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52화 (152/225)

# 152

42. 마계(2)

세은은 오랜만에 보는 빛에 눈을 적응시키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니 피를 뒤집어쓴 것 같이 새빨간 털을 가진 동물의 뒷모습이 보였다.

“크르르륵…….”

다이어 베어.

마계의 마물 중에서도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였다.

작은 구멍으로 봐서 정확한 크기를 측정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성체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끄응…… 저건 상대하기 힘든데.’

주변을 배회하는 마물이 다이어 베어라는 것을 확인한 세은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다이어 베어는 마계의 다른 특이한 마물들처럼 신기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거대한 곰일 뿐.

그래서 평소에는 상대하기 크게 어렵지 않은 마물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평소일 때고…….’

하지만 지금 세은의 몸 상태로는 그 어떤 마물보다 까다로운 상대 중에 하나였다.

보통 능력이 특이한 마물들은 방어력이 낮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이어 베어는 거대한 곰에 불과한 대신 그 가죽이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단단했다.

어지간한 오러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정도.

심지어 일정 이상의 항마력도 지니고 있어서 마법도 잘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제대로 신성력을 발휘할 수 없는 세은으로서는 최악의 마물.

‘일단 최대한 힘을 비축해야겠어.’

다행히 비가 쏟아질 때 만든 은신처라 세은의 위치를 확실하게 잡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이어 베어가 이대로 물러나기를 바라며 세은은 다시 신성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우웅― 우웅―

신성력이 마치 혈액처럼 온몸을 타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온몸 구석구석으로는 퍼지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말라붙어 버린 강이 그 본류만 겨우 유지하는 것처럼, 커다란 길로만 흐르는 신성력.

하지만 다시 지류까지 풍부하게 흘러넘치게 만들어야만 했다.

웅웅―

세은은 잠시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고 신성력을 모으는 데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다이어 베어가 여태까지 세은을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떠나지 않는 것은 하나다.

확실히 세은의 냄새를 맡고, 표적을 분명하게 결정했다는 뜻이었다.

마계에서는 도통 맡기 힘든 사람 냄새니 당연히 끌릴 만도 했다.

“크르르르…….”

다이어 베어는 희미하게 남아 있던 냄새를 쫓아 끊임없이 주변을 맴돌았다.

설마 나무 밑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 보니 냄새 진하게 배는 것은 막을 수가 없는 일.

다이어 베어의 움직임이 점점 세은의 근처로 한정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다이어 베어에게 위치를 들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세은이 고민했다.

어차피 밖으로 나가는 순간 냄새 때문에 위치를 들킬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이 안에서 최대한 회복을 하는 것도 애매했다.

구멍 안에서 미처 준비하지 못했을 때 다이어 베어에게 들키면 나가지도 못하고 당하는 수가 있었다.

우웅―

세은은 최대한 치료를 하며 구멍에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다이어 베어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졌다.

이러다가는 뭐 한 번 해보기도 전에 다이어 베어에게 잡힐 상황.

결국 세은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스럭―

세은은 조심스럽게 입구를 막아놓은 낙엽을 걷어냈다.

다이어 베어는 나무의 뒤쪽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거리가 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세은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구멍에서 빠져나왔다.

‘으윽…….’

오랫동안 좁은 구멍에 몸을 넣고 있었더니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웅―

그러나 신성력을 돌려 근육을 최대한 빨리 풀어준 세은이 재빨리 튼튼한 막대기 두 개를 주워들었다.

어제 입구를 막기 위해 가져왔던 나무들이었다.

지금 신성력으로 신성 마법을 남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크응―?

다이어 베어는 갑자기 짙어진 먹잇감의 냄새를 포착하고 세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지금의 상황을 예측한 세은은 천천히 뒤로 움직여 등 뒤에 나무를 가져다 대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피하는 것보다 나무를 뒤에 두고 피하는 것이 더 예측을 하기 쉬었다.

다이어 베어도 나무가 있는 이상 공격하는 방법이 한정될 수밖에 없으니까.

