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40. 함정(6)
순간 마법진에서 폭사된 빛의 영향으로 주변이 환하게 빛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빛이 사라진 하늘은 순식간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초저녁의 하늘처럼 어두워진 하늘.
거기에 더해 마기가 가득 실린 끈적끈적한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우우웅―!
공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세은이 신성력을 운용해 바싸고를 공격했다.
텅―!
그러나 마법진이 발동되는 것과 동시에 마기가 강력한 방어막을 이루고 있었다.
텅― 터엉―!
이어지는 세은의 공격도 속절없이 막혔다.
“으아아악!”
“뭐, 뭐야?”
동시에 전장에서 죽은 시체들과 부상자들에게서 피가 빨려 나가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시체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만, 부상자들은 생으로 온몸의 피가 빨려 나가는 느낌에 절규를 질렀다.
이윽고.
시체들과 마찬가지로 부상병들도 목내이가 된 상태로 바싹 말라붙었다.
그 기과하고 공포스러운 광경에 주변의 생존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공포에 젖어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 자들도 생겨났다.
“신속하게 뒤로 물러나라!”
헤이런은 강한 마기의 기운을 느끼고 일행을 신속하게 뒤로 물렸다.
그러나 워낙 마법진의 위력이 강해서 피해자가 조금씩 속출하고 있었다.
사제와 성기사들이 신성력을 발휘해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으아아!”
“빨리 뒤로 가!”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전열이 망가져 후퇴에 속도가 나지를 않았다.
“부상자를 끌고 달려!”
그러나 부상자들을 끌고 마법진의 범위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생기를 빼앗기는 속도가 더 빨랐다.
“크흑!”
“이게 대체…….”
“성하…….”
다른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있을 때.
지금 상황이 범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은 헤이런이 나지막이 세은을 불렀다.
이 정도의 마기라면 세은 혼자서는 버거울 것이 분명했다.
“제른!”
“예!”
“차석에게 지휘를 맡기고 우리는 성하를 도우러 간다.”
“알겠습니다!”
제른도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기 때문에 바로 헤이런의 지시를 따랐다.
마법진의 중심도 아닌데 이 정도의 마기라면 중심은 더 심할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사람의 생명을 흡수하는 마법진이면 시전자들에게 엄청난 힘을 주리라.
이 정도의 광범위 마법진에서 생기를 뺏어서 흡수한다면 그 위력은 가히 상상도 가지 않았다.
쉐에에엑―!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마법진에 가득 찬 마기는 굉음을 내며 중앙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좁은 공간으로 모여드는 마기는 점차 회오리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중앙에 있는 세은의 시야가 방해될 정도로 강력한 회오리였다.
그리고 점점 강해지는 회오리는 흙으로 된 바닥을 점점 파내기 시작했다.
스윽― 스스윽―
흙과 작은 돌이 회오리에 떠밀려 하늘로 올라가면서 범위 안의 나무들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재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 모두의 눈앞에 펼쳐졌다.
마기를 머금고 있던 회오리는 그 색도 칠흑에 가까워서 보는 이로 하여금 본능적인 두려움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끄응…….”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은이 신음했다.
“이 개새끼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는 건지…….”
세은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그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양의 마기가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주변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던 비명소리까지.
생기를 흡수해서 마기로 변환하고 있다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라도 출수할 준비를 하며 세은은 회오리 너머를 긴장하며 바라보았다.
이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바람이 점점 잦아들면서 회오리의 크기가 작아졌다.
회오리가 걷어지고 다시 밝아진 시야에는 모든 힘을 되찾은 세 명의 마왕이 오연하게 서 있었다.
바싸고.
마르바스.
모락스.
완전히 힘을 되찾은 세 명의 마왕의 존재감은 세은으로서도 우습게 볼 수 없었다.
특히 바싸고와 마르바스는 마계 서열 10위 안에 드는 강자들.
둘만 해도 버거운 상황에 상위의 마왕인 모락스까지 총 세 명이었다.
‘후…… 마왕이 한 명이라고 생각해서 쉽게 생각했는데 상황이 정말 더럽게 흘러가네.’
그레모리의 말이 거짓은 아닐 테니, 저 셋 중 둘은 나중에 넘어온 게 분명했다.
그리고 저 중에서 예지의 능력을 가진 마왕은 바싸고 하나.
결국 바싸고가 모든 일의 중심이라는 말이었다.
“개새끼…….”
“후후. 가장 뛰어난 개를 상대하는데 이 정도의 준비는 해야지. 그렇지 않아?”
“니들은 자존심도 없냐?”
“자존심보다는 복수가 먼저지.”
“…….”
모락스가 콧김을 푸르르 내뿜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마르바스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흥. 그나마 사자 새끼가 양심이 있네.”
“……긴말은 하지 않겠다.”
세은의 도발에 마르바스가 대답했다.
“자, 이런저런 말은 제쳐두고 시작하지.”
바싸고가 손을 들어 마법을 발동했다.
모든 힘을 되찾은 만큼 엄청난 캐스팅 속도.
키이잉―
미리 준비된 다른 마법진의 바싸고의 캐스팅에 반응했다.
“크아악!”
“쿠워어어!”
바싸고의 마법진에 반응해서 다양한 마물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우습게 볼 수 없는 고위 마물들.
그러나 세은에게 마물이 위협이 될 리가 없었다.
“고작 마물?”
“뭐, 이건 너를 위한 선물이 아니니까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척.
바싸고의 손짓에 마물들이 사방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마법진에 더 생기를 불어넣을 희생자들.
마물들의 목표를 알아낸 세은이 아차 싶어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어딜 가는가?”
