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36화 (136/225)

# 136

39. 반격(7)

“다행히 여기를 노린 건 아닌가 보네.”

게이트가 열리던 장소로 간 세은이 주변에 널린 오우거 시체를 보고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지시대로 먼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마기나 팀원의 시체가 없는 걸로 봐서는 온전히 자신만 노린 게 분명해 보였다.

“따라가기 쉬워서 좋네.”

게이트 안에는 팀원이 이동하면서 정리한 몬스터들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몬스터들의 시체를 이정표 삼아 세은은 일행을 찾아 빠르게 이동했다.

“응?

그렇게 팀원의 흔적을 따라 얼마간 이동하던 세은은, 익숙한 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타닷―

자신과 에린을 제외하고는 지구에 있을 리가 없는 기운에 세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럴 리가?”

그러나 분명하게 세은의 감각에는 대량의 신성력이 감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세은의 눈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그의 두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교단?”

일행들과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고 있는 한 무리의 성기사와 사제들은 분명 교단의 구성원이 분명했다.

온몸으로 내뿜고 있는 신성력과, 입고 있던 의복의 모양이 세은이 알고 있는 것과 똑같았다.

그들 역시 세은의 신성력을 느꼈는지, 시선이 세은에게로 쏠려 있는 상황이었다.

도저히 영문을 모르는 사태에, 세은의 두 눈이 교단의 인원들을 쓱 훑었다.

“도!”

“오빠!”

마찬가지로 세은을 발견한 팀원들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방금 전에 커다란 위기를 넘겼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세은의 존재가 든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세은은 팀원들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교단의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눈에 익은 얼굴이 하나 들어왔다.

다행히 교단의 인원 중에 세은이 아는 사람이 한 명 껴 있었다.

“헤이런?”

바로 젊을 때부터 그와 함께 활동해온 사제, 헤이런 팔레스였다.

세은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을 들은 헤이런이 앞으로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앞에서 느껴지는 강한 신성력에, 앞으로 나오고 있던 터였다.

“나를 아는…….”

완전히 일행의 앞으로 나온 헤이런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던 사람을 본 순간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히 그가 많이 본 얼굴.

그러나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성하?”

분명히 자신과 함께 늙어서 천수를 다했던 시렌의 젊은 시절 모습과 똑같은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심지어 그 청년에게서는 자신도 전부 측정할 수 없는 신성력이 느껴졌다.

“헤이런 맞잖아?”

“…….”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헤이런이란 걸 확신한 세은과 달리, 젊은 세은의 모습에 헤이런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외모만 같았으면 마왕의 농간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공격을 감행했을 테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신성력은 진짜였다.

“와. 너 이렇게 보니까 진짜 늙었다?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헤이런과는 달리, 세은이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다가갔다.

아무런 경계심 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은을 보고 움찔하던 헤이런이, 세은의 목에 걸린 성물을 발견했다.

“서, 서, 서, 성물?”

“아, 이거? 그러고 보니 나한테 있었네.”

너무 놀라 경기까지 일으키려고 하는 헤이런의 모습에 세은은 자신의 목을 내려다보았다.

“착용자에게 딱 맞게 변해서 안 빼고 있었는데 말이야. 잊고 있었어.”

처억―

생각난 김에 자신의 목에서 성물을 벗은 세은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헤이런에게 성물을 넘겨주었다.

“자, 이것 때문에 고생했겠네. 내가 가져온 건 아니지만 미안하다.”

“지, 진짜 성물…….”

모양만 보고 확신을 갖지 못했던 헤이런은 자신의 손에 올려진 성물의 존재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기운.

이 느낌.

분명히 성물은 진짜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의미하던 바는 단 하나.

“저, 정말로…… 성하이십니까?”

“그래, 오랜만이다.”

그제야 확신을 갖는 헤이런에게 세은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한 마디 말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헤이런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으며 세은에게 말했다.

“스, 승하하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분명히 마지막을 제가 함께 했는데…… 거기에 젊어지신 이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감정이 벅차오른 헤이런의 질문이 길어졌다.

하지만 세은도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하게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교단에서 통하는 만능의 대답을 꺼내들었다.

“글쎄? 나도 정확한 건 잘 모르고, 여기가 내 고향이라는 것 정도는 확실하네. 여신님이 다시 돌려보내 주신 게 아닐까 하는데 말이야.”

“오오…….”

여신의 뜻이라는 말에 헤이런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헤이런은 세은이 원래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던 몇 안 되는 측근 중에 하나였다.

“그나저나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마계와 게이트가 연결되어서, 적극적으로 방어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마계로 온 거라고?”

헤이런의 말에 세은은 게이트에 대해서 처음에 그레모리에게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아아. 그레모리가 말한 게 이건가?’

그레모리와 나중에 다시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세은이 고개를 돌려 일행을 바라보았다.

“어?”

그런데 일행 중에는 그레모리가 없었다.

교단의 사람들을 감지하고 알아서 몸을 미리 피한 것 같았다.

대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팀원들의 눈빛이 세은의 눈에 보였다.

그리고 교단 쪽도 마찬가지로 세은과 헤이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여튼, 이렇게 만나니 반갑네.”

“저야말로 이렇게 성하를 뵙게 되어 여신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 성물 없어서 당황했겠네. 돌아가면 안부 잘 전해주고.”

“가, 같이 안 가시는 겁니까?”

헤이런의 말에 세은이 대답했다.

