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40. 함정(3)
“정말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예.”
“한국 측 각성자가 얼마 없는데…….”
“괜히 가서 손해를 보는 것보단 낫죠.”
“그래도 세은 씨가 가시는데 질 리가 있겠습니까?”
“뭐, 제가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대놓고 부를 정도면 준비를 단단히 했다는 뜻 아니겠어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서 그런 겁니다. 아니면 예비대에 주로 포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죠.”
“예비대요?”
“네, 우리가 이겨도 사후 처리를 하려면 손이 당연히 많이 필요할 테니까요. 예비대가 가장 먼저 돕게 되겠죠.”
“그렇긴 합니다.”
“어차피 일선에 참가한다고 해도,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에게 얼마나 이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죠…….”
냉정한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재호 씨도 후발대로 넣습니까?”
“예. 선발대가 워낙 적으니까요.”
“그…… 데려오신 분들도 선발대로 간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죠.”
교단의 인원을 말하는 이지호의 물음에 세은이 대답했다.
“큰 도움이 될 사람들이니까요.”
“그 정도입니까?”
“네.”
신성 마법.
굳이 세은이 아니더라도 치료와 방어가 가능한 유능한 부하들이다.
한 마디로 세은은 전처럼 공격에 집중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어지간해서는 뒤를 신경 쓰지 않고 혼자서 휘저어도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되는 이들.
“이번에 가는 김에 완전히 일을 끝내고 와야죠.”
거기에 현재 지구에서 세은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보다 마기에 예민한 이들이었다.
유럽에 가서 세은 혼자 찾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 사람들.
세은은 굳이 유럽과의 분쟁에 교단의 사람들을 이용하려기보다 마기를 찾기 위한 탐지기처럼 사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처럼 대놓고 유인할 정도면 세력이 꽤 커졌다는 말이니까.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교단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간단해.’
추기경인 헤이런에, 성기사 중에서도 수위인 제른이 함께하는 구성의 전투 능력을 세은의 기준에서도 훌륭한 편이었다.
굳이 마왕과의 전투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각성자들은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조합.
사제와 기사의 조합은 그만큼 막강했다.
“하여튼,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후방에서 지원을 요청하면 바로 도울 수 있게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가장 좋은 편성을 잡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유럽 연합의 전시전략상황실.
마르키시오를 중심으로 더욱 단단한 결속력이 생긴 상황이었다.
특히 적들이 유럽의 내부까지 파고들었다가 후퇴한 일은 이들의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그런데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어떤 것이 말입니까?”
남성의 질문에 마르키시오가 되물었다.
“선전포고 말입니다.”
마르키시오의 강력한 주장으로 선전포고를 하기는 했지만, 불안한 점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특히 남자는 전에 세은이 브뤼셀에 왔을 때 그에게 당한 적 있는 경험자.
세은의 강력한 무력을 경험한 그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제가 드린 자료를 읽지 않았습니까?”
“아, 읽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괜찮습니다.”
마르키시오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운이 좋게도, 저보다 더 강한 숨겨진 기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예. 그 말은 이미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유럽의 각성자들이 더 강해진 방법도 그 분들이 알려준 방법이죠.”
“정말 놀랍기는 합니다.”
남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르키시오의 말에 동의했다.
“단시간에 능력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믿지 못했지만, 실력 향상이 정말 눈에 띄는 정도입니다.”
“맞습니다. 저도 최근에 시작했는데, 몸에 힘이 넘쳐나는 것이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이 남성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끼어들었다.
상황실의 다른 사람들도 너나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르키시오가 알려준 수련법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다들 효과가 있다니 좋군요. 하여튼 그분들이 이번에 저희를 돕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아서…….”
세은은 경험해 본 사람이고, 마르키시오가 말한 기인들은 직접 보지 못한 상황이다.
당연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걱정 놓아도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들의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 계속해서 첩보를 받고 있으니까요.”
“아, 역시!”
마르키시오의 말에 남성이 크게 아부를 떨었다.
“정보에 따르면, 역시 그 동양인을 믿고 소수 정예로 온다고 하더군요. 후발대가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전력을 동원합니다.”
“아, 얼마 정도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남성의 물음에 마르키시오가 짧게 대답했다.
“압도적인 차이.”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 좌중을 한 번 둘러본 마르키시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는 유럽을 넘볼 수 없을 정도의 전력으로 짓밟습니다. 적들이 그렇게 믿는 동양인을 죽이는 것으로 우리의 힘을 증명할 수 있겠죠.”
마르키시오의 눈에 순간 광기가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 * *
세은을 처리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던 바싸고는 손가락을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예지로 본 미래를 바탕으로 아무리 세은이라도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을 만들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마왕들도 참여하는 마계 역사상 초유의 계획이었다.
몇 가지가 어긋나 교단의 종들이 세은에게 합류했지만, 커다란 장애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놈들은 언제 오는지 궁금하군.”
마르바스가 바싸고에게 물었다.
그와 바싸고가 할 준비는 다 끝났다.
이제 바싸고의 말대로 마계에서 다른 마왕들이 넘어오는 일만 남아 있었다.
바싸고의 예지를 불신하는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던 것이 궁금하기는 했다.
“하하.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나.”
“시렌은 이미 출발했다고 하지 않았나?”
“혼자 오는 것이 아니니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마르바스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너무 여유가 넘치는군.”
“반대로 긴장해야 할 이유라도 있는가?”