“크허헝!”

이내 세은을 발견한 다이어 베어가 길게 포효를 내질렀다.

오랫동안 찾았던 먹이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다이어 베어를 흥분하게 했다.

거기에 발견한 살이 야들야들해 보이는 인간이라니.

오늘은 사냥운이 참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뚝뚝.

다이어 베어의 커다란 입에서 진드한 침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세은이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시발. 하다못해 고작 거대한 곰 새끼한테도 한 끼 먹잇감으로 보일 정도라니.”

그러나 세은은 어이없다는 듯한 말투와는 달리, 양손에 쥐고 있던 나뭇가지에 더욱 힘을 주었다.

다이어 베어는 세은이 도망가지 않자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천천히 세은에게 다가왔다.

턱― 턱―

이내 세은과 다이어 베어의 거리가 3미터까지 가까워졌다.

순간.

“크헝!”

순식간에 다이어 베어가 괴성을 지르며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육중한 몸으로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땅이 거칠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비가 다 마르지 않아 습기를 품고 있던 바닥은 그 힘에 움푹 파이며 속살을 드러냈다.

“후우.”

그러나 세은은 다이어 베어가 그렇게 달려들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짧게 호흡을 내뱉었다.

긴장한 눈으로 자신의 코앞까지 달려오는 다이어 베어를 끝까지 지켜보던 세은이었다.

콰직―!

이내 가장 먼저 머리를 노리고 날아온 거대한 앞발을 고개를 숙여 피해냈다.

엄청난 힘의 거대한 나무의 일부가 그대로 부서져 나갔다.

세은은 고개를 숙인 그대로 오른손에 들고 있는 막대를 역수로 휘둘렀다.

탁!

“컹!”

힘이 실린 막대가 정확히 다이어 베어의 콧잔등을 강타했다.

“큭!”

그러나 처음의 목표는 눈.

코도 다이어 베어의 약점 중 하나지만, 검도 아닌 막대기로는 큰 타격을 주기가 힘들다.

쿵!

그사이에 다이어 베어가 세은을 윙서 아래로 내려쳤다.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그 자리 위로, 엄청난 깊이의 발자국이 깊게 새겨졌다.

“어후. 개새끼 힘만 세서는!”

다급히 공격을 피해 옆으로 돈 세은은 다시 다이어 베어의 눈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콰지직―

그러나 다이어 베어가 거칠게 휘두르는 앞발에 막대기가 그대로 반으로 부러졌다.

“끄응.”

세은은 남은 막대기 하나를 양손으로 들고 급히 다이어 베어의 공격을 피해냈다.

좀 더 제대로 치료를 하면 모를까, 지금 세은의 몸 상태는 신성력을 끌어올리기에는 위험한 상태였다.

그만큼 신성력의 폭주는 그의 몸 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

억지로 신성력을 끌어올리다가는 오히려 그대로 절명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세은은 다이어 베어의 약점을 잡기 위해 나무를 빙 둘러가며 간신히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얼굴은 안 될 것 같고…….’

모든 생명체의 약점은 비슷하다.

육체에 있는 구멍.

그 구멍들이 약점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약점을 공략하기가 힘들다는 점.

하지만 지금 세은의 몸 상태로는 그 어려운 일에 어쩔 수 없이 도전해야만 했다.

“후우…… 진짜 별것도 아닌 새끼인데.”

파팟―

투덜거리면서 세은은 바닥으로 몸을 굴렀다.

그 위를 지나가는 다이어 베어의 앞발이 또다시 공기를 찢어발겼다.

실수라도 스치면 그대로 전투 종료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쉐엑―

바닥을 구르고 일어서면서, 세은은 적당한 크기의 돌을 두 개 집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다이어 베어의 눈을 노리고 돌팔매를 시작했다.

“크어헝!”

다이어 베어가 자신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오는 돌에 팔을 들어 방어했다.

세은은 남은 돌 하나를 눈이 아닌 코를 노리고 집어 던졌다.

