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41화 (141/225)

# 141

40. 함정(2)

“흐음…….”

세은은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와 마주 앉은 이지호가 보고를 모두 끝마치고 심각한 표정으로 세은을 마주 보고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세은은, 이내 이지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실장님이 보기에, 지금 유럽이 우리와 싸우면 승리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사견이라도 좋으니 듣고 싶네요.”

“그렇다면야.”

이지호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세은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마 겉으로 드러난 전력으로 비교해 봤을 때는 유럽의 필패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저들이 숨기고 있던 전력이 없지는 않겠습니다만, 그건 저희를 비롯해서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 마디로 무조건 이긴다는 말이군요.”

“예.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그럼 저들이 저렇게 나오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아마도 최상위권 각성자들의 수가 비슷하단 것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지호의 말대로, 유럽은 선전포고를 하면서 민간인의 피해를 막기 위해 각성자들끼리 결판을 내자고 선언한 상태였다.

거기에 더해서, 정해진 인원을 선발해서 싸우자는 조건까지.

그러나 세은이 있다는 것을 아는 유럽이 왜 이런 조건을 걸었는지 누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분명히 세은 씨가 브뤼셀에서 보여줬던 것이 있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도저히 그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한 마디로, 저희에게는 불리할 것이 없다는 말이군요.”

“예.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이지호의 말에 세은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

누가 봐도 뻔히 질 것 같은 싸움을 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금 유럽에서 하는 행동이 바로 그런 행동.

당연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일은 당연지사였다.

“그래서 다른 국가들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일단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말이 많습니다. 혹시 저희가 파악하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그렇겠죠.”

“그러나 세은 씨가 있기 때문에, 다들 낙관적인 분위기입니다.”

이지호의 말에 세은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지간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얼마 전에 헤이런에게 넘긴 성물의 힘을 이용한다면 또 모를까.

지구에 그와 비슷한 수준의 아티펙트가 있는 것이 아니면 힘으로 세은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

차라리 한편으로는 잘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번에 한 번에 최상위권 각성자들을 제압한 뒤, 유럽의 힘을 이용해서 유럽을 조사하면 남은 마왕을 색출하는 작업이 한층 수월해질 게 분명했기 때문.

“그럼 어떻게 할지 결정이 되면 다시 알려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밤낮으로 의견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각성자들끼리의 전쟁이라지만, 아무래도 전혀 다른 국가들이 모여 있던 상황. 당연히 의견이 단숨에 통합이 되지 않았다.

세은이 있는 이상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각 국가에 각성자를 몇 명이나 보내는지의 문제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파견된 각성자의 수에 의해 전후처리에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럼 새로운 소식이 나오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세은과 대화를 마친 이지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우우웅―

“이, 이렇게요?”

“잘 하는구나.”

에린이 헤이런에게 지도를 받고 있었다.

세은이 여러 가지 일들로 바쁜 지금, 헤이런은 에린을 가르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스승 중에 한 명이었다.

“잘 되고 있어?”

“성하.”

“오빠!”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헤이런과 달리, 에린은 단숨에 달려가 세은의 품에 안겼다.

“그래그래, 속도는 어때?”

“놀라울 정도로 빠릅니다.”

세은의 질문에 헤이런이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여태까지 들은 대로라면 이곳에는 여신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런 곳에서 태어난 아이치고는, 정말로 놀라울 정도로 발전 속도가 빠릅니다.”

“뭐…… 여기서도 신성력이 사용가능한 걸 보니 지켜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헤이런이 짧게 성호를 그었다.

“하여튼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 속도라면 몇 년 만 더 있으면 저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하하. 그랬으면 좋겠네.”

헤이런의 호들갑에 세은이 웃음을 터트렸다.

추기경 급의 사제가 한 명이 생기면, 굳이 세은이 나서지 않아도 일이 훨씬 수월하게 풀릴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중간에 정체기가 당연히 있을 거야. 그때가 중요하지.”

