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44. 마목(1)
“그럼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세은은 의외라는 눈으로 자신의 앞에서 길을 안내하려는 로나민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로나민이 세은에게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문제는 없는데 말이야.”
적어도 여태까지 들은 정보로는 마물의 숲에 가는 일이니 드워프 중에서도 전사들이 안내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전사가 아닌 학자에 가까워 보이던 로나민이 안내를 하니 그것이 이상하게 생각됐다.
“아무리 봐도 전사로는 안 보이는데?”
“아! 괜찮습니다. 제가 자원했거든요.”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상황을 이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장로님들은 마을의 전사들을 보내고 싶어 하셨지만, 그래도 안내인인 제가 같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고작 그런 걸로 목숨이 달린 일에 자원했다고?
세은이 잠시 아무 말 없이 로나민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드워프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원래 드워프들이 이상한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세은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로나민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 혹시 제가 못 미더우셔서…….”
“됐어.”
로나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세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빨리 갔다 오자고.”
“예!”
어차피 드워프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은은 로나민을 재촉했다.
마목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마물의 숲의 길을 안내할 인원이 있다면 충분했다.
“아,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아주 성가신 마물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그냥 가장 빠른 거리로 이동해.”
“성가신 마물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하늘을 날거나 땅 밑으로 숨는 놈들.”
“알겠습니다.”
세은의 말을 들은 로나민의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사실 인간인 세은이 전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자원하기는 했지만, 마물의 숲에 따라오는 건 두려운 일.
하지만 이렇게 자신감을 보여주니 목숨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이미 전사들에게 세은의 실력이 상상 이상이란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듣는 것과 체감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니까.
“그럼 발소리를 죽이지 않고 빠르게 가겠습니다.”
“내가 원하던 바야.”
타다닥―
세은의 말이 떨어지자 로나민이 속도를 더욱 올렸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과 나뭇가지들이 그의 뛸 때마다 밟혀서 부셔지는 소리가 숲을 울렸다.
원래 같으면 이 소리를 듣고 어떤 마물이 나타날지 몰라 항상 발걸음을 조심해야 했지만, 지금은 거칠 게 없었다.
세은은 그런 로나민을 뒤따르며 주위를 살폈다.
신성력으로 주변을 감지할 수는 없으니 최대한 오감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었다.
키엑―!
숲을 달리는 발소리와, 드워프의 냄새를 맡은 마물 하나 반응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마물의 울음소리에 로나민이 순간 걸음을 멈췄다.
세은은 그런 로나민의 등을 살짝 치면서 재촉했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 가. 여기서 조금 멀리 있으니까.”
“아, 알겠습니다.”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나 마물의 울음소리에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는지 세은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물들이 계속 이렇게 소리를 듣고 한 번에 몰리면 어떻게 합니까?”
“상관없어.”
세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육체적인 능력은 다 회복이 되었으니, 어설픈 마물들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하늘을 나는 놈들과 땅 밑으로 숨어 들어가는 놈들…….
그런 놈들은 차라리 마목 근처로 유인해서 마물들끼리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 유리했다.
그런고로 세은은 어지간하면 마물들을 상대하지 않고 마목이 있다는 장소까지 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곳에 도착하면 마물들끼리 싸움이 일어날 텐데, 지금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키이익―!
“…….”
로나민은 마물들의 울음소리가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더욱 굳은 얼굴로 속도를 올렸다.
방금 전의 속도가 제일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점점 달리는 속도가 빨라지니, 로나민은 그에 비례해서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그렇게 얼마를 더 달리니 로나민은 거의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
키에엑―!
끼이이이―!
그러나 점점 더 추가되는 마물들의 울음소리는 그런 로나민의 걸음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러다가는 달리다 쓰러질 거 같아 세은이 로나민에게 말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해?”
“……여기서…… 허억……. 이 속도면…… 헉…… 30분…….”
이미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로나민은 세은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30분이란 얘기는 세은의 귀에 제대로 들려왔다.
“그럼 조금 쉬었다 가지.”
“…….”
하지만 로나민은 세은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세은은 로나민의 상태를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대답이 없음에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보니까 더 이상 달리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5분만 쉬었다가 가지. 5분이면 마물들이 우리한테 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니까.”
“허억……. 알겠…… 습니다…….“
세은의 말에 그제야 로나민의 다리가 멈췄다.
어차피 그렇지 않아도 거의 한계에 도달한 상황.
그러나 오랫동안 쌓인 마물에 대한 공포가 계속하게 로나민을 달리게 만들고 있던 것이었다.
“응?”
키에에엑―
하지만 둘이 채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마물들들의 울음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갑자기 거리가 확 줄어들었는데?”
“하, 하늘에 있습니다!”
세은과 로나민이 주위를 둘러봤다.
나무로 인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머리 위에 마물들이 허공을 비행하는 것을 발견할 수는 있었다.
“어쩐지 거리가 확 줄어들었다 했더니 하늘로 오는 놈들이 있었네.”
“어, 어떻게 하죠?”
하필이면 세은이 처음에 어지간하면 피하자고 했던 공중을 비행하는 마물들이었다.
하지만 당황하고 두려움에 쌓인 로나민과는 달리, 세은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 어쩌기는, 어차피 나무가 많아서 제대로 내려오기는 힘들 테니까 여기서 조금 더 쉬다가 이동하자고.”
“하, 하지만 따라올 텐데…….”
