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40. 함정(7)
막상 지상에서 마르바스와 모락스를 상대하고 있는 세은은 바싸고에게 시선을 둘 여유조차 없었다.
왜 바싸고는 참전하지 않고 하늘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지 의아했던 것도 잠시.
둘을 상대하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전력을 다한 세은의 공격에 마르바스와 모락스가 조금씩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크허엉!”
“푸르르릉!”
마르바스와 모락스가 동시에 포효를 내질렀다.
아직 주변에 남아 있던 마물들이 절로 공포에 질릴 정도로 강한 피어.
그러나 세은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끊임없이 공격을 이어나갔다.
“이런, 힘을 전부 찾아도 시렌에게는 무리인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바싸고가 중얼거렸다.
퍼엉―!
응축된 마기로 이루어진 공격이 순식간에 세은을 노리고 날아갔다.
바싸고의 공격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세은을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흡!”
모락스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절호에 기회에 절묘하게 날아와 방해를 하는 마법.
세은이 바싸고의 마법을 막아내며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진짜!”
그리고 그 틈을 타 모락스가 다시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런 식으로 절호의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니, 세은은 별다른 소득 없이 신성력만 낭비하는 꼴이었다.
참전을 하지 않는 건 세은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방해를 하니 좋은 소리가 나올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하는 거지?’
세은은 머리끝까지 짜증이 치솟는 상황에서도 최대한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절대적으로 그가 불리한 상황.
분노와 흥분은 오히려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 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완벽히 당했어. 만약 바싸고까지 합세했으면 벌써 죽었을 수도 있겠지.’
세은은 냉정하게 전력을 평가했다.
결과는 그의 패배.
온전한 마왕 셋은 그로서도 무리였다.
‘그런데 바싸고는 공중에만 있다. 마르바스와 모락스도 최선은 다하는 것 같지만 무리를 하는 것 같지는 않고…….’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장은 이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
‘어찌 되었든 의도가 먹히기 전에 하나를 없애야겠어.’
이러나저러나 결론은 하나.
이미 이 정도의 함정에 빠진 이상 남은 길은 많지 않았다.
우우우웅―
세은의 주위에서 신성의 화염이 잔뜩 일어났다.
신성력의 소모가 가속화되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화륵―
수많은 신성의 화염이 세은의 주위를 빼곡하게 채우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바싸고가 세은을 막기 움직였지만 그보다 세은의 캐스팅이 더 빨랐다.
“에일린. 홀리 파이어.”
콰아앙―!
순식간에 수십여 개의 화염이 모락스를 노리고 날아갔다.
모락스에게 정확하게 적중한 신성의 화염들.
그 많은 화염이 전부 다 자신에게 날아올 줄 몰랐던 모락스는 그 공격을 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엄청난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음메에!”
고통으로 울부짖는 모락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젠장!”
그러나 연기가 걷히고 드러난 모락스의 모습에 세은이 탄식을 내뱉었다.
세은에 마법에 적중당한 모락스의 모습은 매우 가관이었다.
여기저기 화염에 불타올라 까맣게 변한 가죽에, 잔뜩 그을린 털들.
심지어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뿔 중 하나는 반쯤 부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모락스는 그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다.
10할의 힘이 아니라, 마법진의 효과로 계속해서 생기를 마기로 변환 받고 있어서 가능한 일.
세은으로서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방금 전의 공격으로 상당한 신성력을 소모한 터.
부상을 입었을 때 숨통을 끊어놔야만 했다.
탓―
분노와 고통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모락스를 향해 세은이 몸을 날렸다.
콰앙―!
하지만 또다시 날아온 바싸고의 마법이 세은의 진로를 방해했다.
채앵―
그리고 뒤에서 달려온 마르바스의 검을 막아내는 세은.
그사이 모락스는 충분한 거리를 벌린 상황이었다.
“정말 지랄 맞은 상황이다. 이 개새끼들!”
이제 방금 전과 같은 기습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가능한 방도는 모두 사용한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신성력의 빠른 소모를 감수하면서 강한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중간한 공격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키이잉―
거기에 허공에 있는 바싸고를 중심으로 마기가 서서히 모여들고 있는 게 세은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바싸고가 자신을 봐주기 위해 저러고 있을 리 없었다.
분명히 다른 모략을 꾸미던 것이 당연했다.
여기서 더욱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바싸고를 허공에서 끌어내려야만 했다.
쉬익―
마르바스의 검이 쉬지 않고 세은의 머리를 노렸다.
세은은 굳은 표정을 마르바스의 검을 피해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신성력의 소모를 막는 길.
텅―!
바로 이어서 반격하던 세은의 검이 마르바스의 방어에 막혔다.
힐끗 바라보니 모락스는 여전히 마기를 이용해 몸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세은은 그걸 놓치지 않고 이번엔 마르바스를 목표로 삼았다.
“가소롭다!”
세은의 표적 자신으로 변한 것을 눈치챈 마르바스가 포효했다.
일대일로는 자신을 쉽게 생각하는 세은의 행동은 그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카앙―!
검과 검이 부딪히자 듣기 싫은 소음이 들렸다.
동시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마르바스의 신형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세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더욱 공격을 퍼부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바싸고의 견제에도 상당한 기간이 있었다.