“돌아가기 전까지 제가 열심히 지도하겠습니다.”

“고마워.”

이미 세은에게서 모든 상황에 대한 얘기를 들었지만, 헤이런을 돌아갈 수 있단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세은도 마찬가지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일단 이번 일을 마무리하고…….’

유럽과의 일을 마무리하고, 남아 있는 한 명의 마왕을 처리하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 될 것이 분명했다.

그때 케인과 그레모리의 도움을 받아 게이트를 강제로 여는 게 목표였다.

‘그레모리는 당분간 잘 회유해서 데리고 있어야겠어.’

맹약 기간이 끝나면 바로 역소환을 시킬까 고민했지만, 상황 상 잘 회유해서 다시 맹약을 맺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케인은 물론 훌륭한 마법사고, 그와 비슷한 수준의 마법사들이 전 세계로 따지면 몇 명 더 있었다.

그러나 마왕인 그레모리의 지식을 따를 사람이 없는 건 당연했다.

생각을 정리한 세은은 헤이런을 찾아온 본격적인 용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헤이런.”

“예. 성하.”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부탁할 일이 좀 있는데 말이야.”

“부탁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이제 교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한결 같은 헤이런의 모습에 세은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아냐. 듣기 싫으면 안 들어줘도 돼. 하여튼 말이야. 이제 말을 잘 통하지?”

“예. 마법진이 조금 불안정해서 전부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지만, 대화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습니다.”

“하긴, 중간중간 통역이 안 되는 단어도 있더라.”

케인의 통역 마법이 성공해서, 세은도 이제 통역 없이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능숙한 외국어를 구사하게 된 세은은 그동안과 비교해서 훨씬 편하게 활동을 할 수가 있었다.

가장 큰 장벽 중에 하나였던 언어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마정석의 힘을 빌렸어도, 케인의 써클보다 높은 마법이라 그런지 마법이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중간에 마법이 실수해서 마나가 역류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 발생하기도 했다.

“후우.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지. 마법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잠시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던 세은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키잉― 키잉― 키이잉―

“응?”

마법진을 발동하고 있는 케인의 뒤로, 무언가 귀에 거슬리는 노이즈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뭐지?”

깔끔하게 마법이 발동되는 소리가 아닌, 마치 차의 시동이 걸렸다 꺼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불안한 소리에 세은의 고개가 좌우를 살폈다.

“끄응…….”

그리고 마찬가지로 위화감을 느끼고 주변을 살피던 헤이런과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

헤이런의 입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여기서 벗어나야 하나?”

세은이 헤이런에게 물었다.

그러나 조금 더 주변을 살펴보던 헤이런이 세은에게 대답했다.

“아직은 마법진에 큰 문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이 거슬리는 소리가 문제지.”

“예. 그렇습니다.”

“그럼 일단 조금 더 지켜보지.”

거슬리는 노이즈에도 불구하고, 마법진 자체엔 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마법진은 잘 발동하는 것처럼 점점 더 강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키이잉― 키이잉―

“아무래도 불안한데…….”

그러나 그에 맞춰 마법진이 내뿜는 이상한 굉음 역시 점점 커지고 있었다.

방금 전 보다 주기가 길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위화감이 드는 건 마찬가지.

결국 세은은 크게 케인을 불렀다.

“케인!”

그러나 마법진이 발동되며 내는 굉음으로 인해, 케인은 세은의 부름을 듣지 못했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통역을 해줘야 할 에린에게도 세은의 말이 들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결국 세은은 케인을 부르는 것을 포기하고 만약을 대비해서 언제고 신성력을 발동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헤이런.”

“예. 성하.”

그리고 헤이런 역시 마찬가지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혹시나 불안이 퍼질까 봐 다른 이들에게는 전달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제른이 이상한 점을 느끼고 역시 한껏 긴장을 끌어올린 상황이었다.

