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43. 드워프(2)
“이 근처에는 없고, 30분 거리에는 있습니다.”
카밀크에 대답에 세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여기까지 들어왔지?”
“아…….”
세은의 질문에 곧잘 대답하던 카밀크가 순간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무슨 사정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 세은이 다시 물었다.
“말하기에는 좀 그런 일인가?”
카밀크의 눈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마왕이 아니라는 것은 세은이 방금 말했으니 확실했다.
마왕들은 자신의 정체성으로 장난을 치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평범한 인간이 마계에서 이토록 자연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즉, 적어도 마왕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밀크는 쉽게 친구들과 이곳까지 들어온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곳으로 들어온 이유가 바로 마왕과 관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뭐, 말하기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돼.”
카밀크가 쉽게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이 보이자 세은이 말했다.
“그것보다 그럼 그 마을에는 드워프만 있나?”
“아, 예. 일단은 그렇습니다.”
“일단은?”
“예. 종종 다른 종족들이 교역을 위해 지나가기도 합니다.”
“흐음…….”
카밀크에 말에 세은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하긴 문헌에도 드워프들은 손재주가 좋아 다양한 물건들을 잘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은 질이 좋아 다양한 곳에 사용될 수 있다고도 적혀있었다.
“그럼 마족들도 오나?”
“마족들은 오지 않습니다.”
“하긴…… 통치에 딱히 관심이 있는 놈들은 아니니까.”
카밀크의 대답을 들은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세은의 모습을 바라보던 카밀크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처럼 마계에 대해 기본적인 것을 물어보는 것이 이상했다.
적어도 지금 그가 있는 동부 마물의 숲은 마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각 구역별로 마물들의 영역이 확실한 곳이었고, 그 마물 하나하나가 그 강력함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나마 멘티스는 약한 마물에 속했는데, 그것 때문에 카밀크과 라크밀이 빙빙 돌아서 여기로 온 것이기도 했다.
“특별히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는 세은의 태도에 카밀크가 눈치 좋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세은이 입가에 씩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안전하게 쉴 만한 곳.”
* * *
세은은 카밀크와 라크밀을 따라 드워프 마을로 이동했다.
“이거 경계가 너무 심한데?”
그리고 드워프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세은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경계의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다.
혹여나 세은이 그런 시선에 기분 나빠할까 카밀크가 다급하게 세은에게 말했다.
“인간은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뭐, 기분이 나쁜 건 아니고. 시선이 너무 따갑군.”
세은은 별다른 표정 없이 카밀크의 말에 대답했다.
만약 인간들의 도시에 드워프가 나타난다면 당연히 같은 반응이 나타날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세은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에게서 관심을 끄고, 고개를 돌려 드워프 마을을 구경했다.
드워프 마을은 생각한 것처럼 목책이 서 있는 그런 작은 마을은 아니었다.
인간들의 마을처럼 돌로 쌓인 성벽이 있는 꽤 커다란 마을.
마을이라는 말보다는 도시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드워프도 그 숫자가 꽤 많은가 보군.”
“이 근방에서는 저희 마을이 가장 큰 마을입니다.”
세은의 중얼거림에 카밀크가 대답했다.
마물의 숲을 빠져나오면서 세은의 힘을 충분히 견식한 카밀크다.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힘이 마기와는 전혀 다른 힘이라는 것을 파악한 라크밀의 경계심도 많이 사그라진 상태였다.
“일단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장로님을 먼저 뵙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세은은 순순히 카밀크를 따라 이동했다.
세은이라고 마냥 뒤를 따라 졸졸 걸어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카밀크가 드워프 중에서도 전사에 속한다는 말을 듣고, 드워프가 자신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을 내린 뒤였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는 장로라는 놈을 잡아서 인질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사회나 지도부를 잃기 싫어하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똑똑―
어느새 드워프 마을의 중앙에 있는 건물에 도착한 카밀크가 정중하게 문을 노크했다.
“누군가?”
안에서 상당히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 장로님. 크고 단단한 모루의 카밀크입니다.”
“오! 카밀크!”
카밀크의 자기소개에 안의 목소리가 반갑게 변했다.
벌컥―
그리고는 누군가 달려 나오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건물의 문이 열렸다.
“잘 돌아왔나?”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카밀크와 라크밀보다 수염이 두 배나 긴 드워프였다.
매우 반가운 표정을 짓던 그 드워프는, 이내 뒤에 서 있던 세은을 발견하고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 인간?”
“우연히 도움을 받았습니다.”
“도움이라니……. 그러고 보니 크카멜은?”
장로 드워프의 말에 카밀크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밀크의 행동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드워프는 라크밀의 등에 업혀있는 고깃덩이를 발견했다.
“서, 설마?”
“…….”
“…….”
그러나 카밀크와 라크밀은 그런 장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이, 이게 대체?”
“일단 들어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아, 그러지. 그런데 인간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세은에 대한 경계를 놓지 않는 장로의 모습에 카밀크가 대답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를 도와준 은인이십니다.”
“그, 그래. 일단 들어가지.”
은인이라고 하니 장로 드워프는 일단 세은까지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다른 이도 아니도 일족의 전사인 카밀크가 아무나 데리고 왔을 리가 없다는 믿음도 저변에 깔려 있는 행동.
모두가 안으로 들어오고, 건물의 문이 닫혔다.