‘역시 다른 무언가를 준비하는 게 맞아.’
속전속결.
세은의 검이 마르바스의 복부를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텅―!
마르바스가 아래에서 위로 검을 쳐올리며 세은의 검을 막아냈다.
그리고 올라간 검을 그대로 사선으로 내리그으며 세은에게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마르바스에게 검이 쳐올려진 세은도 검을 사선으로 내리며 마주 검을 부딪혀 갔다.
터엉―!
또다시 울리는 굉음.
이번에도 밀린 것은 마르바스였다.
마르바스의 신형이 종전보다 더욱 크게 흔들렸다.
흔들리는 균형에 생겨나는 빈틈이었다.
세은이 그 틈을 노려 또다시 횡으로 검을 베어 나갔다.
“크헝!”
간신히 뒤로 몸을 빼낸 마르바스.
그러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완전히 공격을 피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몸을 뒤로 날리면서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오게 된 왼팔이 세은의 공격에 베였다.
팟―!
순식간에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신성력으로 인해 마르바스의 회복이 지체된다.
다행히 검을 들고 있는 오른팔이 다친 게 아니라 힘겹게 세은의 후속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스르륵―
바닥으로 뿌려진 마르바스의 피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흡수되었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던 세은은 그 장면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만약 발견했더라면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숲에서 벗어났을 것이 분명했다.
마법진은 여전히 범위 안의 모든 생기와 마력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바로 바싸고에게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 맞춰 하늘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직 해가 질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점점 사라지는 현상.
그러나 세은은 물론, 마물을 상대하고 있던 헤이런과 제른.
마법진 안에서 패닉에 빠진 유럽군이나, 밖에서 전열을 정비하고 있는 연합군.
그 누구도 하늘이 어두워지는 걸 신경을 쓸 정신이라고는 없었다.
처음 만들어졌던 회오리가 소멸하고 다시 맑아졌던 하늘이 어둠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에 맞춰 또다시 바람이 천천히 불어오기 시작했다.
콰앙―!
마르바스가 시간을 잘 끌어주고 있는 그때.
어느새 회복을 마친 모락스와 바싸고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바싸고와 모종의 눈빛을 주고받은 모락스가 다시 달려들 준비를 마쳤다.
두구두구―
넘치는 마기를 이용해 온몸을 회복한 모락스가 다시 세은의 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또다시 처음의 반복.
이런 상황이 벌써 몇 번째 반복되니 세은으로서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후우.”
결국 세은은 위험을 감수하고 마지막 수단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천벌.
신의 심판.
신성력의 소모도 소모지만, 그레모리와의 맹약이 아직 효력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마왕들의 상태를 봐서는 천벌로도 쉬이 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 수많은 사상자들에게서 뽑아낸 생기가 막대한 마기가 되어 있는 상황이니까.
우우우웅―
세은을 중심으로 주변의 마기와 버금가는 막대한 신성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와 달리, 심상치 않음을 느낀 마르바스와 모락스가 온 힘을 다해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똑같은 기술에 한 번씩 당한 적이 있는 그들.
세은이 맹약에 묶여 있다는 것을 모르는 마왕들로서는 온전히 신의 심판이 발동하기 전에 막아야 했다.
그러나 이미 시동을 시작한 신의 심판은 세은의 몸을 절대적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쾅― 콰앙!
마르바스와 모락스의 공격이 세은을 무차별적으로 내려쳐졌다.
그러나 끄덕도 하지 않는 신성의 방어막.
결국 신성력의 배치가 모두 끝나고, 절대 신성 마법이 발동되었다.
“에일린. 신의 심판.”
바싸고의 마법진으로 인해 모인 마기로 어두워진 하늘이 반으로 갈라졌다.
순간 청명한 하늘이 다시 그 얼굴을 드러냈다.
치이잉―
그리고 그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오며 세은의 손에서 형태를 이뤄 나가기 시작했다.
“크윽.”
“푸르르릉…….”
세은의 손에 붉은빛으로 빛나는 검이 쥐여졌다.
그 검에서 흘러나오던 열기는 마르바스와 모락스도 뒤로 물러나게 만들 만큼 강렬했다.
“자, 제발 버티기를 바란다.”
마왕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며 세은이 검을 내리그었다.
“천벌.”“
천천히 아래에서 위로 내려그어지는 검.
그러나 그 간단한 행위가 만들어 낸 결과물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았다.
순식간에 수많은 번개가 하늘에서 내려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무작위.
마르바스와 모락스는 마기를 끌어올려 번개를 막는 데 주력했다.
내려치고.
내려치고.
그리고 또 내려친다.
순식간에 마기의 회오리가 만들었던 구덩이보다 더 큰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마기 아래에서 신음하는 마르바스와 모락스가 보였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신의 심판을 시전한 것만으로도 벌써 세은의 신성력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조금 더 치명상을 입혀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단죄.”
세은이 또다시 불의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주변의 공간을 신성의 화염이 점령해 나가기 시작했다.
내려치는 번개를 막는 것만으로 벅차하던 마르바스와 모락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세은의 정확한 목표는 바로 공중에서 유유히 번개를 막아내고 있던 바싸고.
화르륵―
신성력을 밀어넣어 신성의 화염을 바싸고에게로 집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