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63화 (163/225)

# 163

44. 마목(4)

“어디 보자.”

그러나 경계심을 극도로 끌어올리고 있던 마물들을 난전으로 유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은이 앞장서서 무턱대고 하이에나 무리로 뛰어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마물들은 사태를 관망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먼저 뛰어들면 손해라는 것을 본능으로 깨닫고 있기 때문.

빼도 박도하지 못하게 난전을 유도할 만한 방법이 필요했다.

“무슨 좋은 생각 없어?”

“예, 예?”

“됐다…….”

보아하니 로나민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세은은 로나민에게 주었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마물들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많은 수의 마물이 한 자리에 모여 있던 모습은 일견 평화로워 보였지만, 정말로 이질적이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경계심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도화선에 어떻게 불을 붙이는지가 핵심이었다.

‘후우. 몸만 정상이었으면 이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는데.’

좋은 방법을 고민하던 세은은 결국 속으로 짜증이 울컥 치미는 것을 느꼈다.

신성 마법만 사용할 수 있으면 이럴 시간에 그냥 들어가서 전부 전멸시키면 그만.

아니, 드워프 마을에 올 필요도 없이 마왕들을 찾아다니면서 게이트를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신성마법으로 방어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정말 불편했다.

방어 하나로 이렇게 신경 쓸 게 많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하도 경계가 심해서 무슨 방법을 시도해도 똑같을 거 같은데.”

세은이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결국 뛰어다니는 방법밖에 없겠네.”

일단 하이에나 무리를 공격하고, 그리고 재빨리 움직여서 마물 무리로 간다.

그리고 마물 무리를 공격한 뒤, 다시 하이에나 무리로 갔다.

분명히 하이에나와 마물들은 무언으로 그어진 경계선을 넘지 않으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세은이 계속 그 선을 왔다 갔다 하면서 수를 줄인다면 어쩔 수 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혹시 모르니까 나무 위에라도 올라가 있어.”

“예?”

“마목 근처에서만 싸운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안전하게 피해 있으라고.”

“아…… 그럼 방금 전의 그 나무로 가 있겠습니다.”

“아니, 그냥 근처에 있어. 거기도 멀어.”

뒤로 물러나려는 로나민을 잡으며 세은이 말했다.

“얘들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다른 마물들이 움직일 수도 있으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곳에서 숨어 있어.”

“아, 네!”

세은의 말이 끝나자 로나민은 근처에 적당한 나무를 잡아 오르기 시작했다.

로나민이 나무 위로 몸을 숨기는 것을 확인한 세은이 마물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공중에 있는 놈들이 좀 알아서 죽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지상의 마물보다는 공중에 있는 놈들이 더 번거로울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볼까?”

후우.

깊게 숨을 들이마신 세은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키엑?”

“꾸우?”

당당하게 자신들 사이로 뛰어 들어오던 세은의 모습에 마물들이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어떤 마물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세은은 유유히 마물들을 지나 마목을 중심으로 빙 둘러 포진해 있던 하이에나들에게 달려들었다.

우웅―

“컹!”

세은이 마목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한 하이에나 하나가 경고성을 발했다.

그러나 세은은 하이에나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대로 빛의 검을 휘둘렀다.

콰직―

“낑!”

순식간에 목의 절반이 날아간 하이에나가 단말마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

“컹컹!”

“크르르!”

그렇지 않아도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세은을 주시하던 하이에나들이, 동료가 죽자마자 그대로 세은을 향해 달려들었다.

타닥―

달려오던 하이에나들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지만, 세은은 그대로 몸을 날려 마물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역시나 마물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세은과 하이에나의 충돌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구경들만 하면 안 되지.”

우우웅―

비어 있던 왼손에도 빛의 검이 생성되었다.

동시에 세은이 가장 끝에 있던 마물, 씽을 목표로 달려들었다.

맹수를 닮은 얼굴에 커다란 양발.

그리고 자줏빛 피부와 털을 가진 씽은 거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거대한 송곳니를 지니고 있었다.

“커헝!”

세은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자, 씽은 거대한 입을 벌리며 경고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세은은 그런 씽의 경고를 뮈하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콰앙!

씽의 거대한 송곳니와 세은의 검이 그대로 충돌하며 굉음을 일으켰다.

“컹!”

“호오. 안 부러져?”

마기가 집약된 씽의 송곳니는 세은의 공격에도 단번에 부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눈으로 봐도 확연하게 깨진 부분이 보였다.

고통스러운 울음을 토해내던 씽을 향해 세은이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콰직―!

“깨앵!”

세은은 방금 전과 같은 부위를 똑같이 가격했다.

이번에는 씽의 송곳니가 버티지 못하고 그래도 반으로 부서졌다.

씽은 사라진 한쪽 송곳니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어디를 가려고?”

탓―

세은은 그대로 땅을 박차 또다시 검을 휘둘렀다.

씽이 아직 온전하게 남아 있던 반대 송곳니로 세은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으로 송곳니를 막아낸 세은은, 반대 손에 들고 있는 검을 그대로 씽의 목덜미에 박아넣었다.

푸욱―

가차 없이 검이 살갗을 파고드는 소리가 고막을 가득 채웠다.

“키에에!”

“꾸우우우!”

씽이 이렇게 어이없게 세은에게 목숨을 잃자, 주변의 마물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은은 얄밉게도 유유하게 다시 몸을 움직여 하이에나들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후우. 귀찮아 죽겠네.”

세은은 마치 가기 싫은 산책이라도 가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경계를 넘어서자마자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하이에나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커엉!”

