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44. 마목(2)
“무, 무슨 일입니까?”
세은이 개활지에서 안으로 들어오지 않자 로나민이 물었다.
“별일 아니야.”
그러나 세은은 담담하게 로나민의 말에 대답했다.
성가시게 공중에서 따라오는 마물들을 전부 처리하고 갈까 했는데, 상황을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자신이 처리를 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마물들이 많아 서로 경계를 할 것이 분명했다.
특히 마목이 있는 것으로 추청되는 곳은 마물들끼리도 싸우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잠시 아직도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공중의 마물들을 경계하던 세은이, 몸을 돌려 로나민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군요!”
무사히 숲 안으로 들어온 세은을 보며 로나민이 말했다.
“따라오시지 않기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줄 알았습니다.”
“아아. 그건 아니야. 그런데 여기 확실히 마물이 많이 느껴지는데?”
“마목이 바로 근처에 있어서 그럴 겁니다.”
로나민의 말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목인지 뭔지, 확실히 마물들이 환장하기는 하는 것 같군. 이 정도 거리면 우리가 있는 것을 알았을 텐데 우리에게 오지 않고 있어.”
“아무래도 드워프 한 마리보다는 마목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게 더 문제야.”
“예?”
갑작스런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되물었다.
“마물들이 그 정도로 마목을 좋아하면 마목을 근처로만 가도 난리일 테니까.”
“아…… 그렇습니다.”
“그럼 여기 있는 마물을 다 잡아야 한다는 말인데…….”
세은은 말을 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 있는 마물을 다 잡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단 세은의 감각에 느껴지는 마물의 수가 너무 많았다.
이 정도의 마물이 모여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을 정도.
간간히 느껴지던 마물들의 전투 소리는 모여 있는 마물 수에 비하면 애교에 가까웠다.
거기에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로나민의 생사를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신성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의 세은으로서는 의외의 돌발 상황에서 로나민을 확실하게 지켜주기가 힘들었다.
“흐음. 어떻게 하지?”
로나민이 세은에게 물었다.
“마목 근처에 마물이 그렇게 많습니까?”
“대충 어림잡아서 50마리 정도 있는 것 같은데?”
“50마리나 말입니까?”
세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방금 전에 우리를 따라오던 놈들이 더 이상 따라오지를 않는군. 자기가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놈들만 50마리야.”
“50마리나 있을 리가 없는데 이상합니다.”
당황한 로나민의 말에 세은이 동의를 표했다.
“하긴 영역 다툼을 할 만한 놈들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잠시 고민하던 세은은 로나민에게 제안했다.
“일단 근처에 가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 보기로 하지.”
“예.”
세은과 로나민은 조심스럽게 마목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꿀꺽.”
걸어가는 로나민이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그가 침을 삼킨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릴 정도였다.
“긴장하지 마. 긴장하면 몸이 굳으니까.”
“예? 예.”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허둥지둥 대답은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긴장한 티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허업!”
이윽고 마목의 근처에 도달한 로나민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키고 말았다.
턱―
세은은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는 로나민의 입을 재빠르게 막았다.
다행히 세은의 재빠른 대처로 마물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릴 일은 방지할 수가 있었다.
‘생각보다 힘들겠는데?’
눈앞에 보이는 광경엔, 마물들이 패를 나뉘어 대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이에나를 닮은 마물들 30여 마리가 떼로 나무 하나를 빙 둘러싸고 있고, 다른 마물들이 그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다.
‘아마도 저 마물들이 무리를 이뤄서 마목을 먼저 차지한 것 같고, 다른 마물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 같네.’
세은은 일단 수많은 마물들이 내뿜던 마기로 인해 패닉에 빠진 로나민을 끌고 뒤로 빠졌다.
퍽―!
“컥?”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세은이 로나민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세은에게 뒤통수를 맞은 로나민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정신 차려.”
“아, 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로나민이 세은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세은은 대수롭지 안 하는 표정으로 로나민에게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물었다.
“지금 상황을 봐서는 30마리 정도 있는 하이에나들이 저걸 차지할 거 같은데 말이야.”
“아……. 그럴 것 같습니다. 하이에나들이 원래 그렇게 강한 마물이 아닌데…….”
“그렇지? 숫자로만 따지기엔 다른 마물들이 더 강한데 말이야.”
“아무래도 먼저 마목을 차지하고 마목에서 나오는 힘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그 정도로 효과가 좋다고?”
“예. 마목이니까요. 마물들에게는 정말 좋을 겁니다.”
“흐음.”
로나민의 말에 세은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차라리 일단 돌아간 다음에, 나중에 다시 오는 게 낫지 않나?”
“원래는 그게 맞습니다만…….”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말끝을 흐렸다.
“왜?”
그런 로나민의 태도에 세은이 다시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로나민은 세은의 질문에 조금 더 자세하게 마을의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들으셨겠지만, 마족이 언제 마목을 받으러 올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이 그 기간이라서…….”
“못 구했다고 하면 되지 않나? 아! 하긴 마족 놈들이 남의 사정을 헤아려 줄 놈들이 아니지.”
“아, 아닙니다. 아바돈은 원래 저희 사정을 생각해 주는 몇 안 되는 마족입니다.”
“그런데 왜?”
마족이 드워프의 사정을 생각해 준다는 것도 웃겼지만, 만약에 그렇다면 지금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사실…… 지금이 벌써 몇 번이나 밀린 다음이라…….”
