을 살펴보던 세은의 눈에 한 쌍의 검이 들어왔다.

“이건?”

“오! 그건 달과 별의 검이군.”

“달과 별의 검?”

“그렇다네. 두 개가 한 쌍이지.”

오드레의 말을 들으며 세은은 두 눈에 들어온 한 쌍의 검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전형적인 롱소드의 길이로, 직선으로 유려하게 선이 빠진 검 중 하나는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검은 푸른빛이 아닌 노란빛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쪽이 별의 검인 것 같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문 스틸과 스타 스틸로 제련한 검이라네.”

세은이 그 검들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자 오드레가 더욱 자세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다른 금속들도 구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문 스틸과 스타 스틸은 더욱 그렇지. 당대에 가장 훌륭했던 명인이 몇 년에 걸쳐 벼려낸 검이라네.”

“그런데 왜 아무도 사용을 안 하지?”

“자격이 없으니까.”

“음?”

“명인들의 검은 아무나 휘두를 수가 없지. 무기들에게도 자아가 있다네. 비록 우리 같은 지성체는 아니지만 말이야.”

물론 세은도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훌륭한 오러 마스터의 검은 주인을 선택한다는 말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검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 있는 모든 무기가 그렇다고?”

세은이 지하 창고를 한 바퀴 휙 둘러보며 물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여기에 있는 무기의 종류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오드레는 허허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허허. 전부 그런 무기일 리가 있겠는가. 대부분의 검이 그렇지 않지. 그러나 자네가 지금 보고 있는 달과 별의 검은 주인을 가리는 검이라네.”

“호오…….”

오드레의 설명에 세은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그런 세은의 모습에 오드레가 세은에게 제안했다.

“한 번 잡아보겠는가?”

“그러지.”

세은은 사양하지 않고 달과 별의 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웅―

세은의 손이 닿자 달의 검의 검신이 가볍게 진동했다.

그리고 별의 검도 마찬가지.

들고 있는 세은은 물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엔블과 오드레가 느낄 정도로 강한 울림이었다.

“끄응. 이들에게는 자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구만.”

오드레가 아쉽다는 눈빛으로 세은에게 말했다.

그러나 이런 검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 세은은 오드레에게 물었다.

“한 번 힘 써봐도 되겠지?”

“괜찮다네.”

세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 오드레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힘겨루기 하는 것 가지고 망가질 검이었다면 이 창고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니까.

오드레의 허락을 받은 세은은 천천히 신성력을 달과 별의 검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우웅― 웅―

그러나 세은의 신성력이 자신들을 감싸려고 하자 검들의 반항이 더욱 심해졌다.

“왜 이렇게 까칠하게 굴어?”

딱히 두 개의 검이 아니어도 무방했지만, 일단 자아가 있다는 사실에 신기한 세은이 조금 더 힘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괜히 검에게 거절을 당한 다는 사실이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웅― 웅― 우웅―

세은의 신성력이 더욱 밀려 들어갈수록 달과 별의 검의 반항도 점점 심해졌다.

나중에는 검신이 우는 소리가 창고를 가득 채워 엔블과 오드레는 귀를 막아야 할 정도였다.

‘오러가 아니라서 그러는 건가?’

어지간하면 힘으로 굴복할 만도 한데 계속 반항하는 검들을 보며 세은이 생각했다.

“다른 검을 찾아보는 것이 어떤가?”

아무래도 힘들어 보이자 오드레가 세은에게 권유했다.

그러나 세은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조금만 더 해보지.”

세은의 말에 오드레는 다시 한 번 가만히 그를 기다려 주었다.

오드레도 세은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세은을 검사로 알고 있는 오드레는, 경지에 오른 검사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 자신도 전사였으니까.

웅― 웅―

그렇게 세은과 달과 별의 검의 기 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엔블!”

그때 입구 쪽에서 다른 장로가 급하게 뛰어 내려오며 엔블을 불렀다.

“무슨 일인가?”

귀를 막고 있던 엔블이 몸을 돌려 자신을 부른 장로를 바라보았다.

“아, 아, 아바돈이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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