가다 보면 나무가 부족한 널찍한 장소가 나오는 곳도 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하늘을 나는 마물들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로나민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가자 세은이 그를 달랬다.
“걱정하지 말고 안내만 해. 마물한테 당하는 일은 없게 할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세은의 말에 조금 진정한 로나민이 열심히 숨을 골랐다.
그렇다고 해서 달리다가 중간에 멈출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체력을 회복해 놔야 했다.
“자, 그럼 다시 갈까?”
잠시의 기다림 후.
로나민의 호흡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세은이 입을 열었다.
이미 공중의 마물들 말고도 주변의 지상으로도 마물들이 상당히 거리를 좁힌 뒤였다.
서로를 경계하느라 쉽게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순간.
언제 달려들지 몰랐다.
그렇게 되면 세은이 문제가 아니라 옆에 있는 로나민이 문제였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세은의 말에 로나민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닥―
그들의 이동과 동시에 마물들도 따라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마물들이 많이 있나?”
“아, 마물의 숲이니까요.”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대답했다.
“하지만 원래 마물들도 자신의 영역이 있고, 다른 마물들의 영역을 잘 침범하지는 않습니다.”
“그래, 내가 궁금한 게 그거야. 아무리 하늘에 있는 마물이어도 각자의 영역이 있을 텐데 말이야.”
“일단 이 근처는 아비규환일 겁니다. 멘티스가 죽었으니 조금 강하다 싶은 마물들은 전부 그쪽으로 몰려갔을 테고, 그로 인해서 주변이 공백이 생긴 거죠.”
“흐음.”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세은이 알기로도 마물들은 일정한 영역을 가지고 그 안에서만 움직인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세은과 로나민을 따라오는 마물들은 그 수가 줄지를 않고 있었다.
이 정도 움직였으면 영역이 바뀌어서 마물의 수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더 늘어나기만 하는 상황.
하지만 로나민의 말을 들으니 의문점을 풀 수가 있었다.
“키에에엑!”
“오, 옵니다!”
“그냥 그대로 달려!”
나무가 별로 없는 개활지로 나오자 드디어 공중의 마물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로나민이 자신을 향해 낙하하던 마물을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우웅―
세은은 그대로 손에 빛의 검을 만들어 쥐고 마물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으아아아아!”
로나민이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키에엑!”
그리고 당연히 마물들은 더 겁에 질리고 약해 보이던 로나민에게 먼저 공격을 퍼부었다.
푸욱―
“끼엑!”
그러나 일정한 거리로 낙하한 마물들은 세은의 빛의 검에 그대로 목을 꿰뚫렸다.
공중을 나는 마물의 특성상 낙하를 하기 위해서는 자세가 고정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자세로는 주변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제대로 방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특히 다른 사람도 아닌 세은의 공격이라면 더더욱.
신성의 검은 마물들에겐 상극이니까 말이다.
“키에에에!”
순식간에 마물 세 마리가 그런 식으로 죽자, 마물들은 로나민을 놔두고 세은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로나민이 먼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러나 쉽게 세은에게 달려들지는 못하는 상황.
“대, 대단하십니다.”
그 와중에 로나민은 세은이 마물들을 손쉽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 얼굴의 혈색이 돌아온 상태였다.
“다른 곳 보지 말고 계속 달려.”
“예!”
로나민이 뒤를 돌아보자 세은이 주의를 주었다.
“캬아악!”
동시에 공중을 나는 마물들이 이번엔 세은을 노리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쭉 펴고 거의 추락하듯 다가오던 마물들의 모습이 세은의 두 눈에 들어왔다.
무게가 실린 저 공격을 제대로 받아내면 당연히 사망이었다.
하지만 세은은 그 공격에 제대로 맞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우우웅―
서걱―
신성의 검에 조금 더 힘을 집중한 세은이, 타이밍을 맞춰 그대로 마물의 머리를 잘라냈다.
쿠웅―
머리를 잃은 몸이 그대로 바닥에 강력하게 충돌했다.
“으어어?”
그 여파로 인해 달려가던 로나민의 몸이 흔들릴 정도.
그러나 뒤에서 세은이 그런 로나민의 몸을 잡아 넘어지지 않게 지지해 주었다.
“계속 달려.”
세은으로서도 저렇게 하강해 오는 마물들을 카운터로 잡는 일은 어려운 것이었다.
까닥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는 날에는 마물이 아니라 세은의 목이 날아갈 상황.
하지만 공중에서 날아오던 공격을 모두 피해내면서 속도를 유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로나민이 개활지가 거의 끝나갈 때 보이는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안으로 들어가서 15분만 더 가면 마목이 있습니다.”
“조항. 그럼 일단 들어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간다.”
“예!”
공중의 마물을 피할 수 있는 숲이 보이자 로나민의 다리가 더 가열 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은은 로나민이 숲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돌려 자신을 노리던 공중의 마물들을 상대했다.
“키악!”
우우웅―
그러나 마물들은 섣불리 세은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순식간에 그에게 죽은 동료들만 네 마리.
만만치 않은 상대란 게 마물들의 본능에 각인되었다.
“후우.”
세은은 그런 마물들을 견제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끼이익―
께엑―
저 멀리 하늘에도 마물들이 공중을 날고 있었다.
“난리도 아니네 완전.”
거기에 여기저기서 마물들의 기척이 느껴지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