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59화 (159/225)

# 159

43. 드워프(5)

“이 정도면 충분할까요?”

로나민이 반으로 덜어내고 가져온 식판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충분해. 다음부터는 이것보다 조금 더 적게 부탁하지.”

“아, 알겠습니다.”

세은은 자신의 앞에 새로 놓은 식판을 보며 말했다.

방금 전보다는 훨씬 줄어든 양이었지만, 그래도 평소 세은의 식사량보다 더 많은 수준이었다.

마계에 와서 처음 먹는 식사이니 풍족하게 먹는다고 생각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후룩―

식사가 시작되고 잠시 동안은 서로 음식을 먹는 소리만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식사가 진행이 되고, 배가 차자 로나민이 먼저 입을 열어 세은에게 물었다.

“저, 맛은 어떠신가요?”

“맛있어.”

“아, 다행입니다. 입맛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네요.”

세은의 대답에 로나민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의 관찰일지에 인간과 드워프의 입맛이 비슷하단 사실이 적힐 것이었다.

언젠가 또다시 인간을 마주할 후손들을 위해, 그리고 현재의 자신을 위해 로나민은 자세하게 눈앞의 인간을 관찰할 생각이었다.

그 뒤로 로나민이 몇 가지 더 물었지만, 소소한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았다.

세은은 대충 그의 말에 대답해 주며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로나민이 세은의 식판까지 들고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세은은 그런 로나민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드워프 마을에서의 첫날이 지나갔다.

* * *

다음 날.

자신을 안내하기 위해 찾아온 로나민과 밖으로 나온 세은이 드워프 마을을 조금 더 여유 있게 둘러볼 수가 있었다.

화려한 장식이 없는 실용적인 성벽에 단단하게 둘러싸여진 방어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주변의 마물들의 침공에 대비해 만든 방어 시설인 것 같았다.

“이걸로 마물들 방어가 되나?”

“아, 이건 마물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럼?”

“예전에는 근처에도 다른 부족들이 많았죠. 물론 드워프끼리는 어지간하면 다툼이 없었지만 마계엔 드워프들만 사는 것이 아니니까요.”

“마족이랑 마물 말고 다른 게 있다고? 마계에서 몇 달을 있으면서 단 한 번도 못 봤는데?”

로나민의 말에 세은이 물었다.

실제로 그가 마계에 무지한 것은, 단순히 마왕들을 잡기 위해서 왔다가 돌아간 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마계에서 마왕들은 잡기 위해 교단과 돌아다니는 동안, 세은은 단 한 번도 다른 지성체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문헌에나 있던 드워프가 마계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신기한 상황.

그런데 부족을 이루는 다른 지성체가 더 있다고 하니 놀람은 배가 되고 있었다.

“아…… 모르시나요?”

로나민의 물음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어차피 들어야 할 게 많으니까. 우리 서로 솔직하게 궁금한 게 있으면 주고받기로 하자고.”

“아!”

직설적인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순간 당황했다.

그러다 이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저야 영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손님께 이것저것 여쭤보기가 죄송하던 참이었던 터라…….”

“뭐, 괜찮아.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하하. 문헌에 적힌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분이시군요.”

로나민의 말에 세은은 대체 그 문헌에 인간에 대해 어떻게 써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당장 중요한 것은 문헌에 적힌 인간의 평가를 아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방금 전의 질문을 다시 던졌다.

“그래서, 누구의 침공을 대비해서 만든 거야?”

“노움입니다.”

“노움?”

로나민의 설명에 따르면 노움과 드워프의 관계는 이러했다.

드워프와 노움은 각각 장인 종족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훌륭한 도구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

초창기에는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며 더 빠른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계에서 광물을 구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었다.

처음 안전지대에 존재하던 풍부했던 광산이 메마르자 드워프와 노움은 다른 광산을 찾아 움직였다.