쿵―
라크밀은 조심스럽게 크카멜의 시신을 문 옆에 내려놓고 접객실로 이동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해 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흐음…… 건물이 상당히 실용적이네.’
세 명이서 둘러앉은 드워프와는 달리, 세은은 자리에 앉지 않고 건물 안을 둘러보았다.
건물 안은 딱히 벽이 없이 하나의 원룸처럼 구성되어 있었는데, 커다란 벽난로가 유독 눈에 띄었다.
아니, 벽난로라고 하기에는 오히려 화로에 가까웠다.
장로 드워프는 자리에 앉지 않는 세은이 신경 쓰였지만, 일단 가만히 서서 집을 구경하는 모습에 카밀크에게 먼저 시선을 주었다.
카밀크는 그런 장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장로님의 명령을 받아 저희는 멘티스의 영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렇지. 거기서 꼭 필요한 마목을 구해와야만 했어.”
“예. 저희는 멘티스의 영역까지는 무사히 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료가 죽은 얘기를 하려하자 카밀크의 목이 살짝 메었다.
옆자리의 라크밀은 이미 눈시울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저희는 우선 조심스럽게 나뉘어서 마목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아시겠지만 마기를 머금은 마목은 워낙 구하기 힘든 나무이니까요.”
“그래, 그래서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네들은 마물의 숲으로 보낸 것이 아닌가.”
“그런데 수색을 마치고 돌아오니, 약속한 시간이 되도록 크카멜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와 라크밀는 크카멜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영역의 주인인 멘티스의 포효를 들었습니다.”
“…….”
거기까지만 들어도 장로는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둘이 어떻게 멘티스에게서 크카멜의 시선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였다.
둘의 전력으로는 멘티스에게서 크카멜의 시신을 가지고 돌아올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니까.
멘티스가 약해진 상태거나, 정말로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그러나 장로 앞에 두 명의 드워프는, 조금 피곤해 보이기는 해도 매우 멀쩡한 상태였다.
“저희는 크카멜이 살아 있을 경우를 위해 빠르게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크카멜은 멘티스에게 당한 뒤였고…… 저희의 위치도 멘티스에게 발각당한 뒤였습니다.”
말만 들어도 정말 위험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장로는 둘보다 더 오래 마계에서 살아온 연장자로, 마물들의 위험함을 더 잘 알고 있었다.
“크음……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군. 이렇게 둘이라도 살아 돌아왔으니 다행이네. 그럼?”
마지막 의문문과 함께 장로의 시선이 여전히 실내를 구경하고 있는 세은에게로 향하자 카밀크의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분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크카멜의 시신을 가지고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마목은 미처 찾을 경황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 없네. 자네들로서는 최선을 다했어.”
장로는 카밀크와 라크밀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격려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마물의 숲으로 보내면서도 최악의 상황에는 셋 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마물의 숲에서 하룻밤을 버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돌아왔다고 했을 때 기뻐했지만, 한 명의 희생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혹시 저 인간이…….”
목소리를 낮추고 물어오는 장로의 모습에 카밀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마물의 숲을 빠져나오면서 힘을 쓰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본인의 입으로도 마왕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마기와는 다른 힘을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 다행이야.”
카밀크의 말에 그제야 장로의 얼굴에 안심이 깃들었다.
인간 자체가 희귀하기는 했지만, 마족과 관련된 이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심이었다.
당장 마을의 전사들을 위험한 마물의 숲에 보낸 것도 마왕 때문이 아니던가.
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우리 전사들을 살려준 은인들과 얘기를 해봐야겠지.”
자신을 얘기하는 장로의 말에 세은의 고개가 장로에게로 돌아갔다.
“저희 마을의 장로님이십니다.”
카밀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은에게 말했다.
자신과 대화를 하려고 하는 장로의 모습에 세은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우리 전사들을 도와줬다고 들었네. 인간. 반갑네. 나는 이 마을, 타오르는 마목의 장로. 흘러내리는 빨간 쇳물 엔블이네.”
“도세은.”
“토…… 쎄은? 어려운 이름이구만.”
시렌이라는 이름도 있었지만, 세은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이곳은 마계다.
시렌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혹시나 하고 찾아올 놈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곳.
굳이 이런 곳에서 그런 위험 부담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하여튼 우리 전사들을 도와줬으니 보답을 하고 싶은데. 원하는 것이 있나?”
“현재 마계에 대한 정보. 그리고 편안하게 쉴 곳.”
“정말로 그거면 되겠나?”
“물론.”
장로는 생각보다 과하지 않은 세은의 요구에 속으로 안심했다.
문헌으로 본 인간들은 탐욕이 강하고, 욕심이 많아 이기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인간이 요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굳이 은인이 아니더라도 마을을 방문한 손님들이라면 충분히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아, 그리고 내가 마을에 왔다는 건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데.”
“흠…… 이미 인간이 이리로 오는 동안 많은 부족원들이 봤을 텐데?”
“장로라니 어느 정도 정보 통제는 가능하겠지. 내 상황이 상황이라서.”
“혹시, 마왕에게 쫓기고 있나?”
“그건 아니지만, 굳이 알려지면 좋을 건 없지.”
장로의 말에 뜨끔했지만, 세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실제로 그가 지금 마왕에게 쫓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장로는 세은의 말에 의심하는 기색을 지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전사들의 은인이니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
장로는 카밀크과 라크밀에게 각각 쉴 곳과 입단속을 할 것을 지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