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40. 함정(1)
“자, 그럼 시작하겠네!”
마법진을 발동할 모든 준비를 마친 케인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세은에게 말했다.
너무 들떠 있던 케인의 모습에 오히려 불안감을 느낀 세은이 케인에게 물었다.
“정말 다 이해한 거 맞아?”
“그렇다네! 거의 다 이해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거의 다?”
어딘가 불안한 단어에 세은이 다시 물었다.
“괜히 실수해서 제어할 수 없는 상황 만들지 말고, 조금 더 살펴보는 게 어때?”
“흐음. 급하다고 하지 않았나?”
“급하기야 급하지만…….”
“어차피 더 이상 봐도 지금보다 더 이해를 하기에는 힘들 것이라네.”
“후우…….”
결국 세은은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며 케인에게 말했다.
“알았어. 믿고 맡기려고 불렀으니 알아서 하게 놔둬야겠지.”
“자네가 함께 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세은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케인이 그를 달래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케인의 농담에 세은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야지.”
“허허. 걱정하지 말게나.”
짧은 대화를 마친 케인이 마법진에 마법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키이잉―
케인이 불어넣는 마나가 그를 보조하는 마정석의 마나를 끌어내었다.
교단의 인원과 세은이 모두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마법진이 서서히 빛을 내기 시작했다.
“저, 정말 괜찮은 것 맞습니까?”
헤이런과 제른을 제외한 다른 교단의 인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른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기사에게 대답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게…… 저기…….”
하지만 헤이런 때문에 세은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기사는 차마 하고 싶은 말을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걱정하지 마.”
그러나 기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
제른은 피식 웃으며 일부러 목소리를 키워 주변에 다 들리도록 말을 했다.
“성물이 우리에게 있다. 이는 여신의 뜻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이지. 의심하지 말고 믿으면 돼.”
“예!”
알아서 상황을 잘 수습하는 제른을 보면서, 헤이런은 나서서 한 마디를 하려다가 멈췄다.
종잡을 수 없기는 해도 제른은 훌륭한 야전 지휘관이 분명했다.
키이이잉―!
그리고 그사이에 어느새 마법진에 쏟아지던 마나의 양이 거의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하겠네.”
케인의 신호를 마지막으로, 마법진에서 눈부신 빛이 폭사되었다.
* * *
“그래?”
사노는 직통으로 자신에게 올라온 보고를 받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함께하고 있던 이지호와 이고르, 그리고 장위건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사노는 부하의 귓속말을 들으며 고개를 몇 번이고 더 끄덕였다.
“좋아. 일단 이 자료 복사해서 더 가져오고, 더 정확한 상황 파악해서 가져와.”
“예.”
보고가 끝난 부하는 사노의 지시를 듣고 황급히 방을 나섰다.
보고가 끝나자 궁금증이 가득한 눈으로 사노를 바라보고 있던 이지호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그렇지 않아도 자료를 복사해서 가져오라고 했으니 자료를 보면서 얘기하지요.”
심각한 사노의 표정에, 모두가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상황에, 회의실에는 묘한 침묵이 흘렀다.
허공을 채우는 긴장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매우 크게 실내를 채웠다.
똑똑―
이내 긴장이 상당히 고조되었을 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나며 사노의 부하가 들어왔다.
“앞에 하나씩 놔.”
“알겠습니다.”
부하는 사노의 지시에 따라 복사해 온 자료를 모두의 앞에 한 부씩 내려놓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신의 앞에 놓인 자료를 들어 읽기 시작했다.
사노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실내의 인원들이 자료를 모두 확인하기를 기다렸다.
탁―
“이 보고가 사실입니까?”
가장 먼저 보고서를 훑어본 이지호가 사노에게 물었다.
사노는 이지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확실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지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을 흐렸다.
미국이 거의 확실하다고 하면 정보의 신뢰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에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으음……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 건 사실이군요.”
이지호의 뒤를 이어 자료를 모두 확인한 장위건이 입을 열었다.
“저희 쪽 요원들도 같은 지역에 가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이런 보고는 아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럴 겁니다.”
장위건의 말에 사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우리도 위로 올라가기 전에 저에게 먼저 자료가 넘어온 겁니다. 아마 여기 계신 다른 분들에게도 금방 보고가 올라오겠죠.”
똑똑―
아니다 다를까.
사노의 말을 기점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요원들이 회의실을 찾아와 급하게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당연히 그 보고는 방금 전에 사노가 보여준 자료와 동일한 내용이었다. 모두가 같은 보고를 받은 시점부터, 더 이상 정보의 신뢰도를 의심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
결국 지금 그들이 받은 정보가 사실이라는 말이었다.
“이건 너무 급작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만큼 준비가 되었다는 말일 수도 있지요.”
“그러기에는 그동안 도에게 당한 것이 많을 텐데요…….”
“저희가 바로 본부를 치는 작전을 시행했던 것에 위기감을 느낀 건 아닐까요?”
이지호의 마지막 말에, 다른 세 명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중간에 갑작스런 세은의 회군으로 인해서 계획이 중간에 취소되었지만, 그전에는 파죽지세로 목표를 향해 순항하고 있었다.