능글맞은 바싸고의 태도에 마르바스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봐도 마르바스 자신이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여튼 계획대로 잘 진행이 되고 있다는 말이군.”
“그렇지.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게.”
“흥. 걱정이라니. 전에도 말했지만 이 정도로 협잡을 꾸몄는데 이기지 못하는 것이 두려울 뿐.”
“하하. 자네도 같이 봐서 알겠지만, 어떻게 우리가 질 수가 있겠나?”
바싸고가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무조건 우리가 이기네.”
“너무 교만한 것 아닌가?”
“교만이 아니라 자신감이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흥. 정말 말만은 그 누구보다 번지르르하군.”
마르바스는 못마따한 기색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바싸고의 말이 딱히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바싸고의 준비는 그만큼 철저했고, 마르바스가 보더라도 허점이 없었다.
세은이 아무리 일대일로는 당할 자가 없는 강자라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마왕들의 힘은 강했고, 비록 조금 손색이 있는 상태라고 해도 여러 명의 마력이 모이니 상황이 달랐다.
“하여튼, 다시 도울 일이 있으면 그때 부르면 좋겠군.”
“당연하지.”
바싸고가 가볍게 대답했다.
“얼마든지 휴식을 취하고 있게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움직이게 될 테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바싸고와 마르바스의 대화가 완전히 끝났다.
* * *
타다닷―
세은은 일행의 선두에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교단의 사제와 성기사들이 뒤따랐다.
거기에 교단의 뒤를 케인을 비롯한 삼국의 실력자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민간인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자는 유럽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유럽이 지정한 장소로 간다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충분히 살펴볼 계획이었다.
“자, 그럼 잠시 쉬었다가 가지.”
세은이 걸음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전부 멈추었다.
지금은 빨리 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물론 적이 다른 수작을 부르지 못하게 속도를 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전투를 위해 체력 안배가 더 중요했다.
빨리 도착한다고 해도 정작 체력이 없어서 전투에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다행히 교단이 사제들이 있어 피로를 빠르게 줄일 수가 있었다.
휴식이 시작되면 교단의 사제들이 일행들의 사이를 돌아다니며 피로를 회복해 줬다.
통역 마법 덕분에 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세은으로서는 지구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편안함.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손발이 되어 알아서 해줄 부하들의 편리함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후우. 확실히 편하다니까.”
“하하.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말도 마라. 사제가 나밖에 없으니…… 거기에 여기는 원래……. 됐다. 이런 얘기해서 뭐할까.”
헤이런에게 이것저것 말을 하려던 세은이 입을 다물었다.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일.
원래 각성자가 없었다는 말은 단순히 에너지 낭비였다.
“아! 성하. 이것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응?”
헤이런이 다시 내민 건 세은이 그에게 넘겼던 성물이었다.
“뭐야? 성물은 왜 다시 줘?”
“성물은 성하의 상징. 감히 제가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닙니다.”
“아, 이제 그만뒀는데 무슨 소리야. 가지고 있다가 잘 가지고 가서 내 다음 교황한테 줘.”
“그래도 그전까지는 성하께서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됐다니까.”
“…….”
그러나 헤이런은 세은의 거절에도 꿋꿋하게 성물을 세은에게 내밀었다.
세은은 다시 한 번 헤이런의 말을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연한 표정의 헤이런과 눈이 마주친 세은이 결국 크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어휴. 알았어. 일단 가지고 있지 뭐.”
“황송하옵니다. 성하.”
“다시 돌아가게 될 때 꼭 가져가. 잊지 말고.”
“당연한 말씀입니다.”
세은이 성물을 다시 목에 차자, 그제야 헤이런의 표정이 밝아졌다.
‘확실히 성물이 도움이 되기는 된다니까.’
성물을 목에 차니 몸을 더 충만하게 채우는 신성력이 느껴졌다.
세은의 수준에서도, 성물이 있고 없고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걸 사용한 지도 꽤 오래됐네.’
성물은 원래 착용자의 신성력을 증폭시켜주는 것 외에도, 가장 높은 수준의 신성 마법이 내장되어 있었다.
물론 그 신성 마법을 사용하려면 착용자 본인의 신성력이 충분해야 했지만.
세은은 굳이 성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성물의 도움을 받은 것도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이거 따로 반응 안 하디?”
“예. 성물이 따로 의지를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성물은 성물답게 약간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유명한 에고 물품들처럼 자유롭게 주인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인정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힘을 빌려주지 않았다.
즉, 교황이 아니라면 신성력 증폭 효과도 볼 수가 없었다.
헤이런의 말은 자신이 성물을 찼지만, 일반 목걸이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흐음…… 내가 직접 줬으니 한동안은 헤이런 네가 주인이어야 하는데.”
그래도 다른 에고 물품들과는 달리 교단에서만 사용되는 성물인 만큼 상당히 사용에 관대한 편이었다.
때문에 헤이런에게 반응을 안 했다는 사실이 꽤 의외로 다가왔다.
주변 상황을 알고 있을 정도의 의지는 있을 텐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성물의 의지를 온전히 파악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세은은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당장은 당장 얼마 후에 있을 전쟁이 더 급한 문제였다.
게이트에 관한 문제는 그레모리에게 완전히 연구를 맡기고 왔으니 돌아가면 경과를 확인 할 수 있을 터.
우선 눈앞의 일에 집중을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