“호오?”

처음과는 달리 하이에나들이 힘을 합쳐서 세은의 공격을 막아냈다.

세은의 목표였던 하이에나는 큰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오히려 씽보다 이빨이 단단한 거 같은데?”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하이에나들보다 씽의 송곳니가 더 단단해야 한다.

그러나 하이에나들이 힘을 합쳐 세은의 막아내는 것을 보니 그 반대인 것 같았다.

물론 수는 무시할 수 없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피지컬 차이를 생각하면 아주 대단한 일.

“마목인지 뭔지 마물들이 환장하는 이유가 있었네.”

얼마 전에 상대한 멘티스도 드워프들이 시선을 끌어줘서 쉽게 상대한 면도 있었다.

그리고 멘티스의 가장 강한 부분은 다름 아닌 양팔에 달린 거대한 낫.

몸통과 날개는 가장 연약한 부위에 속했다.

“컹!”

세은의 공격을 막아낸 하이에나들이 반대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취약한 목덜미를 노리고 달려들던 하이에나들을 피해 세은은 뒤로 움직였다.

타악―

방금 전까지 세은이 있던 자리를 노리고 입을 놀렸던 하이에나의 공격이 허공을 씹었다.

그러나 하이에나들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쉬지 않고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캐앵.”

세은이 옆에서 달려드는 하이에나를 왼팔을 휘둘러 쳐 냈다.

그리고는 방금 전에 세은을 공격하려다가 허공에 입질을 한 하이에나에게 검을 휘둘렀다.

푸욱―

가장 오른쪽에 있었던 놈이기에, 이버에는 다른 하이에나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낑!”

그리고 다른 하이에나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결과는 바로 옆구리의 관통.

세은의 검에 복부가 뚫린 하이에나 울음을 흘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캥캥!”

세은의 손에 두 마리의 동료가 쓰러지자 더욱 흥분한 하이에나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세은은 유유히 몸을 피해 경계선을 넘어갔다.

“아직은 안 넘어오나?”

동료를 벌써 둘이나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이에나들을 섣불리 세은을 쫓아 나오지 않았다.

아직 많은 수의 마물이 남아 있었기 때문.

그러나 동료가 없는 마물들은 세은이 반대로 넘어오자마자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참을 수 있나 보자.”

본능에 충실한 마물들이 이 정도까지 참는 것도 정말로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우우웅― 쾅!

세은은 그대로 검에 신성력을 밀어넣고 바닥을 찍었다.

“키에엑!”

“꾸우우웅!”

마치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이 동시에 마물들이 세은을 향해 달려들었다.

세은에게서 느껴지는 명백한 적의에 더 이상 본능을 억누르지 못한 것이었다.

거기에 죽은 하이에나와 씽이 흘리는 피냄새도 마물들의 본능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세은을 목표로 달려 들어가던 마물들은, 옆에서 거슬리는 놈들에게 바로 공격을 퍼부었다.

“캬악!”

자기들끼리 상잔하는 그 모습에 세은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꾸우웅!”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뚫고 세은을 노리고 달려오는 한 마리의 마물이 보였다.

악어의 주둥이에 코끼리의 길쭉한 코가 그대로 이어진 것 같이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마물, 엘리게이펀이었다.

엘리게이펀은 기다란 코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세은에게 돌진했다.

“잇차!”

그러나 세은은 가볍게 몸을 뒤로 날리며 엘리게이펀을 하이에나들에게로 유인했다.

이미 주변에서 일어나는 난장판으로 인해 완전히 이성을 놓아버린 엘리게이펀이 세은을 따라 하이에나들에게 돌진했다.

“캥캥!”

“커어헝!”

하이에나들은 경계선을 침범한 세은과 엘리게이펀에게로 달려들었다.

세은을 노리고 돌진하던 엘리게이펀은, 하이에나들이 자신을 공격하자 그대로 목표를 바꿔 기다란 코를 휘둘렀다.

“끼잉.”

강력한 코에 맞은 하이에나들이 멀리 날아갔다.

몇 마리는 경계선을 넘어 마물들이 난장을 벌이고 있는 곳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일이 이렇게 되니, 마물과 하이에나들이 유지하고 있던 경계선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공중에서 사태를 보고 있던 마물들도 피 냄새에 이끌려 그대로 전투에 참가했다.

“끼이이익!”

공중의 마물들은 인간인 세은에게 그대로 몸을 날렸다.

퍽―

“캐앵!”

“끼이익!”

그러나 마침 세은의 목을 물기 위해 달려들던 하이에나와 절묘하게 충돌했다.

하이에나는 그 충격으로 즉사.

그리고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진 공중의 마물은 다른 마물들의 싸움에 휘말려 그대로 짓밟혔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세은은 그 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뒤로 빠졌다.

이미 눈이 뒤집힌 하이에나와 마물들은 세은이 뒤로 빠지는 것을 신경 쓰지도 않았다.

오직 자신의 옆에 있는 적들에게 집중하느라 바쁠 뿐.

혹시나 해서 로나민이 있는 나무를 바라보니 아직 잘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전투에서 한 발 물러나서 보니 모든 마물들이 엉켜서 피터지게 싸우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후우. 됐다.”

목적을 이룬 것을 확인한 세은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천천히 사태를 관망하면서 알아서 동귀어진 하는 것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다른 한쪽이 유독 유리해지면 나서서 균형을 맞추는 것도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마목의 근처에는 마물들의 울음소리와 피 냄새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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