하지만 처음에 드워프와 노움이 터를 잡았던 곳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곳들.

다른 곳에서 광산을 찾자니 희생이 결코 적지 않았다.

거기에 우연히 광산을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광산에서 광물을 채굴하는 소리를 들은 마물들이 몰려들어 항상 많은 희생을 치렀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드워프와 노움은 각자 살길을 찾기 위해 방법을 찾아 나섰다.

드워프들은 먼저 마물들을 막아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노움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존재를 찾아 마족들을 찾아 다녔다.

마족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마물에게서 보호를 받는 길을 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족들이 원하는 것을 노움들이 주기란 쉽지 않았고, 보호를 해줄 마족을 구하는 동안 노움들은 극심한 광물 기근에 시달렸다.

그리고 혹여 도와줄 마족을 구한다고 해도 모든 노움들이 전부 혜택을 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노움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그중 일부 노움들이 마물보다 만만한 드워프들을 약탈했다는 얘기였다.

“그럼 드워프들은 뭉쳐 있을 거 아냐? 그런데 노움들이 약탈을 할 수가 있었다고?”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대답했다.

“당연히 드워프들도 살길을 찾아 흩어진 상태였습니다. 처음 정착한 곳의 광산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사용할 만한 광산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 광산이 꼭 필요한 건가? 여기만 해도 여러 직업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하하. 드워프들은 직업이 달라도 전부 훌륭한 장인입니다. 그리고 어느 작업이건 광물이 들어가지 않는 직업은 없지요.”

“옷은?”

“하다 못에 옷에도 단추나 장식품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다른 이들에게 작품의 재료를 의뢰하면 온전한 자신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가 없으니까요.”

세은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종족이 다른 이상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무리.

세은의 질문이 다 끝났다고 생각되자 이번에는 반대로 로나민이 물었다.

“인간들은 그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맡깁니까?”

“아무래도 각자 잘하는 것이 다르니까. 보통 그런 걸 분업이라고 하지.”

“오…… 인간들 중에는 그럼 장인이 없는 건가요?”

“단순히 하나의 기술만 잘 갈고 닦아도 장인이라고 하지. 직조 계열이면 직조. 가죽이면 가죽. 광물까지 다룰 필요는 없어.”

“그거 신기하군요…… 아무리 직조나 가죽이어도 광물이 필요할 터인데.”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로나민에게 들었던 말 중에 의문이 들었던 것이 있는 세은은 그가 생각에 잠길 틈도 주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노움들이 마족에게 도움을 청했다며? 내가 듣기로 이 마을도 마족과 관련이 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아…… 그렇습니다.”

마족이라는 단어에 로나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저희끼리 마물을 막아내는 건 한계가 있지요. 그래도 저희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그나마 온화한 마족을 만났으니까요.”

“마족이 온화하기는.”

코웃음을 친 세은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마목이란 게 뭐야?”

마족이 원한다는 마목이라는 것이 궁금했다.

이름만 들어도 마계에서만 날 것 같은 물건이었다.

“아, 마기를 듬뿍 먹고 자란 나무를 뜻합니다. 마계에서 마기를 먹지 않고 자라는 동식물이 없긴 하지만, 마목은 특별하죠.”

로나민은 잠시 목을 가다듬고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마기가 비정상적으로 몰리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자라는 나무들을 마목이라고 합니다. 그런 나무들은 가지고 있는 마기의 양과 질 자체가 다른 나무들과 다릅니다. 심지어 상급 마물들의 마정석과도 비견될 정도이죠.”

“그런 나무가 있다고?”

“예.”

“그런 나무들을 마물들이 그냥 두지는 않을 텐데.”

더 강해지기 위해 마기에 환장하는 마물들의 습성은 세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나무들이 야생에 남아 있다는 말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의심스러워하는 세은의 말에 로나민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나무를 먹을 수 없으니까요. 대신 그 주변에만 있어도 마기가 모이니 마물들은 보통 마목을 중심으로 영역을 짭니다.”

