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62화 (162/225)

# 162

44. 마목(3)

“우으…….”

시야에 들어오는 많은 마물들 중, 가장 먼저 유인할 마물을 고른 로나민이 옅은 신음을 흘렸다.

“저걸 어떻게…….”

하지만 도저히 마물의 뒤로 다가가서 도끼로 내려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평소에는 이렇게 지근거리로 접근하기는커녕, 멀리서 들리는 울음소리만 들어도 몸을 피하기 바쁜 마물들이었다.

특히, 전사가 아닌 로나민은 이렇게 가까이서 마물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이미 죽어서 시체가 되어버린 마물이라면 또 모를까.

“빨리 시작해.”

연신 침을 삼키면서 긴장을 달래는 로나민의 귀에, 세은의 재촉이 들려왔다.

“아, 알겠습니다.”

로나민은 고막을 때리는 세은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대답을 내뱉었다.

“후우…….”

그러나 또다시 한숨이 저절로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금 가장 외곽에 있는 마물은 다크 스네이크.

대충 보이는 몸길이만 해도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놈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다른 마물들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근처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 일단 돌부터…….’

로나민은 우선 바닥에서 적당한 크기의 돌을 주워 다크 스네이크를 노리고 집어 던졌다.

탁―

그러나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으로 던진 돌은, 목표물을 맞히지 못하고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때렸다.

“뭐해?”

미리 정해놓은 매복지점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세은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일격필살.

마물이 로나민을 노리고 달려오는 그 순간.

그 한순간 단번에 숨통을 끊어버리기 위해 세은은 나무 위에 숨어 있었다.

로나민이 마물을 유인해서 나무 밑으로 데려오면 시야의 외곽에서 낙하며 단칼에 숨을 끊을 작전.

만약 유인한 마물을 한 번에 죽이지 못하면 커다란 소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만약 소란이 일어나면 마목을 둘러싸고 있는 마물들이 세은을 경계할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저 난장판 사이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안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어지간하면 지양하고 싶은 상황.

수월하게 일을 끝내기 위해서는 로나민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 다시 하겠습니다.”

로나민은 살짝 빨개진 얼굴로 다시 돌을 집어 들었다.

탁!

“쉬익?”

이번에는 정확히 돌이 다크 스네이크의 몸통에 적중했다.

하지만 다크 스네이크는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마목에 시선을 집중했다.

간지럽지도 않은 공격으로는 마목에 시선이 팔린 다크 스네이크를 유인할 수 없었다.

로나민은 다크 스네이크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머리를 노리고 돌을 던졌다.

타악―!

“쉬이익!”

결과는 이번에도 명중.

방금 전에 몸통을 맞췄을 때보다 더욱 둔탁한 소리가 숲을 울렸다.

하지만 다크 스네이크는 살짝 짜증을 낼 뿐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에 마목이 앞에 있는데 뒤에서 돌이 날아오는 것을 가지고 현장을 벗어날 순 없는 일이다.

“우으으……. 좀 움직이지.”

결국 로나민은 돌 갖곤 다크 스네이크를 유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스럭.

로나민이 수풀을 지나치자 풀숲이 흔들리는 소리가 생겨났다.

꿀꺽.

동시에 로나민의 발걸음이 그대로 굳었다.

혹시 이 소리를 듣고 다른 마물들이 자신을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였다.

거기에 더해서 마물들이 내뿜는 마기가 로나민의 몸을 잔뜩 굳게 만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물들은 로나민이 뒤에 있는 것을 알고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별로 위협도 되지 않는 드워프에게 관심을 돌린 마물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마목을 먼저 선점한 하이에나 무리들은, 언제라도 빈틈이 보이면 무차별적으로 목을 물어뜯을 수 있는 놈들이었다.

지금 마물들에게 중요한 것은 눈앞의 마목과, 주변에서 호시탐탐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경쟁자들뿐이었다.

‘후읍…….’

마물들이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로나민이, 조심스럽게 다크 스네이크의 뒤로 다가갔다.

다크 스네이크는 기다란 몸통의 대부분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기다란 꼬리만큼은 뒤로 쭉 늘어져서 살랑거렸다.

로나민에게는 마치 그 모습이, 다른 곳 말고 꼬리를 찍어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 둘…… 셋!’

로나민은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기에 계속해서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아바돈을 생각하며 억지로 몸을 움직여 도끼를 머리 위까지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콱―!

“쉬에엑!”

도끼가 꼬리를 찍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다크 스네이크의 울음소리가 마목 주변을 가득 채웠다.

“꾸어?”

“케에에?”

갑작스런 다크 스네이크의 울음에 다른 마물들의 시선이 로나민과 다크 스네이크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러나 마물들은 본능적으로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서 먼저 움직이는 놈이 가장 불리하다는 사실을 감각으로 느끼고 있었다.

“쉐엑!”

오직 방금 전에 로나민에게 꼬리를 공격당한 다크 스네이크만이, 분노에 찬 포효를 질렀다.

“으, 으으…….”

형형하게 빛나는 다크 스네이크의 눈빛에 로나민이 낮은 신음을 흘리며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쉑!”

스르르륵―

그리고 다크 스네이크는 미끈한 몸을 움직여 감히 자신을 공격한 드워프를 사냥하기 위해 움직였다.

“으아아악!”

다크 스네이크가 움직이는 모습에, 뒷걸음질 치던 로나민은 몸을 돌려 온 힘을 다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타다닥―

“드, 드워프 살려!”