그 말과 동시에 육중한 존재감이 세은을 압박했다.
“마르바스.”
단순히 기세를 뿜어내며 앞으로 나온 것뿐인데, 마르바스의 힘은 세은을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세은이 마르바스를 경계하는 사이에 마물들은 숲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더러운 마물들!”
“차압!”
마침 세은을 돕기 위해 마법진의 중심으로 달려오던 헤이런과 제른이 마물들을 발견했다.
“호오. 상당한 고위 사제가 있는데?”
바싸고가 나지막이 감탄을 내뱉었다.
“뭐, 그렇다고 상황이 바뀌지 않겠지.”
마물 소환을 마친 바싸고가 말을 이었다.
“으음. 역시 차원을 넘는 일은 쉽지가 않군.”
“자존심도 없는 개새끼들.”
“칭찬 고맙네.”
세은의 말에 바싸고가 능글맞게 받아쳤다.
“자! 어디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말과 동시에 마르바스와 모락스가 동시에 세은에게로 달려들었다.
양쪽에서 공격을 받는 절체절명의 상황.
우우웅―
세은은 빠르게 방패와 검을 만들어서 양손에 들었다.
콰앙―!
먼저 네 발로 달려오던 모락스와 세은이 충돌했다.
엄청난 충돌음이 숲을 뒤흔들었다.
“커헝!”
그리고 바로 이어서 마르바스의 공격이 세은의 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우우웅―!
“홀리 웨이브.”
신성의 파도가 등 뒤에서 날아오던 마르바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텅―!
그러나 그 여파로 신성의 파도가 순식간에 부서졌다.
모든 힘을 되찾은 마르바스의 공격은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자! 어디 한 번 얼마나 견디나 볼까?”
바싸고가 말을 마치며 삐뚤어졌던 왕관을 바르게 고쳐 썼다.
동시에 바싸고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등 뒤에서 칠흑의 날개가 순식간에 돋아났다.
온 힘을 다 찾은 바싸고의 본래 모습.
바싸고는 돋아난 날개를 이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에 자리를 잡은 바싸고가 두 손에 마기를 이용한 검은 구체를 만들어서 세은에게 집어 던졌다.
“커헝!”
“푸르릉!”
바싸고의 공격이 날아오는 것을 느낀 마르바스와 모락스가 뒤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둘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던 세은은 몸을 피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크흑!”
결국 방패를 들어 날아오는 구체를 막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
퍼엉―!
구체가 떨어진 자리를 중심으로 꽤 커다란 크레바스가 생겼다.
순식간에 거대한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세은이 있던 곳을 가렸다.
우우웅―!
그러나 세은은 흙먼지를 뚫고 나와 가장 먼저 모락스의 미간을 노리고 검을 찔러 들어갔다.
“하앗!”
“푸릉!”
모락스는 갑작스런 기습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세은의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순식간의 기습이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피해내지 못한 상황.
주륵―
미간에 스치듯 난 칼자국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시발!”
한 놈을 없앨 기회를 놓친 세은이 욕설을 내뱉었다.
구체의 공격을 받은 세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옷이 군데군데 찢어진 상황.
삼 대 일은 무리였다.
당장 힘을 모두 찾은 바싸고 하나만 해도 마계 3위의 마왕.
그 힘은 다른 마왕들과 비교를 거절했다.
“크아앙!”
어느새 마르바스가 뒤에서 또다시 세은을 공격했다.
“흐읍!”
힘겹게 몸을 돌려 뒤에서 들어오는 마르바스의 공격을 막아낸 세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검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 마르바스를 공격했다.
카앙!
온 힘을 다한 세은의 공격은 마르바스의 방어를 뚫고 더 위로 파고들었다.
“큭!”
너무 쉽게 뚫린 방어에 마르바스가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모락스가 세은을 다시 공격하는 바람에 세은의 검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다시 회수되었다.
“후우.”
도저히 한 놈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셋 중에 하나라도 없애야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다.
파아앙―!그 와중에 또다시 바싸고의 공격이 하늘에서 날아왔다.
지상은 둘에게 맡기고 하늘에서 세은을 공격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꽤나 효율적이라서, 세은은 등 뒤가 아닌 머리 위까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역시 시렌. 잘 버틴단 말이야.“
으득.
바싸고의 능글맞은 도발에 세은의 이가 강하게 갈렸다.
누가 봐도 놀리는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은에게는 맞받아칠 여유조차 부족했다.
또다시 마르바스와 모락스가 양쪽에서 공격을 하고 있었다.
결국 세은은 신성력의 급격한 소모를 감수하면서 온몸에 방어막을 두를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웅―!
“합!”
동시에 들고 있던 검과 방패를 없애버 리고 양손에 신성의 검을 들었다.
“큭.”
“푸흑!”
사라졌다가 세은의 손에서 빛처럼 쏟아져 나오는 검에 마르바스와 모락스가 주춤했다.
그 기세를 살려 세은은 다시 모락스에게 달려들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
세은의 신성력이 먼저 소모되는 것이 먼저일지.
그렇지 않으면 마왕을 하나씩 없애는 것이 먼저일지에 달린 상황.
온몸에 신성력을 둘러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세은의 기세는 무서웠다.
콰앙―!
마르바스의 공격이 세은의 뒤를 내려쳤지만 세은의 무시하고 모락스를 쫓았다.
마르바스의 공격에 소모된 방어막은 빠르게 신성력에 의해 복구되었다.
”이런이런. 역시 만만치 않아.“
하늘에 떠 있던 바싸고의 태도는 여전히 여유 만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