“흐음. 그래도 사정을 생각해 준다면 조금 더 기다려 줄만 하지 않나?”
“끄응…….”
계속되는 세은의 질문에 로나민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라면 세은은 그냥 마을로 돌아가자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로나민으로서는, 아니 드워프들로서는 꼭 이번에 마목을 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섣불리 꺼내기에는 민감한 이유였기 때문에 로나민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세은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받을지, 아니면 다른 이유를 가져와서 그를 설득해야 할지 선뜻 정할 수가 없었다.
세은은 장고에 잠긴 로나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세은의 눈빛을 느낀 로나민은 결국 마음을 정했다.
‘휴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설픈 이유로는 지금 마목을 가져가야 할 변명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그게 말입니다. 사실…….”
로나민은 꼭 이번에 마목을 가져가야 하는 이유를 세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시겠지만, 마족들은 마왕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아바돈도 그런 마족 중에 하나입니다.”
“오? 꽤 강한 마족인가 보네?”
“예. 마왕을 제외하고는 상대할 마족이 거의 없는 마족이라고 보면 무방합니다.”
“그런 놈이 그렇게 다른 놈들의 사정을 헤아려 준다고?”
세은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보통 마계에서는 힘이 강하든 약하든 자기중심적이었지만, 당연히 힘이 강할수록 더 심했다.
다른 종족을 배려해 주던 마족은 듣도 보도 못했다.
‘아, 하긴 그레모리 같이 이상한 놈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레모리는 목적이라도 있었다.
그렇다면 아바돈이라는 마족도 무슨 목적을 가지고 드워프들을 지원한다는 얘기.
“예. 아바돈이 지금보다 약할 때 저희에게 우연히 도움을 받았습니다. 마목에 대해서 말이죠.”
“마족이 도움을 받았다고?”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바돈은 다른 마족들과 약간 다릅니다. 뭐라고 해야 할지…….”
잠시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던 로나민이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마치 다른 마족들과는 달리 공감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감 능력이라고 하면?”
“음…… 지배하고, 숭배 받는 즐거움을 아는? 그러나 그 지배가 힘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통치자로서의 그런 지배입니다.”
“마치 왕 같네.”
“아!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다른 마왕들과는 달리 실제로 자신을 따르는 왕국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진짜 특이한 놈이네 그거.”
“특이합니다.”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 됐거든 그 특이함 때문에 저희가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거니까요.”
“그렇겠지.”
“하여튼 아바돈이 마왕 하나를 잡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짜가 거의 다가왔고요.”
“그래서 이 마목을 꼭 구해가야 한다?”
“예. 그런 겁니다.”
로나민의 긴 설명이 끝나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드워프들이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마목을 꼭 지금 가져오고 싶어 했는지 알 수가 있는 상황.
“차라리 그럼 아바돈이라는 마족이 직접 와서 가져가면 되지 않아?”
당연한 세은의 질문에 로나민이 대답했다.
“아바돈은 지금 바쁩니다. 왕국의 백성들을 모으고 싶어 하니까요. 그의 영역 안에는 저희만 있는 게 아니고요.”
“거 참 들을수록 신기한 마족이네.”
“그리고 이미 마물들로부터 지켜주고 있으니 자신의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저희는 그의 보호를 받는 백성으로서 대가인 마목을 바쳐야 하고요.”
“맞는 말이기는 하네…….”
보호를 받고, 대가를 바친다.
단순히 위치만 알려주고 보호를 받기에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아바돈이라는 마족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여튼 그럼 지금 여기서 마목을 가져가야 한다는 말이네.”
“……예.”
“그럼 어디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세은의 말에 로나민의 표정이 한결 환해졌다.
그러나 세은은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왕국을 세우고 싶어 하는 마족이라…… 잘하면 이용을 할 수도 있겠어.’
* * *
“어쩔 수 없군.”
“예?”
잠시 대책을 고민하던 세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던 로나민은 세은의 입에 집중했다.
“유인을 해야겠어.”
“유인 말입니까?”
로나민의 물음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기 잘하나?”
“저, 저 말입니까?”
“그럼 내가 유인할까? 마물 잡을 수 있어?”
“……그건 아니지만…….”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당황했다.
“후우…….”
그러나 세은의 말이 맞았다.
유인을 하는데 공격자가 유인을 할 수는 없는 일.
결국 로나민 자신이 마물들을 유인해야만 했다.
“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세은은 로나민에게 마물을 유인할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마 마물들이 한 번에 다 오지는 않을 거야. 드워프 한 마리보다는 마목이 더 중요할 테니까.”
“예.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럼 가장 끝에 있는 놈들부터 도끼를 한 번씩 내려찍고 와.”
“……예?”
그 정도면 유인이 아니라 완전 접근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세은은 놀란 로나민을 뒤로하고 말을 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 딱 보니까 돌 같은 거 던진다고 이리로 올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그렇다고 안으로 들어가서 한 번에 처리하는 건 정말로 무식한 짓이고.”
“하, 하지만.”
너무나 당황한 로나민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자 세은이 대답했다.
“후우. 그럼 처음에는 돌을 던져서 유인해 보고 안 되면 도끼로 찍어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대답을 하는 로나민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마목을 포기하고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눈앞의 마물도 무서웠지만, 그것보다 아바돈이 더 무서웠다.
꿀꺽.
로나민의 목울대가 긴장으로 인해 크게 출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