키이잉― 치직― 키이잉―

중간에 섞인 노이즈가 점점 심해졌다.

그러나 이미 마법은 거의 발동이 끝난 상태.

키이잉―!

잠시 뒤, 케인의 시동어와 함께 마법진에서 뻗어 나오던 빛 무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엇?”

그러나 잠시 제대로 뻗어 오르는가 싶던 빛무리가, 이내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사방으로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마법진을 구성하는 마나가 불안정하게 흔들린 탓.

“케인!”

그러나 그 마나를 제어해야 할 케인은, 당장 마법진에 고인 마나를 해소하는 것도 벅차하고 있었다.

치직― 키이잉―

이대로 케인이 마나의 제어에 실패한다면 거대한 양의 마나가 그대로 터져 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빛의 기둥은 중간중간 늘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이고 있었다.

‘당장 마법진에 고인 마나가 전부 활성화되기 전까지 케인은 움직일 수가 없겠어.’

“헤이런! 방법은?”

세은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생각을 굳혔지만, 헤이런에게 조언을 구했다.

믿을 수 있는 훌륭한 조언자의 말을 들어보는 것은 어느 상황에도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문제가 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역시 헤이런이 세은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불안정한 마나의 기둥을 쳐내고, 안정된 마나만 남기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건 마법을 발동을 염두에 둔 방법이겠지?”

“예. 성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좋아.”

우웅―

세은은 신성의 활을 이용해서 불안정한 마나를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가히 마나의 폭풍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는 곳 중심에서 신성력을 운용하려니 마나의 반발이 심했다.

“크윽.”

그러나 세은은 정신을 집중해서 최대한 마나를 자극하지 않고 케인의 통제에서 벗어난 마나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파앙― 팡―!

그러나 거대한 마정석 여러 개와, 6써클 마법사의 마력은 상상보다 더 거대했다.

키잉― 키잉― 키이잉―!

결국 케인의 제어를 받는 마나보다, 제어에서 벗어난 마나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세은으로서도 방법이 업는 상황.

마법의 실패를 가정하고 폭발의 여파를 막아내는 데 집중해야 할 상황이었다.

“커헉!”

갑자기 케인이 각혈을 하며 마법이 더 강하게 폭주를 시작했다.

우우웅―

결국 세은은 더 이상 마나와의 충돌을 생각하지 않고 신성력을 한 번에 방출해 날뛰는 마나들을 한 곳에 가뒀다.

“헤이런!”

그리고 세은의 외침을 들은 헤이런이 빠르게 케인에게 다가가 그의 내부를 안정시켰다.

“얼른! 다시 마나를 제어해!”

세은의 외침에 케인이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 날뛰던 마나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은의 신성력과 끊임없이 충돌을 하고 있던 마나는 방금 전보다 더욱 난폭해져 있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충돌로 그 총량은 상당히 줄어든 상태.

케인은 헤이런의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으며 마나를 제어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키이잉―

그리고 이내 마법진이 안정화 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세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신성력을 거뒀다.

더 이상은 신성력이 마법의 발동을 방해할 수가 있었다.

“헤이런이 아니면 큰일 날 뻔했네.”

방금 전의 상황에서 헤이런이 아니었다면 마나의 방해로 인해 제대로 신성 마법을 쓰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세은은 천운이라고 완벽하게 부를 수 있는 상황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여튼, 그 일은 잘 마무리됐으니 다행이고. 아직 이곳에 마왕이 있다고 했지?”

“예.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혼자서 찾기는 힘들어서 말이야. 찾는 걸 도와줄 수 있으면 부탁 좀 할게.”

“그런 일이라면 저희가 당연히 나서야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헤이런이 눈을 반짝거리며 자신도 모르고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성하께서 말씀하지 않으셔도 당연히 저희가 나서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열의가 가득 찬 헤이런의 모습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다른 곳에 있다고 마계에 대한 교단의 적개심이 사라질 리가.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세은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앞으로의 일을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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