퍽―!

“꾸어어엉!”

계속 되는 눈 공격에, 눈을 집중적으로 막고 있던 다이어 베어.

예기치 못하게 코에 커다란 돌을 얻어맞고 그대로 고통에 찬 울부짖음을 시작했다.

다이어 베어는 고통을 참으며 그대로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나 세은은 가볍게 몸을 옆으로 틀어 공격을 피해 다이어 베어의 뒤로 돌아갔다.

콱―!

“꾸어어어억!”

그리고 그대로 나뭇가지를 다이어 베어의 엉덩이에 꽂아넣었다.

“아오. 실패인가?”

그러나 나뭇가지는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 대신 반으로 부러졌다.

다이어 베어가 고통에 차 울부짖기는 했지만, 그건 선천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부위에 타격을 입은 탓이었다.

세은은 혀를 차면서 다시 땅에서 적당한 크기의 돌을 몇 개 주워 뒤로 물러났다.

간단한 먹잇감으로 생각한 세은에게 여러 번의 고통을 느끼자, 다이어 베어가 더욱 흉포함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처음과 달리 앞뒤 보지 않고 다시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쉐엑―!

세은은 자신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던 거체에도 당황하지 않고 또다시 돌을 던져 견제했다.

다이어 베어는 이번에도 정확히 눈을 향해 돌이 날아오자 손을 들어 앞을 막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다이어 베어의 돌진이 멈췄다.

돌진이 멈춘 다이어 베어는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퍽―!

“꾸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또 다른 돌이 다이어 베어의 인중을 가격했다.

다이어 베어는 광기에 찬 눈으로 세은을 공격해 나가기 시작했다.

후웅― 후우웅―

공기가 찢어 발겨지는 살벌한 소리가 숲을 가득 채웠다.

공격 하나하나가 단 한 대라도 맞으면 그대로 절명할 만한 일격필살의 위력.

그러나 세은은 아슬아슬하게 그런 다이어 베어의 공격을 다 피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능이 동물인 만큼 공격이 단조로운 감이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덩치와 위압감에 주눅 들지 않고 이렇게 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또다시 다이어 베어의 뒤로 돌아간 세은이 방금 전 공략에 실패했던 부위를 다시 공략했다.

푸욱―!

“꾸억! 꾸어어억!”

“좋아!”

이번에는 성공했는지 막힘없이 막대가 안으로 들어갔다.

다이어 베어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괴성을 지르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삐죽 솟아 나온 막대가 다이어 베어의 고통을 대신 알려주는 것처럼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다이어 베어는 앞발을 돌려 막대기를 뽑아내려고 했지만, 육체적 구조의 한계상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겨우 승기를 잡은 세은이 막대기를 뽑을 여유를 줄 리가.

주변에서 단단해 보이는 아무 막대기나 집은 세은은 그대로 앞으로 엎어져 있던 다이어 베어의 등을 뛰어 올라갔다.

퍽― 퍽― 퍼억―!

세은은 다이어 베어의 등에 올라타서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꾸오! 꾸오오! 꾸어어억!”

다이어 베어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세은을 떨어트리기 위해 발광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뒤에 박힌 막대기가 더욱 다이어 베어의 내장을 휘저었다.

세은은 열심히 균형을 잡으며 다이어 베어의 머리를 쉬지 않고 내려쳤다.

퍽― 퍽― 퍽― 퍽―

파직―!

제아무리 단단하던 다이어 베어의 가죽과 두개골이라지만, 같은 곳을 쉬지 않고 내려치는 공격에 당할 재간이 없었다.

거기에 뒤에 꽂힌 막대기는 점점 안으로 들어가 이제는 그 흔적도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

“크훙! 크허엉…….”

결국 두개골이 깨지고, 속으로 들어간 나무막대가 다른 내장들을 모두 헤집어 놓고 나서야 다이어 베어가 그 움직임을 멈췄다.

“후우우…….”

그리고 그제야, 세은의 입에서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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