세은을 막을 사람이 없는 유럽으로써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런 선전포고는…….”
장위건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상황에 터진 유럽의 선전포고는 자멸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도저히 상대가 이길 가능성이 없는 싸움.
솔직히 객관적인 전력을 비교해 보았을 때 세은이 없더라도 유럽이 이길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지금처럼 은연중에 경계만 할 때는 정보전과 각성자들의 싸움이었다.
한 마디로 대놓고 싸울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명목뿐인 국제기구라도 일단은 국제기구니까.
그러나 이렇게 대놓고 선전포고를 하면 전면전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미국은 각성자들의 수와 수준으로 그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물론 민간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각성자들끼리의 전투로 하자는 조건이 붙어 있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게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그래도 군대를 동원하면 다 같이 죽는 길이라는 사실을 모르겠습니까?”
“아니요. 만약 우리가 밀리게 되면 정말로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끄응…….”
“설마 그들도 그걸 모르고 선전포고를 했겠습니까?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최악의 상황에는 핵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허…… 이래저래 상황이 난감하긴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희끼리 회의를 한다고 결론이 나겠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제가 굳이 이 자료를 보여드린 이유는, 여기 계신 분들이 각자 자국에서 각성자에 대한 업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노가 시선을 돌려 한 명씩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상황이 정말로 복잡하게 되었으니, 더욱 공고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대로 바로 공유를 하겠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합니다.”
“후우. 갑작스런 상황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군요.”
이지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한국으로서는 각성자들끼리 전쟁을 하려면 사설 길드원들을 고용해야 했다.
다른 국가들도 사설 길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한국처럼 전면적으로 민영화를 한 곳은 없었다.
결국 그 비용은 전부 예산에서 나가게 되어 있었다.
‘관리 비용이 줄어들어서 좋다하더니 노인네들…….’
이지호가 속으로 각성자들을 전부 민영으로 돌린 정부 인사들을 욕했다.
애초에 그 정도 힘을 가진 사람들이 정부에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도 불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목숨이 달린 일에 거금을 주고 고용을 하게 생겼다.
거기에 길드에서 거절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당연히 자신들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수도 없이 튕길 것이 당연한 이치.
이지호는 연신 새어 나오던 한숨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일단 이 사실을 도에게도 바로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 이 부분은 미스터 이가 수고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어차피 한 번은 만나야 했습니다.”
“그럼 일단 오늘은 각자 상부에서 호출이 있을 것이 분명하니, 여기서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사노의 마무리와 함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네 명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정말 이 정도 준비로 가능한가?”
“하하. 걱정하지 마.”
마르바스의 의문에 찬 질문에, 바싸고가 자신감 있는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계획이 어긋난 것 아닌가?”
“뭐, 그건 조금 의외이기는 했지…….”
마르바스의 지적에 바싸고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그레모리 그년이 그쪽에 같이 있을 텐데 말이야. 어떻게 에일린의 개들과 충돌이 없었던 거지?”
“그레모리가 그곳에 있는 건 확실한가? 사실 그 점부터 좀 의아하기는 했는데 말이야.”
“물론,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우리가 있는 곳을 확신하는 걸 보면 같이 있는 것이 확실해.”
“시렌과 그레모리가 함께 한다……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군.”
“뭐, 원래 그레모리는 이상한 것들에 호기심이 많았으니까. 피의 맹약이라도 맺었을 수도 있겠지.”
바싸고는 한 번도 보지 않고 바로 옆에서 본 것처럼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거기까지 대화를 나눈 마르바스는 뭐가 어찌 되었든 상관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하여튼, 내 생각에는 준비가 부족한 것 같군.”
“하하. 얼마 전까지는 한 놈을 상대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모여야 하냐고 그랬으면서, 지금은 모자라도 하는 건가? 마르바스.”
“흥. 이왕 이렇게까지 하는 것 확실하게 이기고 싶을 뿐이다.”
“내 생각도 자네와 마찬가지라네.”
바싸고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나라고 지려고 이러겠나? 그러니 이왕 같이 하기로 한 거 나를 믿고 따라줬으면 좋겠군.”
“…….”
바싸고의 말에 마르바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말이 충분히 먹혔다는 것을 확인한 바싸고는, 다음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여기 인간들은 전쟁이 확전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더군.”
“어째서?”
“글쎄? 이 행성을 단숨에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가 있다고 하는데 말이야.”
바싸고의 말에 마르바스의 눈에 흥미가 차올랐다.
“하하. 나도 구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건 구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 이번 일이 끝나면 그때는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테니 그때 하나 구해주지.”
“좋군.”
마르바스는 그 무기에 대한 흥미를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다.
“하여튼, 그러니까 소수가 만나서 한 번에 결판을 짓자고 하는 거지.”
“그리고 그곳에 함정을 판다?”
“그렇지.”
“나쁘지는 않은 생각이군. 미리 준비해 놓는 것만큼 유리한 전장은 없는 법이지.”
“그래, 그리고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네.”
“……?”
처음 드는 사실에 마르바스가 바싸고를 바라봤다.
그러나 바싸고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잔뜩 흥이 오르고 있었다.
흘러넘치던 흥분에, 바싸고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