“할 만큼 했으면 됐지. 그리고 여기도 난리가 아니야. 마왕들이 자꾸 기어 들어와 말이야.”

“그런! 이곳까지 침략한다는 말입니까?”

그레모리에게 들은 것을 전부 설명하자면 얘기가 복잡해지고, 길어질 게 자명했다.

그렇게 때문에 세은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서 헤이런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응. 그리고 어떻게 돌아온 고향인데 가족들을 두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지.”

“아…….”

세은의 말에 헤이런의 입에서 아쉬움에 가득 찬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여튼, 성물 때문에 이렇게 만난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것이 여신님의 인도입니다.”

헤이런이 두 손을 모은 채 짧게 기도를 올렸다.

세은도 마주 두 손을 모아서 답례를 하고는 말을 이었다.

“자, 내가 알기로 얼른 돌아가지 않으면 길이 막힌다고 알고 있어. 아쉽지만 얼른 돌아가.”

세은의 말에 헤이런이 대답했다.

“그, 그게 이미 길을 잃었습니다.”

“길을 잃었다니?”

세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이리로 넘어왔던 그 장소에 바로 통로가 있을 텐데?”

“없었습니다.”

헤이런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없었다고?”

“예. 분명히 마계로 넘어가는 게이트를 탔는데 영문 모를 곳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해 길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그 말은 이들이 다시 돌아갈 길이 없다는 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세은이 미간을 찌푸렸다.

“끄응…….”

방법이 없나 머리를 굴렸지만,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볼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그레모리를 찾아야겠군.’

세은은 그레모리에게 더 자세하게 물어볼 것을 정하고, 헤이런에게 말했다.

“그럼 일단 여기서 쉬고 있어. 내가 방법이 있나 찾아보고 올 테니까.”

“오랜만에 뵈었는데 너무 보내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세은의 태도에 헤이런이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젊어진 모습만큼, 젊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세은의 모습에 헤이런이 서운함을 표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서운해하던 헤이런을 보며 세은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여기서 평생 살 거야? 그건 아니잖아. 길 없어지기 전에 가라는 거지.”

“맞는 말씀이시지만, 너무 냉정하십니다. 연세를 드시고는 좀 나아지시나 했더니, 다시 젊으실 때로 돌아가셨습니다.”

헤이런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세은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세은이라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다른 세계로 가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그로서는, 교단의 인원이 이곳에 갇히는 것을 가장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의도치 않은 세계와의 단절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고통을 수반했다.

“그리고 이곳에도 여신님의 자비가 미치는 것 같습니다.”

“아, 에린?”

헤이런의 말에 세은이 에린을 떠올렸다.

“네?”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에린이 때를 맞춰 앞으로 나오며 물었다.

모두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노인과 실컷 대화를 나누고 있던 세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중에 나온 에린의 이름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는 사람이에요?”

에린이 이때다 싶어 세은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에린에게는 처음 신성 마법을 가르쳐 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기 때문에, 손짓을 해서 가까이 불렀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귀에 대고 가만히 말을 꺼냈다.

“처음에 말한 다른 세계 사람이야.”

“아…… 그럼?”

세은의 말을 들은 에린의 두 눈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의 말을 의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로만 듣던 것과 실제로 보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세은은 고개를 끄덕여 에린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아끼는 분이신가 봅니다.”

세은이 에린에게 다정하게 귓속말을 하던 모습을 보며 헤이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헤이런이 아는 세은은 누군가를 대놓고 편애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물론 좋고 싫음은 확실했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대놓고 애정을 과시하던 경우가 없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헤이런으로서는 낯선 광경에 조심스럽게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방금 전에 자신들이 했던 잘못도 있었으니까.

“아, 그렇지?”

세은이 질문에 긍정하자 헤이런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이 지어졌다.

정말로 큰 잘못을 할 뻔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저희 공격하려고 했어요. 오빠.”

“그래?”

에린의 말에 세은이 놀라 되물었다.

세은의 말에 아직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에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행히 갑자기 공격을 멈추기는 했는데,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말도 전혀 안 통하는데다가 다짜고짜 공격까지 하니까요.”

“어유. 무서웠겠네.”

어리광이 섞인 에린의 말에 세은이 싱긋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헤이런에게 물었다.

“헤이런, 무슨 일이야? 공격하려고 했다며.”

“아, 성하 그, 그게 말입니다…….”

헤이런은 난감한 표정으로 방금 전의 상황에 대해 해명을 시작했다.

“사소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소한 오해가 뭔데? 사상자가 있는 건 아니지?”

“무, 물론입니다!”

살짝 미간을 굳히는 세은의 질문에 헤이런이 군기가 바짝 들어 빠르게 대답했다.

지금이야 유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세은의 성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럼 무슨 일인지 자세하게 보고해 봐.”

“예! 성하!”

자연스러운 세은의 명령에, 헤이런은 살짝 긴장하며 방금 전의 상황에 대해 보고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처음에 마주쳤을 때, 말이 통하지 않고, 뒤에 몬스터들도 몰려오고, 그리고 제가 느끼기에는 미약하지만 저들 사이에 마기의 기운이 느껴져서…….”

‘그레모리군.’

어련히 알아서 미리 도망쳤겠지만, 추기경의 민감한 감각까지 통과하기엔 조금 모자랐던 게 분명했다.

세은은 헤이런의 말을 들으며 방금 전에 있었던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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