로나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세은이 매복해 있던 지점을 향해 다리를 움직였다.

“쉐엑!”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다크 스네이크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세은이 숨어있는 나무가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으악!”

다크 스네이크의 몸통이 바닥을 미끄러지는 소리가 점점 생생하게 고막을 때렸다.

당장이라도 커다란 다크 스네이크의 이빨이 자신의 뒷목에 박힐 것만 같은 느낌.

“다, 다 왔다!”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땅을 박찬 로나민은, 잡히지 않고 세은이 숨어 있던 나무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와, 왔습니다!”

로나민이 나무 위에 있는 세은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세은은 나무에서 바로 뛰어내리지 않았다.

“쉐에에엑!”

오히려 여기까지 로나민을 쫓아오느라 더욱 성이 난 다크 스네이크가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으어억?”

세은이 바로 내려오지 않는 것에 놀란 로나민이 나무로 바짝 붙었다.

“사, 살려줘!”

“쉑!”

다크 스네이크는 나무로 몰린 로나민을 내려다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탁한 노란색의 눈동자가 당장이라도 씹어 먹을 듯이 로나민을 주시했다.

쉬익―!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감히 건방지게 자신의 꼬리를 공격한 드워프를 향해 쇄도했다.

콰직―

“으아아아…… 악?”

자신을 노리고 쇄도하는 다크 스네이크의 모습에 로나민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잘했어.”

그리고 로나민의 시야에는, 어느새 나무에서 뛰어 내린 세은이 다크 스네이크의 머리를 관통한 모습이 들어왔다.

수직으로 머리가 관통당한 다크 스네이크는 아무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한 상태였다.

“후우. 후우…….”

자신의 숨이 아직 붙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로나민이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왜 이렇게 늦게 잡으십니까?”

더 빨리 도와줄 수 있는데 괜히 세은이 시간을 끌었다고 생각한 로나민이 항의했다.

그러나 세은은 담담하게 그런 로나민의 항의를 받아냈다.

“무슨 소리야? 처음에 분명히 한 번에 확실하게 죽일 수 있게 나무 밑까지 유인하랬잖아. 다음에도 이렇게 해. 나무 바로 아래로 유인해야 잡기 편하지.”

“……끄응.”

확실히 세은이 처음 작전을 설명할 때 그렇게 말한 것이 생각났다.

로나민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니 다리에 힘이 저절로 풀린 것이었다.

“아무래도 조금만 쉬었다 해야겠네.”

세은이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겨우 한 마리 처리했는데 남은 마물들은 언제 처리할 수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리에 힘이 풀린 드워프를 보냈다가 중간에 잡히게 할 수는 없는 일.

결국 세은은 로나민이 긴장을 해소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 *

“케엑!”

로나민이 네 번째로 유인해 온 마물이 단말마와 함께 숨이 끊어졌다.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로나민이 고개를 저었다.

“마물들의 경계가 심하기는 하겠네.”

“예. 이번에도 조금 아슬아슬했습니다. 눈빛이 달라졌어요.”

로나민의 말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마물들이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하다고 하지만, 로나민을 따라간 마물들이 하나같이 사라지니 이상한 점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네 마리면 나쁘지 않아.”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동의했다.

“아무래도 하이에나들은 하나하나가 강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하이에나를 제외하고 다른 마물들은 몇 마리 남았지?”

“이제 15마리 남았습니다.”

“그럼 하이에나가 30마리 정도니까. 하이에나 둘에 마물 하나란 얘기인데…….”

“원래는 상대가 안 되는 숫자입니다.”

“그렇지. 하이에나 둘에 마물 하나면 당연히 마물들이 이기고 자기들끼리 싸워야 하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하이에나들이 마목의 힘을 계속 흡수하는 중이라 쉽게 달려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끌면 하이에나들이 더 강해질 것은 분명하고.”

“어떻게 하죠?”

“흐음…….”

잠시 고민하던 세은은 다른 방법을 내놓았다.

“일단 싸움을 붙여야겠어. 하이에나가 더 강해지기 전에 말이야.”

“하지만…… 싸움을 붙이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할 텐데요?”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싸움을 붙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다음 그 난장판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가까이 가서 지금은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부터 보자고.”

“예!”

더 유리한 쪽에 피해를 줘야했기 때문에, 세은은 로나민을 데리고 다시 마목의 근처로 이동했다.

“크르르?”

아니나 다를까.

로나민의 냄새를 맡은 마물들이 종전과는 달리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더 이상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세은과 로나민이 걸음을 멈추었다.

“새끼들 예민하네, 참.”

“하. 하하…….”

가볍게 얘기하는 세은과 달리, 로나민은 어색한 웃음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마물들이 예민하게 구는 대상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대충 보니까 아직은 전력이 비슷한 것 같은데?”

“그, 그렇습니까?”

“응. 혹시 다른 마물들 중에 특이한 능력이 있는 놈이라도 있으면 지금 말해.”

세은이 직접 상대해 보지 않은 마물도 몇 있었기 때문에, 로나민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로나민은 그런 세은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딱히 특이한 마물은 없습니다.”

“그럼 뭐…….”

하이에나들은 유리한 위치에 있으니 마물들 사이에 소란이 일어나도 먼저 공격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어쩔 수 없지.”

세은의 입장에서는 하이에나들이 남는 것이 더 정리하기 편하지만, 상황을 보니 하이에나들을 정리하고 마물들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