“그게 멘티스의 영역에도 있다는 말이군.”

“예. 멘티스가 그나마 마목을 가지고 있는 마물들 중에서는 가장 약한 마물입니다. 그쪽의 마목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데 겨우 그런 걸 마족이 요구한다고?”

“예. 마족들은 마물과는 다르게 마목을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마족이니까요. 무언가 방법이 있겠죠.”

거기까지 대답한 로나민의 얼굴이 문득 다시 흐려졌다.

“그나저나 큰일입니다. 마목을 구하기는 해야 하는데, 여유 인원이 없어요.”

“이 정도의 일이면 없는 인원을 만들어서라도 해야 할 텐데?”

“당연히 그렇습니다만…….”

잠시 말끝을 흐린 로나민이 다시 말을 이었다.

“갑작스레 많은 전사들이 빠져나가면 필히 노움들이 쳐들어올 겁니다. 여전히 광물은 부족하고, 이제는 동맹 관계도 깨진 지 정말 오래 되었으니까요.”

“흐음…….”

로나민의 말을 듣던 세은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차피 멘티스는 내가 죽였는데?”

“……예?”

생각지도 못한 세은의 말을 로나민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멘티스는 내가 죽였다고, 그럼 거기에 있는 마목인가 뭔가는 주인이 없는 거 아냐 지금?”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니까 드워프 둘을 살려서 데리고 왔지.”

“자, 잠시만! 죄송합니다.”

세은의 말에 로나민은 황급히 장로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잠깐!”

졸지에 혼자 남게 된 세은은 로나민을 불렀지만, 이미 그는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 * *

“전사들의 은인이자 마을의 손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딱 한 번만 이렇게 부탁하겠네.”

“흐음…….”

세은은 대답 대신 빤히 엔블을 바라보았다.

엔블은 세은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다.

세은의 앞에는 푸짐한 다과가 차려져 있었는데, 여태까지의 태도와는 달리 엔블과 그 옆의 오드레는 살짝 기가 죽은 태도였다.

‘도와줘야 하나.’

세은은 방금 전에 엔블이 했던 부탁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맨티스의 영역에 있던 마목은 이미 다른 마물들이 모여드는 각축장이 되어버렸다.

주인이 사라졌으니 물건을 갖기 위한 아귀다툼이 생기는 일은 당연한 일.

그러나 드워프들은 그 안에서 마목을 가지고 나올 만한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자네가 원하는 만큼 마을에 머물 수 있게 해주겠네. 그리고 다른 원하는 것이 있어도 물론.”

“…….”

세은은 드워프들에게서 받아낼 수 있을 만한 게 뭐가 있을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몸의 회복에 좋은 약초의 위치라든가…….’

일단 신성력만으로도 회복은 충분하지만, 마찬가지로 다른 영초나 영물을 먹으면 그 회복력은 배가 된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회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최대한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게 더 옳은 선택.

그러나 세은은 최대한 회복의 시간을 줄여야 하는 입장이었다.

거기에 드워프들이라면 굳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상황.

결국 세은은 드워프들과 거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목에 몰려든 마물이 어떤 놈들이든, 기존에 있던 멘티스보다 강한 놈을 없을 것이 분명했다.

더 강한 놈이라면 애초에 멘티스를 몰아내고 마목을 차지했을 것이 뻔하니까.

“일단 이 마을 기준으로 한 마계에 있는 마왕들의 위치.”

“마, 마, 마왕이라고 한 건가?”

“그래.”

놀란 엔블이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세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 왕은 대체 왜?”

“이유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군.”

혹시라도 모르니 마왕들은 아직 피해 다니는 게 상책이었다.

엔블이 조심스럽게 세은에게 물었다.

“그게 전부인가?”

“아니, 그럴 리가.”

세은은 씩 웃으며 다른 조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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